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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프라이싱 : 가격이 모든 것이다

by Diligejy 2023. 4. 1.
 
헤르만 지몬 프라이싱
‘가격결정(pricing)’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헤르만 지몬의 프라이싱』. 독일이 낳은 초일류 경영학자, 유럽의 피터 드러커, 가격결정 관련 자문에 있어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지몬-쿠허&파트너스의 회장이자 베스트셀러 《히든 챔피언》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헤르만 지몬은 이 책을 통해 가격결정에 관한 지혜의 보고로 우리를 안내한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으로서의 가격, 경쟁이 극심한 시장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최고의 마케팅 무기로서의 가격, 상품의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가격, 심지어 최고경영자라면 응당 가장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조심성 없이’(때로는 ‘적당히’) 결정하고 마는 가격. 이 모든 가격결정에 대한 것을 탁월한 글 솜씨와 섬세한 설명으로 질서정연하게 풀어낸다. 필립 코틀러와 피터 드러커 같은 대가들과 극적으로 만났던 자전적 이야기들, 저자가 지난 40여 년간 마주친 풍부하고 다양한 사례들과 새롭고 놀라운 혁신적 가격결정 방법 등을 제시하면서 더 큰 이익과 더 강력한 경쟁력이 왜 가격결정에서 시작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
헤르만 지몬
출판
쌤앤파커스
출판일
2017.10.13

 

p.20

십수 년이 지난 후, 나는 인터뷰에서 이러한 교훈들이 나로 하여금 스스로 회사를 운영하고 다른 이들의 사업을 도와주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절대로 당신의 가격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지 말라."

 

p.21

훗날 1994년 게임 이론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라인하르트 젤텐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가격결정은 또 한 번 나에게 감정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젤텐 교수는 수업에서 진짜 돈을 걸고 가격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상금으로 100달러를 내걸었다. 플레이어 A 1명과 플레이어 B 4명이 모여 연합을 구성하고 최소 10분 이상 지속시켰을 때에만 연합 구성원들끼리 이 상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당시의 나처럼) 플레이어 A라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당신은 어떤 원칙을 따르겠는가? 당신을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인가? 이 같은 질문들을 염두에 둔 채 이 글을 계속 읽어주길 바란다. 

 

 

p.31-32

1992년, 우리는 독일 거대 철도 회사에 선불 수수료가 붙은 할인카드 제도를 도입했다. 소비자들은 열광했는데, 이 할인카드를 이용해서 훨씬 더 간편하게 여행계획을 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투명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철도 회사 역시 이 제도를 대단히 좋아했는데, 카드 수수료를 통한 고정 수입이 생긴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많은 사람이 기차를 실용적이고 저렴한 선택지로 생각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더 큰 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p.38-39

경영자들은 가격, 특히 가격인상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고객이 가격변화에 어떻게 반응할지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가격을 인상한다고 해도 충성스러운 고객으로 남아줄 것인가? 우르르 경쟁시장으로 달려가지는 않을까? 우리가 가격을 인하한다면 정말로 구매가 늘어날 것인가?

 

가격인하의 2가지 표준 방식인 특별 할인과 가격 프로모션은 소매시장에서 매일같이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큰 폭으로 발생하는 듯하다. 최근 수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맥주 시장 중 한 곳에서는 50%에 가까운 할인율의 가격 프로모션들이 단행되었다. 그로부터 고작 2년여 정도가 지나자, 맥주 소매 시장의 7할 정도는 최고 반값에 이르는 특가 상품을 팔게 되었다. 이 기회를 노렸건 혹은 필요에 따랐건, 경영자는 이처럼 공격적인 가격 정책이 경영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로 도움이 되었을까?

 

가격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베스트바이의 CEO 유베르 졸리가 2013년 말 미국 내 부진한 판매 실적을 보인 뒤 내놓은 간결한 설명을 들어보면 된다. "가격 프로모션을 풍부하게 제공했으나 그것이 산업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은 베스트바이의 공격적인 할인 정책이 "소비자가 더 많은 전자제품을 사도록 유도하지 못했으며, 대신 팔린 물건의 가격만 낮추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가격조정은 리스크가 큰 결정으로, 상황이 잘못될 경우 엄청난 결과가 뒤따를 수도 있다. 부진했던 연말 매출에 대한 보도가 나온 다음 날 베스트바이의 주가는 30% 가까이 하락했다. 가격은 이처럼 전국의 고객과 주주의 생각을 뒤흔드는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에, 경영자는 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 되도록 가격을 변화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이들은 더욱 확실하고 실체가 있는 원가관리에 집중한다. 원가관리는 내부 요소 및 생산자와의 관계를 다루는 일로, 대부분의 경영자는 이를 고객관계보다 덜 민감하며 더 쉬운 행위로 받아들인다. 

 

p.39~40

많은 사람은 '가격'이라는 개념을 그 단어가 가진 가장 단순한 뜻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당신이 지불해야 하는 화폐의 액수라는 것이다. 대강 나열해보자면 1갤런의 가스는 4달러 정도, 커피 라지 사이즈는 2달러, 영화표 1장은 10달러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는 이렇게 단순히 셈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주유를 할 때는 아마도 할인된 가격에 세차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커피를 사면서 도넛이나 베이글을 같이 사도 할인을 받는다. 영화관 구내 매점에서는 단품의 가격보다 음료수 라지 사이즈와 팝콘 라지 사이즈를 묶어놓은 세트메뉴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좀 더 복잡한 경우도 많다. 다음 질문들에 빠르게 대답해보라. 휴대전화 요금에서 통화 1분이 차지하는 요금은 얼마인가? 1킬로와트 시의 전기에는 얼마를 지불했는가? 매일 출퇴근하는 돈은 얼마가 드는가? 수많은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은 여러 차원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에 적절하고 올바른 숫자를 대며 깔끔하게 대답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가격이 단 하나의 차원만을 가질 때에도 '얼마인가'를 셈하는 질문은 많은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표 2-1]이 이를 잘 보여준다.

 

|표 2-1 | 가격의 다양한 차원들

- 기준가격

- 할인, 보너스, 리베이트, 조건부가격, 특가

- 포장크기나 상품의 특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가격들

- 고객군(어린아이, 노년층), 하루 중의 시간대, 위치, 제품주기의 속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가격들

- 보완재의 가격들 (면도기와 면도날, 스마트폰과 데이터요금제)

- 특별서비스 및 부가서비스의 가격들

- 2개 차원 이상의 가격들(선불 요금과 사용 요금)

- 묶음가격

- 개인적인 협상에 의거한 가격들

- 도매가, 소매가, 생산자권장가격(MSRP)

 

p.45

라틴어로 '프레티움Pretium'이라는 단어는 '가격'과 '가치'라는 2가지 뜻을 동시에 가진다. 문자 그대로 말하면, 가격과 가치는 한 몸이자 서로 같은 것이다. 이 점은 회사가 가격결정을 내릴 때 따라야 할 좋은 가이드라인이기도 한데, 여기서 경영인에게 3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 가치를 창조하라 : 재료의 질, 퍼포먼스, 디자인 등 모든 것은 고객이 지각하는 가치로 연결된다. 기술 혁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가치를 소통하라 : 당신은 고객의 지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가치 소통에는 제품 설명, 상품 판매에 대한 홍보, 브랜드 등의 방식이 있다. 포장, 상품의 퍼포먼스, 판매를 위해 놓인 선반의 위치나 온라인 판매처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 가치를 보존하라 : 일단 구매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긍정적 시각을 지속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치의 지속은 사치재, 내구재, 자동차 등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용의가격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가격설정 과정은 제품 구상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회사는 제품 출시 준비가 다 된 다음이 아니라 제품 개발 과정에서부터 가능한 한 일찍, 또 가능한 한 자주 가격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p.46

프랑스인이 말하듯, "가격은 잊히지만 품질은 남는다." 당신이 산 물건의 질은 당신이 가격을 잊어버린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뜻이다.

 

농기계 사건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스페인의 유명한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격언 하나가 당시 나의 감정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최악의 오류이자 가장 쉬운 오류였다. 제품의 질에 속느니 가격에 속는 것이 나았다." 나는 공기업이나 회사 등이 가장 낮은 가겨겨을 부른 입찰자를 선택할 때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p.48

가격은 대체로 수명이 짧으며 빠르게 잊힌다. 소비자 연구와 행동주의 연구들이 몇 차례 증명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심지어 방금 산 물건의 가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품의 품질, 제품의 좋고 나쁨은 오래도록 남겨진다. 누구나 상품을 대충 보고 구매했는데 사용하다 보니 상품에 대해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에도 미치지 못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또 많은 사람은 다소 높아 보이는 가격에 물건을 구매했음에도 결국 그 뛰어난 성능에 깜짝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1964년, 어머니는 첫 식기세척기로 밀레 사의 제품을 선택하셨다. 가난한 농장 식구들에게 밀레의 식기세척기는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이었으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구매를 후회하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2003년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그 식기세척기를 사용하셨다. 

 

p.49

경영자들은 가치가 성공적으로 소통되지 못할 경우 별다른 소용이 없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는 곧 소비자가 스스로 무엇을 구매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하게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명심하라, 지불용의가격으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근본적 동인은 바로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가치가 대부분 경영진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량화하는 데 실패하는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차 효과, 그리고 무형 이익이 바로 그것이다.

 

2차 효과의 힘을 이해하려면 먼저 당신이 에어컨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당신의 회사는 운송 회사들이 장거리 수송에 주로 이용하는 대형 트럭에 설치할 특수 에어컨을 개발했다. 내가 제품의 품질이나 장점에 대해 질문한 경우 당신은 제품 사양 목록을 꺼내 들고는 얼마나 빠르게 시원해지는지, 얼마나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소음이 얼마나 없는지 등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 즉 운송 회사가 제품의 가치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p.51-52

수많은 상품이 그러하지만, 특히 산업재의 경우 가치 소통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보여주는 것이다. 때때로 훌륭한 가격결정을 보여주는 기어버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2012년 연간보고서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표 2-2]는 에너지 절약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달러 단위로 보여준다. GE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곧 큰 설비투자이며 구매자는 상당 기간 그 제품을 사용하게 되므로 [표 2-2]는 이를 반영해 15년 단위로 작성되었다.

 

 

GE의 가치 소통
  15년 간 절약 금액
항공 1%의 연료 절약 $300억
발전 1%의 연료 절약 $660억
철도 1%의 시스템 비효율 감축 $270억
의료 1%의 시스템 비효율 감축 $630억
석유 및 가스 1%의 자본지출 감축 $900억

1%의 힘 : 1%의 변화는 고객에게 엄청난 가치로 다가올 수 있다.

 

특히 기업 간 거래의 경우, 당신은 가능한 한 자주 명확한 데이터를 이용해 가치를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 물론 소비재의 경우 가치 소통을 한층 더 중요해진다. 광고계의 전설적인 인물 데이비드 오길비가 말했듯, 펩시와 경쟁하던 코카콜라는 펩시보다 얼마나 더 많은 콜라 열매를 사용하는지 광고하지 않았다. 상품이 주는 특권, 품질, 디자인을 수치로 나타내는 것은 이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가전기기 회사인 밀레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냈다. 밀레의 제품은 20년도 넘게 거뜬히 사용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광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실제로 내 어머니가 구매한 식기세척기는 40여 년을 버텨주었다. 소비자들은 앞서 우리가 신뢰성, 심적 안정, 편리성 등으로 일컬은 항목들에 무엇이든 마음대로 추가할 수 있다. 어쨌거나 요지는 이 주장이 참이며 밀레의 고객들이 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왜 밀레의 가전기기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100%에 가까운 재구매율을 보이는지 설명해준다. 오로지 지각된 가치만이 지불용의가격을 형성한다.

 

p.52~53

가격결정은 2012년 런던에서 개최된 올림픽게임의 환상적인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티켓 프로그램의 총괄 담당자였던 폴 윌리엄슨은 가격을 수익과 이익 창출의 효과적 유인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도 사용했다. 가격의 숫자 자체는 부가 설명 없이도 어떠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가장 낮은 기본가격은 20.12파운드, 가장 비싼 티켓은 2012파운드였다. '2012'라는 숫자는 가격표에서 몇 번이고 등장했으며, 모든 사람은 즉시 이 금액이 올림픽게임을 의미함을 알 수 있었다.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는 '나이만큼 지불하기'방식이 적용되었다. 6세 아이는 6파운드를, 16세 청소년은 16파운드를 내면 됐다. 이 가격체계는 엄청난 호평을 받았으며, 언론 매체들은 이를 수천 번도 넘게 보도했다. 영국의 여왕과 총리까지도 공개 석상에서 '나이만큼 지불하기'제도를 칭찬했다. 이들 가격은 소통의 효과적인 수단이었으며, 나아가 매우 공정하다고 평가되었다. 노년층 역시 더 할인된 가격에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할인 정책이 전혀 없었다는 것 또한 런던 올림픽 가격체계의 또 다른 요점이다. 런던 올림픽 기간 내내 이 원칙은 철저히 고수되었으며, 티켓이 팔리지 않는 경기라도 예외는 없었다. 이는 곧 '경기와 경기의 티켓은 그 가격 값을 한다'는, 가치에 대한 확고한 신호를 보냈다. 경영진은 티켓 끼워 팔기 또한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인기 많은 게임과 인기 없는 게임의 티켓을 한 세트로 묶어 파는 것이 흔한 일이었으나,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만 런던 지역의 대중교통 이용권은 경기 티켓과 함께 세트로 구매할 수 있었다. 

 

런던 올림픽 경영진은 커뮤니케이션과 판매라는 두 분야 모두에서 인터넷에 매우 크게 의존했다. 약 99%의 티켓이 인터넷을 통해 판매되었다. 올림픽 개최 이전에 세운 티켓 판매 수익 목표는 3억 7,600만 파운드(6억 2,5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윌리엄슨을 필두로 한 경영진은 그 기발한 가격체계와 홍보 캠페인으로 목표점을 훌쩍 넘긴 6억 6,000만 파운드(11억 달러)의 티켓 수익을 창출했다. 이는 예상보다 75% 더 많은 금액이자, 런던 올림픽 이전 세 번의 올림픽(베이징, 아테네, 시드니)에서 거둔 티켓 수입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금액이었다. 

 

p.54~55

새로운 가격체계는 판도를 뒤바꿔버릴 충격을 부를 수 있다. 90년대 초반, 독일의 철도 회사 도이치반(DB)은 심각한 난관에 직면해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철도를 기피하고 자가용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차표 가격이 큰 요인 중 하나였다. 같은 거리를 자동차로 주행하는 데 드는 연료비보다 거의 2배나 비쌌기 때문이다. 

 

1991년 가을, 당시 DB의 여객수송 CEO 햄외 클라인은 철도 여행이 자동차 여행보다 더 나은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연구를 통해 여행자가 철도요금과 자가용 운전 비용을 비교할 때에는 '당장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가격'인 자동차 연료비 정도만 고려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당시 DB의 2등석 기차요금은 km당 16센트 정도였으나, 폭스바겐 골프를 비롯해 일반적으로 많이 타는 자동차들의 연료비는 km당 고작 10센트 정도에 그쳤다. 500km를 여행한다면 기차로는 80달러가 들겠지만, 같은 거리를 자가용으로 운전할 경우 50달러 정도면 충분한 셈이다. 이처럼 불리한 가격조건 때문에 DB가 자가용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였다. km 당 10센트 이하로 기차요금을 전격적으로 내리는 방법은 두말해보았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면적인 요금 삭감도 무의미하다면 어떤 방법이 남아 있단 말인가? 우리는 자가용 여행 비용을 2가지 요소로 구분하면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일상생활에서 인지할 수 있는 변동비(연료비)와, 일 단위 계산으로는 대부분 알아차리기 어려운 고정비(보험료, 감가상각, 특별소비세 등)가 바로 그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기차요금도 변동비와 고정비로 구분할 수 있을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철도카드의 탄생이었다.

 

기차표 1장의 가격은 이제 2가지 요소로 나뉘었다. 기차표 자체의 가격(가변적)과 철도카드의 가격(고정적)이었다. 2등석 좌석을 대상으로 1992년 10월 1일 출시된 첫 철도카드는 1년에 140달러였으며, 몇 주 후 출시된 1등석 대상의 철도카드는 연 280달러 정도였다. 노년층과 학생은 반값에 카드를 살 수 있었다. 철도카드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정가의 반값에 기차표를 살 수 있었다. 이는 기차 여행의 변동비를 km당 8센트로 줄여주었는데, 알아챘겠지만 이는 전형적인 운전 비용인 km당 10센트보다 낮은 비용이었다. 

 

철도카드50(할인율이 50%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은 곧장 히트를 쳤다. DB는 4개월 만에 100만 장의 카드를 판매했으며, 이후로도 가입자 수는 점점 늘어나서 하르트무트 메도른이 DB의 CEO가 된 2000년에는 400만 명이 되었다.

 

p.57-58

오늘날 철도카드 이용자는 약 500만 명에 이른다. 연간 수수료는 2등석 철도카드25의 61유로(대략 80달러)부터 1등석 철도카드100의 8,900달러까지 다양하다. 2등석 철도카드50은 249유로(대략 325달러), 1등석 철도카드50은 498유로(대략 650달러)다. 부가서비스가 제공되는 비즈니스 카드도 있다. [표 2-3]에서 볼 수 있듯이, 철도카드의 다양한 가입 유형은 기존의 기차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방법을 제공한다. 아래 표는 2등석 철도카드를 기준으로 하지만, 1등석 철도카드의 할인율도 거의 흡사하다.

 

철도카드의 할인율 (2등석 기준)
기존요금 철도카드 유형 철도카드 할인 후 요금 절약한 돈(유로/%)
500유로 철도카드25 436유로 64유로 12.8%
750유로 철도카드25 624유로 126유로 16.8%
1,000유로 철도카드50 749유로 251유로 25.1%
2,500유로 철도카드50 1,499유로 1,001유로 40.0%
5,000유로 철도카드50 2,749유로 2,251유로 45.0%
10,000유로 철도카드100 4,090유로 5,910유로 59.1%
20,000유로 철도카드100 4,090유로 15,910유로 79.6%

 

 

모든 유형의 철도카드에서 정가 대비 할인율이 커질수록 더 많은 카드 소지자가 카드를 사용했다. 카드 소시자들은 카드에 투자한 만큼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철도카드는 매우 효과적인 고객 유지 장치가 되었다. 

 

2003년의 철도카드 프로젝튼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철도카드50 소지자들은 평균적으로 정가 대비 30% 정도만 절약할 수 있었으나 티켓마다 50%의 할인을 받는다고 지각했다. 다시 말해 DB의 고객들은 스스로 평균 50%의 이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편, 회사 측에서는 30%가 조금 안 되는 비용으로 이와 같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꽤 괜찮은 거래가 아닌가?

 

p.62-63

가격변경의 효과는 주로 뒤늦게 나타나는데, 이를 '붐 앤드 버스트 주기(Boom and Bust Cycle)' 혹은 '호그 주기(Hog Cycle)'라고 부른다. 돼지(hog) 공급량이 부족하면 돼지 가격은 오른다. 그래서 농부들은 다음 시즌에 더 많은 돼지를 기르게 된다. 늘어난 공급량이 몇 개월 후 시장에 유입되면 자연스레 가격은 떨어진다. 때문에 농부들은 다음 시즌에 더 적은 돼지를 키우게 된다. 이 순환주기는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가격주기는 석유 자원 개발 등의 몇몇 시장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기까지 10~15년이 걸릴 수도 있다. 1997년, 우리 팀은 거대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사인 데미넥스를 위한 글로벌 설문조사에 착수했다.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주요 석유회사를 인터뷰했다. 당시 배럴당 20달러 되던 원유가의 장기적인 예상 추세를 그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조사 결과 예상치는 배럴당 15달러 정도였는데, 1999년이 될 무렵에는 실제로 배럴당 12달러까지 떨어졌다.

 

기업들은 이미 가격 하락세를 염두에 둔 채 투자를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후 원유가가 다시 치솟게 되는 기저 원인이 되어, 수년 후에는 1999년보다 10배 이상 급등했다. 이러한 상황은 어핏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호그 주기'가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좀 더 들여다본다면 그렇지 않다. 원유가가 낮았던 기간 동안 새로운 석유 자원 개발에 대한 총투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개발 자금은 가장 유망한 프로젝트들에만 돌아갔다. 투자를 받은 프로젝트 수가 적었기 때문에 기존 유전이 성숙기에 들어서고 새로운 유전이 가동을 시작할 즈음이면 원유 총생산량이 더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중국 등 신흥시장의 원유 수요 증가까지 겹치면서 원유 수요와 공급 사이의 크고 지속적인 격차가 발생했다. 

 

가격변경이 이 격차를 반영했다. 2008년 7월, 원유 가격은 사상 최고인 배럴당 147.90달러를 기록했다. 이 10년의 기간은 필연적이게도 신개발 지역이 완전히 생산할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리는 개발 프로젝트의 소요 시간과 같았다. 이후로 몇 년 동안은 원유 가격이 떨어진대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원유가의 10년짜리 도움닫기에 의해 회사들은 더 많은 자원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으며, 배럴당 12달러에서는 할 수 없었으나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상황에서는 상당한 이익을 낼 수도 있을 새로운 자원 개발 및 생산 공정 또한 확대했다. 이 공식의 와일드카드 격인 요소들, 즉 신흥시장의 수요, 환경 영향에 대해 높아진 관심, 그리고 연비를 높이기 위한 시도 등은 정확한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공급의 증가는 실제로 나타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었으나 결국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원유 가격 이야기든 돼지 이야기든, 이를 통해 우리는 가격변경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며 한 방향으로의 상승세나 하락세보다 훨씬 더 자주 일어남을 알 수 있다. 

 

p.67-68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는 가격결정과 가격결정력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가격, 임금, 이자율 등에 대해 이루어진 모든 합의는 고작 휴전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었다. 가격협상은 전쟁과 비슷해서 결국 휴전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노조와 사용자 사이의 임금협상을 보면 당신도 이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평화는 다음 싸움이 벌어지기 이전까지만 유지된다. 기업 간 협상에서 합의되는 가격은 공급자와 거래처 사이의 알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가격은 공급자와 거래처가 돈을 어떻게 나누어 갖는지를 결정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한다.

 

실제로는 대부분 회사들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가격결정력만을 가진다. 지몬-쿠허&파트너스는 '글로벌 가격결정 연구'에서 50개국 2,700명의 경영자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 가운데 33%의 기업만이 스스로 높은 가격결정력을 가졌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3분의 2는 자신의 기업이 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인정했으며, 수익성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다.

 

이 연구를 통해 밝혀낸 가격결정력의 원천들은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기업에게 좋은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 CEO가 가격결정의 토대를 직접 닦는 기업은 같은 업무를 부하 직원에게 위임하는 경우보다 35% 높은 가격결정력을 보였다. 가격결정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는 기업 역시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24% 높은 가격결정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CEO는 더 나은 가격결정을 위해 강력하고 진지하게 일하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높은 가격결정력은 곧 지속적으로 높은 가격과 높은 이익을 이끌어내면서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p.69

샌델 교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느 한 상품이 팔릴 것이라고, 누군가 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적어도 암묵적으로) 이를 이익과 사용을 위한 수단으로써 상품으로 다루겠다고 결정한 셈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이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가장 명백한 예시는 바로 인간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농장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돼지나 우유의 가격과 얽힌 이야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삶에서 돈은 부차적인 역할이었다. 자급자족이 최우선이었으며, 사람들은 어떠한 '가격' 메커니즘 없이도 이웃을 도왔다. 우리 경제에서 돈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부분은 실로 미미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가격이 만연해있다. 가격에서 탈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가격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으며, 때로는 가격이 예상하지 못한 역할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시장의 힘과 가격이 얼마나 더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될지 알아내고자 끊임없이 탐구한다. 이로써 가격 및 가격결정 메커니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일은 더욱더 중요해진다.

 

p.76

당신은 수요곡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하며, 정확히 알수록 더 좋다. 기업은 자신이 마주하는 수요곡선을 알지 못한다면 최적가격을 찾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맬지도 모른다. 특히 프리미엄 상품이나 사치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만일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높은 가격대를 향해 조금식 가격을 인상하면서 수요곡선을 더듬어보길 추천한다. 델보나 시바스 리갈의 경우에서도 그러했듯, 가격인상과 함께 디자인이나 포장을 개선하는 것 역시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소비자가 가격을 품질의 지표로 활용할 때에도 사치재의 경우와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소비자는 가격이 낮아서 구매를 단념하기도 하는데, 가격 때문에 품질이 걱정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많은 소비자는 '싼 게 비지떡'이라 생각하며 저가 제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와 정반대의 말을 믿는 소비자도 많다. 이들은 '높은 가격이 곧 좋은 품질'이라는 간단한 공식을 철칙으로 삼는다. 이 경우에는 가격인상이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p.78

한 전기면도기는 업계 1위인 브라운 사의 면도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크게 인상한 후 판매량이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들의 면도기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해 구매욕을 자극하기 충분했으나, 소비자는 더 이상 너무 저렴한 가격 때문에 면도기의 품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서비스업계, 특히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이 같은 현상들을 목격했다. 기업 간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소프트웨어 회사는 사내용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인 월 19.90달러에 출시했다. 동종 경쟁상품의 가격은 100달러가 넘어갔다. 출시 수 개월 후 이 회사의 CEO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우리 제품의 가격에 열광했습니다. 처음으로 클라우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대기업들은 저렴한 가격 탓에 우리 제품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이 판매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 요소로 작용한 셈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품과 가격에 차별성을 주어야 한다. 이 소프트웨어 회사는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해 대기업용 제품을 따로 출시한 뒤 상당히 높은 월 이용 가격을 책정했다. 제품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으나, 가격으로 가치를 가늠하는 종래의 방식에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가격이 된 셈이다. 이렇게 상품을 조정한 결과 회사는 지난날 낮은 가격 때문에 생긴 상품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성공했다.

 

p.83-85

수없이 다양한 정보들이 가격 앵커로 작동할 수 있다. 앵커 작용은 의식적인 수준에서 벌어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소비자로서, 또 구매자로서 종종 무의식적으로 가격 앵커를 이용한다. 가격 앵커는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전무나가에게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자동차 전문가들에게 중고차 가격을 매기도록 했던 실험 하나가 이를 잘 보여준다. 60명의 자동차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서는 가격을 매겨야 하는 중고차 바로 옆에 우연히 서게 된 사람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누구의 지시도 없이 중립적으로 가격을 매기면서도 자연스럽게 가격 앵커 효과를 일으켰다. 이 사람이 3,800달러의 가격을 매긴 경우에는 가격 앵커에 따라 다른 전문가들도 3,583달러의 가격을 매겼으나, 그가 2,800달러를 매기자 다른 전문가들도 평균 2,520달러의 평가 가격을 내놓았다. 연구자들은 "가격 앵커는 예외적일 만큼 강력한 효과이기 때문에 피하기 어렵다"라고 결론지었다.

 

가격 앵커 효과에 얽힌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중간의 마법'이 있다. 한 가격이 다른 가격들 사이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는 소비자들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같은 10달러의 가격이라도 그 가격이 동종 상품 대비 최고가인지, 최저가인지, 혹은 중간 정도의 가격인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동종 상품의 수 역시 소비자의 선택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한때 (1950년대 당시 우리가 돼지를 키우던) 농장 헛간의 문에 매달 자물쇠를 구하러 다녔던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물쇠를 사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자물쇠가 얼마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철물점에 가서 여러 종류의 자물쇠를 살펴보았는데, 가격은 4달러부터 12달러까지 다양했다. 내가 어떻게 행동했을지 짐작이 가는가? 일단 나는 가장 비싼 자물쇠들 중 하나를 살 만큼 엄청난 수준의 보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장 싼 자물쇠의 품질은 조금 의심스러웠다. 그리하여 나는 중간 정도의 가격인 8달러짜리 자물쇠를 골랐다.

 

이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구매자는 동종 상품들의 가격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특정한 선호가 있는 경우(예를 들자면 최고의 품질 또는 최저가를 원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중간가격대의 상품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어 있다. 이것이 판매자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매우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판매자는 고객을 특정 가격으로 몰아 넣고 다른 가격을 지워버리기 위해 동종 상품의 가격대를 이용할 수 있다. 만일 철물점에 있는 자물쇠들의 가격대가 4달러에서 16달러까지였다면 나는 아마도 10달러짜리를 구매했을지도 모른다. 가게 입장에서는 수입이 25% 늘어난 셈이며, 이에 따라 이익률 또한 늘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레스토랑에 온 손님이 와인을 고를 때에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손님 대부분은 와인 리스트를 훑어본 뒤 중간가격대의 와인을 선택한다. 가장 비싼 와인이나 가장 저렴한 와인을 고르는 손님은 소수에 불과하다. 중간가격은 신비로운 매력이 있다. 음식점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한 레스토랑이 10달러에서 20달러 사이의 메인 메뉴들을 판매하며, 이 중 18달러짜리 음식을 고르는 고객은 전체 고객의 20% 정도 된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레스토랑이 25달러짜리 메뉴를 추가한다면, 18달러짜리 메뉴를 고르는 고객이 늘어날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최저가 메뉴를 선택하는 사람이 지금까지는 거의 없었을지라도 레스토랑에서 그보다 더 싼 메뉴를 하나 추가하는 경우 기존 최저가 메뉴의 판매량은 곧 늘어날 것이다. 이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기존에 최저가를 담당했던 메뉴는 이제 중간가격대의 메뉴가 되었기 때문이다.

 

구매자가 동종 상품들의 품질과 가격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가 적을수록 '중간의 마법'이 주는 효과는 더욱더 커진다. 혹자는 이러한 구매 행위가 매우 제한된 정보 하에서 가능한 한 최고의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매우 합리적인 소비 행위라고 말한다. 중간가격대의 상품을 선택함으로써 구매자는 자연스럽게 낮은 품질을 선택하게 되는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과소비의 위험 또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판매자는 이 점을 과도하게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매우 높은 가격이나 매우 낮은 가격이 주는 가격 앵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높은 가격은 그다지 많은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 소비자를 몰아내며, 너무 낮은 가격은 품질에 대해 의심하는 소비자를 몰아낼 수 있다.

 

p.87-88

판매를 증진하는 매우 현명한 방법으로, 희소성에 대한 지각을 만들어내는 일이 있다.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은 구매욕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한 가게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한 무리의 고객은 캠벨 수프가 '1인당 12개 한정'에 팔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른 한 무리의 고객은 '구매 수량 제한 없음' 표지가 붙은 같은 제품을 보았다. 첫 번째 그룹은 평균 7캔씩 구매한 데 반해, 두 번째 그룹은 그 절반 정도만 구매했다. 이 현상에서는 앵커효과(표지는 한 사람당 12캔씩 사는 것이 정상이라고 부추겼다)뿐만 아니라 퇴장 효과까지 등장했다. 구매자는 이러한 표지를 통해 상품이 얼마나 희소한지를 감지한다. 주유소나 영화관에서 길게 늘어선 줄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난다. 구사회주의 경제에서 상품이 희소해지는 상황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줄은 어디에나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손에 쥘 수 있을만큼 사들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지문-쿠허&파트너스에서 우리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을 더 많이 늘어놓음으로써 판매가 크게 증진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가격의 상품에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이 현상은 행동주의 가격결정 연구에서 아주 놀라운 발견이다. 아래 표는 두 가지 대체 상품이 이용된 실험의 결과를 보여준다. 

실험 A 실험 B
저축통장 $1.00 41% 저축통장 $1.00 17%
저축통장 겸 신용카드 $2.50 59% 신용카드 $2.50 2%
      저축통장 겸 신용카드 $2.50 81%

실험 A는 응답자들에게 월 수수료 1달러의 저축통장과, 월 수수료 2.50달러의 저축통장 겸 신용카드 상품을 제시했다. 실험 A에서 응답자의 59%는 저축통장-신용카드 결합상품을 선택한 반면, 41%는 대안으로 소개된 저축통장을 선택했다.

 

실험 B에서는 저축통장-신용카드 결합상품과 같은 수수료에 신용카드만을 사용할 수 있는 단일상품이 추가되었다. 이때 신용카드 단일상품을 선택한 응답자는 단 2%에 그친 반면, 저축통장-신용카드 결합상품을 선택한 응답자는 59%에서 81%로 크게 증가했다. 가격을 전혀 인상하지 않았음에도 고객당 평균 수익은 매월 1.89달러에서 2.25달러로 19% 증가했다. 상품을 제공하는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은행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고객을 상대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위의 표의 은행에 100만 명의 고객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은행이 누리는 추가 수입은 매월 36만 달러, 연간 432만 달러에 달한다. 그야말로 난데없이 나타난 수입인 셈이다.

 

p.93-94

가격문턱 효과 전반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교수 엘리 긴즈버그는 무려 1936년에 가격문턱 효과를 연구했다. 1951년, 경영경제학자 조엘 딘은 통신판매 기업의 실험 하나를 보고했는데, 이 회사는 다수의 가격문턱 주변으로 가격을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형성해놓았다. "충격적이게도 다양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가끔은 2.98달러에서 3.00달러로 변화하는 작은 가격변화가 엄청난 판매 상승을 불러오기도 했으며, 또 다른 때에는 판매량을 하락시키기도 했다. 그 어느 숫자에도 판매량 변화가 집중된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에크하르트 쿠허 또한 가격이 가격문턱을 넘어설 때의 효과를 체계적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여성 의류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연구에서, 한 가게는 동일 상품을 34달러, 39달러, 44달러의 3가지 가격으로 판매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39달러짜리 상품이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인 것이다. 34달러짜리와 44달러짜리의 판매량은 각각 20% 낮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숫자 9로 끝나는 가격이 크게 선호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셈이다. 전반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이들 발견은 경제학자 클라이브 그레인저(200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와 안드레 가보 교수가 1964년 꺼낸 이론을 뒷받침해준다. 가격문턱 효과에 대한 믿음은 이미 만연한 마케팅 행위에 따르는 결과일 뿐이며,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가격문턱은 (실존하는 요소든 이론적 요소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경우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때때로 회사들은 가격문턱 이상으로 가격을 인상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는 급격한 판매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격인상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이 방법 자체도 때떄로 문제시되긴 하지만) 제품 규격을 바꿔서 가격문턱 안쪽에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 평균적인 소비자는 가격이 똑같은 이상 새로운 포장 안에 약간 더 적은 개수의 상품이 들었거나 원래 사던 제품보다 용량이 몇 온스 부족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데서 나온 아이디어다. 이 전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엄청난 논쟁을 불러왔다. 스키피 사는 병 바닥에 움푹 들어간 용기를 사용해 피넛버터 상품을 출시했다가 전국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표면상으로 소비자는 선반에 놓인 피넛버터를 보고 아무런 차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사실 그 내용물은 기존에 비해 적게 들어 있었다. 2009년, 하겐다즈는 기본 아이스크림 컵 사이즈를 16온스에서 14온스로 줄여 똑같이 '파인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최대의 라이벌 아이스크림 회사인 밴&제리는 이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경쟁사 중 하나(아마 우스꽝스러운 유럽식 이름이었죠)는 최근 그들의 파인트 용량을 16온스에서 14온스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상승한 원재료 가격 및 제조원가를 감당하고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우리는 요즘 같은 경제난 가운데 회사들이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 역시 대부분 힘든 시기를 겪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원래대로의 가득 찬 파인트 컵 아이스크림을 마땅히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02-104

전망 이론은 또한 고전경제학의 시각에서만 본다면 이상할 수도 있는 몇몇 가격체계를 설명해준다. '현금 돌려주기'(캐시백)는 자동차 거래에서 흔하게 이용되는 판매 전략이다. 3만 달러짜리 자동차를 구매한 뒤 2,000달러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식이다. 어떻게 이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단 말인가? 전망 이론은 이에 대한 답을 해준다. 3만 달러를 지불하는 행위는 상당한 정도의 부정적 효용을 발생시키는데, 이는 새로운 차에 의한 긍정적 효용으로 상쇄된다. 그에 더해서 2,000달러를 현금으로 돌려받으면서 긍정적 효용이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이 같은 조합은 단순히 차를 2만 8,000달러에 곧바로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총효용을 지각하게 만든다. 만일 자동차 딜러가 수표나 계좌이체, 신용카드 등을 받는다면 긍정적 효용은 한층 더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지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지만, 캐시백은 현금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수중에 들어온다. 더 나아가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소비자일 경우 캐시백으로 받는 현금은 간만에 만져보는 돈이 될지도 모른다. 전망 이론의 맥락에서 캐시백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효과적인 전술로 거듭난다.

 

수많은 할인 전략이 이와 비슷한 형식으로 효과를 거둔다. 나이가 있는 독자라면 S&H의 그린 스탬프를 모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제도는 여러 나라에서 한동안 유행했으며, 나 또한 어린 시절 경험해본 적이 있다. 우리는 스탬프를 받아 앨범 하나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1달러당 스탬프 3개를 받을 수 있었으며, 스탬프 1개는 1페니의 가치가 있었다. 총 3%의 할인을 받은 셈이다. 만일 우리가 앨범에 150개의 스탬프를 모두 모았다면 이를 1.5달러에 바꿀 수 있었다. 왜 소매업자는 직접적으로 가격을 3% 할인해주는 대신 귀찮은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탬프를 환급해주는 것일까? 스탬프 앨범 환급은 상당한 긍정적 효용을 발생시키며, 특히 어린아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가게가 가격을 3% 할인해주었다면 우리는 계산대에서 현금을 내는 대신 아주 약간의 긍정적 효용만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스탬프를 통해 훨씬 더 큰 이득을 지각했다. 스탬프를 모으는 즐거움 또한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긍정적 보상이 되어주었으며, 우리와 우리의 부모님들이 더 많은 스탬프를 얻으려고 더 많이 구매하면서 발생한 충성 효과로 가게 주인들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p.105

잡지 구독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잡지 구독은 구독자가 기한마다 갱신해야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구독 기한 만료일이 가까워지면 강매 행위가 시작된다. 우편함이나 이메일을 열었을 때, 내가 받았던 다음 메시지와 비슷한 것을 받아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회사 내부적으로 회의한 결과 우리는 당신에게 각 호당 0.81달러라는 아주 적은 금액에 구독을 연장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각 호를 따로 구매하는 것보다 최대 82% 할인된 금액입니다." 그 누가 정가보다 82% 할인된 가격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엄청난 할인율에 더해 많은 출판사는 '미스터리 선물'이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즈니스 툴', 혹은 잡지의 온라인 버전에 대한 '무제한 접근 권한' 등을 덤으로 얹어준다. 이 같은 제안들은 부풀려진 정가가 시간이 갈수록 그 신뢰를 잃게 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순간 이 전략은 적절한 가격 앵커로서의 기능을 잃는다.

 

p.111

가격을 표시하는 표준 방법(예를 들면 '$16.70')은 확실히 뇌의 고통 중추를 자극한다. 그러나 '$' 표시 없이 단순히 숫자만 가지고 가격을 '16.70'으로 표기하는 경우 뇌의 반응은 다소 약해진다. 뇌가 숫자 자체를 곧바로 가격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 셈이다. 고통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되는 정도는 정수, 예를 들면 17 같은 숫자를 볼 때 더욱 약해진다.

 

이 같은 형태의 가격소통은 최근 레스토랑 등에서 흔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적은 고통을 야기하는 형태, 따라서 가장 적은 부정적 효용을 발생시키는 혀여태는 사실상 그 숫자 자체만 있는 경우이며, 이 경우에는 '십칠'이 된다. 메뉴판과 가격목록에서 실제로 가격을 이처럼 표기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p.113

행동경제학을 지지하는 실험 결과들은 점점 더 많은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대부분 발견은 실험실에서 도출된 것으로, 실제 상황에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일부 실험 조건은 참가자가 특정 대답을 하게끔 유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경영학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행동경제학에 반대되는 이론적이거나 실증적인 증거들은 '합리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배 밖으로 던져버리는 일에 대한 경고문 역할을 해야 한다." 인간은 고전경제학이 주장하는 것만큼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지만, 행동경제학자 몇몇이 주장하는 것만큼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이 점이 가격결정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당신은 행동경제학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그와 함께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118

트레이더조가 고급 식료품 분야에서 홀푸드 등의 식료품점과 경쟁하면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는 동안 알디가 고수한 주요 전략은 단순했다. '납득할 만한 품질을 매우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공하라'는 것이 그 전략이었다. 알디가 판매하는 상품은 거의 대부분 자체 브랜드 상품이었으며, 이를 유명 브랜드 상품보다 2~40% 낮은 가격에 제공했다. 그럼에도 알디는 높은 가격을 고수한 다른 식료품 체인점들에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높은 수익을 올렸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알디의 매출이익이 전통적인 슈퍼마켓의 수익보다 2배 이상 높은 데에는 다음 3가지 이유가 있다. 높은 효율성, 낮은 원가, 그리고 자본운용이 바로 그것이다. 마트 공간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제곱미터당 총수익은 알디가 다른 슈퍼마켓들보다 30.3% 더 높았다. 인건비 부문에서도 알디는 수익의 8.2%에 달하는 금액을 절약했다. 알디는 상품 패키지의 사방에 바코드를 표기해서 계산대 직원이 바코드를 찍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알디는 조달원가 또한 대규모로 절감했으며, 이에 훌륭한 협상 기술을 동원하면서 공급자들로부터 좋은 가격에 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p.121-122

아일랜드의 노 프릴(비행 중 음료수조차 제공하지 않는 저가항공) 항공사 라이언 항공의 수익은 2011/12 회계연도에서 전년보다 21% 증가한 58억 5,0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익은 무려 50%나 증가한 7억 5,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매출이익률은 12.8%로 항공업계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반면 유럽의 최대 항공사인 루프트 한자는 2011년 기준 383억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음에도 이익은 6억 달러에 그쳤으며, 매출이익률은 1.6%에 불과했다. 라이언 항공은 미국을 대표하는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보다도 더 좋은 수익성을 기록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2012년 기준으로 171억 달러의 수익과 6억 8,500만 달러의 세전 이익을 달성했으며, 매출이익률은 라이언 항공보다 훨씬 낮은 수준인 4%였다. 

 

라이언 항공이 낮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라이언 항공의 설비 가동률이 그 이유로 손꼽힌다. 라이언 항공의 로드팩터(좌석 이용률 및 화물적재율)는 대략 80%에 달한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원가를 관리한 라이언 항공의 열정도 한몫했다. 라이언 항공은 그야말로 '노 프릴' 항공사 비즈니스 모델의 본보기나 다름없다. 라이언 항공의 승무원은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신문이나 잡지 한 권도 놔두고 내리지 않도록 하는 데 각별한 신경을 쓴다. 이렇게 하면 비행기가 게이트에 정차하는 동안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보통은 비행기 객실 내부를 청소하는 데 15~20분 정도가 걸리는데, 라이언 항공의 경우 이 시간에 다음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셈이다. 1973년 개업해 라이언 항공 같은 저가 항공사들의 롤 모델로 우뚝 선 사우스웨스트 항공 또한 비슷한 생각을 취하고 있으며, 비행기가 지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두 번째로 짧은 항공사로 손꼽힌다. 사우스웨스트의 비행기에서 모든 승객이 내린 후 새로운 승객이 모두 탑승하는 데 22분 밖에 걸리지 않을 때도 있다. 이를 통해 비행기는 빠르게 다음 비행에 오를 수 있다. 비행기는 오로지 비행으로만 수익을 창출하므로, 이를 통해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기존 항공사들은 하루 평균 8시간 정도 비행기를 가동하지만, 노 프릴 항공사의 설비 가동률이 50% 정도 더 높은 셈이다. 라이언 항공은 또한 주요 도시의 공항이 아닌 외곽 공항들에 항공편을 연결하면서 착륙 수수료를 줄여 원가를 절감한다. 

 

 

라이언 항공은 추가요금 시스템 또한 훌륭하게 활용한다. 라이언 항공 광고에서는 엄청나게 낮은 항공권 가격을 찾아볼 수 있으며, 심지어 아예 무료이거나 99유로센트인 경우도 있다. 이 같은 가격소통으로 라이언 항공은 수많은 승객을 일단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승객이 최종저거으로 지불하게 되는 최종 운임은 그보다 훨씬 높아진다. 몇 가지 추가요금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라이언 항공은 확실히 조달 측면에서도 매우 낮은 가격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년 전 보잉 항공기를 대량 구매했을 때에도 기준 고시가에서 5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장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지난 2013년 보잉 737 항공기 175대를 구매할 때에도 비슷한 수준의 할인을 받았다고 한다.

 

p.126-129

저가 전략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이들의 전략에는 지속적인 성공을 이끌어낸 일련의 공통 요소들이 있다. 

 

1. 이들은 영업 첫날부터 저가 정책을 시행했다 : 성공한 저가 기업들은 하나같이 출발 시점부터 낮은 가격과 높은 물량에 집중했다. 많은 경우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이용했다. 고가 전략이나 중가 전략에서 저가 전략으로 바꾸어 성공을 거둔 기업을 나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2. 이들은 극도로 효율적이다 : 성공한 저가 기업들은 모두 극도의 원가 효율 및 공정 효율을 보였으며, 이를 통해 낮은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상당한 마진과 이익을 누린다. 

 

3. 이들은 적당하면서도 지속되는 품질을 보장했다 : 품질이 낮거나 금방 못 쓰게 되는 물건을 판다면 가격이 낮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성공을 지속하려면 적당하고 지속적인 품질이 반드시 요구된다.

 

4. 이들은 주요 상품들에 주력한다 : '노 프릴'이라는 용어는 주로 항공사에 쓰이는 말이지만, 알디나 델 역시 이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은 고객이 분명히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근본 가치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원가를 절감한 셈이다.

 

5. 이들은 높은 성장세와 큰 수익에 집중한다 : 이로써 발생한 규모의 경제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6. 이들은 물품 조달에서 승리했다 : 이는 곧 이들이 구매에서도 강경한 (그러나 불공정하지 않은) 태도를 고수했음을 말해준다.

 

7. 이들은 적은 기업 부채를 지고 있다 : 이들이 재정 때문에 은행이나 채권시장에 발을 들이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이들은 자기금융이나 공급자신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8. 이들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통제한다 : 이들은 (델, 라이언 항공, 이케이아의 경우) 자신이 생산하는 브랜드 제품만을 판매한다. 심지어 알디가 판매하는 상품들도 90%는 자체 브랜드 제품이다. 이들은 또한 가치사슬 전반을 강력히 통제한다.

 

9. 이들의 광고는 가격에 집중되어 있다 : 한 발 더 나아가 알디, 리들, 라이언 항공처럼 상품 자체는 전혀 홍보하지 않고 오로지 가격만을 홍보하는 경우도 있다

 

10. 이들은 절대 여러 메시지를 보내려 하지 않는다 : 대부분의 저가 광고이익 기업은 단기적인 가격할인 행사를 자주 시행하는 정책 대신 '언제나 낮은 가격 정책'을 고수한다.

 

11.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다 : 대부분 시장에서 저가-고이익 기업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보통 한두 기업이면 끝난다.

 

그렇다. 기업이 낮은 가격으로 높은 이익을 창출하는 일은 정말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시도하는 수많은 이들 중 소수만이 성공을 거둔다. 경쟁기업보다 명확하고 확연하며 지속적인 원가 우위를 지닌 기업만이 성공한다. 기업은 원가 우위를 이끌어내는 기술과 문화를 첫 발걸음부터 체화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다른 경영 방식과 전통을 가지고 시작한 기업이 저가-고이익 방식으로 전환해서 성공의 요소들을 충족시키기란 매우 힘들 것이라 본다. 최대한의 원가 효율성을 달성하면서 고객이 받아들이는 가치를 (최소한의 수준이 아닌)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경영진과 기업인, 관리자에게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근검절약하고 인색하게 행동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있는 자들만이 저가 책정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있다. 

 

p.145

신제품의 가격을 포지셔닝할 때, 기업은 업계에서 이미 확립된 관습을 따라야 할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전통적인 업계의 관습이나 규칙보다는 제품의 지각된 가치를 얼마나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p.150~151

새로운 가격 표기법을 도입하는 일은 기업이 가치를 새로이 창출할 수 있는 매우 확실한 방법이다. 전구 생산업체는 전구를 판매하는 대신 시간당 조광을 제공하고 그 서비스에 대해 가격을 청구할 수도 있었다. 스쿠터 회사는 스쿠터를 판매하는 대신 km 단위로 운송을 제공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의 타이어 회사 미쉐린은 트럭 및 산업용 자동차에 사용되는 타이어에 이 같은 전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용했다. 미쉐린은 현재 타이어 그 자체가 아닌 타이어의 사용량을 판매하고 km당 가격을 청구한다.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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