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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by Diligejy 2016. 12. 8.

p.25

고독한 개인의 구원은 역설적으로 개인 내면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가능하다. 고독할수록 더 고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건 예술적 몰입일 수도 있고, 종교적 명상일 수도 있다. 아, '팔굽혀펴기'일 수도 있다. 하루에 수백 번씩 팔굽혀펴기를 하면 고독 따위는 아주 쉽게 견딜 수 있다고, 언젠가 목욕탕에서 만난 김창근 SK수펙스 의장이 그랬다. 이제까지 내가 본 어깨 중에 가장 멋있는 역삼각형 어깨를 가진, 육십 중반의 김 의장은 팔굽혀펴기를 하면 중년의 허접스러운 성욕도 사라지고 정신도 아주 맑아진다고 했다.

 

p.45~46

시간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일주일은 7일로 나누고, 한 달은 4주로 분리하고, 일 년은 열두달로 분해했다. 그렇게 시간을 각 단위로 나누면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해는 매번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그래서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담배도 끊고, 살도 빼기로 결심하는 거다. 지난해를 아무리 망쳤다고 해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즐겁다.

 

한국의 중년 사내들이 골프에 그렇게 환장하는 이유는 반나절 동안 무려 열여덟 번이나 새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좁은 구멍에 공 집어넣는 놀이를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그렇게 고마운데,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80~90번 가까이 반복되니 얼마나 즐거울까. 그래서 한 해를 시작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요란하게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시간을 '반복'으로 극복하려 했다면, 도무지 정리할 수 없이 무한히 펼쳐진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를 인류는 어떻게 극복하려 했을까? '원근법'이다. 원근법은 무한한 공간에 소실점을 중심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아주 혁명적인 발명이다. 원근법을 통해 인간은 신이 창조한 세상을 자기들 마음대로 재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3차우너 공간을 2차원 평면에 정확히 재현하는 원근법이 발명된 후, 인류는 무한한 공간에 대한 근원적 공포로부터 드디어 풀려났다. 2차원에 구현된 공간은 통제 가능하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두려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공간의 공포를 극복한 인류는 아주 겁이 없어졌다.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처럼 만들기로 결심한 거다. (오늘날의 환경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공간을 원근법적으로 재구성한 게 프랑스식 정원이다. 특히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은 원근법적 공간 구성의 절정을 보여준다. 지평선 끝의 소실점과 왕의 창문을 잇는 직선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 정원을 꾸며, 공간에 규칙을 부여했다. 공간에 질서를 세워 자기 소유임을 분명히 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자기 물건에 질서를 세우는 것은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이다. '문양'이다. 인류는 토기나 직물에 문양을 넣어 자신의 소유임을 분명히 했다. 빗살무늬와 같은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문양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발견된다. 규칙이 있어야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p.65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경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는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p.69

미국의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는 인간의 동기를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눈다. 접근 동기approach motivation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에 접근하기 위해, 즉 무언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말하며, 반대로 회피동기avoidance motivation는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뜻한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접근동기를 심어주는 반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다"라고 하는 것은 회피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상일에는 접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과 회피동기로 접근해야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일은 회피동기('그렇게 하면 손해를 본다')로 설명해야 유리하고, 결과가 나중에 나오는 것일수록 접근동기('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로 설명해야 유리하다고 히긴스는 주장한다.

 

p.112

공부라는 구체적 경험을 다시 배우는 요즘이다. 스스로의 간절한 필요가 있어야 공부의 방향이 명확해지고, 그래야만 공부가 재미있어진다.

 

p.131

음악의 박자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몸의 동작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시 음악의 기능은 몸을 움직이게 하는 데 있었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원시 공동체는 유지되었다. 적의 공격을 물리치거나 병마와 싸울 때도 노래하며 춤을 췄다.

 

음악을 들으면 몸은 저절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은 따라 움직인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의 위기는 음악과 몸동작이 분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클래식 음악 연주회장에 들어가면 오직 지휘자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관객은 꼼짝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음악이 신나도 몸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 지휘자는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며 인상 쓰고 머리카락까지 휘날리지만, 관객은 그런 그를 그저 멍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구 클래식 음악이 망해가는 것이다. 몸으로 느낄 수 없는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다.

 

음악이 본능적이고 공동체적이라면 미술은 인지적이며 개별적이다. 미술은 외부의 대상을 눈을 통해 받아들이고, 머릿속에 그 대상이 다시 한 번 재현representation된 후에야 가능해진다. 상징을 통해 매개되는 모방의 절차가 포함되는 것이다. 이 같은 미술에 비해 몸으로 직접 경험되는 음악은 훨씬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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