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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아부의 기술

by Diligejy 2018. 1. 13.

p.12~13

우리가 반어적인(ironic)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은 이제 진부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이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진리를 엄격하게 보지 않고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어떤 면으로 우리는 도덕적 상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워싱턴이 애지중지하던 벚나무를 손도끼로 잘랐다는 얘기는 어느 누구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튼 진리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계몽주의적 사고는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완벽하게 솔직한 것은 없다. 또한 전략적이지 않은 것도 없다.


진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대적일 때 반어는 만연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반어는 널리 퍼지게 되면 일종의 냉소적인 도덕적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윤리적 구별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인 것을 지나칠 정도로 까다롭게 구별하다 보면,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깨끗한데'라는 듯한 능글맞은 웃음으로 자신을 거짓포장하거나,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회피하는 쪽으로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고 지나쳐 버린다.


p.18

아부란 본질적으로 아부하는 사람의 잇속을 숨기는 동시에, 그 잇속을 챙기기 위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p.31

자신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실수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자기인식이 결여되어 있으면서 중뿔나게 권리의식에만 사로잡혀- 썩 아름답지 못한 두 개의 태도가 겹쳐 있다 - 무슨 일에 대해서든 결코 책임지지 않으려는 현대의 나르시스트들을 제대로 묘사하는 문장이 아닌가!


p.32

솔직히 말해보자. 아부를 잘해 좋은 일자리를 가졌다는 게 그렇게 부당한 일일까? 꼭 부당할까? 천만에 말씀!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환심 사기에 대한 연구는 아부가 호감을 증대시키는 일이지, 아부한 사람의 능력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똑똑히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능력이 같을 경우 아부를 잘하는 사람이 직장을 얻을 가능성이 높은 것만은 확실하다.


p.33

교사에게 똑똑하다고 칭찬을 들은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시험성적이 우수하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거듭 밝혀지고 있다. 칭찬을 받으면, 결과적으로 능력이 뛰어나게 되고 머리도 좋아지게 된다.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스미스 서티스(Robert Smith Surtees)는 "야단을 맞아 나쁜 짓을 하지 않게 된 사람보다 칭찬을 받고 착한 일을 하게 된 사람이 더욱 많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누군가를 격려할 목적으로 지나치거나 과분한 칭찬을 해줄 때가 있는데, 그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다.


여기까지 읽은 바와 같이, 나는 약간의 재주를 부려 아부를 거짓말보다 칭찬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고전적 견해는 '아부란 마음에 없는 칭찬'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없는 칭찬인들 어떠랴! 마음에 없을지라도 칭찬은 칭찬이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오늘날 과도한 칭찬은 고사하고 칭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을 우스꽝스럽고 천박하게 추켜세우는 경우는 허다하다. 하지만 나는 넘치는 칭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칭찬을 주장하는 것이다. 칭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낌없이 칭찬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는 칭찬받아야 할 사람에게 그 칭찬이 분명히 돌아가도록 보장하기 위해, 올바르게 칭찬하는 행위를 칭찬해야만 할 때도 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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