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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국소설46

작별인사 오랜만에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이유는 그가 오랜만에 책을 발간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다. 예전에 만났던 김영하의 소설이 그랬듯 김영하는 자신의 색채를 잃지 않았다. 깊은 몰입감 그리고 빠른 전개를 통해 소설로 영화를 보는 느낌을 전달하는 특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약간 지식 전달에 촛점을 많이 맞춘 나머지 설명이 이전 작품 대비해서도 더 많아진 것 같다. 약간 강의록처럼 느껴진달까. 그런 점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김영하 개인의 색채가 남아있다는 게 그 단점들을 상쇄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봤던 [인류멸망보고서]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소설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개정판 버전의 소설인 느낌을 주었다. 문제의식도, 전개방.. 2023. 2. 25.
작별하지 않는다 p.17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징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반쯤 넘어진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살고 싶어서 너를 떠나는 거야. 사는 것같이 살고 싶어서. p.26~27 그때 알았다. 파도가 휩쓸어가버린 저 아래의 뼈들을 등지고 가야 한다. 무릎까지 퍼렇게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걸어서, 더 늦기 전에 능선으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고, 누구의 도움도 믿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등성이 끝까지. 거기, 가장 높은 곳에 박힌 나무들 위로 부스러지는 흰 결정들이 보일때까지. 시간이 없으니까. 단지 그것밖엔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계속하길 원한다면. 삶을. p.44-45 눈은 거의 언제나 비.. 2023. 2. 5.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p.5 최악은 지나갔다는 안도와 곧 진짜 최악이 오리라는 불길한 예감 사이에 이 세계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p.80~81 악몽에서 깰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그때마다 허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실제적인 가혹함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면 고아의 삶에서나 가능한 상황들이 하나하나 그려지곤 했다. 연고 없는 도시에 혼자 내던져진대도 돈을 들고 달려오거나 내 무사를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으리란 것도 그때 내가 그려본 상황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2023. 1. 16.
하얼빈 p.14 공의 노고가 컸다.....라는 천황의 말은 어디를 겨누고 있는 것인가. 유학이라는 문명한 명분으로 이은을 데려온 정치 공작의 성공을 치하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2차 한일협약 이후 조선 반도의 혼란한 정세를 놓고 통감을 꾸짖는 말인지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시국이 엄중할 때, 신하를 독대하는 메이지의 말은 때때로 짧고 모호했는데, 여러 의미가 겹치는 그 몇 마디를 신하들은 두려워했다. 메이지는 말과 말 사이에 적막의 공간을 설정했다. 2022. 10. 7.
만다라 p.40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다. 조그만 새 한 마리를 집어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뜨리지 않고는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선 안 돼. 새를 다치게 해서두 물론 안 되구.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p.60~61 아까도 말했지만 이층처럼 허망한 사업도 없을 거야. 그런데 가소로운 것은 죽고 싶은 허망감에 치를 떨며 방바닥에 이마를 박았다가도 이내 그 허망감은 사라져 버리고 다시 또 이층의 욕망에 멱살을 잡히게 된다는 점이야. 다시 허망, 그리고 욕망...... 아아 그래서 중생의 윤회는 겁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여관방을 전전하며 그 치사한 윤회를 되풀이하기 일주일 되는 .. 2022. 10. 2.
바닥에서 벌어지는 가면놀이 - 관리자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마치 옷을 입지 않고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은 가면을 쓴 채 문 밖을 나간다. 그리고 누구나 그 가면속에 어느정도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이 선하고 좋은사람이라는 믿음을 보호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저자는 문제를 낸다.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고 그저 완료 일정만 당기라는 압박에 노가다꾼 한 명이 죽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늘 그래왔듯이 가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을 보호할 것인지 아니면 무섭더라도 가면을 벗어볼 거냐고. 사실 옳은 대답은 이미 정해진 질문이다. 답을 몰라서 대답하지 못할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걸 20살이 넘었다면 누구나 알 거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대답이 어려운 게 아니라 대답을 감당할 용기가.. 2022.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