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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국소설46

알로하, 나의 엄마들 https://coupa.ng/b3g5vP 창비 - 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COUPANG www.coupang.com p.17 여자가 한번 시집가면 그 집에 뼈를 묻는 게 조선의 법도였다. 버들은 홍주를 생각하면 바늘에 손이 찔려 피가 번진 자수보가 떠올랐다. 아무리 수가 잘 놓였어도 피가 묻으면 쓸모없어진다. 홍주는 잘못도 없이 한순간에 피 묻은 자수보 같은 팔자가 된 것이다. 버들은 여자 운명이 고작 자수보 같다는 사실이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았다. p.164~165 버들은 그동안 유럽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전쟁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문을 읽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하는 나라에 군수물자를 만들어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긴 덕에 강대국으로 .. 2021. 7. 11.
극해 https://coupa.ng/bSTbwl 극해:임성순 장편소설 COUPANG www.coupang.com p.34 다른 이들의 피로 애국을 외치는 이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걸 그는 식민지를 살아가며 이미 뼈저리게 배운 터였다. p.39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이용당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이었다. 2021. 3. 5.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https://coupa.ng/bRf02i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임성순 장편소설 COUPANG www.coupang.com p.57~58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다고? 그럼 애초에 수술실에서 실수하지 말았어야지. 이젠 한 명으로 모자라 자네의 그 알량한 공명심을 위해 다른 사람들 목숨까지 줄줄이 끌고 가려고 하는 겐가. 도덕? 좋지. 하지만 능력 없는 인간이 외치는 도덕이야말로 약자의 위선일 뿐이야. p.125 기억해둬. 우리가 한다는 위대한 선행 역시 별다를 거 없다는 거야. 인간의 선의란 고작 상황과 본능에 휘둘리는 금박일 뿐이라는 거지. 물론 금박도 금이긴 하지만. 2021. 2. 8.
무슨 말 하는진 알겠는데 - 빛의 과거 빛의 과거 국내도서 저자 : 은희경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19.08.30 상세보기 사실 이런 젠더문제를 다룬 책이나 글에 대해 무언가를 적는 건 많이 두려운 일이다. 내가 느끼기엔 지금 이 시기는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도 젠더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갈등과 타협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도기적 시점이고, 좋게 표현해서 갈등이라고 했지만, 기술의 발달으로 공인이 아닌 개인의 의견 또한 언제든지 조리돌림 당할 수 있는 걸 보면 때론 마녀사냥의 시대같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젠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언제든지 조리돌림 당할 각오를 해야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물론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조리돌림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젠더문제에 대해선 더욱 크게 부각되곤.. 2020. 7. 30.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국내도서 저자 : 김훈 출판 : 파람북 2020.06.15 상세보기 황은 많이 죽였고, 많은 죽음을 보아왔다. 죽은 자들의 범접할 수 없는 침묵 속에는 산 자를 압도하는 위엄의 후광이 빛나는 것을 황은 일찍부터 알았다. 적의 첩자들과 적과 밀통한 배반자들을 죽여서, 그 죽은 몸을 찢고 으깨며 분풀이를 해도 죽은 자의 위엄은 훼손되지 않았다. 죽은 자는 죽었기 때문에 산 자들이 지분덕거릴 수 없는 자리에서 우월성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이길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이미 죽었기에 죽일 수가 없었고, 죽어 널브러지고 문드러진 자세로 산 자를 조롱했다. 죽은 자는 산 자의 영광에 침을 뱉고 있었다. 적병과 아군의 시체가 뒤엉켰지만, 죽은 자에게는 산 자의 칼이 닿지 않.. 2020. 7. 14.
설계자들 설계자들 국내도서 저자 : 김언수 출판 : 문학동네 2010.08.20 상세보기 p.41~42 터무니없는 삶이다. 아킬레우스는 쓸데없는 곳에 갑옷을 걸치지 말고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왼쪽 뒤꿈치에 튼튼한 갑옷을 걸쳐야 했다. 래생은 아킬레우스가 그 작은 약점을 가리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약이 올랐고 그것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래생은 내내 울었다. 자신이 읽어야 할 혹은 읽을지도 모를 도서관의 이 광대한 책의 페이지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페이지들 속에서 영웅들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소녀들이, 역경과 좌절을 뚫고 삶의 목표를 이룬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의 유일하고 작은 약점을 가리지 못해 얼간이의 화살에 맞아 죽어가고 있다. 래생은 이 신뢰할 수 없는 삶이 .. 2019.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