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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본소설

은하영웅전설 5

by Diligejy 2022. 4. 28.

p.41

상황이 격변할 때, 한번 수동적인 입장으로 전락한 사람은 자신의 운명조차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된다. 설령 일방적인 피해자의 입장은 도저히 감수하지 못하는 기골을 지닌 자라 하더라도, 개인 수준의 기력이나 사고를 넘어선 거국적인 상황이 격동하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법이다. 출항하는 배의 갑판 위에서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한들 아무리 용을 써봤자 육지에 도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p.50

이제르론 요새는 긴 회랑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요새란 회랑 양쪽에 서로 다른 군사세력이 존재할 때 비로소 전략적 의의가 있다. 그런데 만약 회랑 양쪽을 같은 세력이 차지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르론은 독 안에 든 조약돌과 마찬가지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요새 자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곳에 주둔하는 함대 또한 전투조차 벌이지 못하고 무력화될 것이다. 전술적으로는 난공불락인 이제르론의 존재의의를 전략 단계에서 없애버리는 셈이다. 그렇다면 동맹군이 이제르론에 집착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p.64

전장에 용자는 많으나, 전쟁 그 자체를 디자인할 수 있는 전략구상가란 그야말로 천금과도 존재가 아닌가.

 

p.97
테러리즘과 신비주의가 역사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움직인 적은 없다.

 

p.151

자살은 아군에게 책임을 지시는 방법일 뿐입니다. 제가 문제로 삼는 것은 적에게, 예, 승리한 적에 대해 책임을 지실 방법입니다.

 

p.165

양은 애국심이 인간 정신이나 인류 역사에서 지고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동맹 사람에게는 동맹 사람 나름의 애국심이 있고, 제국 사람에게는 제국 사람 나름의 애국심이 있다. 결국 애국심이란 우러러볼 깃발의 디자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살육을 정당화하고 때로는 이를 강요하는 심정이며, 대부분의 경우 이성과 공존할 수 없다. 특히 권력자가 이를 개인의 무기로 사용할 때, 그 폐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p.187

"제국 주민들에게는 명백히 마이너스겠지. 강력한 개혁의 지도자를 잃고, 그 후에는 정치적 분열...... 잘못하면, 아니, 거의 확실히 내란이 일어날 거다. 민중은 그 희생양이 될 테고. 정말 끔찍한 이야기지. 이렇게까지 해서, 동맹의 눈앞에 놓인 평안을 추구해야만 할까?"

 

"하지만 그런 것까지 챙기고 있을 상황은 아니잖아요? 제국 일은 제국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율리안, 적국의 민중은 어떻게 돼도 좋다는 생각만은 하지 말아다오."

 

"......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할 일이 아니야. 다만 국가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현상을 바라보면 시야도 좁아지고 멀리 내다보지도 못하게 되지. 가능하다면 난 네가 적이니 아군이니 하는 개념에 얽매여 생각하지능 낳았으면 좋겠구나."

 

p.263

고대 지구에서 민주국가 아테네가 전제국가 스파르타와 항쟁을 벌였을 때, 소국 메로스는 중립을 지키며 어느 쪽의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메로스가 종속을 거부한 데 분노한 아테네는 메로스를 민주정치에 적대하는 존재로 간주하고, 무력 침공해 주민을 학살하고 영토를 병합한 뒤 자신들의 행위를 민주정치의 승리라 부르며 축배를 들었다. 이 추악한 모순은 그 후 인류 역사에 나쁜 전례로 자리 잡았으며, 대의명분은 침략자의 수치심을 가리는 마지막 속옷이 되었다. 침략이나 학살이 광란에 빠진 전제군주의 야심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그나마 구원의 여지가 있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민중이 선택한 지도자가 민중에게 해를 입힐 경우이다. 민중은 이따금 자신들을 모멸하는 자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낸다.

 

p.263~264

양은 생각했다. 최악의 전제정치는 파국 후에 최선의 민주정치를 낳는 경우가 있는데, 최악의 민주정치는 파국 후에 최선의 전제정치를 낳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라고.

 

p.270~271

그들이 잔혹함을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의와 신념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유혈을 선호한다는 것을 이 순간 모두들 이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최고지도자가 연호하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의 신념이 배를 채울 때까지, 무수한 병사가 산 채로 불에 타고 팔이며 다리를 잃어야만 하는 것이다. 국가 통치자가 정의와 신념을 내버린다면 병사들은 터진 배에서 비어져 나온 내장을 바라보며 공포와 고통 속에 죽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전장에서 먼 안전한 장소에 있는 한 권력자들은 정의와 신념이 인명보다도 훨씬 귀중하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p.328

전제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군주와 중신들의 죄 탓이라지만, 민주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모든 국민 책임입니다. 당신을 합법적으로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스스로 그 권리와 책임을 포기하고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치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아치운 거지요.

 

p.355

전제정치의 죄란, 국민이 정치의 해악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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