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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간 본성의 역사

by Diligejy 2017. 5. 12.

p.38

근대의 일부 사상가들이 '암흑의 시대'라는 편파적인 판정을 즐겼을지라도 중세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아무런 고민 없이 지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초기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중기의 안셀무스, 13세기의 보나벤투라와 성 토마스, 그리고 스코투스와 오컴에 이르기까지 걸출한 종교사상가들은 하나님 세계에서 평온을 찾는 인간의 모습을 심도 있게 조명했다. 그러나 성 토마스의 종합에서 보는 것처럼, 중세의 인간은 '원죄로 인한 병든 영혼'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이원론적 교리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p.69
오패와 칠웅이 할거하고,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 시대에 맹자와 순자의 주된 관심은 전쟁과 혼란으로부터 벗어나 국가를 안정시키고 민을 평화롭게 통치할 수 있는 방도가 무엇인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두 사상가의 성론에서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라는 물음은 어떠한 통치의 이념과 방도가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맹자의 성선론이 인정에 의한 왕도정치론의 초석이었다면, 순자의 성론의 최종 목적지는 '예'중심의 절대군주제 확립에 맞추어져 있다.

p.95
하늘과 땅은 무궁하고, 인간의 죽음은 그 정해진 시간이 있다. 인간은 정해진 시간을 갖고 무궁한 공간의 사이에 잠시 맡겨졌으나, 그 삶은 천리마가 담장의 틈새를 달려 지나가는 것과 다름없이 순간적이다.
장자 중 재인용

p.97
자화자는 온전한 삶을 '육욕'이라 명명된 감성적 욕구를 온전히 충족하면서도 그것이 욕망의 방종 상태로 치닫는 종욕적 경향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절제하는 삶을 규정한다. 그것은 궁극에는 극단적 쾌락주의를 지양하는 중도적 삶이며, 욕구의 끝없는 충족보다는 생명을 발아시켜 전개해 나가는 데 필요한 만큼의 적절한 외물만을 확보하는 가운데 내적인 충실을 기하는 삶이다.

p.98
양주의 '양생귀기養生貴己'는 난세의 사회적 환경을 배경으로 한다. 묵자가 목도한 전국 시대의 사회상은 말 그대로 무법천지로 "타국의 국경을 침입하여 곡식을 베어가고 수목을 베어 버리며 성곽을 부수고 성을 빙 둘러서 판호지를 메우며 가축을 빼앗고 조묘를 불질러 없애버리고 백성을 살육하고 노약자를 짓밟는" 아수라장이었다.

p.101
고대 중국 성론의 백미는 [맹자]에 담겨 있다. 맹자가 고자와 나눈 대화는 몇 대목에 불과한 간략한 형식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 관한 핵심적인 쟁점을 망라한다. 양자 간의 쟁점은 세 가지이다. 즉 性의 개념 규정 문제, 인간 본성의 존재 여부, 그리고 본성의 내용 등의 쟁점을 놓고 양자는 대립한다.

p.103
고자는 性을 인간과 동물 구별 없이 본래의 타고난 속성, 즉 생물학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의 性은 금수와는 구별되는 유적類的 존재로서의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p.113
命은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불가피한 요소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생존을 위한 동물적 속성을 갖지만, 거기에는 命이 개입되어 있다. 맹자는 '命이 개입된 性'과 '命이 개입되지 않은 性'을 구분하고, '命이 개입된 性', 즉 이목구비의 욕구를 진성眞性의 영역에서 제외시킨다.

p.115
맹자가 말하는 性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즉 인간의 행위를 통해서 변할 수 없는 것' 또는 '유전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뜻하는 'nature'가 아니라,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점진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character'나 'personality' 또는 'constitution'에 가깝다. 다시 말해서, 맹자의 性은 선천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사회화 문화화하는 과정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고, '그냥 있음(being)'의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함(doing)'이나 '만듦(making)' 또는 그 결과로 '이루어진(done)' 생성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p.120~121
맹자의 성선론이 유달리 주목받는 이유는 사람과 동물 간의 본질적인 구분, 인간만이 갖는 고유한 속성으로서 도덕적 실행 능력, 수양의 방도로서의 확충 제시 등을 통하여 인간 본성을 규명하고자 한, 중국 최초의 체계적인 논증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자의 仁을 발전 심화시키는 작업을 통하여 지식적 성격의 명제가 아닌 생명의 발전 방향에 관한 논증을 시도했다. 맹자의 논증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첫 단계에서 맹자는 사람이 금수와 다름을 전제하고, 
둘째 단계에서 본래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추고 있다고 논구한다. 성선을 지지하는 근거로는 본연지심本然之心, 측은지심, 양지, 양능, 그리고 양귀養貴 등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이면 누구나 요 순처럼 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과욕寡慾과 존야기存夜氣, 양기養氣, 그리고 확충擴充의 의지적 노력을 강조한다.

p.123~124
맹자에게 악은 선에 적대적으로 대칭되는 독자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악은 선이 불완전한 상태에 놓이게 될 때 나타나는 '불완전한 선'이거나 '선단의 미발현'을 의미한다. 요컨대 악이란 선의 결핍 내지는 왜곡이다. 이런 면에서 맹자의 악 개념은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손상시키거나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지는 않으므로, 악행이란 선악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소크라테스의 견해와 유사하다.

p.140
"인간은 악하다"는 주장은 "도덕을 행하는 선천적인 경향성이 인간에게는 없다"는 명제로 등치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순자의 맹자 비판인 "인성의 善과 惡의 논쟁은 실질상 善이란 것이 본성이냐 아니면 작위이냐에 대한 쟁론, 즉 善에 관한 본성과 작위의 논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

p.140~141
순자의 성론은 性과 僞 두 개념에 의거한 논증이다. 이 논증을 통해 순자가 실천적 차원에서 의도하는 바는 두 가지이다. 우선 그는 인위를 자연보다 우위에 둠으로써 당시 만연했던 도가 사상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 그리고 예의와 법도를 바로 선왕의 인정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군주 중심의 정치질서 및 종법사회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는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p.143
맹자에게 惡의 근원이 아포리아였다면, 순자에게서는 역으로 善이 어디로부터 발생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

p.146~147
맹자의 禮의 목적이 금수와의 차별성을 통하여 인간 본성의 속성인 도덕의 구현이라면, 순자의 禮는 실질적으로는 군주 중심의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이념적 장치이다.

p.204~205
[변명]과 [크리톤]등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틑 '바르게 사는 것'의 전형을 보여 주려 했다. 그에 따르면, 올바름에 대한 '앎'에 이른다면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는 인간을 '도덕의 규범적 근거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 규정하면서, 참된 '앎'을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주체가 될 것을 추동한다. 그러나 善자체와 善에 대한 선천적 지식을 동일시하는 그의 내재적 주지주의主知主義(Intellectualism)는 공자의 상지上知개념이 야기하는 바와 같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의 주장에서 善에 대한 선천적 지식의 인식론적 가능성 여부는 물론이고 어떤 종류의 지식을 德이라고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德 전체가 지식인지 아니면 지식이 덕으로 통합되는 본질적인 하나의 요소인지 분명치 않다. 惡을 善에 대한 지식의 결여로 보는 견해도 도덕적 사고와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善을 알면서도 惡을 행하는 사례가 현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그의 견해로는 惡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p.217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앎'을 갈구하는 본유적 속성을 갖는다는 플라톤의 인식에는 정신의 선험적 기원성이 내재되어 있다.

p.231
플라톤은 여성이 남성의 부속물로 여겨지던 시대의 통념을 뒤집어 여성도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혁명적 발상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 제안의 진위 여부는 의구심을 낳는다. 그는 다른 여러 곳에서는 '훌륭한 남자가 되고 싶으면 여인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395d-e)거나 '여성은 약하기 때문에 가벼운 일을 주어야 한다'(457a)거나 '여성은 감정 조절을 못하는 존재'(605d-e)라는 등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기술한다. 따라서 여성 통치자에 대한 그의 언급은 현실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라기보다는 남성과 동일한 차원에서의 여성의 종적種的 측면에 대한 원론적 입장으로 보는 편이 타당해 보인다.

p.233~234
철인왕 개념은 플라톤 개인의 정치적 경험을 배경으로 얻은 통치의 '이념형(Ideal Type)'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많은 이들이 꿈꾸듯이 "나 자신의 주인이 되면 곧바로 나라의 공적 활동(정치)에 뛰어들겠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일곱 번째 편지], 324b). 청년이 되어 정치에 깊이 관여했지만, 그가 당대의 정치 행태를 혐오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이후 등장한 30인 참주정치를 보면서 무엇이 그들을 타락시키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는 폴리스에서 행해진 일련의 정부 형태들인 전제정치, 과두정치, 그리고 민주정치가 너무나 비생산적이고 부도덕함을 절감했다. 그는 새로운 기대를 품고 세 차례에 걸친 시라쿠사 여행을 통해 이상국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정치 실험에 나섰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실패한다. 그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은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뉘시오스 1세의 쾌락적이고 무절제한 통치였다. 각별했던 친구 디온의 살해를 끝으로 플라톤은 결국 지금 존재하는 모든 국가의 정부체제는 예외 없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깨닫게 되었고, "올바르고 진실되게 철학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거나, 아니면 각 나라의 권력자들이 모종의 신적 도움을 받아 진정 철학을 하기 전에는 인류에게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일곱 번째 편지], 326b)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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