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세이73

감옥으로부터 사색(2) p.238~239 벽의 기능은 우선 그 속의 것을 한정하는 데 있습니다. 시야를 한정하고, 수족을 한정하고 사고를 한정합니다. 한정한다는 것은 작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넓이는 좁아지고 길이는 짧아져서 공간이든 시간이든 사람이든 결국 한 개의 점으로 수렴케 하여 지극히 단편적이고 충동적이고 비논리적인 편향을 띠게 합니다. 징역 사는 사람들의 첨예한 감정은 이러한 편향성이 축적 강화됨으로써 망가진 상태의 감정입니다. 망가져버린 상태의 감정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관계되어야 할 대립물로서의 이성과의 연동성이 파괴되고 오로지 감정이라는 외바퀴로 굴러가는 지극히 불안한 분거(奔車)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짝을 얻지 못한 불구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망가진 상태는 단순한 것.. 2016. 1. 2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 [p.22 사랑이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한 번도 보지 않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도 바로 사랑은 생활을 통하여 익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또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사랑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b다. 사랑은 선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사후(事後)에 서서히 경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다. 사랑이 경작되기 이전이라면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 이후라면 아무 소용없는 말이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 2015. 12. 27.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1) [p.32 사랑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면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인정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면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몸부림이란 결국 자기 결핍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의 자기 결핍을 동정할 뿐 존중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할 때 뒤로 물러서지 않는 상대를 의심하고 내가 확실을 필요로 할 때 상대가 답을 주지 않으면 절망한다.] -> 결핍과 몸부림 항상 나의 삶은 요동치고 몸부림친다고 생각했다. 늘 천둥벌거숭이였고, 뭔가 결핍되었다고 느꼈다. 김동조의 말에 따르면 나는 동정받을 뿐 존중받을 수는 없다. 결국, 자기결핍을 이겨내고 몸부림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인데. 잘 모르겠다.. 왜 이리도 어려운지.. 삶은 늘 어렵다. 그렇기에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p.91 꿈의 가장 위대한 속성은 .. 2015. 12. 23.
마음사전 (2) p.57~58 중요하다 : 소중하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이 세상 애인들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함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다.. 2015. 11. 22.
마음사전(1) p.21~22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 가리면서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유리로 된 용기는 두루 사용된다. 술병도 그러하고 화장품 용기나 약병 같은 것도 그러하다. 안에 있으면서도 밖을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사람은 분명 유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허무는 것. 그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단순하게 안과 밖 혹은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것들로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는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 p.23 거울은 배면이 수은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풍경 밖으로 걸어가기보.. 2015. 11. 20.
모든 요일의 기록(1) p.71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 마이클 커닝햄 [세월] 재인용 p.75 그러니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화(無化)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것이 스물여덟 청춘, 내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p.77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 중국의 시 p.85~86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다. '내일.. 2015.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