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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국제정세론

문명의 충돌

by Diligejy 2017. 7. 15.

p.7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 질서만이 세계 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어 수단이다.


p.18

탈냉전 시대에 들어오면서 깃발을 비롯하여 십자가, 초승달 같은 문화정체성의 상징물이 중요해졌다.


p.18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성을 재창조하려는 민족에게는 적수가 반드시 필요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적대감은 세계 주요 문명들 사이의 단층선에서 불거진다.


p.19

서구의 생존은 미국이 자신의 서구적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자기 문명을 보편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서구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힘을 합쳐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문명간의 대규모 전쟁을 피하려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세계 정치의 다문명적 본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p.20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질문 앞에서 내놓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들은 부족, 민족 집단, 신앙 공동체, 국민,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문명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치를 이용한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 아닌지를 알 때만, 아니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p.21

세계 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전파력이 크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 빈부, 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종족 전쟁이나 민족 분쟁은 한 문명 안에서도 여전히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폭력은 이들 문명에 소속된 여타 국가나 집단이 자기네 '친족국(kin country)'을 돕기 위해 결집하면서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잠재력을 늘 지니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벌어지는 씨족간의 유혈 충돌은 광범위한 분쟁으로 치달을 소지가 없다. 르완다에서 벌어지는 부족간의 유혈 충돌은 기껏해야 우간다, 자이르, 부룬디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러나 보스니아,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캐슈미르에서 벌어지는 문명간의 유혈 충돌은 더 큰 전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리비아는 보스니아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하였다. 그것은 이념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 경제적 이득의 아니라 문화적 동질성에서 나온 조치였다.


p.35

문화를 기준으로 세계를 양분하는 것은 더더욱 쓸모가 없다. 서구는 어느 수준까지는 하나의 실체다. 하지만 비서구 사회는 서구가 아니라는 사실말고 그 어떤 공통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일본, 중국, 인도, 이슬람, 아프리카 문명은 종교, 사회 구조, 제도, 지배적 가치관에서 거의 공통점이 없다. 비서구 세계의 통일성과 동서 양분론은 서구가 창안한 신화다. 이 신화는 사이드(Edward Said)가 낯익은 것(유럽, 서구, '우리')과 낯선 것(오리엔트, 동양, '그들')의 차이를 조장하고 후자에 대한 전자의 우위를 암암리에 가정한다고 비판하였던 오리엔털리즘(orientalism)의 결함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냉전 기간 동안 세계는 이념의 스펙트럼을 따라 상당 수준 양극화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스펙트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동과 서를 양극화하는 것은 유럽 문명을 서구 문명이라고 부르는 불행한 관습의 또다른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양과 나머지'라고 부르는 것이 수많은 비서구 사회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적절하다.


p.39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는 비슷한 지적 추상화의 수준에서 다른 패러다임들보다 세계 정치의 조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중요한 사건을 설명해주는 패러다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p.39

세계를 일곱 개나 여덟 개의 문명으로 이해하면 이런 난점의 상당수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일 세계나 양분 세게의 패러다임처럼 경제성을 위해 현실성을 희생시키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국가 패러다임이나 혼돈 패러다임처럼 현실성을 위해 경제성을 희생시키는 방식도 아니다. 문명 패러다임은 중첩된 갈등들 중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 미래의 사태 발전을 예측하고 정책 입안가들에게 필요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지혜로운 분석틀을 내놓는다.


p.41

문명 패러다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밀한 문화적, 민족적, 역사적 고리와 양국 국민의 어울림을 강조하면서, 동부 우크라이나의 정교권과 서부 우크라이나의 연합동방카톨릭 사이의 문명 단층선에 초점을 맞춘다.


p.41

냉전 종식 이후에 전개된 수많은 사태들은 문명 패러다임에 부합되며 그 패러다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p.44

브로델(Fernand Braudel)의 지혜로운 경고에 귀 기울여 보자. "오늘의 세게에 관심을 가진 살마은, 특히 그 안에서 행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계 지도를 펴놓고 오늘날 어떤 문명들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리하여 그 문명들의 경계선, 중심부와 주변부, 세력권과 그 안의 분위기, 그 문명들 안에 존재하며 긴밀하게 연결된 일밙거이거나 특수한 형태를 정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오판이 생길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p.48

문명과 인종은 동일하지 않다. 같은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도 판이한 문명에 들어갈 수 있으며, 다른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도 같은 문명에 통합될 수 있다.


p.49

문명은 따라서 가장 상위 수준에 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결집체이며 가장 광범위한 수준의 문화적 동질성이다.


p.49

한 개인이 속해 있는 문명은 그가 강렬한 귀속감을 느끼는 가장 광범위한 수준의 공동체다. 문명은 우리가 저 밖에 있는 '그들'과는 구별되게 그 안에 있으면 문화적으로 친숙함을 느끼는 가장 큰 '우리'다.


p.50

문명은 뚜렷한 경계선이 없으며 딱 부러지게 시발점과 종착점을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따라서 문명의 구성 요소와 형태는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다. 사람들의 문화는 뒤섞이고 겹쳐진다. 여러 문화가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의미 있는 실체이다. 문명들 사이의 경계선은 명확하게 긋기 어렵지만 아무튼 모종의 경계선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p.50

문명은 유구하지만 한편으로는 진화한다. 문명은 역동적이다. 발흥하고 쇠멸하며 융합하고 분열한다.


p.51

극단적인 경우는 문명과 정치적 실체가 일치할 수 있다. 루시언 파이(Lucian Pye)가 지적하듯 중국은 국가를 가장한 문명이다. 일본은 국가가 곧 문명이다.


p.57

불교는 인도에서 사실상 소멸의 길을 걷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기존의 문화에 편입되고 통합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불교는 거대 종교이기는 하지만 거대 문명의 바탕이 되지는 못했다.


p.59

문명과 문명의 가장 극적이면서 의미 심장한 접촉은 한 문명권의 사람들이 다른 문명권의 사람들을 정복하여 제거하거나 자기들 밑으로 복속시켰을 때 일어났다. 


p.59

기원후 7세기를 기점으로 이슬람과 서구, 이슬람과 인도 사이에서 비교적 지속성이 있고 때로는 강렬한 문명간의 접촉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업적, 문화적, 군사적 교류는 같은 문명 안에서 이루어졌다.


p.63

20세기 들어와 문명간의 관계는 한 문명이 나머지 모든 문명들에게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단계에서 벗어나 모든 문명들 사이에서 다각적인 교섭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p.64

과거 문명의 보편 국가는 제국이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정치 형태는 민주주의이므로 지금 태동하는 서구 문명의 보편 국가는 제국이 아니라 연방, 연맹, 국제 제도 및 국제 기구의 혼합체다.


p.64

중요한 정치 이념은 한결같이 서구에서 나왔다. 반면에 서구는 주요한 종교를 낳지 못하였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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