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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서른 다섯의 사춘기

by Diligejy 2018. 1. 24.

p.20

막상 서론을 넘기고 나니 정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앞날이 빤히 보이는 직장 생활, 5년 후, 10년 후가 더 이상 그럴듯한 그림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p.27~28

서른 중반이 되면 결혼에 대한 압박도 여성과 남성은 다르다. 삼십대 중반 여성은 결혼한 중반 여성은 결혼한 친구가 마냥 부럽고 주변 눈치로 힘겨운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연령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에 괴로워한다.


p.29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별로 울적하지 않아. 그리 큰 문제도 없고, 그리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잖아. 남들이라고 뭐 다르곘어?'라고 추슬러 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말쑥하고 유쾌하게 지내며, 아무 변화 없는 현재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것이 진짜 감정을 숨기는 행동이라는 것을.


지금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면서도 진정한 만족 찾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그래도 이곳이 안전지대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무엇을 향해 갈망을 ㅍ무고 숱한 세월을 보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당혹스러워서, 아예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하지 않으며 움츠러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안전지대란 안전한 곳이 아니라 어쩌면 삶의 감옥일 수도 있다.


p.34

서른 중반은 외롭고 불안하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지금 이 모습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느낌이 자꾸 명치끝을 친다. 이제는 그 자극에 응답을 보내야 할 때다.


p.42~43

'나만이 그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다. 나마저 포기하면 그 사람이 너무 가엾다. 게다가 여기서 놓으면 나 또한 바보 같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 되니 포기할 수도 없다.' 이런 마음의 과정을 겪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몇 개월에서 몇 년이 되는데 사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서른 중후반에 이르면 더 미룰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내가 그동안 '기대의 덫'에 빠졌음을 알고 멍해진다.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별명이 바로 '구원중독자'다. 이들은 상처받고, 여리고, 사랑받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끌리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서 구원의 몸짓은 시작된다. 연애 초기 상대방은 이들의 도움과 관심에 고마워하는데 그럴 때 스스로 고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여긴다. 상대방의 과거 상처를 내가 보듬어야 한다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면서도 상대방을 보호하려고 든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변화는 지연되기 마련이어서 마치 중독처럼 관계에 사로잡힌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 그러면 달라질 거야'를 자꾸 반복한다.


나중에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여기서 관계를 끝내고 떠나면 상대를 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끝내야 할 것을 깨달은지 한참이 지나도 관계를 이어간다. 지지부진, 우물쭈물하다가 모든 진이 다 빠진 후에야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새삼스럽게 폭발하는 이유다.


만일 상대방이 변화를 보이고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해도, 무의식적 차원에서 그 관계는 이제부터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끝이 나는 것이다. 구원자로서 시작한 관계에서, 구원이 완성되었는데 그 관계에 무엇이 남겠는가? 더 이상 잔소리와 비난이 필요 없어진 관게는 그것으로 끝이 날 것이다. 결말이 이토록 허망하기에, 지금 자신이 구원중독자의 자세로 있다면 지극히 냉정해져야 한다.


p.45

'연애에 있어 가능성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랑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 발전하고 성장해간다면, 또한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문제는 상대방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희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가 아니라 변화된 미래에만 희망을 거는 모습이다. 이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p.60

서른 중반쯤 되면 어느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에게나 애정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결함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쯤은 알게 된다. 그래서 지금의 상대방을 어떻게든 잘 받아들이려 애쓴다. 나이가 든 만큼 '조건'에 신중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여유가 생겨 '타협'하는 눈도 길러지게 된다는 말이다.


p.63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이 단순히 화내고 불평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서 피해자를 자처하며 '난 어쩔 수 없어. 당신이 나빠'를 반복할 때 지치지 않고 계속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며 대처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인을 향한 연민은 무력감과 냉담함으로 변해갈 것이다.


p.67

관계란 하루아침에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시작이 있었고, 과정이 있었고, 지금 끝이 온 것이다. 관계의 초기에 분명히 있었던 신호를 무시했거나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며 상대방을 변명해주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p.74

아이들은 실제로 그렇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부모가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 중 한쪽이 사랑받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았다면, 자신은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그 한쪽 부모를 닮은 사람을 사귀어 대신 많은 사랑을 주려고 한다. 부모를 닮은 사람과 사귀어 그 사람을 고치거나 구원하려는 시도가 바로 부모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무의식적 노력의 연장이다. 이를테면 남편에게 버림받아 상실감에 휩싸여 살아온 어머니 곁에서 성장한 아들은 불안해하고 상처받기 쉬운 여자를 만나 절대 헤어지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려 든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자와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머니에게 얽매여 사는 것이다.


연인 관계에 존재하는 부모의 영향력은 깊고 질기다.


p.84~85

죄의 크기란 필요한 용서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거꾸로 용서할 수 있는 정도는 죄의 크기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니 상대에 의해 저지른 죄가 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치명적인 것인지를 가늠하려면 치유의 가능성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p.101

사랑하는 관계에서 관심의 대부분이 서로에 관한 소소한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지속할지 끝낼지를 결정하는 쪽으로 옮겨가 있다면, 이미 그 관계의 건강함은 망가졌다고 볼 수 있다.


p.199~200

우리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모습의 가족이 되려면,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각자의 능력과 인격을 단련시켜야 한다.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한다면, 가족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p.272

심리학은 인간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지만, 감정과 느낌의 강조를 잠시 덮어야 할 때도 있는데 바로 이런 때다. 성공을 위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수시로 범람하는 혼란과 불안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그 상태를 합리적으로 생각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p.275

성공으로 가는 가장 첫 단계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고, 그다음 단계는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아는 것이다. 아니, 이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인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원해도 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한 가지다. 바로 시작하는 것뿐이다. 성공은 주변 여건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여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공에 도달하려면 전진할 준비만 갖추면 된다. 그러면 인생은 어느새 변화할 준비를 시작한다.


p.239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관계를 지속한다고 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오히려 독립적인 두 사람을 인정할 때 파트너십은 가능해진다.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서적으로 공허한 상태에서 짝을 찾아 방황한다면 계속 빈 느낌만 커질 뿐이다.


p.279

성공한 사람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p.281

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는, 평생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그리 치명적이지 않아보이는 것들이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주입되기 때문이다.


p.288

통제력이란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다. 이때 자기중심이란 세상에는 나밖에 없고, 내 뜻대로 되리라는 착각, 다른 사람의 인생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삶의 거대한 바퀴에서 중앙에 내가 있는 자각이다. 나를 내 삶과 미래의 중심에 놓고 동선을 그려야만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그릴 수 있다. 따라서 그만큼 중심에 서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비로소 자신의 꿈을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내가 중심에 없으면 세상도 없고 삶도 꿈도 없다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니라, 그저 구경꾼이거나 손님이면 우리는 삶을 기웃거릴 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p.291

삶은 삼십 대에 결정되지 않는다. 서른 중반이 되어도, 마흔이 넘어서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며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멈칫하거나 방황하는 시기가 있어도 좌절과 불행은 인생의 끝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여기쯤에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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