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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이데거 극장

by Diligejy 2022. 11. 29.

p.6

시간 속에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시간 속에서 머무른다는 뜻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머무르지 않고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p.21

"동물은 철학할 수 없다. 그리고 신은 철학할 필요가 없다. 신이 철학한다면 그 신은 신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의 본질은 유한한 존재자의 유한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는 이미 철학함을 의미한다. 인간 현존재 자체는 그 본질상 우연이든 아니든 철학 안에 들어서 있다." [철학 입문] 15p 재인용

 

p.24

무를 경험하게 하는 근본 기분을 하이데거는 '불안'(Angst)이라고 불렀다. 불안이란 어떤 위협적인 존재자 앞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음' 앞에서 느끼는 규정할 길 없는 두려움이다. 이 무의 두려움 속에서 인간은 경악한다. 경이가 경악으로 바뀐다.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느꼈던 경이가 불안과 함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무로 꺼져버리는 사태에 소스라치는 경악으로 바뀐다.

 

그 경악 속에서 우리는 다시 '왜?'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이 모든 것이 무의미로 흩어져버리는 것일까? 왜 세계 전체가 텅 비어 무만 남는 거서일까? 이 텅 빈 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p.43

하이데거가 말하는 숲과 나무가 바로 존재와 존재자를 가리킨다. 숲이라는 존재와 나무라는 존재자는 구별된다. 숲은 나무라는 존재자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무도 숲을 떠나서 나무로 있지 않다. 나무라는 존재자는 숲이라는 존재 안에서 그 존재에 속한 채로 나무로 있다. 숲은 나무라는 존재자가 드러나는 바탕이다. 우리의 일상적 감각은 나무들에 파묻혀 숲 자체를 보지 못한다. 다시 말해 순전히 존재자에만 골몰할 뿐이고 존재 자체는 보지 못한다. 하이데거에게 중요한 것은 존재자를 존재자로서 드러나게 해주는 존재 자체를 보는 것이었다.

 

p.56

인간이 본래적 실존을 획득하려면 먼저 죽음을 향해 앞질러 달려감으로써 죽음에 맞부딪쳐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한다. 이렇게 결단할 때 살아온 삶의 관성이 끊어지고 그 삶 속에 잠복해 있던 본래적 실존의 가능성이 현재화하게 된다. 다시 말해 본래적 실존이 지금 여기의 삶으로 솟아나게 된다. 모든 것을 무로 돌려버리는 죽음이라는 장래의 사건을 향해 미리 달려가 봄으로써 삶을 결단의 칼날 위에 세우고 본래적 실존의 현재를 열어 밝히는 것이다. 그 결단의 칼날로 살아온 삶의 관성을 끊어버리고 본래적 실존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이렇게 시간을 개별 인간의 시간으로 파악했다. 이 개별 인간의 시간은 1930년대에 이르러 집단적 시간 곧 역사적 차원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p.67~68

대양의 파도치는 표면이 '드러난 진리'라면, 대양의 어두운 심연은 '감추어진 진리'다. 존재가 어둠을 간직한 채로 드러나듯이, 진리도 어둠을 간직한 채로 드러난다. 존재는 비밀을 품고 있고 진리도 마찬가지로 심연을 품고 있다. 하이데거 후기 사유가 마지막까지 파고 들어간 것은 바로 이 존재의 거대한 비밀과 진리의 아득한 심연이었다. 존재의 비밀이 곧 진리의 심연이다. 이런 하이데거의 사유에는 우리 인간이 '드러난 진리', '드러난 존재'만 보고 모든 것을 알았다고 거들먹거려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우리는 어둠과 심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 다시 말해 존재 자체의 헤아릴 길 없는 깊이 앞에서 경외감을 느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존재자 전체가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닌 것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세상 만물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비밀과 심연의 차원을 숙고하는 것, 다시 말해 '밝힐 수 없는 존재의 비밀'과 '가 닿을 수 없는 진리의 심연'을 숙고하는 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사유의 과제라고 하에데거는 생각했다.

 

p.114

브라이크는 가톨릭 사제이자 가톨릭 신학자였고, 하이데거에게 브렌타노를 처음 알려준 그뢰버도 브라이크처럼 가톨릭 사제였다. 가톨릭의 두 사제, 그뢰버와 브라이크는 젊은 하이데거를 철학으로, 형이상학과 존재론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하이데거는 가톨릭이라는 옷을 입고서 철학의 왕국에 들어섰다. 그러나 가톨릭이 하이데거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가톨릭의 영향이 하이데거의 정신을 일방적으로 지배할 만큼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철학적 사고의 기초를 닦던 시기에도 하이데거의 생각은 결코 한 곳에 갇히지 않았고, 촉수를 여럿 거느린 생물처럼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그것이 하이데거 정신의 고유한 특성이었다. 하이데거는 평생토록 '존재' 하나만을 사유한 존재의 사상가였지만, 그 하나는 모든 것을 포괄했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존재를 동심원으로 삼아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다시 존재라는 동심원으로 돌아왔다. 

 

p.125~126

신학에서 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하던 시기에 하이데거의 철학적 수련을 규정한 또 하나의 힘은 '신칸트학파'였다. 신칸트학파를 주도한 사람은 마르부르크대학의 헤르만 코엔과 파울 나토르프, 서남독일학파를 이끈 빌헬름 빈델반트와 하인리히 리케르트였다. 이 네 사람 가운데 리케르트는 당시 프라이부르크대학 철학과의 좌장으로서 이 대학의 학풍을 이끌고 있었다. 신칸트학파의 형성과 부상은 19세기 중반 이후 헤겔 관념론이 무너진 뒤 그 빈자리를 채운 자연과학주의와 긴밀하게 연동돼 있었다. 자연과학의 질주와 승리는 전통 철학의 위상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자연과학과 동맹을 맺은 '조악한 유물론'이 위세를 떨칠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19세기 말의 유물론이 그려낸 세계에서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인정받을 공간이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화학과 물리학과 생물학의 틀 안에서 설명됐다. "생성과 존재의 세계, 그것은 분자의 이합집산과 에너지의 변화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원자론과 데모크리토스의 세계였다. 더는 아낙사고라스의 '누스'(지성)와 플라톤의 이데아는 필요하지 않으며, 기독교의 신과 스피노자의 '실체'도 필요하지 않고,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피히테의 '자아', 그리고 헤겔의 '정신'도 필요하지 않다. 인간 안에 거주하는 정신이란 뇌의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 사유와 뇌의 관계는 담즙과 간, 소변과 신장의 관계와 같다. 

 

인간의 정신과 문화가 고유한 무게와 깊이를 잃어버린 이런 상황에서 한 무리의 학자들이 칸트 철학의 부활을 꾀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통 철학이 이미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조악한 유물론의 세계 해석에만 모든 것을 맡겨두어서는 인간의 정신적 삶이 더 깊이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이 이미 대세가 된 마당에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칸트 학자들은 철학으로 과학을 제압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됐다고 인정하면서, 과학의 지배 아래서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했다. 과학에 철학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것, 이것이 신칸트주의자들이 우선 생각해낸 것이었다. 파울 나토르프는 1909년 철학이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정의했다. '철학의 과제는 자기투명성을 얻으려는 과학의 방법론적 노력 말고 다른 것이 아니다. 철학에서 과학은 자신의 고유한 원리와 방식과 가치 방향을 깨닫는다.'

 

p.129~130

새로운 사유 세계를 개창할 사람은 이미 수련을 시작할 때부터 막연하기는 하지만 한 곳에 갇히지 않는 큰 틀로 세계를 본다. 다만 그 틀이 너무 흐릿하고 그 틀을 채울 내용이 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그 자신은 어둠 속을 헤매는 것처럼 느낀다. 수련자는 세계를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통찰력 있는 지식을 찾아다니지만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충족감을 주지는 않는다. 어떤 학설이든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 약점과 빈틈이 크레바스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그 모든 지식을 답사해 그 너머로 나아간 뒤에야 어둠을 지우는 새벽의 박명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와 세게가 서서히 떠오른다. 바로 그 시기가 오기까지는 방황과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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