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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by Diligejy 2017. 11. 8.

이 영화를 현실론자와 당위론자와의 다툼으로 많이 해석합니다.


그렇지만, 잘 보면 막스베버가 말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차이를 아는가 모르는가라는 근대정치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입니다.


신념윤리란 하나의 대의에 헌신하는 자질을 뜻하며, 책임윤리는 자신의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태도를 뜻합니다.


김상헌은 신념윤리자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그는 자신의 대의를 지키면 그에 따라 결과가 알아서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설령 잘 되지 않더라도 대의를 지키다 죽으면 그것이 '아름답지'않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합니다.


현대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이용해 평가해보는 작업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그는 정치인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치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막스베버는 다음과 같이 말해줄 겁니다.


"가령 우리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라는 절대적 신념에 기초한 사랑의 윤리 또는 평화의 윤리를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정치가에게는 거꾸로 오히려 "너는 악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악의 만연에 책임이 있다"(본문 117쪽)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정치가가 순수하게 신념윤리적으로만 행동한다면, 그는 "모든 정치적 행위에 개입되어 있는 상기한 악마적 힘들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이 힘들은 무자비하며, 만약 그가 그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본문 135쪽), 이 힘들은 비단 그 자신뿐 아니라 그가 정치를 통해 봉사하고자 했던 공동체 전체의 운명에 치명적 해를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막스베버, 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정치 12p)


왜 사람들이 정치에 나서지 말라고 하는걸까요? 정치는 기본적으로 악마와 계약을 맺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국가에서 폭력은 국가가 독점합니다. 정치는 그러한 폭력을 집행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입니다. 다만, 그 폭력을 최대한 이성적이며, 덜 폭력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정치는 진화해왔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에게 '자신은 진심이었으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자신에게 침을 뱉어달라고 하는 말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신념과 결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념만 챙기고 싶다면, 그저 시민운동가로 남으면 됩니다. 조선시대로 치면 골방에서 유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가끔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사람정도면 됩니다.


어제 영화를 보던 중에 제가 인조였다면 어떻게 했을거 같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청이랑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야지'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인조에 제 자신을 대입해보면, 저 또한 인조처럼 망설였을 거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낼 때, 명에 대한 충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집권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주도세력이 아니라, 신하들이 주도했으되, 자신은 우두머리로 오른 사람일 뿐입니다. 만약 명을 배신한다는 건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고, 이는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런 상황에서 쉽게 나는 청이랑 손잡을래 라고 대답하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인조와 그의 조정이 어떤 결정을 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 결정을 정당화시키는지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최명길은 그 정당화를 위해 권도라는 개념을 내세웁니다. 유학에서는 도에 이르는 방법으로 경도와 권도, 두가지를 제시하는데, 경도는 도를 구현하는 보편타당한 원칙이고, 권도는 경도에서 벗어난 임시방편의 방법으로 도를 추구하는 걸 말합니다.

결국 이를 잘 읽어보면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개인윤리와 국가윤리의 분리를 뜻하고, 최명길은 정치가의 자질이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김상헌이 자결하는 걸로 나오지만, 사실 최명길이나 인조보다도 오래 살고 죽습니다. 또한 김상헌은 충절의 대명사가 되고 후손들은 후광을 입어 손자 대에만 영의정 2명(김수흥, 김수항)이 나왔고, 7대손 김조순은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할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린 반면, 최명길의 손자 최석정은 영의정에 오르긴하지만, 최명길의 손자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을 정도로 둘의 차이는 당대 뿐 아니라 후대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자체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이미 김훈 선생님의 책을 읽은 다음에 영화를 봐서 그런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영화가 그저 역사다큐같다는 느낌만 받았습니다. 나름 열심히 구현해냈는데, 뭔가 꽂히는 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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