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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투자

대한민국 신국부론

by Diligejy 2017. 12. 12.

p.10

디플레이션 환경이 지속되면서 중앙은행이 적극적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이로 인해 채권과 주식 등 이른바 전통적 자산의 전통적 상관관계가 흐트러지고 있고, 이들 자산의 수익 예측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을 일시적인 일로 끝나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왜냐하면 정책 당국자들이 1989년 일본, 2000년 미국, 2008년 미국과 중국에서 발생했던 자본시장 붕괴 사태로 인해 커다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무단횡단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길을 건널 때마다 조심하는 것처럼, 정책 당국자들도 이제는 비슷한 상황만 출현해도 즉각 대응에 나설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p.13

사모펀드의 대표주자인 헤지펀드의 경우 1998년 이후 2012년까지 연 평균 수익률이 6.0%를 기록했다. 물론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종합주가지수는 17.9%라는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대신 수익률의 변동성은 헤지펀드보다 훨씬 컸다.


수익률의 변동성을 측정하는 지표인 표준편차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종합주가지수는 변동성이 35%인 반면 헤지펀드는 10.9%에 불과했다. 특히 같은 기간 미국의 S&P500지수(S&P사가 발표하는 500개 기업의 주가지수)는 연 평균 6.3%의 성과를 기록해 헤지펀드의 수익률과 비슷했으나, 수익률의 변동성은 헤지펀드의 거의 두 배(18.6%)에 달했다.


즉 헤지펀드를 비롯한 대체투자 자산은 과거에 수익률 면에서는 주식에 못 미칠지 모르나, 수익률의 변동성, 또는 수익률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월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p.27~30

1980년대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작은 정부'를 캐치프레이즈로 대통령 선거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의 정책은 정반대였다.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지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임기 내내 연방정부 공무원의 숫자를 줄이는 데 앞장섰지만, 재정지출은 전임자인 카터 대통령 때에 비해 훨씬 증가했다. 연방정부 공무원의 숫자가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재정지출이 증가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가 있다. 바로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별들의 전쟁'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대륙간 탄도미사일 격추 위성 시스템부터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최첨단 전투기까지, 레이건 행정부는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7.5%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국방비로 쏟아부었다.


물론 이런 거대한 자금 투입의 효과는 매우 좋았다. 군수기업에 투입된 돈은 결국 월급이나 하청업체, 그리고 주주들에게 배분되었으며, 이 돈은 다시 은행 등 금융기관을 거쳐 경제에 또다시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나타났던 셈이다.


그러나 '공짜점심'은 없는 법. 대신 미국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하나는 대규모 재정적자였으며, 다른 하나는 경기과열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였다.


이 자리를 빌려 경기가 과열될 때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어떤 나라의 경제가 호황을 누리면 그 나라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 그 수요를 충당하기 힘들어진다. 


제일 먼저 자동차 같은 소비재의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며, 소비재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설비를 구입하기 위해서라도 해외에서 수입을 늘리게 된다. 따라서 경기가 과열될 때에는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심지어 적자로 돌아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기가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할 정도로 과열되면, 금리와 세금을 인상해 경기를 안정화하는 것이 수순이다. 하지만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이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198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세금을 인상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방법을 준비해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외환시장 개입이었다. 


경상수지 및 재정수지 적자, 이른바 '쌍둥이 적자' 문제의 원인이 바로 독일과 일본 등 경쟁 상대국의 통화가치가 저평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레이건 행정부의 복안이었다.


물론 지금이라면 감히 엄두를 내기 힘든 억지지만, 그때는 그것이 가능했다. 당장 소련에 맞서 싸우는 자유세계의 일원이라는 동료의식이 있었던데다가,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은 독일이나 일본, 프랑스 등은 미국의 환율 조정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p.33~35

1986년을 고비로 일본의 내수경기가 회복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정책금리 인하의 효과뿐만 아니라 국제 상품가격의 급락도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85년 말 배럴당 30달러 이상 수준에서 거래되던 국제유가가 1986년 초까지 급락하기 시작해서 1986년 말에는 15달러까지 떨어졌던 것이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일본 경제에는 두 가지 이점이 생긴다.


첫째는 물가안정이다. 원유를 전량 해외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일본 경제여건에서 유가 하락은 수입물가의 안정을 의미했다.


둘째는 경상수지 흑자이다. 원화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던 상황에서 투입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면 수출 경쟁력이 개선된다. 더 나아가 수입대금 지급의 부담이 낮아지니, 수입도 줄어들어 경상수지는 개선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상수지의 개선은 다시 엔화의 강세요인으로 작용하니, 일본 중앙은행의 개입을 부르게 된다.


이 대목에서 당시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입장을 다시 짚어보자.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수출 부진의 충격을 내수경기 부양으로 메우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금리인하로 엔화의 강세를 완화시키려는 속셈도 있었다. 채권 투자자들은 금리 수준에 민감하기 때문에, 금리가 인하된 나라에 대한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본은행은 금리인하를 통해 일본으로 유입되는 외화를 억제해서 엔화의 강세를 저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유가 하락으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더욱 늘어나면, 지금까지 지속된 일본은행의 노력은 헛수고가 된다. 따라서 국제유가가 하락한 1986년 일본은행의 금리인하 폭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p.41~42

1929년 연준과 1987년의 연준은 전혀 달랐다. 1929년 당시 연준이 해외로 자금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했던 것과 달리, 1987년 그린스펀 의장은 블랙 먼데이 당일에 '통화를 풍부하게 공급하고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고, 베이커 미국 재무 장관은 서독을 방문하여 서독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와 연쇄 회동을 가지며 금리인하를 요청헀다.


미국 중앙은행과 행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며, 1987년 말 다우지수는 블랙 먼데이 이후의 최저점에 비해 200포인트 이상 상승한 1,938포인트로 한 해를 마감했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연준과 달리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이미 다 짐작하는 바와 같이, 블랙 먼데이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 때문에 쉽사리 금융긴축 정책을 취하기 어려웠던 점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 재무장관이 주변 국가들에게 달러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자극하지 않도록 '정책금리'의 인하를 요청한 것도 금리인상을 가로막은 요인으로 작용했다.


p.45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당장의 경기를 데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큰 해악을 끼친다.


먼저 부동산 투기가 불붙을 때에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토지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면 임대료가 상승할 것이며, 결국 주택 임대료 폭등을 감당하기 힘든 근로자들이 임금상승을 위한 단체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본 근로자들의 임금상승률은 1986년에 4.4% 1987년에는 3.3%에 불과했는데, 1988년 5.1%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해서 1987년에는 9%에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p.56~58

일본 경제는 왜 그토록 긴 기간 동안 불황이 계속되었을까? 이에 대해 미국 연준은 매우 흥미로운 보고서 한 편을 제출했다. 일본 사례에 대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이 장문의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경제상황이 특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자기들도 일본처럼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미국 연준의 의견을 경청해보자.


1987년 버블이 붕괴될 때, 만약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만 공격적으로(200bp 이상) 내렸다면 디플레이션 악순환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연준 [디플레이션 방어하기 : 1990년대 일본 경험으로부터의 교훈] (2002)


참고 : 홍춘욱 박사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ng8706&logNo=40209512079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버블이 붕괴되던 1990년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즉각 2% 이상 인하했다면, 일본 경제가 그토록 오랫동안 불황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왜 이런 주장을 펴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보고서의 내용을 조금 더 인용해보자.


예를 들어 지나친 경기부양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긴축으로 전환하여 해결할 수 있지만, 경기부양이 너무 늦거나 규모가 약해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영역에 진입하면 다시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방법이 마땅찮기 때문에, 버블이 붕괴될 때에는 일단 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경제에 대한 예상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공격적인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


-연준 [디플레이션 방어하기 : 1990년대 일본 경험으로부터의 교훈] (2002)


자산가격의 버블이 터지면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될 때에는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조기에 퇴치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은 한 번 정착되면 퇴치하기가 무척 어려운 반면, 인플레이션은 금리인상을 통해 얼마든지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p.59~60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1990년 일본은행은 왜 버블 붕괴가 시작된 이후 1년 반이 지나서야 정책금리를 인하했을까?


첫째,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험이 너무나 오래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 일본 자산시장이 붕괴되기 이전까지, 세계 주요 선진국 중에서 디플레이션으로 고통받은 나라는 없었다. 오히려 1973년 중동전쟁 이후 시작된 고유가 상황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훨씬 더 두려운 상대였다. 특히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1년 초까지 계속 상승세를 탔기 때문에, 일본은행은 '금리를 인하하기에는 아직 인플레이션 부담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둘째, '전쟁'이 한 요인이 되었다. 일본 주식시장이 무너지던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 침공(걸프전)을 계기로 국제유가가 폭등했던 것이다. 


국제유가는 걸프전 직전에 배럴당 17달러 선이었는데, 8월 23일에는 31.78달러까지 치솟았고, 이에 따라 일본의 물가도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은행은 1990년 8월 30일에 물가불안을 이유로 정책금리를 6%까지 인상하고 말았다.


p.62

금융기관 구조조정 지연은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첫 번째 문제는 무차별적인 대출회수였다. 안 그래도 고금리 정책의 영향으로 주식 및 부동산 가격이 하락 중인데, 은행들이 '대출회수'를 하게 되면 연쇄적인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즉 대출회수에 의해 기업이 무너지면 보유 자산을 헐값에 처분하게 되고, 다시 이것이 주변 토지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계와 기업의 저축 증가이다. 은행들이 대출을 계속 회수하니, 어떻게든 저축을 늘려 대출을 갚으려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워져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즉 은행의 부실화는 단순히 은행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경제 전체의 악순환을 촉발시킨다. 따라서 1990년을 전후한 일본은행의 실책에만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p.98

정책금리가 공격적으로 인상될 경우, 단기금리가 장기금리의 수준을 넘어서는 '사건'이 발생한다. 정책금리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주시가격의 하락 가능성이 높아지면, 장기채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발행도리 장기채권의 금리가 경기불황의 영향을 받아 떨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이라도 서둘러 장기채권을 사두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책금리(단기금리)의 절대 수준이 너무 높다고 판단될 때는, 장기채권에 수요가 몰리면서 장단기 금리의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p.119

부동산시장이 금리에 민감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어떤 금리'에 민감하냐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변동금리의 대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코픽스(COFIX) 같은 단기 금리의 동향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미국은 대출의 80% 이상이 고정금리 대출이기 때문에 장기금리의 추세가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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