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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만 가지 행동

by Diligejy 2017. 9. 13.

p.7

경험에 의하면 정신분석적 심리 치료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나 성장을 이루는 것은 통찰이 아니라 훈습 과정의 성과였다. 시간적 비중으로 따져 보면 통찰을 얻는 시간보다 훈습을 행하는 시간이 일곱 배쯤 많이 소요되었다. 심리적 부담감 측면에서 계량해 봐도 통찰보다는 훈습 과정이 일곱 배쯤 무거웠다.


p.24

정신분석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무의식에 있는 의존성을 알아차렸을 때, 놀랄 만한 통찰이 따라왔다. 그것이 모두 내 의존성이었구나 싶었다. 꺼림칙하게 여기면서도 수련장에 따라간 행위, 어깨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을 빼앗긴 이유, 원장이라는 이가 지시하는 대로 따랐던 행동 등이 모두 의존성이었다.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들이 좋은 것을 주겠거니 하는 마음이었다. 행동의 여러 측면에서 의존성을 알아차리던 그 순간, 거짓말처럼 선배를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p.25

모든 일이 내가 지어서 내가 받은 것이었다.


p.26

훈습의 첫 단계는 한마디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결핍과 결함과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끝낼 수 있는 분석과 끝낼 수 없는 분석
붓다의 심리학


p.26~27

마크 엡스타인은 <붓다의 심리학>에서 훈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훈습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관점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관점이 아닌 정서를 변화시키려 노력한다면 단기간의 성취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서에 집착하거나 혹은 회피하려 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자 노력하는 바로 그 감정에 매인 채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p.27

훈습 과정을 거치면서야 '다르게 살고 싶다'고 꿈꿀 때마다 진심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자기실현 욕구였다. 낡은 방식이 몸에 맞지 않을 때, 오래된 습관이 변화한 역할에 적합하지 않을 때마다 다르게 살고 싶어 했다. 생에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싶은 욕구,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고 싶은 욕구, 파편화시켜 둔 내면을 통합시켜 진정한 나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구였다. 변화란 삶의 외형이나 행동 방식을 바꿔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식, 관점, 사고의 틀이 바뀌는 지점에서 성취되는 것임을 훈습 과정에서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p.31

찬찬히 손을 씻으며 그들이 내게 건넨 부정적 행동 방식에서 자극받아 나의 내면에서 올라온 부정적 감정들을 씻어 냈다. 그들의 방식에 반응하여 헛되이 나의 감정을 소모할 필요는 업섰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것이고, 나의 감정은 나의 것이었다. 나는 그저 자신을 잘 보고, 감정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훈습 시기에는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예전에는 어떤 사람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이기적이야.'라고 판단한 후 문제를 쉽게 그의 이기심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정신분석을 받은 후에는 다르게 생각했다. '저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판단하면서 불편해하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제를 나의 것으로 끌어안고 해결책도 내면에서 찾는 첫 단계였다.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내 마음은 무엇이지?'

'저 사람의 공격성이 불편한 내 마음은 무엇이지?'


p.32

비로소 '자기를 본다'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반응, 특정 상황에 대응하는 나의 행동들을 보는 것이 진짜 자신을 보는 일이었다. 그 언행의 배경에 있는 무의식을 알아차리는 것이 진짜 자기를 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외부로 투사한 감정을 끌어아는 첫 단계이기도 했다.


p.36

훈습 기간을 보내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외재화하는 문제 해결 방식을 없애 간 것이었다. 외재화는 사물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이분법의 논리와, 그중에서도 '내가 옳다'고 믿는 나르시시즘 위에 형성된 감정인 듯했다. 어떤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힘이 없었던 유아기 생존법의 잔재이기도 했다. 걸음마 하던 아기가 넘어지면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떼찌!"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았다. 그 방식의 나쁜 점은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외부에 둘수록 상대에게 힘을 주고 자신은 무력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는 것이었다.


p.41

사자성어처럼 보이는 '충탐해판'은 한 리더십 세미나에서 알게 된 용어이다. 충고, 탐색, 해석, 판단의 앞 글자를 모은 그 단어는 한데 묶어 놓고 보면 방어의 언어라는 사실이 더 잘 이해되었다. 충고는 자기 생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남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탐색은 상대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경계하는 일이었다. 해석은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덧씌우는 일이고, 판단은 제멋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지만, 일상적으로 늘 그렇게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다.


p.49

훈습 기간 중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시기심을 알아차리는 단계가 있었다. 특정한 타인에게 유별난 관심을 가질 때는 그 배경에 있는 것이 대체로 시기심이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잘 나가는 특정인을 화제에 올릴 때 좌중에 퍼져 나가는 감정도 시기심인 듯 했다.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해 유독 날카로운 평을 가할 때도 그 배경에 있는 마음은 시기심인 듯했다. 부러움뿐 아니라 경쟁자처럼 느끼는 마음도 어김없이 시기심이었다. 시기심을 알아차릴 때 놀란 점은 그것이 매우 위험한 감정임에도 일상 속에 흔하게 널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p.69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분리를 이루어야 하며, 내면에 만들어 가진 부모 이미지도 해체해야 한다. 세계 모든 영웅 신화가, 그 주인공이 자신의 공동체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도 그것이라 한다.


p.72

선생님을 뵐 때마다 밥값이나 찻값을 선생님이 내시는 걸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른이시고, 나보다 많이 가졌으니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듯했다. 심지어 선생님이 싸 주시는 묵은 김치나 크고 작은 선물들을 당연하다는 듯 챙겨 왔다. 그것은 틀림없이 부모에게서 충족되지 못한 의존성을 투사하는 행위였다.


그러한 심리작용을 알아차리자 내 행동이 더 잘 보였다. 나 역시 남들에게 무언가를 챙겨주는 버릇이 있었다. 추워 보이는 후배에게 옷을 건네주고,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친구에게 국화차와 국화꽃 베개를 사주었다. 심지어 "내가 무엇 무엇을 해 줄게."라는 말버릇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말투는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받고 싶어하는 의존 욕구가 투사된 것이고, 동시에 상대를 조종하려는 의도까지 내포되어 있었다.


p.73

"반미 감정이 가장 높은 나라는 미국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라는 미국 정신분석학자의 문장이 번쩍 눈에 띄기도 했다.


p.74

엄마의 삶은 엄마 몫이며,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나의 몫이었다. 비로소 무의식 깊은 지점에서 분리가 이루어지면서 진정한 심리적 자립을 성취하는 듯했다. 그것은 '사랑도 미움도 없는 상태'였다. 사랑한다는 것은 의존 욕구가 있다는 뜻이고, 미워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애착이나 원망의 감정이 없다면 제대로 분리되고 자립된 상태임에 틀림없었다.


p.80

이제 나는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가르는 기준을 하나 가지고 있다. 아마추어가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일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즐거운 일을 한다. 아마추어가 타인과 경쟁한다면 프로페셔널은 오직 자신과 경쟁한다. 아마추어가 끝까지 가 보자는 마음으로 덤빈다면 프로페셔널은 언제든 그 일에서 물러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내면에서 느끼는 결핍감 유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p.83~84

"마음을 비우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한 듯했다. 마음을 비우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무의식에 억압하고 회피해 둔 것들을 끄집어내어 자기 것으로 인정하고 의식 속으로 통합하라는 뜻이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외면해 온 마음을 끌어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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