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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

by Diligejy 2015. 11. 8.

p.29

새로운 생산수단은 지식이며 앞으로도 또한 지식일 것이다. 부(富)를 창조하는 중심적 활동은 생산적인 곳에 자본을 배분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을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자본과 노동은 19세기와 20세기 경제이론 - 그것이 고전 경제학파 이론이든 마르크스 이론이든 케인지언이든 또는 신고전학파 이론이든 간에 - 의 두 개의 축이었다. 가치는 이제 [생산성]과 [혁신]에 의해 창조되는데 생산성과 혁신은 지식을 작업에 적용한 결과이다. 지식사회의 주도적 사회집단은 [지식근로자]일 것이다. 마치 생산적인 곳에 자본을 배분할 줄 아는 자본가처럼 생산성 있는 곳에 지식을 배분할 줄 아는 지식경영자 즉 지식전문가, 지식 피고용자들이 지식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다.

 

p.39

탈자본주의사회 그리고 탈자본주의 정치체제를 창조하는 힘은 선진국으로부터 나온다. 탈자본주의사회와 탈자본주의 정치체제는 선진국들의 발전의 산물이고 또한 결과이다. 탈자본주의사회와 탈자본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의 해답들은 제3세계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p.45

과거 역사의 자본주의를 현대적 [자본주의]와 [체제(體制)]로 변화시킨 것은 속도와 범위 바로 그것이었다. 속도와 범위가 기술진보를 [산업혁명]으로 전환시켰다.

 

p.48

13세기에 발명된 안경이 보급된 것처럼 빨리 보급된 현대의 기술은 거의 없다. 1270년경 영국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베이컨(Roger Bacon, 1214~1292 혹은 1294)의 광학실험에서 파생된 노인용 독서 안경은 1290년 아비뇽에서 교황을 재판할 때 사용되었으며 1300년경 카이로에서는 술탄(Sultan)이 사용하였고 1310년 이전에는 원(元)나라의 황제가 사용했었다. 19세기의 발명품 가운데서는 재봉틀과 전화기만이 그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었다.

 

그러나 초기의 기술적 변화는 거의 예외없이 하나의 기능 혹은 하나의 용도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p.51~52

고대사회의 장인은 노예였었다. 최초의 [기계시대]에 있어 장인, 즉 중세 유럽의 장인은 도시의 지배계층과 [자치도시의 공민(公民)]이 되었으며, 그들은 나중에 유럽의 그 독특한 도시를 만들었고 또한 고딕양식과 르네상스를 창조하였다. 기술혁신들 - 등차, 수차 그리고 풍차 등 - 은 구대륙의 구석구석까지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초기 산업혁명시대의 장인들의 지위향상은 완전히 하나의 유럽적 현상으로 남아있었고 다른 세계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다만 일본만 기원 후 1100년경 장인의 지위가 향상하고 있었는데, 자긍심이 높고 독립적인 장인들은 존경을 받았는데 1600년쯤 되어서는 꽤 많은 권력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무사들은 말을 탈 때 등자를 채웠으나 전쟁 때는 계속 보병으로 싸웠다. 중세시대 일본의 통치자들은 보병 지휘관, 즉 [사무라이]였다. 사무라이는 농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었지만 봉건 영지는 없었다. 중국과 인도, 이슬람 세계에서의 신기술은 아무런 사회적 영향을 주지 못했다. 중국의 장인들은 사회적 지위가 없는 농노였다. 군인들은 지주가 되지 못했고, 그 옛날 유럽의 고대사회에서처럼 전문적 용병으로 남아 있었다.

유럽에서조차 초기의 산업혁명에 의해 야기된 변화가 충분히 효과를 거두는 데는 거의 400년이 걸렸다.

 

p.65

무엇이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내재적 모순], 프롤레타리아의 [소외]와 [착취]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 그 자체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는가.

 

그 해답은 생산성 혁명이다.

 

p.67

테일러를 자극한 것은 능률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소유주를 위해 이익을 창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테일러는 생산성의 열매를 가장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은 소유주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갖고 있었다. 그의 주된 동기는 소유주와 노동자, 즉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가 생산성 향상에 공통으로 관심을 갖고 지식을 작업에 적용하는 데 있어 협조관계에 있는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p.70

테일러는 공장에서의 권한은 소유를 기준으로 하여 결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권한은 우월한 지식을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테일러는 요즘 우리가 말하는 [전문경영자]를 요구했던 것으로 전문경영자는 19세기의 자본가들에게는 저주받은 사람이었으며 [과격한 이단]이었던 것이다. 테일러는 자본가들로부터 [말썽꾸러기] 그리고 [사회주의자]라는 등 격렬하게 공박당하였다(실제로 테일러의 가장 친밀한 제자나 동료들 중 특히 바트(Carl Barth, 1860~1939)는 그의 오른팔 격이었는데, 공공연하게 자기 자신들을 [좌익]이라고 선언하였으며 강력한 반자본주의자들이었다).

 

p.73

테일러 이후 모든 선진국에서 생산성은 거의 50배나 증가하였다. 이러한 미증유의 생산성 증가야말로 모든 선진국에 있어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 근원인 것이다.

 

증가된 생산성의 반 정도는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의미하는 구매력의 증가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머지 3분의 1 또는 반은 여가의 증가로 나타났다. 선진국 근로자들은 1910년경까지는 여전히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적어도 연간 3,000시간이나 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일을 많이 한다는 일본인들도 연간 2,000시간 정도 일하고 있고, 미국인은 약 1,850시간, 독일인은 잘해야 1,600시간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80년 전의 생산수준과 비교하면 시간당 50배나 더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증가된 생산성의 상당한 몫은 건강을 돌보는 것에 쓰여졌는데, GNP 대비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것이 8퍼센트 내지 12퍼센트에 이르렀으며 또한 GNP 대비 2퍼센트 수준이었던 교육비 지출도 10퍼센트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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