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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by Diligejy 2017. 11. 2.

p.9

글을 쓰는 것은 생활의 리듬이지만 책을 내는 것은 삶속에서 사건이기 때문이다.


p.9~10

무엇보다도 내가 두려워한 것은 책을 낼 때 무언가 그 자리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이란 일종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책을 낼 때 그 사람에게 무언가 정지를 요구하게 된다. 끔찍한 일이다. 생각이 어딘가에서 멈추는 것은 죽음에 다름 아니다. 생각이 멈출 때 (내가 만나는) 세상도 멈추는 것이다. 나는 그게 정말 무섭다. 그래서 책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죽음이 가까웠나 보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죽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새로운 책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죽음의 유예. 나는 그냥 그 책을 읽으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죽음에 저항하는 책.


p.12

언제나 혼자 영화를 보고, 항상 혼자 그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건 종종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표류하는 듯한 상태. 필사적인 SOS. 나는 그렇게 쓰여진 글들이 친구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오곤 했다. 


p.13

무엇보다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기억을 다루는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당장 다시 보면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아서 다시 생각하고, 왜 그것만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 왜 저것은 사라져 버렸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게서 사라져 가는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경기장이다. 나에게 영화란 그것을 보는 시간과 그것을 보러 가는 시간, 그리고 보고 난 다음의 시간, 세 개의 시간 사이에서 기억의 사용에 대한 용법과 능력의 문제이다. 그저 자유롭게, 종종 선험적으로 상상하며, 때로는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즐겁게 세상을 쳐다본다.


p.15

<첩첩산중>에서 미숙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거 같애? 너 이유가 있어서 섹스하니? 그냥 하고 나서 이유 붙이는 거야!


p.25

인간은 개가 아니라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인간은 처음부터 인간이었고, 원숭이는 원숭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에게서 가까운 원숭이를 집에서 키우는 대신 개를 키우고 있다. 개는 분류 항목에서 인간으로부터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원숭이를 키운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만난 적이 없다. 반대로 개를 키운다는 사람은 부모와 함께 산다는 사람만큼 많이 알고 있다. 왜 개가 원숭이보다 더 사람에게 가까워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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