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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데칼로그

by Diligejy 2023. 8. 11.

 

p.7

"택시도, 버스도 무섭지만, 나는 내가 제일 무섭다!" 예전에 어느 자동차 보험회사 TV광고에서 여성 초보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앉아 울상이 되어 하는 말이다. 외부에서 언제 어느 때 들이닥칠지 모르는 사고보다 자기가 스스로 낼 사고가 더 무섭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의 삶이 바로 그렇다. 인간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 대부분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삶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초보운전자다. 그 누구도 두 번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24

구약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유대교, 이슬람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계시종교다. 곧 신이 자신을 나타냄으로써 형성된 종교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리스 신화나 샤머니즘에서와 같이 - 신전이나 커다란 돌, 나무 또는 동물 등과 같은 - 어느 특정 장소나 사물에 신이 그 자신을 현현하는 자연종교들과는 다르다. '계시'란 인격적인 신이 인격적인 방식으로, 인격으로서의 인간을 '너'라고 부르는 하나의 사건이다. 기독교의 신은 계시를 통해 그 자신의 뜻과 의지를 '약속'으로 세움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신의 현현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신의 약속을 믿는 종교'인 것이다. 구약이란 신이 예수 이전 인간과 맺었던 구원의 약속이며, 신약은 예수에 의해 맺어진 은총의 약속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를 '계약종교'라고도 한다.

 

p.27-29

십계명을 포함한 신구약성서에 윤리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약에는 윤리에는 전혀 없는 것, 즉 신이 부담하는 그 어떤 몫이 따로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계약에는 신이 인간에게 스스로 맹세한 약속이 들어 있고, 그가 스스로 부단히 이 약속의 구현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계약은 윤리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윤리에는 원칙적으로 요구와 의무만이 있을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이 없으며, 그것을 약속하는 이도 없고, 당연히 그것의 구현에 함께 참여하는 주체도 없습니다. 윤리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스스로의 의지로 지켜야 할 그 어떤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것을 지키지 않는 것이 수치 또는 죄가 되는 것일 뿐이며, 그것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보상은 원칙적으로 없습니다.

 

그 대표적 예를 우리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윤리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칸트에게 도덕은 인간의 의무이지요. 때문에 당연히 이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칸트는 어떤 사람이 보상을 바라고 한 행위는 - 설사 그것이 선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 도덕적 가치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도덕률은 더없이 숭고하긴 하지만, 우리를 그 숭고한 땅으로 이끌고 갈 힘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거지요. 

 

칸트의 도덕률이 가진 이 같은 '숭고함'과 '허무함'을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문인인 샤를 페기는 "그것(칸트의 윤리학)은 순결한 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는 손이 없다"라는 은유적인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비단 칸트의 윤리학만이 가진 특성이 아니라,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도덕주의가 발 딛고 있는 '허무한 기반'입니다.

 

이와는 달리, 계약에는 신이 인간에게 스스로 맹세한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이 약속이 계약을 윤리와 구분하는 점이며, 모든 윤리가 근본적으로 가진 허무성을 초극할 수 있게 하는 강건한 힘이지요. 곧 계약에는 신이 그의 백성과 '함께하며'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신은 언제나 계약의 성취에 참여하고 돕지요.

 

요컨대 계약에는 샤를 페기가 말하는 '손'이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손이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이끌고 간다는 거지요. 바로 이것이 계약이 윤리와 구분되는 분명한 경계이며, 계약종교인 기독교가 다른 도덕 종교들과 갈라서는 확연한 분기점입니다. 계약은 윤리의 지침이나 근간이 될지언정 윤리는 아닙니다. 이 점에서 계약은 언제나 윤리를 초월하지요!

 

p.32

유대교 전통에서 율법은 인간을 구원하려는 신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즉, 율법이란 신에게 죄를 짓고 어둠에서 떠는 인간에게 주어진 한줄기 밝은 빛이지요. 눈멀어 어디로 갈지조차 모르는 맹인에게 주어진 견실한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따라서 가야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기독교 교설에 의하면,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아담 이후 신에게서 돌아선 인간의 죄성 때문이지요.

 

p.32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이미 알면서도 그것을 구원의 방법으로 내린 것에 신의 자기모순이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은 세계와 역사에 대한 '신적경륜(oikonomia)'이다. 즉, 신은 창조에서 종말까지 오직 자신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에베소서 1:10)에 나와 있는 이러한 사상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2세기에 리옹의 감독이었던 교부 이레네우스였다. 그는 역사를 신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역사(History of Salvation)로 파악하였다. 이것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으로서, 이 계획 혹은 섭리(dispensation, oikonomia)는 네 가지의 특별한 계약에 의해 연속적으로 이어져간다. 첫째는 아담과의 계약이고, 둘째는 노아와의 계약, 셋쨰는 모세와의 계약, 넷째는 그리스도와의 계약으로, 이것들이 차례대로 성취됨으로써 총괄적인 구원(recapitulatio)의 사역이 완성된다. 따라서 모세와의 계약인 율법은 단지 세 번째 과정으로서, 궁극적인 계약인 그리스도와의 계약을 성취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p.36~37

여기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은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죽이는 문자'로 규정한 율법들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진 신의 계명은 본디 어떻게 구분하더라도 모두 합하여 열 가지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는 이 열 개의 계명이 곧 613가지로 확대되었지요. 그리고 유대 문서에 나타난 기록들을 보면, 계속해서 더 많은 계명들이 생겨나 율법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아무리 많은 금기와 규율로도 오히려 부족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예수 이전, 곧 '죄를 사하여주는 자'가 오기 전, 오직 율법에만 의지해서 살던 히브리인들은 율법에 의해 드러나는 죄와 그에 대한 두려움을 직접 체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원이 율법에 의해서 좌우될 경우, 누구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율법을 범하여 구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당연히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율법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컨대 '안식일에 낳은 달걀을 먹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안식일에 아이를 안아도 되는지 아닌지', 또 '정결한 그릇에서 불결한 그릇으로 물이 쏟아졌을 경우, 정결한 그릇에 담긴 물까지 불결하게 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염려하고 두려워해야만 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매사를 율법사들에게 달려가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율법이 주어져 율법이 점점 확대되었던 거지요. 그러자 곧바로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위에서 든 예로 설명하자면, 안식일에 아이를 안는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번엔 안식일에 돌을 든 아이를 안는 것은 어떤지를 걱정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다시 율법사에게 달려가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이 율법들을 낳았고,  그 율법들이 다시 더 많은 두려움을 불러왔지요.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됨에 따라 결국 '유한한 요청'이었던 율법이 점차 '무한한 요청'으로 바뀌어갔습니다. 그럼으로써 어느 때부터인가는 그 어떤 경건한 사람도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 그의 백성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기 위해 내린 십계명에서 시작한 율법이 결국 그 누구도 꼼짝 못하게끔 사람들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지금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율법주의(또는 도덕주의)의 시작이자 그 전모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며 그로인해 흠, 허물, 위선과 죄의식만을 드러내는 율법주의의 산물들을 예수가, 바울이,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죽이는 문자'라고 비난하고 폐하려 했다는 것이 본문이 취하는 입장입니다.

 

p.38~39

십계명은 인간이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자신의 백성들을 해방시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롭게 살게 한 신이 이번에는 보다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 곧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영혼의 자유를 선사하려고 내린 '자유의 선언'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은 우리에게 죄로부터 해방된 삶이 가진 자유와 기쁨을 부여하려는 신의 일관된 의지의 표출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십계명이, 계명을 내리면서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애굽기 20:2)라는 말로써 자신이 '자유를 부여하려는 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밝힌 신의 의도와 합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과 복음을 부단히 구약과 연결하던 예수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라고 선포한 말이나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갈라디아서 5:13)라고 교육한 바울의 입장과도 모순 없이 연결되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율법을 '죽이는 문자'로 규정한 바울을 따르는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십계명에 대한 주해서> (1530)의 서문에서 십계명을 가리켜 "모든 약속 중의 약속, 모든 신앙의 원천이며, 그리스도 복음의 약속을 포괄하는 지혜의 원천이다"라고 단정한 것도 이 같은 의미에서만 이해가 가능합니다. <기독교 강요>에 실린 종교개혁자 칼뱅의 다음과 같은 말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들(이스라엘)을 바로의 무자비한 권세에서 해방시켰듯이, 지금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인 모든 백성들을 마귀가 가진 죽음의 권세 - 이것이 애굽에선 육체적인 노예상태로 예시되었다 - 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땜누에 누구든지 그 지극히 높으신 왕께서 선포하신 율법에 귀를 기울이도록 마음에 열의가 생겨야 마땅하다.

 

p.41

이처럼 십계명의 본질을 시민적 자유의 보존이라고 파악하는 크뤼제만은 십계명을 적용할 때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도 역시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각각의 계명들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할 때 그들을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윤리적 금지행위가 아닌 사랑의 구체적 실현으로 이해해야 하고, 종교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실질적이고도 적극적인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거지요.

 

p.46-47

존재론이란 본디 철학의 소산이며 그리스 철학이 그 기원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존재물의 궁극적 근거 내지 원인이 되는 '아르케(arche)'에 대한 물음으로 철학을 시작했습니다. 즉, 그들은 만물의 궁극적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거지요.

 

이에 대해 이오니아 밀레토스학파의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정자,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로 대답했습니다. 이후 피타고라스가 수와 질서를,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를 아르케로 파악했지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부터는 이들을 보통 '자연철학자'라고 불러왔는데, 그 중 한 사람인 엘레아 출신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인 아르케가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소박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든 존재물의 공통된 요소가 '있음', 곧 그것들의 존재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그러나 이 소박한 생각이 당시에는 철학사를 바꾸어놓을 만큼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가 이러한 생각을 했을 때, 그는 형이상학적 사변의 궁극적 한계인 '본질'과 '존재' 중에서 후자인 존재를 간파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는 형이상학으로 단번에 뛰어들어갔던 거지요. 이로써 만물의 궁극적 근거를 탐구하던 아르케에 대한 물음이 자연철학에서 존재론으로 도약한 것입니다.

 

그 후 약 2,500년에 걸쳐 서양 철학사 안에는 몇 가지 존재론 전통이 확립되었는데 본문에서 말하는 '존재론'은 파르메니데스로부터 플라톤, 플로티노스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 한 특별한 이론을 지칭합니다.

 

p.47-50

역사를 살펴보면, 2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인 신플라톤주의와 당시 신흥종교였던 기독교의 만남이 일어났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1~332년경에 건설한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와 안디옥과 함께 그 당시 로마제국 내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게다가 기원전 306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여기에 도서관을 세우고 많은 장서와 훌륭한 학자들을 모아 학문을 권장했지요.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는 문화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로마와 안디옥을 넘어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자연히 세계 각국에서 여러 종류의 학문과 예술, 종교가 이곳에 모이게 되었고,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독특한 색깔의 새로운 학문과 종교를 이뤄냈지요. 이때 '젊고 새로운 피'인 기독교가 '늙은 거인'인 그리스 철학과 만났습니다. 이 역사적 만남이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 사상 또는 중세 철학이라고 부르는 '젊고도 활력 있는 거인'을 탄생시켜 서양사상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사에서는 이 시기가 교리를 확정하고 사상을 체계화하던 때였습니다. 교리란 외적으로는 다른 종교와의 구분을 위해, 그리고 내적으로는 기독교 내부의 이단자들을 구별하기 위해 필요했던 원리들입니다. 때문에 교리는 자기 종교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타 종교의 주장이나 사상과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필히 이성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래 초이성적 계시로 시작된 기독교는 자신들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때 기독교가 당면한 난관을 해소하는 데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이 바로 그리스 철학, 그 중에서도 파르메니데스, 플라톤의 전통을 이어받은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였습니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게네스, 에우세비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등과 같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은 구약성서와 예수의 복음을 통해 형성된 기독교의 가르침을 신플라톤주의9그들 스스로는 플라톤주의라 부름)와 그 안에 녹아 있는 플라톤 철학에 힘입어 정리하여 그들 종교의 교리와 사상을 구축했지요. 이때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끼친 지대한 영향은 예컨대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이 플라톤을 "에수가 탄생하기 400년이나 전에 존재했던 기독교인" 또는 "그리스어로 저술하고 있는 모세"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신학과 철학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정당하게 평가한다면,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이 정리한 교리와 사상 중 그 어떤것도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나온 것은 없지만, 그 중 어느 것 하나도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아래서 정리되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난해하고도 위대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을 확고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지요.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그를 "신약시대 이후 가장 뛰어난 기독교인이며, 라틴어를 사용한 가장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평가하며, 기독교의 모든 종파가 그의 뒤를 이었다고 자처하는 거지요.

 

2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이들이 이루어낸 일들이 기독교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이 시기에 1) 신약정경(canon)의 결정, 2) 신앙고백의 확정, 3) 교회조직 및 제도의 확립 등 기독교 본질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세 가지 일들이 이루어졌으며, 교리 중 교리라고 할 수 있는 삼위일체설과 그리스도론이 확립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야말로 기독교 3대 종파인 동방정교,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를 막론하고 정통신학을 판가름하는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교리이자 사상이기 때문이지요.

 

p.58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 파스칼 <팡세>

 

p.71~72

근대인들은 신은 수학으로 세계를 창조하였고, 인간은 수학으로 시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갈릴레이는 인간 이성이 신적 이성에 비해 양에서 차이가 날 뿐 그 질에서는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인간 지성은 신의 지성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이러한 생각은 곧바로 '신이 한 일이 그 무엇이든 인간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했습니다. 근대정신을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내게 연장과 운동만 주어진다면 우주를 만들어 보이겠다"라고 도발적으로 선언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 겁니다.

 

데카르트와 거의 동시대인인 존 밀턴의 <실낙원>에는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 장면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는,
황금 컴퍼스를 들고, 이 우주와 
온갖 창조물을 경계 지으려고 하신다.
그는 컴퍼스의 한쪽 다리를 중심에 놓고, 다른 한쪽을
암담한 대 심연 속으로 돌리면서,
말씀하시되, '여기까지 벌려라. 너의 경계는 여기,
너의 올바른 주위는 이것이다. 아, 세계여!'
이렇게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
형체 없고 텅 빈 물질을 창조하신다.

'황금 컴퍼스'라는 말을 보면 밀턴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구절을 썼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하학이 신이 사용한 창조의 원리라는 것이지요!

 

p.88~89

이러한 객관성에 기인한 확실성은, 당연히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진리'라는 개념이 가진 본래적 확실성은 아닙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진리란 우리가 구성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고, 대상을 대상 그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참이다"라고 천명한 것이나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진리란 사물과 지성의 일치다"라고 설파한 것이 그 상징적 표현이지요.

 

그래서 칸트도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이 가진 "최대의 유일한 효용"은 진리의 파악보다는 오히려 '오류의 방지'라고 천명하고, 이성이 스스로 경계와 자기비판의 체계를 작동하지 않는다면 부패한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였지요. 칸트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가진 지식의 확실성뿐 아니라 이성의 한계까지도 분명히 선언한 것입니다. 현대 신학자 파울 틸리히가 정당하게 평가한 대로, 칸트는 인간이 "무한성에 이를 수 없음을 가장 명확하고 예리하게 보았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근대인들은 칸트의 주장에서 그가 지식의 확실성을 보장한 것에만 주목하고, 그가 지식과 이성의 한계를 분명히 한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지요. 대중들의 이러한 선택적이고 몽매한 믿음이 20세기까지 이어져, 이성이 '전능한 신'으로, 그리고 그것의 창조물인 지식이 인간의 삶이 발 딛고 선 '확실한 반석'으로 자리를 굳혔던 것입니다. 다만 19세기에 유행했던 이신론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주장하던 일부 프로테스탄트만이 <순수이성비판>을 이성의 한계를 규정한 경고로서 받아들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감춰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는 법이지요!

 

p.98~99
우선 여기서 신의 이름과 연관해 미리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신은 왜 자기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이름이 아니라 "아흐예 아세르 에흐예", 곧 '나는 존재이다'라고 하나의 문장으로 대답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통해 신이 진정으로 나타내려는 바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기독교 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논리적 추론 하나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볼까요? 우리가 보통 자신의 이름이나 지위를 묻는 상대에게 '나는 A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너는 그 A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야만 적합한 대답이 되기 때문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예를 들어 "당신 누구요?"라는 질문을 한 사람에게 "나는 사람이오."라는 대답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질문자도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 질문에 합당한 대답은 최소한 "나는 한국 사람이오"와 같이 질문자와 뭔가 구분되는 것이어야 하지요. 이때 질문자가 한국인이 아니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신이 모세에게 자신을 밝힌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신이 그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나는 존재다'라고 한 대답에는 '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창세기 3:19) '존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라는 신의 대답이 가진 진정한 의미입니다!

 

신을 '존재'로, 그리고 인간을 '존재물'로 파악한 것, 바로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3,300년 전쯤 모세가 이룬 위대한 업적입니다. 혹시 당신은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신구약성서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한 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내용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p.140

정리할까요? 신은 애굽에서의 해방이든, 로마의 압제에서의 해방이든, 죄로부터의 해당이든, 자유를 부여하는 자입니다. 반면에 이른바 다른 신, 곧 우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욕망이 형상화된 것이기 떄문에 이를 섬긴다는 것은 그 열망에 스스로 구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그 백성이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고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해주기 위해 첫 번째 계명으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제1계명에 대한 존재론적 또는 기독교 신학적 해석입니다.

 

p.159-164

카롤링거 왕조의 샤를마뉴 대제가 영향을 미치던 서방의 로마 가톨릭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는 787년에 니케아에서 개최된 제7차 공의회에 두 명의 특사를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어로 작성된 공의회 결의문을 가져가다 즉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샤를뉴 대제에게 보냈지요.

 

그런데 번역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7차 공의회의 결의문에 들어 있는 '공경'이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프로스키네시스proskynesis'를 '흠숭'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아도라티오adoratio'로 번역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아도라티오'라는 말은 그리스어 '라트레이아latreia'와 마찬가지로 오직 신에게 바치는 배타적 공경, 곧 예배에만 사용하는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공의회의 결의문은 동방정교회가  성화상을 신처럼 숭배하겠다는 뜻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샤를마뉴 대제는 곧바로 성화상 숭배를 금하는 <샤를마뉴의 책Libri Carolini>을 출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성화상 숭배에도 성화상 파괴에도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성화상은 단지 교회 내부 장식이나 교육에 사용되어야 할 형상적 도구에 불과했지요. 이는 6세기 말경 성화상을 '문맹자들을 위한 서적 quasi libri laicorum'으로 규정했던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입장과 같았습니다. 샤를마뉴 대제는 794년에 프랑크푸르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서 754년에 성화상 파괴를 결정한 히에리아 공의회와 787년에 성화상 공경을 결정한 니케아 공의회를 모두 정죄하고 다시 한 번 황금의 중간길을 찾았지요. 요지인즉 '성화상의 장식적 사용은 허용하지만, 성화상의 신적 숭배는 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로마 가톨릭교회가 유지하고 있는 성화상에 대한 기본 입장이지요. 

 

종교개혁자들은 입장이 또 달랐습니다. 마사치오의 <성삼위일체>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보듯이, 종교개혁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은 가톨릭교회의 승인 아래 성자인 예수뿐 아니라 성부인 신마저도 아무런 제재 없이 꾸준히 형상화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극단적인 반감을 가진 대부분의 종교개혁자들은 성화상들을 철저하게 배격했습니다. 예컨대 칼뱅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어떤 유형적인 형상으로 나타내고자 했을 때, 하나님의 존엄성은 인간이 임의로 조작한 모조품traversty 으로 화해버렸다는 것입니다"라고 경계했습니다.

 

물론 무슨 일이나 예외는 있는 법이지요! 루터는 적절한 안전장치만 마련되면 성화상을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루터주의자들은 가톨릭과 거의 유사하게 성화상을 그대로 유지하되, 그에 대한 숭배만을 금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렇지만 츠빙글리 및 칼뱅과 연계된 개신교-보통 개혁파라고 부르지요 - 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중세의 성화상 파괴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인들의 동상을 산산조각 냈고, 성물들을 파괴했으며, 제단을 뒤집어엎고, 그림들을 찢거나 그 위에 회칠했습니다.

 

개혁파 개신교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성화상 혐오증 iconophobia이라 할 정도로 성화상 배격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모든 형상을 금지하는 유대교적 전통으로 성큼 다가갑니다. 기독교와 달리 유대교에는 성화상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에게는 신은 원래부터 영인 데다 신이 인간으로 세상에 온다는 성육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모세가 제2계명으로 '새긴 우상'을 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성화상을 그리거나 만들어 숭배할 근거와 이유가 처음부터 아예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대교에 종교적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 -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두라유로포스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서는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이 솟아나오게 하는 장면을 그린 프레스코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숭배의 대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었고, 유대교 사원 그 어느 곳에서도 숭배를 위해 그린 그림이나 조각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태생적으로 시각적이라기보다 청각적인 것도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의 모습을 보기보다는 그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지요. 이 전통을 개혁파 개신교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p.171-172

마르크스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인간 두뇌의 산물이 독립적인 형상인 양 나타나게 됨"으로써 의식이 물화 또는 우상화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자신을 위해 스스로 만든 어떤 것(상품, 돈, 자본)을 '마치 신처럼' 숭배함으로써 그 '짐승'에게 결국 자유를 빼앗기고 노예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지요. 그는 이런 종류의 우상숭배를 물신주의fetishism라고 부르고, 그것의 자기 파괴성을 크게 경계하며 인간성 회복을 주장했습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기독교와 궤를 같이하는데, 그 역시 물신숭배를 반그리스도로서 규정하고, 그가 말하는 인간성 회복이 곧 그리스도의 요구임을 주장했지요. 오늘날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자본주의 체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어놓은 허위의식 - 돈을 마치 신처럼 섬기며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 그릇된 이념-의 노예로 살아가는 숱한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말입니다.

 

p.174-175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의 앞에 무엇이 놓여 있었던가요? 가시덩굴과 엉겅퀴가 뒤덮인 저주받은 땅, 무의미한 노동,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이 아니었던가요? 그의 현실은 카뮈, 사르트르, 하이데거를 비롯한 20세기 실존주의자들이 신랄하게 고발했던 '내던져짐'이라는 끔찍한 상황이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아담이 누구인가요? 키르케고르가 <불안의 개념>에서 언급한대로, 아담은 "그 자신이자 동시에 인류"가 아니던가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요? 그 옛날 아담이 마주한 상황이 곧 오늘날 우리 모두가 당면하는 실존적 상황이라는 의미가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뭘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신으로부터 쫓겨나 '버림받음'의 감정, '쓸모없음'에 대한 인식, '사망의 느낌' 속에서 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지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기고, 저주받은 땅이라도 움켜쥐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것이라도 '잡으면 살 것 같고 놓으면 죽을 것 같아' 붙들고 움켜쥐는 것이 아니던가요? 바로 이것이 기독교에서 혐오하는 자기중심주의, 현세중심주의의 본질이 아니던가요? 또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진 참을 수 없는 성욕, 끈질긴 재물욕, 무한한 현세욕의 정체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인간 실존의 가련함이 아니던가요?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떠세요? 당신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런데 기독교 측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뱅에 이르는 대부분의 중요한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가진 '버림받음'의 감정, '쓸모없음'에 대한 인식, '사망의 느낌' 등이 까닭 없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서 돌아섬, 신을 떠남, 존재상실, 가치상실이라는 '원초적 분리'에서 왔습니다.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성욕, 재물욕, 현세욕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신에게로 돌아감'뿐입니다. 원초적 분리는 오직 원초적 결합에 의해서만 회복된다는 것이 기독교 교설이지요.

 

p.209-210

뭐라고? 신에게는 이름이 없다고?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린가? 그렇다면 '야훼'나 '여호와' 같은 신의 이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 당신은 지금 이렇게 묻고 싶겠지요. 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신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야훼'와 '여호와'도 알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이 말이 당신에게는 무척 낯설게 들리겠지만, 신에게는 이름이 없고 또 당연히 없어야 합니다. 왜냐고요? 답은 이렇습니다.

 

당신도 이미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존재물들은 '그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있지요. 에컨대 사과는 사과로 있고, 책상은 책상으로 있습니다. 이때 사과를 사과이게 하는 그 어떤 성질, 또는 책상을 책상이게 하는 그 어떤 성질이 존재론에서 말하는 그것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있음'이 곧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본질과 존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다시 말해 세상 만물은 모두 '무엇'이라는 본질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그 '무엇'이 우리가 부르는 그것의 '이름'입니다. 그렇지요?

 

따라서 이름이란 어떤 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그것의 본질이 이미 규정되고 한정된 '존재물'에게만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것을 '사과'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사과를 사과이게끔 하는 사과의 본질(예컨대 둥글다, 주먹만 하다, 먹을 수 있다, 달다, 시다 등)에 의해 규정되고 한정되었기에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을 사과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잘못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제1장에서 이미 살펴본 대로, 신은 그 무엇으로도 한정할 수 없는 무한자입니다. 당연히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무규정자이지요. 그럼으로써 신은 - 사도 바울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로마서 11:36)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린토전서 8:6)라고 교훈한 것같이 - 모든 한정된 것들, 모든 규정된 것들, 곧 모든 존재물들이 그로부터 나와 그 안에 존재하다가 소멸하는 '궁극적 근원'이 되는 겁니다.

 

요컨대 신은 그 어떤 것에 의해 한정되고 규정된 존재물이 아니며, 존재물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즉, 신은 '무엇'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지요.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저 '있는 자 Qui est' 또는 '존재 자체 ipsum esse'라고 불렀는데, 바로 이것이 신이 이름이 없는 이유입니다.

 

p.252-253

예수는 일찍이 율법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욕했습니다. 한 예로, 그가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날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 이삭을 잘라 먹자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거론하며 비난하였지요. 이에 예수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태복음 12:7)며 안식일주의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자비보다 제사를, 신보다 우상을, 존재보다 존재물을 섬기길 즐겨하는 듯합니다. 독일의 성서학자 위르겐 에바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언급하였습니다.

 

예수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날이지 율법으로 인간을 얽어매는 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예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풍요, 생명, 기쁨을 신뢰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처럼, 교리문답에서 안식일의 풍요함이나 기쁨에 관해 언급하는 말은 거의 없다. 교리문답은 - 이 계명만 그런 것이 아니라 - 모든 계명에서 필요로 하는 것만을 추려냄으로써 만들어졌다. 그래서 해방은 또 하나의 억압이 되었다. 그러나 십계명에서는 해방이 모든 계명들의 전면에 나타난다.

 

이렇듯 율법주의는 예수마저 나서서 없애려는 우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유대교, 동방정교, 가톨릭, 프로테스탄트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든 다시 살아나서 인간을 어둠의 '노예가 되게' 하는 망령이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단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일로 해석하는 모든 고전적 해석들에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p.255-256

세상 모든 존재물은 언제나 본질과 존재라는 두 개의 존재론적 구성요소를 갖습니다. 즉, 모든 실재하는 존재물은 무엇으로 있습니다. 사과는 사과로 있고, 책은 책으로 있지요. 이렇게 '무엇'으로 있지 않고, '그저' 있는 존재, 곧 그 어떤 본질에 의해서도 규정받지 않는 존재는 '존재 자체'인 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무엇-됨'에 관심을 갖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나무-됨을 염려하지 않고, 고양이는 자신의 고양이-됨에 관심을 갖지 않지요.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심지어는 꿈에서조차 - 자신의 '무엇-됨'을 끊임없이 염려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든, 재산이든, 명예든, 미모든, 재능이든, 아무튼 인간은 자신을 말해주는 그 '무엇-됨'에 자나 깨나 관심을 갖지요. 이유는 그것들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고위 공직자가 옷을 벗고, 부자가 가난해지고, 건강한 사람이 환자가 되는 것처럼, 인간의 '무엇-됨'은 수시로 변합니다.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은 매순간 보다 나은 무엇이 되려고 하고, 항상 불안하며, 걱정하고 한순간도 안식할 수 없지요. 아닌가요? 그렇지요? 그렇다면 안식이란 무엇일까요?

 

안식은 우리의 관심이 '무엇-됨'에서 벗어나 '있음'으로 옮겨 간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물들의 '있음'에 관심을 갖고 놀라워하며 기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때만이 인간은 자신의 무엇-됨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걱정, 근심 그리고 불안에서 벗어나고, 다른 모든 존재물들의 무엇-됨을 향한 탐욕, 시기, 질투 등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평안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안식의 존재론적 의미입니다.

 

p.263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의 존재물인 인간이 그의 바탕인 '존재', 곧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기에 오직 '존재론적 죄' 또는 '종교적 죄'입니다. 그리고 이 돌아서는 행위는 단 한 번의 '돌아섬'이지요. 따라서 살인, 도둑질, 간음과 같은 도덕론적 또는 법률상의 죄들이 반복하여 복수적으로 저질러질 수 있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p.264~265

신에게서 돌아선 아담과 하와가 어디를 바라보았을까요? 성서에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자 곧바로 눈이 밝아져 자신의 '벌거벗음'을 알고 부끄러워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세기 3:7).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무엇-됨' 곧 존재물로서의 자기 자신의 '어떠함'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컨대 아담과 하와는 신에게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선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섬'이 신에게서 돌아선 죄인이 향하는 새로운 방향성입니다.

 

그뿐인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존재'이기에 그것은 '존재에 대한 관심의 상실'이자 '존재물에 대한 관심의 획득'이고, 신은 '최고의 가치'이기에 그것은 '선의 상실'이자 '악의 획득'일 수밖에 없습니다. '신에게서 돌아섬'과 '존재에 대한 관심의 상실' 그리고 '선의 상실'이 죄의 원초적 내지 1차적 속성이라면, '자기에게로 돌아섬'과 '존재물에 대한 관심의 획득' 그리고 '악의 획득'이 죄의 부수적 내지 2차적 속성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속성이며, 인간이 '탐욕적'이고 '악한' 이유인 겁니다.

 

'아담의 범죄'라고도 불리는 이 '돌아섬' 곧 '존재상실 사건', '가치상실 사건'은 인간이 '신중심주의'에서 '자기중심주의'로, '존재중심주의'에서 '존재물중심주의'로 돌아선 최초의 계기였지요. 따라서 기독교 신학에서는 자만에 의해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곧바로 죄인의 특징이고, 반대로 순종에 의해 '신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의인의 특징이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p.269

틸리히는 신이 질투할 만한 우상의 힘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해 말했습니다.

 

종교적으로 말해서 혼이 죽는다면 그 혼은 몸을 지배하는 힘을 잃는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죄의 또 하나의 측면이 나타난다. 죄의 시작은 휘브리스 hybris, 곧 자만이지만 그 결과는 '콘큐피스켄치아 concupiscentia', 곧 한없는 욕망이다.

 

p.269

우상이 무(無)라면 질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죄인 곧 존재를 상실한 존재물로서 인간이 가진 실존적 불안감 때문에 우상은 인간에게 실재적 존재로서 힘을 갖는다. 우상의 힘은 인간이 '그것을 놓으면 죽고 잡으면 살 것 같은' 신으로 여기는 것에서 나온다. 그러나 우상은 본래 헛것 곧 '무'이기 때문에 우상숭배는 '헛것으로 됨', '무화'로 연결된다. 그런데 종 되었던 땅 애굽으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해방시킨 신은 그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겨 다시 그것의 종이 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한 신의 질투와 노여움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p.270~272

원죄란 어의적으로는 '자신이 짓지 않았음에도 본래적으로 갖고 있는 죄'를 뜻하지요. 그런데 살펴본 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본디 '신에게서 돌아섬'으로써 '한없는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의 실존을 말하기 때문에, 원죄란 단지 이러한 죄가 본래적이라는 것,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실존적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따라서 원죄는 도덕적인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차원의 것도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죄의 보편성과 숙명성을 '원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죄를 아담의 죄가 유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원죄유전론이라 하는데, 이는 윤리적 영역과 생물학적 영역을 섞어놓은 사변으로서 상징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원죄유전론이 죄의 유전인자가 생물학적으로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아담 이후 인간 본성이 '신에게서 돌아섬', '존재상실', '가치상실', '한없는 욕망에 노예됨'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존재론적 주장일 뿐입니다.

 

따라서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편 51:5)라는 다윗의 고백은 흔히 생각하듯 부모의 죄스러운 성행위를 통해 자신이 출생했음을 한탄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의 기자는 그보다 더 심오한 것, 곧 죄의 보편성과 숙명성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지요. 리쾨르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에게 죄가 유전되었다는 이야기 이전에 숨어 있는 우리, 곧 '불쌍한 죄인들의 고백'을 보아야 한다. 거기서 '백성' 또는 '인류'라고 하는 초생물학적이고 초역사적인 통일체를 발견하게 된다. 아담의 신화는 죄의 고백 속에서 그러한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다.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죄의 숙명성, 누구나 한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죄의 보편성, 바로 이것 때문에 모든 인간은 도저히 안식할 수 없습니다. 안식이란 앞서 본 것처럼 관심이 존재물의 무엇-됨에서 벗어나 오로지 존재물들의 '있음 자체'에 대해 놀라워하고 기뻐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신을 떠난 인간은 존재상실에서 오는 죽을 것 같은 불안감 탓에 존재물들의 무엇-됨을 향한 한없는 욕망에 이미 노예가 되어버려 도저히 안식할 수 없는 거지요.

 

p.278

신이 존재인 한, 우리가 존재물들의 '무엇-됨'에 대한 관심과 염려에서 해방되어 존재 자체의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것, 신이 무한자, 무차별자인 한, 신의 선물인 자유와 안식을 모든 존재물들과 무차별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 신이 선 자체인 한, 선을 행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제4계명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고 또한 베풀고자 한 것은 오직 이것이 전부입니다.

 

p.292-294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만(superbia)이란 단순히 상대방에게 거만하게 군다는 의미의 교만이 아닙니다. 제4계명을 다룬 앞 장에서 살펴본 대로, 자만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를 죄로 이끌고 간 원인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같이' 자기를 높이고 싶어 금단의 실과를 따 먹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인간이 '신같이 되려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을 라틴어로 '수페르비아', 곧 자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본성과 은총>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자만이다. 그리고 자만의 시작은 사람이 신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라고 자만이 죄의 뿌리임을 분명히 했지요. 20세기 미국의 걸출한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부어는 이것을 자존심이라 불렀고, 파울 틸리히는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라는 의미로 '휘브리스hybris'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처럼 신에게서 돌아서게 하는 자만은 다분히 존재론적인 개념으로서 심리적 개념인 교만과는 당연히 다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결코 겸손할 수 없지만, 자만한 사람은 겸손한 경우가 자주 있지요. 어떤 사람은 내적으로 스스로를 높이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오히려 겸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자만은 '아담을 신에게서 돌아서게 한 그것', '자신을 높여 신과 같이 되려는 그것', 그래서 결국은 '신에게서 떠나게 하는 그것', 곧 '죄의 시작이자 뿌리'를 말합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이 곧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론적 측면에서 보면, 자만은 '존재를 상실하게 하는 그것', '존재를 망각하게 하는 그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존재중심주의에서 존재물중심주의로, 신중심주의에서 자기중심주의로 돌아서기 떄문에, 자만은 모든 탐욕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죄에서 벗어나 신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자만을 없애고 겸손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무엇-됨'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있음'에게로 옮기는 것을 뜻하기도 하지요. 자기중심주의를 떠나 존재중심주의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공경에서 나오는 복종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구약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가지 사실, 곧 야훼와 그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복ㅈ조응ㄹ 요구하는 것입니다.

 

p.296

예수는 겸손과 복종의 상징입니다. 아담이 '창조주'에 대한 자만 때문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예수는 '아버지'에 대한 복종으로 죄를 대속하였지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겸손과 복종이 구원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만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였으므로 이제 겸손만이 유일한 길이다.... 자만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겸손은 우리를 온전케 만든다. 하나님은 자만의 상처로부터 인간들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겸손하게 오셨다.

 

복종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복종의 기독교적 의미이자 존재론적 의미입니다.

 

p.310

중요한 건 사랑이 거기 있다는 겁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악이 자리잡으니까요.

- K 키에슬로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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