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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천재의 두 얼굴, 사이코패스

by Diligejy 2023. 4. 9.

 

p.5~6

"인간은 야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기제로써 두려움이란 감정을 길러 왔다지."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커다란 이빨을 드러낸 맹수가 코끼리와 소떼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맴도는 시기는 아니잖니. 안 그러냐, 아들?"

 

그 말이 맞았다. 지금은 쉽게 맹수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가끔씩 '뱀'은 등장할지 몰라도, 그마저도 지금은 사람들이 뱀이 뱀인 걸 아는 시대이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의 이런 뛰어난 통찰력을 그저 흘려들었다.

 

p.65

무지개에서 빨강색이 끝나고 주황색이 시작되는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 우리 눈은 정확하게 일곱 색깔 무지개의 명확한 색상 차이를 본다. 하지만 한 가지 색이 끝나고 다른 색으로 넘어가는 지점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광기와 제정신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 허먼 멜빌

 

p.85

한 범죄심리학자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이코패스들은 감정도 숫자로 다룬다." 

 

p.88-89

 

 

p.116-117

집단사고에 대해 깊게 연구한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집단사고의 형성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집단사고는 구성원들이 하나로 응집하면서 의견의 만장일치를 원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대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려는 동기가 결여된 상황을 말한다.' 이처럼 집단사고는 최적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살펴보기 위해 챌린저 호의 비극을 사례로 들어보자. 당시 미국항공우주국은 상당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당시 미 의회는 우주탐사 예산을 크게 삭감하려 했고, 게다가 챌린저 호 발사도 여러 차례 연기된 후였다). 따라서 발사 24시간 전에 발사추진체의 O-링에 문제가 있다는 일부 직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미국항공우주국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그 지적을 무시했다. 다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차례 회의를 소집했을 뿐, 결국에는 계획대로 발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미국항공우주국의 유일한 목표는 챌린저 호 발사라는 지상 최대의 쇼를 예정대로 개최하는 것뿐이었다.

 

결국 챌린저 호 발사는 참사로 끝이 났고, 조사 과정에서 참사의 원인이 단지 O-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바로 집단사고였다.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조직한 조사 위원회는 사건을 조사한 뒤 놀란 만한 결론을 내렸다. 바로 미국항공우주국의 조직 문화와 의사결정 체계가 참사의 주원인이었다는 결론이었다. 즉, 조직에 순응하려는 자세, 내부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는 경향, 자신들의 생각이 전부라는 편협한 사고가 그런 참사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에는 집단에서 벗어나 홀로 서려는 성향,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규칙대로 행동하려는 일탈적인 자세 또한 각인돼 있을까? 그렇다는 증거가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역사에서 두려움을 모르는, 사회의 대다수와 다르게 행동하는 소수는 자기 나름대로 진화해 왔다.

 

p.135

무조건적인 경쟁이나 무조건적인 협력은 이런 복잡한 사회구조에서는 지속될 수 없다. 이 두 가지 생존전략 모두 어느 한쪽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면 오히려 취약해진다. 사회생물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전폭적인 협력이나 전폭적인 경쟁은 생존전략 측면에서 '진화적으로 안정적'이지 않다. 

 

p.138

종교에서 부르짖기 받기보다는 주는 것이 더 선하다는 주장은 틀렸다. 오히려 받는 것과 주는 것은 똑같이 선했다. 팃포탯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 가장 승률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경우에 가장 뛰어난 전략으로 입증된 것이다.

 

p.141

말은 부드럽게 하되, 손에는 몽둥이를 쥐고 있으라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은 가상현실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도움이 되는 조언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들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에 의해 멸종하지 않고 여전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위험을 감수하고, 어느 정도 원칙을 벗어나거나, 때로는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늘 필요로 한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연못에 빠진 10세 소년은 끝내 익사하고 말 것이다.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일등 항해사 프랜시스 로즈와 선원 알렉산더 홈즈에게 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해낼 용기가 없었다면, 1841년의 한 운명적인 밤에 윌리엄 브라운 호가 침몰했을 때,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p.159-160

"사기꾼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상대방의 '약점'을 파악하는 능력이죠." 모란트의 말은 심리학자 앤젤라 북의 연구 결과를 떠올리게 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말을 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습니다. 하지만 사기꾼은 상대방의 말을 빼놓지 않고 일일이 담아두죠...... 마치 심리치료사처럼 상대방의 내면으로 파고들려 노력하는 겁니다. 사소한 단서를 통해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사소한 단서들은 참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있죠......

 

사기꾼은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털어놓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들려주죠. 그렇기에 모든 훌륭한 사기꾼은 나름 매력적인 사연은 하나씩은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상대방이 속내를 털어놓게 하죠. 그러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는 겁니다. 무작위로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화제를 툭 던지는 겁니다. 대화의 흐름을 끊을 수만 있다면 아무 화제든 상관없어요. 그러면 십중팔구 상대방은 방금 전에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를 까먹어요.

 

그런 다음에 작업을 시작하는 겁니다. 물론 당장 작업에 착수하는 건 아니고, 두어 달 정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들려준 이야기를 약간 바꿔서 마치 당신이 직접 겪은 일처럼 상대방에게 들려주는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신은 이미 그전에 상대방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에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이미 안다는 거죠. 이러면 다 된 겁니다! 그다음부터는 상대방에게서 거의 모든 정보를 빼낼 수 있어요.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아주 부유하고 성공적인, 개처럼 일만 하는 사내가 있었죠. 그가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수집해 놓은 음반이 모두 사라진 겁니다. 아버지가 건달이었는데 술값을 대려고 어린 아들의 음반을 홀랑 팔아 버린 거죠. 오랜 세월에 걸쳐 수집한 음반이었는데 말이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죠. '잠깐, 이 친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술집에서 거의 서너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털어놓았어.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죠. 그 사내가 이미 충분히 부자인데도 개처럼 일하는 까닭은 아버지 때문이었죠. 어린 시절의 그 일이 또 일어날까봐 두려운 거죠. 한마디로 그 일이 있은 후로 그의 인생은 고착돼 있고, 그는 최고경영자가 아닌,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수집해 놓은 음반, 다시 말해 전 재산이 하루아침에 깡그리 없어질까 겁이 나는 어린아이로 여전히 머물고 있는 겁니다.

 

'말도 안 돼! 정말 기가 막히군!' 나는 생각했죠. 아무튼 2주 정도 후에 그를 다시 만나 내 얘기를 들려줬죠. 어느 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가 내 직장 상사랑 한 침대에 누워 있더라. 아내는 이혼을 청구했고, 나는 전 재산을 아내에게 빼앗겼다...'

 

p.171

"과거의 사이코패스 성향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처벌에 대한 둔감함 그리고 두려움을 못 느끼는 성향에 집중됐다." 연구에 참여한 심리학 부교수 데이비드 잘드의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사이코패스의 폭력성이나 범죄행위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오히려 사이코패스들은, 그러니까 당근에 너무나 이끌리는 나머지, 채찍이란 처벌을 걱정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사이코패스들도 잠재적 위험을 인식하긴 한다. 다만 보상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나 커서 이런 위험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p.172

결론은 분명했다. 사이코패스들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보상을 추구하기에 그 과정에서 위험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벨린다 보드와 카타리나 프릿즌이 교도소 수감자 집단보다 기업 최고경영자 집단에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한 사람을 더 많이 찾은 까닭을 설명해 준다. 돈, 권력, 지위와 통제권은 기능적 사이코패스들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보상을 손에 넣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면서라도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간다. 앞에서 로버트 헤어가 한 말을 떠올려보라. "사실 지위가 상승하면 권력이 커지고, 권력이 커지면서 금전적 이득도 커진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조직에는 반드시 사이코패스가 있기 마련이다."

 

p.189

인간의 삶에서 정점을 찍는 순간은 자신의 사악한 성격을 최고로 발휘하고자 용기를 낼 때다.

 

- 프리드리히 니체

 

p.216-217

요원들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그런 상황에 단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주 긴박한 순간에서도 평상시처럼 임무를 수행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당초 긴박감을 느끼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무를 앞두면 흥분이 됩니다. 그건 아주 당연한 현상이죠." 콜린이 이스트엔드에 위치한 낡은 술집에서 내게 말했다. "하지만 특수부대 요원은 이미 수년에 걸쳐 하루 예닐곱 시간씩 그런 상황에 대한 훈련을 받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운전과도 비슷합니다. 길은 매번 다르지만, 그래도 운전자는 잘 적응해서 운전하는 것과 같죠. 한마디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상황에 저절로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죠. 물론 때로는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훈련으로 대비할 수 있죠. 사실 특수부대 요원이 긴박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건 마치 주변의 모든 상황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상황에 완전히 몰입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상황 속에서 벗어나,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주변 상황을 인식하죠."

 

p.246

"생각해 보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하지만 도덕적 기준에서 볼 때, 두들겨 맞을 짓을 한 놈을 두들겨 패는 것과, 두들겨 맞을 짓을 하지 않은 당신 자신을 스스로 두들겨 패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윤리적일까? 만약 자네가 권투선수라면, 자네는 상대바을 때려눕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권투라는 스포츠에서는 무자비함을 허용하면서, 왜 일상에서는 그런 무자비함을 꺼리는 거야? 나는 그 점이 이해가 안 돼. 도대체 둘 간의 차이가 뭐냐는 거지.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덕이 실제로는 악덕이라는 점이야. 사람들은 무자비함을 주저하면서 그 이유가 자신들이 합리적으로 상식적이기 때문이라고 믿지. 하지만 그건 실제로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거야."

 

조지 오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선량한 사람들이 발 뻗고 편안하게 잠자리를 들 수 있는 까닭은 거친 이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폭력을 행사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p.248-249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 뜻을 고집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어릴 때부터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흥분하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게 되죠. 오히려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는 데 더 목숨을 걸죠. 한마디로 그냥 이기고 싶은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방금 전에 제이미가 권투에 대해서 말했죠. 내가 전에 만났던 아주 뛰어난 구너투 코치는 이런 말을 했어요. '만약 상대방을 때려눕히려는 생각으로 오히려 상대방을 때려눕힐 수 어벗다. 하지만 시합에서 이기고, 평소 훈련한 것을 모두 발휘하겠다는 생각으로 링에 오르면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때려눕힐지도 모른다."

 

p.254

에머리대학의 인류학 교수 제임스 릴링은 실험을 통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바로 사이코패스가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골치 아픈 상황에서 '더 쉽게 배신하는 성향'이 있고, 따라서 상대방과 협조하든지 아니면 상대방을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경우 훨씬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이코패스가 반대 입장일 경우, 다시 말해 배신을 하는 쪽이 아닌 배신을 당하는 쪽일 경우에도 상대방의 배신에 훨씬 상처를 덜 받는다는 점이다.

 

p.254

당신이 거절에 연연하지 않으면, 더 이상 거절도 당신에게 연연하지 않는 셈이다.

 

p.259-260

내가 보기에 문제는 사람들이 미래에 벌어질 일, 미래에 닥칠 불행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바람에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거죠. 사람들은 미래를 걱정하다가 지금 당장의 현실은 아무런 문제도 없고 완벽하게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망각하죠. 당신이 만난 특수부대 요원도 그렇게 말했다면서요. 당신 굴복시키는 건 폭력이 아닌 폭력의 위협이라고. 그래서 말인데, 왜 굳이 현실을 망각하고 미래를 걱정하죠?

 

그러니까 내 말은, 제이미가 말한 것처럼, 당신이 콘크리트 조각 밑에 누워 있을 때, 엄밀하게 말하자면 콘크리트 조각이라고 당신 스스로 착각한 그 물건 밑에 누워 있을 때, 실제로는 아무런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 순간 잠들어 있었다면, 당신은 과연 눈곱만큼이라도 걱정을 했을까요?

 

따라서 당신이 겁을 먹은 건 콘크리트 조각이 아닌 당신이 상상한 미래죠. 당신의 뇌는 지나치게 앞서간 셈이에요. 머릿속으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재앙을 그려낸 거죠.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나요? 천만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따라서 두려움을 없애는 비결은 뇌가 지나치게 앞서가는 걸 막는 겁니다. 이런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용기라는 쓸데없는 습관도 없앨 수 있어요."

 

이 대목에서 대니가 끼어들었다.

 

"상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방법도 있소. 다음번에 겁이 나는 상황에 처하면 이런 상상을 해보시오. '만약 내가 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행동하겠는가?' 그런 뒤 그 행동을 실천에 옮기면 되는 거요."

 

좋은 충고였다. 다만 과연 내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

 

p.263

"아주 뛰어난 증권거래인과 그저 그런 증권거래인의 차이는 폐장 후, 즉 하루 일과를 마쳤을 때의 심리상태에 의해 결정되죠. " 그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이 직업은 정신저거으로 연약하면 사람을 망칠 수 있는 직어버입니다. 나는 심지어 널뛰기 하는 장을 마친 후에 울거나 몸이 아파오는 증권거래인을 본 적도 있어요. 성과에 대한 압박, 분위기, 동료들에 이르기까지 증권 업계는 모든 것이 잔인하죠.

 

하지만 가장 뛰어난 증권거래인들은 장을 마치고 퇴근할 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습니다. 그날 그가 수십억 달러를 벌었는지, 아니면 관리하던 투자포트폴리오를 모두 날렸는지 표정만 봐선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그게 핵심적인 차이죠. 훌륭한 증권 거래인을 가늠하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이 바로 이 점입니다. 거래를 할 때 감정에 휩쓸리는 거서은 물론, 감정이 조금이라도 개입하는 건 금물입니다.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게, 철저하게 현재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어제 손실을 봤다고 해서 그 감정이 오늘까지 영향을 끼치게 놔둬선 안 됩니다. 한마디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증권거래인으로는 낙제점이다. 감정에 연연하다 보면 증권가에서 하루도 못 버팁니다."

 

p.265

나는 주식시장에서 큰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하려면 감정을 추스를 줄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그 일을 마치면, 그 일에 대해 완전히 잊어야 하는 거죠."

 

'과거에 파묻혀 사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을 앞서나가 '미래에 연연하는 것'도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p.273

인생은 온전한 육신을 유지하고 안전하게 무덤으로 향하는 여정이 아니라 연료를 소진할 때까지 질주하다가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아슬아슬하게 멈춰선 후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어야 한다. "와! 정말 끝내주는 여행이었어!"

 

- 헌터 S. 톰슨

 

p.279-280

만약 예수가 직접 다마스쿠스로 선교를 갔다고 하더라도 아마 복음을 전하는 임무는 사도 바울에게 맡겼을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는 사도 바울을 능가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또한 기독교도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개종하기 전까지만 해도 숨낳은 기독교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실제로 바울이 애당초 다마스쿠스로 향한 이유도 기독교도들을 잡아들여 처형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바울이 자신의 첫 교회를 굳이 ㄷ마스쿠스에 세운 데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까?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반드시 성자가 아니듯이, 모든 성자가 반드시 사이코패스인 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 깊숙한 곳에 사이코패스와 성자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 사무공간'이 있다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사이코패스들의 성향, 가령 금욕, 감정 조절, 현실 중시, 뛰어난 상황 인식, 영웅심, 겁 없음, 심지어 공감 능력 부족과 같은 특성들은 종교적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나아가 이런 성향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바꿔 놓는 데 도움이 된다.

 

역경에 맞서 웃을 수 있는 능력은 종교적 신념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척도로 간주돼 왔다. 예를 들어, 러디어드 키필링은 윔블던 테니스코트에 들어서기 바로 전에 선수가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묘사했다.

 

만약 그대가 승리와 재앙에 직면해서

이 두 협잡꾼을 똑같이 대할 수만 있다면...

 

이런 마음 자세는 비록 주로 성자에게서 발견되지만, 한편으론 사이코패스 성향과도 꽤 관련이 깊다.

 

p.282

"모든 것이 걸려 있는 경기를 오히려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경기처럼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설적인 당구 선수 스티브 데이비스는 중요한 대회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잘못 친 샷은 "빨리 잊어버리고"(마찬가지로 잘 친 샷도 빨리 잊어야 한다) 오로지 다음 샷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2010년에 브리티시 오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루이스 우스투이젠은 원래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수차례나 실망스런 성적을 거뒀고, 따라서 사람들은 그가 예선에서 네 타 차로 선두에 나섰을 때까지도 결선에서는 압박감 때문에 경기를 망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스투이젠은 이 예상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비결은 골프장갑 엄지 아랫 부분에 그려 넣은 조그만 빨간 점 때문이었다.

 

빨간 점을 그려 넣으라고 조언한 살마은 맨체스터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심리학자 칼 모리스였다. 우스투이젠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사이코패스 성향(겁 없음과 고도의 집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칼 모리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스투이젠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의 샷에만 집중하고, 결과에 집착해서 샷을 망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길 원했고, 모리스는 그 방법으로 빨간 점을 고안해 냈다. 우스투이젠은 스윙을 하기 전에 빨간 점에만 온 신경을 집중함으로써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우스투이젠에게 중요한 건 오직 빨간 점뿐이었다. 그렇게 빨간 점에 집중하면서 억지로 좋은 스윙을 하려 애쓰기보다는 스윙이 그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이끌 정도가 되었다.

 

p.288

엑서터대학의 스포츠 심리학자 팀 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최고 수준의 운동선수에게는 집중력을 높이고 불안감을 조절하는 나름의 심리적 능력이 있다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또한 운동선수가 일단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후부터는 최고와 최고가 아닌 이들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심리적 접근방식이다."

 

한마디로 위대한 운동선수와 그저 그런 운동선수는 결국 마음 자세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켄트 키엘의 실험에서 볼 수 있듯, 긴박한 상황에서는 생과 사가 마음 자세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이런 마음 자세, 다시 말해 고도의 집중력과 겁을 모르는 심리 상태는 사이코패스 성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아가 이후 살펴보겠지만, 종교적 신념도 이와 비슷하다.

 

p.290

"초심에서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하는 반면, 숙련된 마음에서는 가능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날 가장 존경받는 선승 중 한 명인 순류 스즈키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찰스 디킨스도 스크루지에게 유령을 보낼 때,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스러워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일부러 선택했다. 하지만 당신의 생각을 오로지 현재 이 순간에만 집중한다면, 그럼으로써 불만스럽고 후회스런 과거와 손에 잡히지 않고 성가신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걱정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나아가 우리의 통찰력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하나의 질문에만 집중된다. 이 거대하고 중요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는 성자처럼 현실의 경험을 반추하고 '음미'하는가? 아니면 사이코패스들처럼 이 순간의 만족에만 집착하며 현실을 '즐기려만'드는가?

 

p.292

이런 마음 자세는 또한 조 뉴먼의 연구 결과를 떠올린다. 그는 사이코패스가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까닭이 불안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협을 인식하지 못해서라는 점을 밝혀냈다. 사이코패스들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집중하기에 다른 모든 생각을 차단하는 것이다.

 

p.312-316

나는 FBI 요원과 헤어진 후 휴일을 맞아 플로리다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마이애미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나는 구름 한 점 없는 일요일 오전에 우연히 벼룩시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햇빛과 바닷바람에 빛이 바랜 파란색 표지의 <아치와 메히타벨>을 발견했다. 저명한 뉴욕 칼럼니스트 돈 마퀴스가 1927년에 쓴 이 책에는 2명의 기이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아치는 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작가이자 바퀴벌레이며, 그의 가장 친한 친구 메히타벨은 전생에 자신이 클레오파트라였다고 주장하는 도둑고양이다.

 

나는 책을 쭉 훑어보고는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책을 샀다.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북대서양 상공을 날아가면서 책을 뒤적이다가 한 편의 시를 발견했다.

 

그것은 나방에 대한 시였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시이기도 했다. 

 

나는 후에 그 시를 복사해서 액자로 만들었다. 지금 이 시는 내 책상 위에서 뚫어져라 나를 응시하고 있다. 곤충이 남긴, 삶에 대한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잔인하리만큼 냉철한 지혜를 들려준다.

 

간밤에 나는
나방에게 말을 걸었지
나방은 전구를 깨뜨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그러다가 전기에 감전되곤 했지

너희들은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냐고 물어봤어
나방이라서 그런 거냐고
만약 유리로 둘러싸인 전구가 아니라
촛불이었다면 너희는 
이미 재가 됐을 거라며
왜 머리를 안 쓰냐고 말했지

아니 머리는 쓴다고 나방이 답했어
다만 때로는 너무 많이 써서 피곤해지고
반복적인 일상이 너무나 지루한 나머지
아름다움을
흥분을 원하게 된다고 말이야

아름다운 불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게 무슨 대수야
잠시라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아름다움에 타죽는 것이
늘 지루하게 긴 시간을
살아가는 것보다 낫기에
우리는 우리 모든 삶을
조그만 덩어리로 뭉쳐서
별똥별처럼 날아가지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는
쉽게 살다가 쉽게 가는 것
우리는 마치 인간과도 같아
지나치게 문명화되어
즐기는 걸 잊기 전의 인간들과 같아

내가 그의 철학에 대해 가타부타
지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나방은 힘차게 날아올라
라이터 불빛에 몸을 태웠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기에
나라면 행복은 절반으로 줄이되
수명은 두 배로 늘길 바라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소망하네
내게도 몸을 불태우는 나방처럼
간절히 원하는 뭔가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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