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경제일반

영악한 경제학

by Diligejy 2018. 1. 29.

p.11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주어진 과제가 불가능해 보일수록 선택은 즉흥적이 아니라 과학적이어야 한다.


p.28

고위험 시스템들은 구성 요소들이 상호 연계해 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 규제를 강화하려는 노력만으로 대형 재난을 줄이지 못한다. 위험사회에선 개별 부품이나 운용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윗선, 시스템 차원의 문제에 봉착한다는 얘기다.


위험은 한 번 불거지면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세월호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서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속성을 갖고 있다. 또 위험이 커질수록 이를 통제하려는 노력도 최소한 대칭적으로 증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위험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사람과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사람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p.30~31

미래는 열린 공간이다.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신호등이 바뀌려는 찰나에 횡단보도를 건너보겠다고 뛰는 것처럼 하나하나의 우연 같은 선택들이 모여서 필연 같은 운명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사람들 개개인의 선택이 모여 서로에게 운명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들이 수도 없이, 끝없이 다른 길로 이어지면서 미래의 운명이 바뀌어간다.


하여튼 간에 필연은 없었다. 당신의 운명은 원래 그렇지 않았다. 당신이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엔 어떤 선택을 할지 새로운 카드들이 주어지는 과정이 계속 반복됐을 뿐이다. 그리고 선택의 반복이 누적되면서 어느 때는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또 어떤 때는 한꺼번에, 그렇게 운명이 달라진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적장에게 마지막 남은 화살 한 발을 겨누는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계산만 도리 수 있다면 위험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이라는 불확실성에 맞닥뜨리면 문제는 달라진다. 멈춰 있는 과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아군과 적군의 구별마저 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답은 각자가, 우리 스스로가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복잡한 세상을 쉽게 풀겠다고 덤벼선 안 된다. 차근차근, 끈덕지게 현장에서 풀어야 한다. 자만하지 말라. 위험에 대비하는 제2의 본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실전을 통해 길러진다. 운동선수나 연주자들이 끊임없는 연습과 반복된 훈련을 통해 특정 근육을 키우고, 그 근육에다 행동 패턴에 대한 기억을 박아 넣어 고난도의 동작이 마치 저절로 연속되도록 해나가듯이 말이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디선가 날아오는 우연의 돌팔매질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독서와 토론, 사색, 그리고 수많은 실전 훈련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직관을 다스리고 발달시켜야 한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공포에 빠진 원시인의 뇌에 의존하지 말라. 직관은 물려받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p.44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캐너먼이 이스라엘 공군 비행 교관들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잘못을 처벌하기보다 잘한 일에 보상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를 설명하자 한 고참 교관이 손을 번쩍 들었다.


"고난도 비행 훈련을 잘 수행한 생도들을 자주 칭찬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번에는 오히려 더 못하더군요. 그런데 잘하지 못한 생도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더니 다음번에는 잘하더군요. 칭찬보다 처벌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교관의 말은 틀렸다. 비행 생도들의 실력은 하루아침에 늘어나지 않는다. 오늘 훈련에서 평소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면 그 다음 번에는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게 정상이다. 평소 실력보다 망쳤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냈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으면 그 다음번 성적은 신통치 않게 나오고, 꾸중을 받으면 더 나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커진다. 칭찬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더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매를 드는 횟수는 갈수록 늘어난다.


단기간의 성적에 근거해서 아이나 팀원들에게 채찍을 쓰면 더 나은 결과가 초래되는 게 아니고 반발심만 키운다. 시험 성적표에 따라 자식에게 매를 대는 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관이나 부모, 직장 상사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꾸중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p.76~77

인류 역사상 '빚=노예'였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노예나 종은 전쟁포로 출신이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에게 칼을 겨눴던 전쟁 포로가 갑자기 어떻게 유순한 종으로 변신하나. 검투사로 쓰거나 채석장 노예로는 쓸 수 있겠지만, 집에서 부리는 노예들은 대다수 빚 때문에 그렇게 됐다. 자신 또는 가족의 채무를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됐고, 누군가의 재산이 되고 그 신분이 대를 이어 세습됐다.


성경의 십계명 가운데 일곱째 계명은 '간음하지 마라'이고, 열 번째는 '네 이웃의 여자를 탐하지 마라'이다. '간음하지 마라'와 '네 이웃의 여자를 탐하지 마라'는 얘기는 똑같은 말이 아닌가. 그게 아닐 것이다. 성경이 똑같은 경고를 두 번 했을 리 있겠는가. 그것보다는 네 이웃의 여자를 빼앗지 말라는 경고였을 것이다. 빚을 이용해서 다른 집 여자를 노예로 삼으려 들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p.81

부부가 최신 스마트폰에다 인터넷 결합상품까지 쓰면서 2년 약정을 걸면 한 달 통신료가 매달 20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한 달에 20만원씩만 쳐도 1년이면 240만 원이다. 여기에다 정수기와 비데, 공기청정기를 렌털해서 쓴다고 해보자. 그럼 또 매달 10만 원씩만 쳐도 1년에 120만 원이다.


통신비와 렌털비만 1년에 360만 원, 매달 꼬박꼬박 당신 지갑을 털어가는 의무가입 약정이나 렌털 약정은 사실 약정 기간 동안 그만큼 그 회사에 이자를 갖다 바치기로 약속한 것과 같다. 매달 정기적으로 돈을 내기로 한 약속 자체가 빚진 것과 뭐가 다른가.


연 4퍼센트 이자율로 쳤을 때 한 달에 20만 원씩 이자를 낸다는 것은 약 6,000만 원의 빚을 졌다는 얘기다. 즉 한 달 통신료로 20만 원을 내는 당신은 약 6,000만 원을 빚진 것과 같고, 매달 10만 원씩 렌털비를 낸다면 약 3,000만 원 빚진 것과 같은 셈이다.


시중 이자율이 내려갈수록 당신이 세상에 진 빚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통신회사와 렌털회사의 기업가치는 그만큼 올라간다. 통신비와 렌털비로 1년에 360만 원을 쓰면 연 4퍼센트 이자율일 때는 9,000만원을 빚진 셈이 되지만 연 2퍼센트 이자율로 떨어지면 1억 8,000만 원을 빚진 호구가 된다.


p.113~115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선물옵션 분야의 최고 고수는 김진완 전 코리아투자자문 대표였다. IMF 외환위기 당시 두 달 만에 45만 원을 10억 원까지 불렸다든지, 옵션으로 굴린 돈이 한때 800억 원이 넘었다는 얘기는 이제 재야에선 신화로 남아있다.


목돈 200억 원을 챙겨 5년 전 은퇴했다던 그가 투자자문사 간판을 내걸고 제도권에 다시 입성하면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압구정동 미꾸라지'라는 별칭으로 통했던 윤강로 KR선물 회장이 옵션 투자 세계에서 화끈한 공격형 파이터로 유명했다면, 그는 치고빠지는 아웃복서형 투자 스타일로 명성을 날렸다. '가자미'라는 별명도 위험을 싫어하는 그의 투자 패턴에서 나왔다.


그에게 물었다. 투자자로서 성공하려면 지켜야 할 첫 번째 원칙이 뭐냐고. 그가 대답했다. 트레이딩도 잘 해야겠지만 손절매, 즉 위험관리가 중요하다고.


그는 "매매를 하면서 종목을 잘못 골라서,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손해를 보는 일도 허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며 "에측이 틀릴 때 무조건 손절매를 통해 시장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2001년 9 11 사태 당시 그는 하루아침에 100억 원을 날렸다. 오전 10시 단 두 시간만 증시가 개장했던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그는 모든 것을 털었다. 100억 원을 한 번에 날린 충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그는 원칙을 지켰다. 2004년 4월 차이나쇼크, 2006년 1월 북한 핵실험 등 블랙 스완이 덮칠 때마다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무조건 팔았다.


손절매. 수많은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가 지킨 오로지 하나의 원칙이었다. '내일은 오르겠지'라며 원칙을 저버린 동료 스캘퍼들은 이제 종적조차 찾을 수 없다.


p.193

변덕스럽고 자의적인 운명이란 굴레에 인간이 얼마나 휘말리도록 내버려 둘지, 그 정도를 결정하는 것. 그것이 정치가 아닐까.


p.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