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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정책&비평

지방도시 살생부

by Diligejy 2017. 12. 6.

p.6

인구가 줄어들고 도시가 쇠퇴하는 게 뭐 그리 큰 문제인가? 인구가 줄어드는 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살면 되지 않겠는가? 맞는 말일 수 있다. 모든 도시에서 인구가 증가할 수 없다. 인구가 정체된 시대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지방이 쪼그라드는 게 뭐 그리 대단한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른다. 지방의 위기는 지방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지방의 소멸은 '정든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지방 사람들의 박탈감이 심각하다!'는 안타까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국가의 생존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인구가 빠져나가 쇠퇴한 도시에서는 재정투자의 비효율이 급속도로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국민 모두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은 정부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조만간 이 문제로 인해 온 나라가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p.14~15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빽빽한 서울은 집적의 경제가 더 크게 나타날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실제로 이 질문을 학생들에게 수도 없이 받았다. 학계에서도 갑론을박할 정도로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필자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하곤 했다. "이에 대해 일치된 결론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아직까지는 대도시에서 '집적 경제'가 '집적 불경제'보다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구가 더 모인다면 대도시에서의 편익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그러곤 덧붙인다. "하지만 이는 '대도시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집적의 이익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함께 묶어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쪽에서 인구가 증가하면, 다른 쪽은 인구를 잃게 됩니다. 인구가 거의 증가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시기엔 이런 '시소효과seesaw effect'가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니 한쪽이 집적의 경제를 얻는다면, 다른 쪽은 집적의 경제를 잃게 됩니다. 게다가 인구를 잃는 측은 재활성화를 위한 치유의 비용도 감당해야 하고요."


앞으로 우리는 쇠락해가는 지방 중소도시의 활성화를 위해 쏟아부어지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목도할 것이다. 그리고 깨달을 것이다. 대도시 쏠림현상으로 인해 얻는 이익보다, 지방의 공동화를 치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다는 것을 말이다.


p.17(임계점?!)

수도권 규제의 효과가 나머지 88%를 차지하고 있는 지방 곳곳에 균등하게 배분되게 해선 안 된다. 국토균형발전 정책에서의 균형은 수도권과 '맞짱'뜰 만한 지방 대도시들을 키우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국가적 재정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어찌 해야 하는가? 이 책의 3부에서 기술한 지방 중소도시들의 생존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분산 팽창하면 죽고, 집중 압축하면 산다!"


지방 중소도시들은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이라는 거스르기 힘든 메가트렌드를 인정해야 한다. 인구와 산업이 쪼그라드는 미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현실에 맞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중앙정부는 더 이상 지방 중소도시들의 눈치를 보며 정책결정을 하면 안 된다. 나눠주기식 정책은 예산 투입의 효율성을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지방은 '어찌해볼 수 없는 곳'이란 낙인만 안겨줄 것이다.


p.32

도시들의 소멸이 아쉬운 이유는 그곳에 그 지역만의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지역에 얽힌 소중한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잃는 건 집만이 아니고 직업만도 아니다. 우리가 영영 잃어버리는 건 역사 속에서 조각된 그 도시만의 숨결이며 기억일 것이다.


p.34~37

'인구가 0이 되는 시점'을 지자체 소멸 시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지자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두 손을 드는 시점이다. 이 시점은 인구가 0이 되기 훨씬 전이다. 북미 최대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의 예를 보자. 1950년 디트로이트의 인구는 180만 명이었다. 미국의 빅3 자동차업체(포드 GM 크라이슬러)가 자리잡은 디트로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고, 전세계 자동차산업의 메카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일본 자동차회사들의 선전으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산업은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1990년대 들어 자동차산업이 더욱 쇠퇴하자 인구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주민들의 평균 수입도 가구당 평균 5만 달러에서 2만8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인구와 가계소득의 감소는 도시의 재정을 압박했다. 먹고살기 어려우니 인구는 계속 빠져나갔다. 디트로이트는 2013년 재정 악화로 파산하기에 이른다. 파산할 당시 이 도시의 인구는 70만 명 정도였다. 전성기에 비해 인구가 반 토막으로 줄어든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면적은 370km^2이다. 크기로 치자면 우리나라 서울시의 60% 정도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대도시에서 인구가 반 토막 나면 시는 견딜 재간이 없다. 인구가 줄어들어도 기존의 도시 인프라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인구밀도가 낮아졌다고 도로나 상하수도를 없앨 순 없지 않은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점차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디트로이트는 채무를 갚기 위해 공공서비스의 질을 낮추고 주민들의 주머니에서 세금은 더 걷었다. 이게 디트로이트 주민들이 미시간주에서 가장 높은 재산세와 소득세를 내는 이유다. 세금이 높으니 주민들의 소비력은 크게 낮아졌고 경제의 활력도 떨어졌다. 2008년 이후 디트로이트의 공원들은 70% 정도가 폐쇄되었다. 가로등 10개 중 하나는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인력은 10년 동안 40%가 줄었고, 경찰이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미국 평균의 5배나 되었다. 디트로이트는 미국 내 흉악범죄의 발생률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혔다. 2013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45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미국 평균의 10배에 달한다.


또 다른 파산도시인 일본의 유바리시도 인구의 급속한 감소를 겪었다. 유바리는 우리나라의 태백과 정선처럼 석탄상버이 유명했던 곳이다. 1960년 유바리 인구는 10만 명으로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정책이 전환되면서 유바리의 탄광들은 순차적으로 폐쇄되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의 석탄산업은 더욱 가파르게 기울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갔다. 유바리 인구는 1980년에 이르러 5만 명 이하로 반토막 난다. 다급해진 시는 1980년대 말 관광도시로의 변신을 선언한다. "탄광에서 관광으로!"를 캐치프레이즈로 골프장 스키장 박물관 등을 짓기 시작했다. 탄광도시의 변신은 인구가 감소하는 다른 도시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유바리의 이런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관광객 수는 기대했던 만큼 늘지 않았다. 일자리도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미 꺾여버린 인구를 되돌리지 못했다. 결국 유바리시는 2006년 파산을 선언한다. 무모한 투자가 파산을 앞당겼던 것이다. 


디트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유바리의 상황은 참담하게 바뀌었다. 399명이던 시의 직원수는 100명으로 줄었고, 남은 이들의 연봉도 40% 수준으로 깎였다. 시의원도 18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6개였던 초등학교와 3개였던 중학교는 각각 1개씩만 남겨두고 모두 문을 닫았다. 수도세와 자동차세 등 공공요금도 2배 인상됐고, 시립 종합병원도 문을 닫았으며, 구급차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디트로이트와 유사하게 '높은 세금으로 형편없는 서비스를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유바리시의 인구유출을 더욱 부추겼다. 2015년 현재 유바리 인구는 1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현재는 서울보다 큰 면적(서울시 면적의 126% 수준)에 9000명 정도의 인구만 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중 반 정도가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p.40~41

쇠퇴하는 지방 중소도시들에선 50대 이상의 인구층이 매우 비대해져 있다. 이들 대부분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능력이 없다. 아니 능력이 있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다. 다른 도시에서 새롭게 적응할 만큼 남은 인생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 친척, 이웃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답사 때 만난 한 어르신은 이렇게 얘기했다. "서울로 간 우리 애들이 돈 더 벌면 모시고 살겠다고 하는데, 내가 거기서 뭘 할 수 있겠나? 난 못 가. 애들과 떨어져 있어도 난 여기가 편해."


이러니 앞으로 진행될 중소도시들의 인구변화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인구감소를 젊은 층의 인구유출로 설명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인구감소는 노년층의 사망으로 설명될 것이다. 노인의 사망속도가 곧 중소도시의 인구감소 속도가 되는 것이다. 이제 중소도시의 인구감소 요인은 '인구이동'의 사회적 요인에서 '사망'과 같은 자연적 요인으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p.65~66

지금까지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도시 쇠퇴의 원인들에 대해 설명했다. 제조업의 쇠퇴, 자연자원의 고갈, 미군부대의 이전, 교통망의 발달. 그런데 이러한 원인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인구유출의 원인은 결국 깔때기처럼 하나로 수렴한다. 바로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다른 도시에 더 좋은 일자리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도시가 쇠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민들이 떠나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물리적으로 노후화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늘어나 돈을 벌 기회가 생기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서 먹고살 만해지면 건물 치장에도 신경을 쓰고, 또 건물을 치장하면 장사도 잘 되고. 경제적 쇠퇴와 인구적 쇠퇴, 물리적 쇠퇴는 서로 맞물려 돌지만 그 시작점은 경제적 쇠퇴다. 경제적 쇠퇴가 인구적 쇠퇴와 물리적 쇠퇴를 유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니 도시정책에서 외부의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는 정책은 전혀 유효하지 않다. 또한 도시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오래된 건물을 업그레이드하는 노력 또한 헛수고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p.76~77

지방에서는 병원도 무너져간다. 산부인과의 지방 탈출이 특히 심하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다가 숨지는 산모의 비율(모성사망비)도 매우 높은데, 출생아 10만 명당 11.5명 정도로 OECD국가 평균(6.4명)의 2배나 된다. 특히 지방에서 이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서울은 3.2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이지만, 제주는 16.7명, 경북은 16.2명으로 엄청 높다. 심지어 두메산골이 많은 강원도는 32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며, 스리랑카보다 높은 수치다.


산모의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인근에 분만실이 없기 때문이다. 분만을 맡을 수 있는 의사들의 약 44%가 서울과 경기지역에, 약 8.4%가 부산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나머지도 거의 대도시 지역에 분포해 있다. 구례군에서 산부인과를 가려면 광주나 순천까지 이동해야 한다. 진통과 싸우며 승용차로 1~2시간을 가야 하는 것이다. 출산하러 가다 승용차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도 많다. 정부는 가임여성의 비율이 30% 이상이면서, 1시간 이상 떨어진 분만의료기관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70% 이상인 시 군을 '분만취약지'로 지정했는데, 전국에 37곳에 달한다. 


이렇게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생활편의시설들이 빠르게 붕괴되어가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만들어낸 인구의 유출은 민간과 공공 모두에서 각종 생활서비스의 비용 상승을 가져왔다. 이제 은행도 빠져나가고 병원도 사라져간다. 학교도 문을 닫고 있다. 웨딩홀도 빠르게 줄어든다. 하지만 정부가 손을 뗄 순 없다. 시골 한구석 아무리 쪼그만 지역이라도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는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에 인구와 산업의 대도시 쏠림현상이 더욱 강화되는 만큼, 지방소멸에 당황한 사람들은 '포용적 성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낙후 지역을 감싸 안는 포용적 전략! 이건 공존의 가치를 이해하는 성숙한 사회에서 꼭 필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략의 대가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건 바로, 쇠퇴하는 지방 중소도시를 위한 공적 자금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p.80~81

2060년의 우리 사회 모습은 이러하다.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구(생산가능인구) 반, 부양을 받아야 하는 인구(노인인구+유소년인구) 반이 된다. 지금도 애 키우기 힘들어서 자녀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천지에 깔렸고, 노인 복지비용이 크게 상승했다는 우려가 많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적은 (젊은) 인구'가 '더 많은 (노인) 인구'를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얘기는 전국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다. 인구구조를 지역별로 더 들어가보면 이미 65세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 지역이 38%(228개 지자체 중 86곳)에 달한다. 이런 지역의 대부분은 인구 15만 명 이하의 지방 중소도시이다. 초고령 지역에서는 아기를 낳을 사람이 부족해서 생기는 '저출생'문제가 고령화를 촉진한다. 이런 저출생 문제는 저출산 션항과는 다르다. 저출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아이가 적다'는 뜻이고, 저출산은 '가임기 여성이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방 중소도시의 고령화 문제는 대도시의 고령화 문제와 양상을 달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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