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외교/국제정세론

거대한 체스판

by Diligejy 2017. 8. 13.

p.6

[향후 미국의 과제]

향후 미국에 중요한 것은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거대 대륙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브렌진스키의 관점에서 볼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럽의 정치적 통합이 반미적 성격으로 촉진되는 한편, 중국과 소련 그리고 이슬람 진영이 미국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연대하고, 일본이 다시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연상시키는 반미적 아시아주의에 기울어지는 상황이다.


p.10

[반미 운동의 반성]

돌이켜보면 1980년대 반미 운동이 지향했던 바는 엄밀히 말해서 미국 자체를 겨냥한 것이었다기보다는 1980년대 이전까지 이미 내재화되어 있던 미국, 그리고 1980년대 지배층에 의해 급속하게 촉진되던 미국의 내재화에 대한 반발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폭력적 양상으로 비쳤던 운동 방법과는 달리 운동의 성격 자체는 지극히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타자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반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거부 반응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몸 안으로 기어 들어오던 촉수에 기겁하던 수준에서, 그러한 촉수가 뿌리 박고 있는 중추에 대한 분석으로까지 우리의 인식 수준이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p.15

[패권국 미국의 등장]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세계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경험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에 속하지 않은 강국이 유라시아 국제 관계의 주요한 거중 조정자로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권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p.16

[유라시아의 전략적 중요성]

유라시아는 세계 일등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체스판이며, 그 투쟁은 지정학적 이익을 전략적으로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지정학적 전략(geostrategy)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전세계적 권력을 향한 야심을 불태운 아돌프 히틀러와 조세프 스탈린이 1940년 11월에 가진 비밀 협상에서 미국을 유라시아로부터 배제하는 데 합의했던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p.24~25

[미 소 경쟁의 결정타]

유라시아 대륙을 공산 진영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는 사실-양자가 모두 핵전쟁의 공포로 직접적인 군사 충돌을 회피한 결과였지만-은, 이 경쟁의 궁극적인 결과가 비군사적 수단에 의해 결정되리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생동성, 이데올로기적 유연성, 경제적 역동성 그리고 문화적 호소력 등이 결정적인 차원으로 떠올랐다.


p.26~27

[제국은 붕괴하기보다 균열하게끔 되어 있다]

수많은 제국과 마찬가지로 소련은 직접적인 군사 침략보다는 경제 사회적 긴장에 의해 가속화된 해체 과정을 거치며 결국 내폭과 파열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한 학자의 표현은 소련의 운명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제국은 본래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하위 단위가 항상 더 큰 자주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위 단위의 대항 엘리트가 거의 끊임없이 더욱더 많은 자주권을 획득할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은 붕괴하기보다는 균열하게끔 되어 있다. 가끔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균열하기도 하지만, 대개 균열은 매우 완만한 속도로 진행된다."


p.29~30

[로마 붕괴 3가지 요인 - 문화적 부패, 정치적 분단, 재정적 인플레이션]

로마제국이 결국 붕괴하고 만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된 요인 때문이었다. 

첫째, 로마 제국이 너무 커져서 하나의 중심에서 통치하기 어려워졌고, 그 결과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됨으로써 자동적으로 권력의 독점적 특성이 파괴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둘째, 제국적 오만의 시대가 지속됨에 따라 위대함에 대한 의지가 좀먹게 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제국 체제를 사회적 희생 없이는 지탱할 수 없게 되었는데, 시민들이 더 이상 그러한 희생을 감수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화적 부패, 정치적 분단 그리고 재정적 인플레이션이 로마 제국을 인근 야만족의 침입 앞에 무릎 꿇게 만들었던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