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최고다.
수식어를 덕지덕지 붙이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는 증거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여러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다. 최고다. 이 세 글자면 끝날 것 같다. 보통 이커머스 비즈니스하면 CRM, 그로스해킹이라고 하면서 AARRR이니 Cohort Analysis이니 이런 얘기만 하기 쉽다.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마케팅 데이터 분석이라 그런 생각을 하는거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런 방법론은 결국 비즈니스 성장을 위한 하나의 툴, 가설일 뿐이다.
만약 손편지를 쓰는게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손편지를 접어야 하고 종이학을 접는게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종이학을 접어야 한다.
사실 이 책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데이터분석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거시적인 판의 흐름을 보여주고 플레이어들끼리의 합종연횡, 오월동주를 보여주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그에 비하면 매우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이 책을 보고 당장 써먹을만한 내용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데이터분석이 되었건 CS업무가 되었건 개발이 되었건 결국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비즈니스는 나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라 경쟁플레이어가 있는 전략게임이다. 그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여러 상호작용 속에서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게임인데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물류라는 관점을 통해 어떻게 판을 읽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도메인 지식은 조금씩 조금씩 쌓이며 거시세계에 머물지 않고 점차 미시세계에까지 스며들어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보자. 구글이 갑자기 서드파티 쿠키 수집을 중단한다고 하자 업계는 멘붕에 빠졌다. 얼마나 멘붕이 컸는지 수집 중단 기간을 연장하기에 이르렀다. 애플이 iOS14에서 ATT를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퍼포먼스 마케팅 업계에서는 퍼포먼스 마케팅의 종말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물류도 마찬가지 아닐까? 얼핏 생각하면 그저 택배상하차만 상상하기 쉽지만 매일같이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지하철, 장거리를 이동할 때 이용하는 고속버스, 몸이 힘들 때 이용하는 택시 또한 이미 물류의 세계다. 그리고 표면이 아닌 심층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준비를 진행중이다.
그렇게 변하게 되면 오프라인만 변하지 않는다. 비즈니스가 변화하면서 온라인도 변하고 모바일도 변할테니까. 책을 읽으며 길거리에 있는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p.14
제가 생각하는 물류는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어요. 바로 '공간', '이동', 그리고 '연결'입니다.
p.15~16
애석하게도 모든 연결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끊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사업자와 사람들이 끊어진 부분을 연결하고자 노력합니다. 왜 물류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IT 포탈 운영사 네이버가 물류기업에 투자하고 지분을 섞기 시작했을까요. 편의점 운영사 GS리테일은 왜 배달 플랫폼 요기요를 인수했을까요. 국내 이커머스업계의 양강 체계를 형성한 쿠팡, 네이버와 모두 돈을 섞은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가 그리는 큰 그림은 대체 무엇일까요.
p.24~25
2012년 대학교 팀프로젝트를 하던 중에 아마존의 '어제배송(Yesterday Shipping)'서비스 컨셉 영상을 보게 됐다. 오늘 보내는 것도, 내일 보내는 것도 아닌 '어제 보낸다'는 이상한 이름이다.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상품을 아마존은 배송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받은 상품이 맘에 안 들면 반품하라고 한다. 심각하게 쿨하다.
장난처럼 보였지만 장난이 아니었다. 아마존은 어제배송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명기한 특허를 2012년 8월 신청했고, '예측배송(Anticipatory Shipping)'이라 명명했다. 물론 어제배송 영상처럼 고객이 주문하지도 않은 상품을 배송할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아마존은 고객의 과거 소비 패턴,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긴 구매 희망 상품, 클릭스트림 데이터, 인구통계학적 특성, 설문조사를 통해 파악한 고객의 상품 선호도 등 데이터를 분석해서 특정 지역의 고객이 어떤 상품을 주문할지 예측한다고 했다. 예측 결과를 보고 고객 주문이 다발할 것이라 예측되는 장소에 재고를 사전 배치한다. 심지어 주문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품을 화물차에 넣고 다니다가 고객 주문이 발생하면 수십 분 안에 배송하는 방법을 포함한다. 거짓말 같은 이 방법은 2021년 현재 한국에서 아마존을 무섭게 따라가는 기업 쿠팡이 현실 세계에 응용한 방법론이 됐다.
p.28
실상 우리 생활에서 가장 친숙한 물류는 택배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택배 물동량은 33억 7,000만 개 였다. 전년 대비 20.9% 늘어난 수치다. 2020년 국내 경제생활 인구 기준 국민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122회에 달한다. 이렇게 꾸준하게 성장하던 택배 산업은 코로나19라는 변곡점을 만나 더더욱 급성장하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국내 1위 택배 사업 부문을 보유한 종합 물류업체 CJ대한통운이 2019년 취급한 평균 택배 물동량은 하루 480만 건.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2020년 10월 파악한 숫자는 하루 800만 건이었다.
더군다나 한국통합물류협회의 통계에는 국토교통부가 인정한 택배 운송사업자 18개 사 중 17개 사와 우정사업본부를 제외한 업체들의 물동량은 포함되지 않았다. 소비자의 문 앞까지 전달하는 '문전배송'을 택배라 정의한다면 쿠팡, 이마트, 홈플러스와 같은 유통사의 물류 서비스도 택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통합물류협회의 통계에는 이 업체들의 숫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실제 택배 물동량에는 통계로 파악되지 않는 숫자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p.33
쿠팡 매출 및 영업손실 추이 (2013 ~ 2020)
연도 | 매출 | 영업손실 |
2013 | 478억 원 | 42억 원 |
2014 | 3,485억 원 | 1,215억 원 |
2015 | 1조 1,338억 원 | 5,470억 원 |
2016 | 1조 9,159억 원 | 5,652억 원 |
2017 | 2조 6,814억 원 | 6,388억 원 |
2018 | 4조 3,546억 원 | 1조 1,280억 원 |
2019 | 7조 1,531억 원 | 7,205억 원 |
2020 | 13조 9,236억 원 | 5,504억 원 |
p.33~34
배송인력을 직접 고용한 시도는 쿠팡이 이 업계에서는 유일무이했다. 그 누구도 배송기사에 직접 투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쿠팡에 앞서 규모를 만들었던 택배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량 규모만 갖춘다면 건당 1,000원대에 택배를 이용할 수 있는데, 누가 굳이 자기 돈을 들여서 배송기사를 고용하겠는가.
그런데 쿠팡은 그 미친 짓을 했다. 2015년 당시 취재기록을 들춰보면 260만 원의 기본급, 월평균 40만 원의 인센티브, 50만 원의 사고 보존 비용을 배송인력 한 명에게 투자했다. 모든 배송용 차량 또한 쿠팡이 직접 확보하여 배송기사에게 지급했다. 2015년 초 만났던 CJ대한통운의 한 실무자는 쿠팡이 배송인력 한 명을 직접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의 단순 인건비만 계산해도 월 300만 원 이상 필요하다. 여기에 유류비와 차량 감가상각 등을 포함하면 월 1,000만 원 이상이 나올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이어서 "물류를 알지 못하는 쿠팡이 미친 짓을 하고 있어서, 조만간 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할 듯싶었다. 쿠팡이 맞이한 결과는 대규모 적자였다. 물류 효율 또한 형편없었다. 2016년 인터뷰한 한 쿠팡맨은 2015년 당시 하루에 40~50건, 2016년 하루 140건의 물동량을 처리한다고 했다. 파괴적으로 늘어난 수치이긴 하지만 하루 250~300건 이상 배송하는 택배기사에 비하면 한참 못 미쳤다. 택배의 효율은 '밀도(배송지의 밀집도)'와 '규모(물동량의 적재율)'가 만드는데, 2016년을 기준으로 봐도 쿠팡의 차량 적재율은 70%가 안 됐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비효율이 쿠팡에는 기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 쿠팡의 로켓배송이 유명해진 배경에는 속도만 있지 않았다. 고객들은 쿠팡맨의 친절함에 놀라고 열광했다. 예컨대 쿠팡 배송기사들은 물류 비효율로 인해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택배 박스에 그림을 그린다거나, 손편지를 써서 붙이던가 하는 식의 부가 활동을 했다.
p.36
2015년 당시 11번가에 재직했던 한 실무자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으로 인해 11번가의 생활용품 매출이 상당 부분 감소했어요. 쿠팡은 품질 차별화가 어려운 생활용품을 미끼상품으로 선점해 이커머스 플랫폼 경쟁사들의 고객을 빼앗았죠. 반복 구매가 일어나는 생활용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로켓배송에 태워 구매하도록 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고객은 쿠팡에서 미끼상품만 구매하지 않습니다. 장바구니 최소 주문금액을 맞추기 위해 미끼상품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을 쿠팡에서 함께 구매하게 됩니다. 당연히 이렇게 함께 구매하는 상품의 가격은 경쟁업체보다 비싸고 마진율이 높을 수 있습니다. 11번가 또한 어떤 품목을 미끼상품으로 특화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쿠팡이 선점한 생필품 카테고리에서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이제 쉽지 않아 보입니다."
p.37~38
실제로 2021년을 기준으로 누구도 쿠팡이 단일 플랫폼으로 이커머스 한국 1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2020년 기준 이커머스 1위 플랫폼은 거래액 28조 원의 네이버가 맞다. 하지만 네이버의 자체 마켓플레이스 '스마트스토어'의 거래액은 같은 기간 17조 원 수준으로, 22조 원 거래액으로 추정되는 쿠팡에 미치지 못한다. 네이버의 나머지 거래액은 네이버쇼핑에 입점한 쿠팡을 포함한 외부 몰에서 나온다. 2021년에도 70% 이상의 전년 대비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는 쿠팡임을 감안했을 때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네이버는 40%대의 커머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객들이 쿠팡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연 '빠른배송'으로 대표되는 물류 때문이다.
p.41
서로 다른 기업과 부서의 물류는 이름만 같다 뿐이지 업무 특성은 제각각이다. 예컨대 IT 기업의 물류 담당자가 있다면 ERP나 SCM 시스템을 개발하고 고도화하는 일을 할 것이다. 제조기업의 물류 담당자는 원자재 구매의 효율화와 공장 생산라인의 최적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 항공사, 선사의 물류 담당자는 선박에 최대한 빈공간 없이 여객과 화물을 채우는 것을 목표로 일한다. 이 모든 일에는 서로 다른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p.43-45
나는 물류를 이렇게 정의했다. '물류란 가치사슬을 관통하는 재화의 흐름'이다. 물류의 목표는 파편화된 가치사슬을 흐르는 재화에서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이다.
물류에서 '물'을 뺀다면 더 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가치사슬에는 재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도, 정보도, 돈도 있다. 서비스, 정보, 돈에도 비효율은 존재한다. 이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물류 아닌 산업도 물류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재화와 서비스, 정보, 돈, 이 모든 것이 함께 결합해야 한다. 예컨대 재화가 움직였는데 돈이 안 움직였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쿠팡은 초창기부터 느린 정산으로 인해 판매자가 받아야 할 돈으로 현금흐름을 최적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했는지 네이버는 2020년 판매자의 판매 이력 및 신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 구매 확정이 되기 전에 빠른 정산을 해주는 솔루션을 내놨다.
정보가 움직였는데 재화가 안 움직였다면 이 또한 문제다. '단건 배달' 주문을 잡은 배달의 민족 라이더가 음식점에서 주문을 픽업하고 곧바로 고객에게 배송하지 않고 쿠팡이츠 앱에서 추가 주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라이더는 한 번에 두 건의 배달 주문을 처리할 수 있어서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배달 속도는 그만큼 느려진다. 플랫폼은 애꿏은 단건배달 프로모션 요금만 날리게 된다.
정보는 움직였는데 서비스가 안 움직였다면 어떨까. 인터파크에서 레스토랑 할인 예약권을 구매하고 주말에 연인과 함께 음식점에 방문했다. 그런데 레스토랑은 자리가 없어서 손님을 못 받는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예약권만 구매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예약권 구매와 별도로 레스토랑에 전화까지 해야 예약이 마무리되는 구조였다. 이 사례에서는 서비스의 흐름만 멈춘 것이 아니라 정보도 움직이다 말았다. 애초에 레스토랑의 예약 시스템과 인터파크의 주문 시스템이 연동돼 있었다면 굳이 소비자가 전화로 재차 예약을 하는 번거로움은 없었을 것이다.
세상만사 모든 것의 비효율은 흐름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재화든, 서비스든, 돈이든, 정보든, 흘러야 할 것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면 그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류업계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맘처럼 안 되는 정보와 재화의 일치, '정물 일치'라는 목적지도 흐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하는 데서 나온 구호 중 하나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버스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안타깝게도 방금 출발한 버스 한 대를 아슬아슬하게 놓쳤다. 코로나19로 인해 배차 간격이 두 배 이상 늘어난 빨간색 광역 버스는 앞으로 40분 정도를 기다려야 도착할 것으로 보였다. 근처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거리에서 소모할 수십여 분이 아까웠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버스 예상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앱 '카카오버스'가 있었다. 노트북 옆에 휴대전화를 올려두고 카카오버스 앱을 켜뒀다. 25분, 20분, 15분. 점점 줄어드는 도착 시간을 보면서 매장을 나갈 시간을 가늠했다. 그런데 웬걸, 갑자기 앱에서 노출되던 버스 도착 예정 시간 데이터가 사라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채 10분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 '도착 정보 없음'으로 나오던 예정 시간이 갑자기 '버스 도착까지 3분'이라는 정보를 보여줬다. 12분 정도의 데이터가 어떤 이유에선지 사라졌다. 물론 현실에서 움직이는 버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떠한 이유로 정보의 흐름이 끊어졌을 따름이다. 나는 황급히 소지품을 가방에 담기 시작헀다. 중요한 것은 물류가 아니다. 물류로 세상을 보는 관점이다.
p.47
물류는 어디에든 있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은 아니다. 고백하자면 우리는 물류 전문매체였지만, 물류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p.50
당시 내가 통화한 그 누구도 파손 문제가 어디서 발생했는지 정확히 몰랐고, 알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없었다. 그저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길 뿐이었다. "물류는 우리에게 맡기고, 사장님은 사업만 집중하세요"라고 했던 풀필먼트업체의 구호가 공허하게 느껴졌던 순간이다. 내가 마주한 풀필먼트의 첫 기억이다.
p.54
매출은 분명히 회사에는 이익을 가져다준다. 단기적으로 확보한 높은 트래픽은 장기적인 충성고객 확보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비용은 회사 입장에서 경계해야 한다. 쌓여 있는 재고는 회계장부에는 자산으로 잡히지만, 이 또한 비용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분노한 고객이 다시 한 번 쇼핑몰에 방문하는 충성고객이 될지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업체의 성공과 실패는 회사의 목표가 무엇이냐에 따라 갈린다. 만약 이커머스업체의 목표가 '매출'이었다면 이는 성공 사례다. 높은 매출은 새로운 투자자를 모을 마일스톤으로 활용 가능하다. 하지만 업체의 목표가 '이익'이었다면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매출 상승분보다 비용 증가분이 더 크다면 이 사례는 실패다.
요컨대 부분 최적화의 성공은 항상 전체 최적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상품 판매와 같은 특정 가치사슬 안에서의 어떤 성공이 기업 전체 가치사슬을 고려해보면 실패로 끝날 수 있다. 반대로 물류 입장에서는 재앙과 같은 상황이 회사 전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맞는 방향이 될 수도 있다.
p.54-58
2021년 어느 날, 쿠팡에서 풀필먼트 시스템 프로젝트 몇 개를 주도한 사람을 만났다. 개발자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는 최적화를 참 좋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최적화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했다. 그가 쿠팡에 입사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 했다. 쿠팡은 물류센터 운영, 배송을 포괄한 물류 가치사슬을 대부분 직접 운영하는 기업이고, 그의 눈으로 보기에 물류 현장은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한 듯 했다. 그의 전공 분야인 최적화 알고리즘을 도입한다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장은 그의 마음처럼만 돌아가지 않았다. 시스템 도입은 왕왕 현장의 반발을 몰고 왔다. 시스템을 도입하니 오히려 생산성이 낮아졌다거나, 전보다 일 처리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등의 비판이 현장에서 쇄도했다.
일례로 쿠팡이 2019년경 도입한 '낱개 포장' 또한 쿠팡 배송인력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배송 노동자의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한 집에 한 박스만 배송하면 됐던 일이, 3~4개 비닐 포장된 낱개 상품을 배송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다른 예로 쿠팡이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한 재사용 가능한 신선 포장재 '프레시백'의 회수율에도 문제가 생겼다. 쿠팡 배송인력 입장에서는 프레시백 회수의 당위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물량으로 인해 배송 업무만으로도 시간이 촉박했다는 쿠팡 배송인력들의 증언이 나온다. 모두 부분 최적화의 실패다.
이렇게 배송인력들의 비판에 직면한 '낱개 포장'과 '프레시백' 정책이지만, 역설적으로 쿠팡 입장에서는 김범석 의장이 2021년 상장신고서에 동봉한 편지를 통해 이를 성공한 비즈니스 사례로 꼽고 있다.
쿠팡 실무자에 따르면 낱개 포장 도입으로 인해 쿠팡의 차량 적재율은 향상했고, 운송비용은 떨어졌다. 물류센터 내부의 운영은 단순화됐다. 기존 고객 단위로 상품을 분배하고, 분배한 포장을 다시 포장하는 과정이 피킹한 상품을 곧바로 출고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출고 속도는 빨라졌다. 쿠팡은 맞춤형 박스에 비닐 포장한 제품을 선분류 하는 방식으로 75% 이상의 골판지 포장을 제거했다.
프레시백 또한 효율화의 산물이다. 프레시백 도입 전에는 쿠팡 화물차가 배송을 마치고 공차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빈 공간을 이제는 수거한 프레시백을 적재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비어 있는 유휴 공간에 가치를 부여한 방식이다. 쿠팡 물류센터에는 이 프레시백을 세척하는 라인을 비치했다. 세척을 마친 프레시백은 여러 차례 고객 배송에 재활용된다. 결과적으로 쿠팡은 물류 효율 증대와 함께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전체 최적화의 성공 사례다.
다시 한 번 쿠팡 개발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그는 풀필먼트 시스템은 전체 프로세스의 효율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전체 프로세스의 효율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의도치 않게 부분 프로세스의 비효율을 낳기도 한다고 한다. 예컨대 더 빠른 운송 수단을 활용하여 교통 체증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것은 배송 프로세스에 국한된 부분 최적화의 관점이다. 전체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배송 이전 단계의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택배 출고 이전 고객 접점 인근 창고에 배송 차량에 적재할 상품을 미리 준비하거나, 터져 나올 물량을 대비하기 위해 창고의 처리량을 미리 확보하는 방법 등을 고안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빠른 배송은 전체 프로세스의 속도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강조사항이다. 반대로 배송 현장에서 부분적인 비효율이 관측되더라도 오히려 전체 프로세스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부분 최적화의 실패보다는 전체 최적화의 성공을 중요하게 본 관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분의 요구를 만야 무시하면 안 된다. 언제고 부분이라고 치부했던 문제가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에 영향을 주는 문제로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보상 없이 배송인력에게 프레시백 수거를 맡겼다가 회수율이 떨어지고 부정적인 고객 여론이 확산된 쿠팡만 봐도 그렇다. 결국 쿠팡은 프레시백 회수에 몇백원 상당의 추가적인 금전적 보상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부분의 비효율은 여러 외부 요인의 영향으로 인해 전체의 비효율을 불러오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어본다.
"물류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현장 직원들에게 참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이걸 사람이 해야지 왜 시스템이 하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부분 비효율이 발생한 현장의 반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중간 점'을 찾는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개발팀은 무조건 전체 최적화를 위해서 달리지만, 물류 현장에서는 당장 오늘 이 물량을 어떻게 처리하냐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은 전체 최적화를 목표하지만, 현장은 부분의 비효율을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과 협의 과정이 성공적인 풀필먼트 시스템 도입을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물류의 목표는 '파편화된 가치사슬을 흐르는 재화에서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고 전체 가치사슬의 효율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시각이다. 부분 최적화는 항상 전체 최적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분을 무시할 수 는 없다. 언제고 전체 최적화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p.66-67
작든 크든 물류는 어디에든 있다. 심지어 물류라고 여겨지지 않는 곳에서까지 물류는 있다. 2016년 4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당시 대표)은 <CLO>가 주최한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이런 말을 했다. "세 발짝만 걸으면 물류다."
당시 한국법은 배달을 물류업에 포함하지 않았다. 2021년 7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 시행되고 나서야 배달업은 '소화물 배송 서비스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물류업의 테두리로 들어왔다. 그떄까지 이륜차를 활용한 음식 배달은 법이 인정한 물류가 아니었다. 이는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물류가 아닌 것에서 물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p.73-74
2021년은 쿠팡의 풀필먼트가 본격화된 한 해다. 물론 그전까지 쿠팡이 풀필먼트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쿠팡의 물류자회사 중 하나인 '쿠팡 풀필먼트 서비스'는 쿠팡이 직매입한 상품인 로켓배송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한 물류센터 운영을 했고, 그것을 '풀필먼트'라 불렀다. 2020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쿠팡의 풀필먼트는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의 만족도를 제고하기 위한 서비스로 이용됐고, 동시에 쿠팡의 영업손실을 만든 대표적인 비용 중 하나였다.
그랬던 쿠팡 풀필먼트가 2020년 7월 '로켓제휴'라는 이름의 서비스 론칭을 기점으로 그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3자 판매자들에게 쿠팡의 물류 인프라, 시스템을 개방하면서 손해만 보던 물류가 쿠팡의 수익모델로 전환되었다. 쿠팡은 2021년 로켓제휴 서비스를 '제트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했고, 3자 판매자를 쿠팡의 물류망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풀필먼트,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제트배송'과 같은 3자 판매자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풀필먼트 사업은 오랫동안 쿠팡이 당연히 할 것으로 예측됐던 비즈니스다. 왜냐하면 쿠팡은 지금껏 아마존의 성장 타임라인을 무섭게 따라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존 마켓 플레이스 성장의 중추에는 3자 판매자를 대상으로 한 풀필먼트 사업 'FBA'가 있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아마존의 '플라이휠'로 마켓플레이스부터 풀필먼트까지 비즈니스 모델의 연결점을 설명할 수 있다.
간략하게 아마존과 쿠팡의 비즈니스 타임라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즈니스 | 아마존 | 쿠팡 |
직매입 유통 | 온라인 서점(1995) | 로켓배송(2014) |
마켓플레이스 | 아마존 옥션(1999) | 아이템마켓(2016) |
유료 멤버십 | 아마존 프라임(2005) | 로켓와우클럽(2018) |
OTT 플랫폼 | 아마존 언박스-아마존 프라임비디오(2006) | 쿠팡플레이(2020) |
3자 판매자 풀필먼트 | FBA(2006) | 로켓제휴-제트배송(2020) |
아마존은 1995년 7월 직매입 유통 기반 온라인 서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쿠팡은 2010년 소셜커머스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2014년 3월 직매입 유통 기반 '로켓배송'을 시작으로 성장의 변곡점을 맞았다.
아마존은 1999년 3월 '아마존 옥션'이라는 이름으로 3자 판매자에게 온라인 판매 공간을 제공하고 수수료와 광고료로 돈을 버는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쿠팡도 2016년 5월 '아이템마켓'이라는 이름으로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이 시기를 즈음하여 쿠팡의 소셜커머스 색깔은 완전히 지워진다.
p.76
각자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4가지 비즈니스 모델, '직매입 유통', '마켓플레이스', '유료 멤버십', '풀필먼트'는 모두 치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리고 쿠팡은 아마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10여년의 간격을 두고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p.85-86
다소의 부침과 논란은 있었으나 쿠팡과 아마존은 마켓플레이스를 시작하여 효과적으로 더 많은 상품 구색을 확장하고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 실제 쿠팡을 보더라도 직매입 유통 사업인 로켓배송은 600~700만 개 정도 선에서 상품 구색 확장을 멈추고, 마켓플레이스 확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켓플레이스로 쿠팡이 확장한 상품 구색은 수억 개가 넘는다.
아마존이 모든 것을 판매하는 매장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도 마켓플레이스가 있다. 아마존은 2015년을 기점으로 전체 거래액에서 3자 판매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이후에도 계속 성장하여 2019년 기준으로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60% 이상이 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될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룩했다. 아마존 마켓플레이스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의 숫자는 170만 개가 넘었다. 2019년 기준 20만 개 이상의 3자 판매자가 아마존에서 10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만들었다. 제프 베조스는 2014년 주주 서한을 통해 아마존의 성장을 만든 3대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로 이 '마켓플레이스'를 꼽았다.
p.87-89
쿠팡과 아마존의 '유료 멤버십'이 직전에 시작한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와 당장 이어지는 접점은 없다. 유료 멤버십은 오히려 마켓플레이스보다는 처음 시작헀던 직매입 유통과 연결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앞서 쿠팡과 아마존이 직매입 유통 사업ㅇ르 위해서 지속적으로 물류센터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연히 두 기업은 물류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운영 역량과 물류센터에 들어가는 시스템 역량을 함께 키웠을 것이다. 이건 추측이 아니다. 실제 아마존 제프 베조스 회장은 2014년 주주 서한을 통해 직매입 유통과 아마존 유료 멤버십 아마존 프라임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아마존은 각 상품 카테고리별로 온라인 매장을 운영할 소매팀을 만들고, 재고 보충과 재고 배치, 제품 가격 설정을 자동화할 수 있는 대규모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정확한 날짜에 배송한다는 아마존 프라임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선 물류센터를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해야 했습니다. 아마존의 직매입 재고 유통 사업은 프라임 서비스의 회원을 증가시키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동시에 거래량을 늘리고 판매자를 모집할 수 있는 근간입니다."
아마존과 쿠팡은 직매입 유통으로 확보한 물류 역량을 유료 멤버십에 무제한 공짜 물류로 녹이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2005년 2월 유료 멤버십 아마존 프라임을 시작했다. 론칭 당시 아마존 프라임의 가격은 연 79달러(약 9만 원). 한 달에 6.58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무제한 무료', '미국 전역 2일 내 배송', '무료 반품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아마존의 배송비는 건당 9.48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단순 계산해서 한 달에 한 번만 아마존에서 상품을 주문하고 배송받아도 소비자에겐 이익이다.
쿠팡 역시 2018년 10월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클럽을 시작하면서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물류를 멤버십 회원을 위한 혜택에 몰아넣기 시작헀다. 물론 쿠팡이 아마존의 멤버십을 그대로 따라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한국 환경에 맞춰 현지화를 진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과 미국은 물류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 넓은 국토로 기본 배송 속도가 느리고 물류비도 비싼 미국과 달리, 한국은 기본적으로 출고만 빠르게 된다면 익일배송이 기본인 택배가 존재한다. 택배업계의 오랜 저단가 경쟁으로 인해 택배 단가 또한 매우 낮다. 소비자들은 통상 2,500~3,000원의 택배비를 내지만, 사실 판매자들은 물량만 많으면 1,000원대에도 택배를 보낼 수 있는 구조다. 쿠팡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이커머스업체들은 경쟁을 위해 무료 배송을 일반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아마존이 유료 멤버십에 녹여 넣은 '2일 배송'과 '무료 배송'은 한국에서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아마존 수준으로 물류 서비스를 짜면 당연히 쿠팡의 유료 멤버십의 매력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쿠팡은 더 낮은 가격에 아마존 이상의 물류를 멤버십 서비스에 녹였다. 로켓와우클럽 멤버십 회원은 아마존 프라임보다 저렴한 월 2,900원의 요금을 지불하면 19,800원의 최소주문금액이 사라진 무료 로켓배송을 제공한다. 여기 더해 로켓와우클럽 오픈에 맞춰서 쿠팡이 시작한 새로운 물류 서비스인 '당일배송', '신선식품 새벽배송(로켓프레시)'을 로켓와우클럽 회원에 한정하여 제공했다. 당시 당일배송과 새벽배송은 익일배송을 기준으로 서비스 프로세스를 구성한 택배업체들은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서비스였다. 아마존과 동일한 무제한 반품 역시 로켓와우클럽 혜택에 녹았다. 여기서도 간단히 계산하자면 한국에서 반품 택배를 부치려면 통상 5,000원 정도의 비용이 부가되는데 반품 한 번만 해도 소비자에게 이익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p.90-91
아마존과 쿠팡의 유료 멤버십의 혜택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콘텐츠다. 2021년 기준 아마존 프라임에는 전자책 킨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프라임뮤직,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프라임비디오, 게임 콘텐츠를 포함한 트위치프라임 등 다양한 콘텐츠 구독 혜택이 녹아들었다. 2014년 트위치, 2021년 MGM 등 다양한 외부 콘텐츠 역량을 갖춘 기업을 인수합병하면서 지속적으로 콘텐츠 역량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쿠팡 역시 콘텐츠 영역에 발을 디뎠다. 2020년 7월 쿠팡이 동남아시아 OTT 플랫폼 '훅'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12월, 쿠팡 로켓와우클럽 멤버십 혜택으로 비디오 스트리밍이 가능한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를 론칭했다. 쿠팡플레이 이용요금은 사실상 쿠팡 로켓와우클럽 이용요금과 같은 2,900원이다. 로켓와우클럽 회원들에게는 기존 제공하던 빠른배송뿐만 아니라 쿠팡플레이를 통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추가 요금 없이 제공하기 시작했다. 쿠팡플레이를 신규 구독하는 소비자에게도 쿠팡의 빠른 물류가 덤으로 오는 개념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쿠팡플레이의 콘텐츠 규모, 오리지날 콘텐츠 창작력 등은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경쟁 콘텐츠 기업에 비해서 부족하다. 하지만 기존 500만 명 상당의 구독자 규모를 갖춘 로켓와우클럽 멤버십 회원을 그대로 쿠팡플레이 회원으로 만들면서 초기 빠른 성장을 달성했다.
요약하자면 그간 직매입 유통을 위해 깔아놓은 막대한 물류 인프라와 시스템, 운영 역량을 녹여낸 유료 멤버십 비즈니스는 아마존과 쿠팡 모두에 충성고객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소비자의 소비는 무한할 수 없다. 특히 사치품이 아닌 주기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생필품과 식료품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달에 김치 한 통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네이버와 쿠팡, 이 둘 중에서 어느 한 곳을 선택해서 구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머지 한 곳은 자연히 도태된다.
아마존과 쿠팡의 유료 멤버십은 소비자가 소액의 비용을 지불하게 하여 지속적인 구매를 위한 일종의 심리적인 책임을 만들고 지불한 비용 이상의 물류 혜택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나아가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길 거리까지 제공했다. 사람들은 쿠팡과 아마존에 이미 자신의 돈을 썼고, 그 이상의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기에 멤버십 생태계에 계속해서 머물게 된다.
p.91-93
실제 수치를 보면, 아마존 프라임 회원은 2020년 말 기준 전 세계 2억 명이다. 한국 아마존 글로벌셀링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아마존의 활성화 고객은 3억 명이었는데, 그중 절반 수준인 1억 5,000만 명이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었다.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의 매출 및 성장률(2020년 기준)
매출 | 전년대비 매출 성장률 | 평가 | |
쿠팡 | 13조 9,236억 원 | 95% | 성장 |
네이버(커머스 부문) | 1조 897억 원 | 37.60% | 성장 |
11번가 | 5,456억 원 | 2% | 정체 |
위메프 | 3,864억 원 | -17% | 역성장 |
티몬 | 1,512억 원 | -14% | 역성장 |
2021년 쿠팡의 상장 신고서를 통해 알려진 로켓와우의 2020년 말 기준 구독자 숫자는 470만 명이다. 같은 기간 쿠팡에서 3개월 내 1개 이상 제품을 구매한 고객이 1,485만 명인데, 그중 32%를 차지하는 숫자다.
더 의미 있는 수치는 경쟁사의 성장세가 정체됐다는 데 있다. 이는 쿠팡이 성공적으로 이커머스 경쟁사의 고객을 빼앗아왔음을 증명하는 지표가 된다. 쿠팡이 멤버십을 본격적으로 활성화한 2020년에 들어서 네이버를 제외한 이베이코리아, 11번가, 위메프, 티몬 등 경쟁 기업들은 성장세 정체를 면치 못했다. 성장하는 네이버조차도 쿠팡의 속도를 따라가진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전년 대비 평균 19.1%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평균 성장률에도 못 미치거나, 오히려 역성장을 기록한 플랫폼도 많았다. 이는 소수의 몇 개 플랫폼, 요컨대 쿠팡과 네이버로 이커머스 시장의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아마존과 쿠팡은 유료 멤버십으로 발생한 물류비용 부담을 충성고객을 획득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으로 치환하여 상쇄시켰다. 이제 풀필먼트를 시작할 때가 왔다.
p.93-94
아마존과 쿠팡은 유료 멤버십을 구축한 다음 빠르게 풀필먼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을 론칭하고 다음 해인 2006년 9월에 3자 판매자에게 자사의 물류 인프라를 개방하는 'FBA' 서비스를 시작한다. 쿠팡은 2018년 로켓와우클럽을 론칭한 2년 후인 2020년 7월에 제트배송의 전신인 로켓제휴 서비스를 시작한다.
쿠팡과 아마존이 먼저 시작한 유료 멤버십은 3자 판매자의 풀필먼트 사용을 설득하기 위한 도구로 의미가 있다. 빠른 물류 서비스가 핵심 가치인 쿠팡과 아마존 멤버십에 돈을 내고 가입한 고객은 당연히 멤버십 가입비용을 상쇄하자는 생각에 빠른배송 상품 구매를 선호하게 된다. 예컨대, 아마존에서는 '프라임'배지가 달려 있는 상품만 노출되도록 검색 옵션에서 선택하게 된다. 쿠팡에서는 '로켓' 배지가 있는 상품을 검색하는 것이 습관화가 된다. 유료 멤버십은 자연스럽게 빠른배송 배지를 부여받을 수 없는 일반 마켓플레이스 판매자들의 상품은 검색 후순위로 도태되도록 만들었다.
이때 쿠팡과 아마존은 판매자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낸다. 풀필먼트를 이용하면 물류센터 입고 이후의 모든 물류를 대행해준다고. 쿠팡과 아마존의 충성고객인 유료 멤버십 회원에게 보다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더욱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된다고.
만약 쿠팡이 아마존과 유료 멤버십을 론칭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쿠팡과 아마존이 기존 3PL업체들의 방식처럼 단순히 저렴한 가격에 물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업체들을 설득했다면 무슨 일이 발생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고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마켓플레이스 입점 이커머스 판매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자까지 물류를 알아서 처리하고 있다. 소형 판매자라면 자택 발코니를 창고처럼 이용하여 상품을 포장하고 동네 우체국에 직접 방문해서 상품을 배송하고 있을지 모른다. 구매대행, 위탁판매 사업자라면 재고 없이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물류를 대신 처리해주고 있을 것이다. 이런 소규모 판매자의 물류 또한 어찌 보면 작은 의미의 풀필먼트다. 3PL업체에 딱히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대형 이커머스 판매자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들은 이미 규모 있는 자가 창고를 몇 개씩 운영하고 있을지 모른다. 물량을 담보로 택배업체와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하여 택배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하다못해 3PL업체의 물류센터를 함께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물동량이 넘쳐나는 대형 화주의 협상력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을 리 없다. 3PL업체에는 이들이 돈이 되지만, 대형 화주사가 쉽게 물류를 바꾸고자 움직이진 않는다.
p.95-96
아마존과 쿠팡의 풀필먼트가 특별한 이유는 앞서 설계한 유료 멤버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유료 멤버십으로 확보한 충성고객 트래픽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래픽은 이커머스 화주사에는 곧 매출이라는 기댓값으로 치환된다. 이 트래픽으로 화주사를 설득한다면 어떻게 될까. 쿠팡과 아마존의 풀필먼트가 아닌 다른 물류를 쓴다면 자연스럽게 플랫폼 노출 후순위로 밀려버리는 알고리즘이 적용된다면 어떨까. 풀필먼트가 매출을 쥐고 흔드는 순간 물류의 갑을 관계는 뒤집힌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아마존 글로벌셀링은 판매자들을 대상으로 입점 홍보 세미나를 개최하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마존의 충성 고객인 프라임 회원을 대상으로 노출하기 위해서 풀필먼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동시에 판매자들이 혹할 수 있는 숫자를 제시한다. 내가 아마존 세미나에 참가하여 기록해둔 숫자만 나열하더라도 이렇다.
2016년 4분기 기준 3자 판매자 매출 중 55%가 풀필먼트를 통해 발생했다. 풀필먼트 이용 이후 3자 판매자의 판매 수량이 77% 증가했다. 한국 아마존 글로벌 셀러의 전체 매출 중 93%가 FBA에서 발생한다. 한국 판매자 중 FBA 이용 비중은 80% 이상이다. 어찌된 것이 아마존은 물류 영업을 하는데 싸게 해준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영업의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쿠팡과 아마존 입장에서 풀필먼트는 마켓플레이스로 잔뜩 확보해둔 상품 구색의 태생적 한계인 배송 속도를 보완하는 비즈니스다. 3자 판매자의 다양한 상품을 아마존과 쿠팡 수준의 빠른 물류로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고객에게는 자연스럽게 빠른 배송을 제공하는 상품 선택권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p.98-100
직매입 유통을 할 떄까지만 하더라도 아마존과 쿠팡은 그 많은 물류비용을 스스로 감당해냈다. 풀필먼트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오히려 아마존은 판매자들에게 물류비를 받고 이익을 남긴다. 사실 직매입 유통이나 풀필먼트나 고객에게 빠른배송을 제공하는 것은 같지만 돈을 쓰는 주체만 아마존에서 판매자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비용의 외주화'라 할 만하다. 아마존은 이렇게 감축한 비용을 고객만족에 투자하여 더욱 저렴한 가격 체계를 만든다. 고객 만족도는 올라가고 다시 한 번 첫 번째 플라이휠이 세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마존이 오랜 적자 기간을 넘어서 결국 북미에서 이커머스 사업의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만약 아마존이 직매입 유통만을 고집했다면, 마켓플레이스가 없고 풀필먼트가 없었다면 이런 성과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북미 이커머스 사업의 흑자는 아마존의 캐시카우라고 불리는 'AWS'의 성과를 포함하지 않고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쿠팡은 어떨까. 2021년 9월 실제 쿠팡 풀필먼트 제트배송을 사용하고 있는 한 이커머스업체 실무자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들은 제트배송의 수수료율은 40%로, 10%대인 마켓플레이스 입점과 비교하자면 많이 비싼 편이다. 제트배송의 수수료율에는 사실상 물류비용이 포함된 것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직매입 유통인 로켓배송의 수수료와 비교해도 별반 큰 차이가 없다. 왜 이 업체는 굳이 상품을 매입해서 사주는 로켓배송을 놔두고, 재고 책임을 스스로 떠안는 제트배송을 선택한 것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에게 전해 들은 제트배송을 사용하는 이유는 '밀어주기'였다. 경쟁이 치열한 로켓배송과 달리 제트배송은 아직까지 많은 판매자들이 유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초기 마케팅을 위해 쿠팡이 제트배송 판매자의 매출을 올리는 이벤트를 다양하게 지원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성과가 괜찮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제트배송은 시시각각 가격에 개입하는 로켓배송과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가격을 변경하며 마케팅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했다. 요컨대 그 업체는 물류 때문에 제트배송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쿠팡 풀필먼트에 불어온 생각지 못했던 호재도 있다. 2021년을 기점으로 판매자와 3PL업체를 불어닥친 택배비 인상의 물결이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국내 3대 택배업체들이 택배 건당 단가를 100~300원 가량 일제히 인상했다. 이는 2020년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논란이 됐던 '택배 분류작업'을 택배업체들이 지원하기로 하면서 그에 대한 비용 상승분을 자연스럽게 택배비에 반영한 것이다.
택배업체와 계약을 통해 물량을 처리하고 있던 판매자들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상품 건당 몇백 원의 이익을 보고 장사를 하는 이커머스업체들에게 그 인상분은 이익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정도로 치명적이다. 더군다나 판매자들은 당장 치열한 경쟁 환경으로 인해 택배비 인상분을 소비자 판매가에 반영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2021년의 택배비 인상 추세는 서비스 품질 향상을 함께 담보하지 않는다. 해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택배기사들의 파업 이슈는 판매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힘껏 이벤트를 준비해뒀는데, 게다가 준비한 품목이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인데 파업 시즌이 겹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넘쳐나는 CS와 환불, 반품으로 인한 폐기 비용을 택배업체들은 보전해주지 않는다.
p.102-103
CJ대한통운은 2021년 8월 SK에너지와 협력하여 주유소 공간을 빠른배송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반적인 물류센터가 도시 외곽 지역에 위치한 반면 주유소는 도심 내에 위치해 소비자에게 빠른배송 서비스 제공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게 CJ대한통운의 분석이다. 주유소 거점에 소비자 선호를 예측해 온라인 쇼핑몰 상품을 미리 입고시켜 두고, 순간적으로 푹발적인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라이브 커머스와 결합하여 2~3시간 이내 배송해주는 등의 서비스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쿠팡 또한 2019년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를 활용한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주유소가 문을 닫는 늦은 밤과 새벽 시간 이후 주유소 공간이 물류 거점이 되는 방식이었다. 쿠팡의 로켓배송 익일배송 마감 시간은 자정이다. 그리고 로켓배송 상품은 쿠팡 메가물류센터에 재고로 보관돼 있다. 마감 시간 전까지 들어온 주문을 간선 화물 차량에 싣고 메가물류센터에 제휴된 현대오일뱅크 주유소까지 늦은 밤과 새벽시간을 활용해서 옮긴다. 그 상품을 쿠팡의 배송기사 쿠팡맨이 픽업하여 고객에게 배송한다. 그러니까 쿠팡이 전국에 140개(2020년 11월 기준) 이상 운영하고 있는 지역 물류 거점 '캠프'의 역할을 주유소가 맡는 개념이다.
물류업계에서는 도심지에 위치한 작은 물류센터를 'MFC Micro Fulfillment Center'라 부른다. 그리고 MFC를 활용한 B2C 이커머스 물류 서비스가 마이크로 풀필먼트다. 202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쿠팡, 네이버, 우아한형제들, 이마트, 롯데쇼핑, GS리테일, CJ대한통운 등 IT, 유통, 물류를 막론한 수많은 업체가 마이크로 풀필먼트에 관심을 갖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p.105-106
실제 마이크로 풀필먼틔 사업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우아한 형제들의 B마트 매출 성장세가 거세다. 딜리버리히어로의 보고서에 따르면 B마트의 2020년 매출은 1억 700만 유로(한화 약 1,470억 원)로 나타났다. 우아한형제들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B마트 매출이 포함된 상품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28% 증가한 2,187억 원을 기록했다. 2020년 하반기 기준 B마트의 하루 주문처리 건수는 5만 건을 넘었으며, 이 숫자를 월간으로 환산하면 150만 건이다. B마트가 초기 '누가 편의점 가서 살 상품을 굳이 배달비를 내가면서 구매하냐'는 업계의 의문을 정면 돌파하고 시장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물류센터는 공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상품 재고를 공간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 빼서 쓰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 공간은 창고라는 이름으로 족하다. 이커머스 환경에서 매일매일 발생하는 수많은 고객들의 다품종 소량의 합포장 주문에도 꼬이지 않고 원활히 응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비로소 그 공간을 '풀필먼트 센터'라 부를 수 있다. 창고 안에서의 원활한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레이아웃 설계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포함하여 최적화를 위한 프로세스 구축이 필요하다.
MFC도 마찬가지다. 작은 공간에서 최적의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설비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MFC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류센터로 설계되어 있지 않은 공간을 물류센터처럼 활용하는 특성이 있다. 오피스가 됐든, 편의점이 됐든, 주유소가 됐든, 주차장이 됐든 애초에 그 공간은 물류 용도로 설계되지 않았다. 이런 공간을 물류 용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마이크로 풀필먼트 시장이 아직 형성 단계이듯, 이 시장 또한 형성 단계다. 설비업체들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p.111
함께 살펴볼 부분은 마이크로 풀필먼트의 활성화와 함께 조금씩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물류비'와 늘어나고 있는 '최소주문금액'이다. 모두 물류 효율과 연결되는 지표인데, 소비자의 구매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표다. 소비자가 과연 늘어난 물류비와 최소주문금액을 감당하고서도 빠른배송을 선호할지는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무료에 가까운 배송료 경쟁이 어느 정도 끝난다면 점점 더 많은 물류비가 소비자에게 직접, 혹은 상품 가격에 포함되는 방식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시장은 확연히 양분될지 모른다. 비싼 물류비를 감수하고서도 빠른배송을 이용하겠다는 소비자와 조금 느리지만 저렴한 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로 나뉠 것이고, 플랫폼에서도 다양한 배송 옵션을 소비자에게 선택하도록 만들 것이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회장은 저서 <발명과 방황>을 통해 '1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을 아는 것이 10년 뒤에 어떤 것이 변할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빠른배송은 10년 뒤에도 변치 않는 것이다. 10년 뒤에도 아마존 고객들은 빠른배송을 원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배송이 조금 느려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할 고객은 없을 테니 말이다.
p.113-114
대형마트 3사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는 코로나19 이후 매장 방문객이 떨어진 사오항에서 비대면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으로 매장 거점 활용을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이마트는 기존의 매장 후방 공간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는 'P.P Picking & Packing센터'에 이어 고객이 오가는 매장 내부에 자동화 설비를 설치해 판매 거점과 물류 거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물류센터 'EOS - Emart Online Store'를 2020년 이마트 청계천점에서 시작한 바 있다. 이마트 매장 일부의 공간을 확충하여 랙을 비치하고 빠른배송 서비스를 연계한 마이크로 풀필먼트 용도로 활용하고자 하는 계획도 2021년 8월 기준으로 진행 중이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도 마찬가지다. 도심 권역에서 아무런 가치를 만들지 못하고 텅 비어있는 43만 평 규모의 차량 기지 유휴 공간에 물류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러시아워가 지나 한산한 지하철 차량을 배송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지하철 역사에 위치한 무인보관함, 임대 점포는 생활물류를 위한 픽업 거점으로 활용했다. 요컨대 기왕 채워야 하는 공간이라면 놀리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들여서 가치를 창출하면 좋다고 이종 업체들은 판단했고, 그것이 바로 물류다.
비교적 단순한 업체들의 고민과는 다르게 현실 세계로 들어가면 문제가 꽤 복잡해진다. 문제의 씨앗은 해당 공간이 애초에 물류 용도로 설계돼있지 않은 데서 나온다. 많이 몰랐겠지만 예전부터 법적으로 물류 용도로 사용 가능했던 지하철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여객 중심으로 설계됐기에 경험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규정상 화물을 오르내릴 수 없으며, 지하철 내부에도 전용 화물칸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과 화물이 공존하게 되는 공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철 운영사는 불편함을 호소하는 승객들의 민원을 듣게 된다. 물론 서울교통공사는 러시아워를 피한 한산한 시간대에 물류 운영을 한다고 했지만, 이런 상황조차 불편한 누군가의 민원은 언제고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p.122-123
실제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와 필연적으로 결합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커머스 트렌드는 라이브 커머스다. 이미 홈쇼핑업체들의 물량을 중심으로 당일배송을 연계한 도심 물류 서비스를 많은 물류 및 유통업체들이 테스트했다. 일례로 네이버는 2021년 투자한 물류센터 운영업체와 당일배송 네트워크를 보유한 물류기업을 연계하여 네이버의 라이브 커머스 '네이버 쇼핑라이브'에서 방영된 제품의 서울 당일배송을 테스트한 바 있다.
B마트를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같은 자체 물류 거점, 배송기사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라이브 콘텐츠 제작 역량까지 갖춘 사업자라면 당연히 라이브 커머스를 마이크로 풀필먼트에 연계할 것이라 본다. 더군다나 B마트는 PL(Private Label) 상품을 자체 제작하고 곧잘 판매할 정도의 상품 기획력도 갖췄다. 물류망이 없는 네이버가 여러 외부 물류업체를 연결해서 당일배송이 결합된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를 구성했다면, B마트는 자체 네트워크만을 통해 당일배송이 결합된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힌트는 '이종'에 있을지 모른다. 물류를 '물류'로만 본다면 시도할 수 없는 서비스들은 굉장히 많다. 물류기업에 오래전부터 내재 되어 있던 비용 절감이라는 관성이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시도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류기업에는 대개 상품기획, 콘텐츠 조직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를 새로 확충하는 것도 문화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반면 라이브 커머스와 MFC를 결합하는 것과 같이 물류, 상품, 콘텐츠, 판매채널을 결합한다면 전혀 새로운 수익모델이 나올 수 있다. 물류가 아니라 서비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p.124~125
몇 년 전이었을까. 아마존에 글로벌 판매를 하고 있는 한 브랜드사 대표로부터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마존이 미국 현지에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판매자들에게 이메일을 발송하여 그들의 물류센터를 아마존의 풀필먼트 센터처럼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아마존과 협력하는 브랜드사의 물류센터 안에는 직전까지 전혀 몰랐던 다른 업체들의 상품이 섞이게 된다.
당연히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마존은 물류센터를 공유해주는 판매자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약속했다고 한다. 아마존에 지불하던 물류 처리 비용이 됐든, 입점 수수료가 됐든, 광고를 통한 노출 지원이 됐든 브랜드사 입장에서 아마존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다. 블룸버그의 보도를 통해 아마존이 2017년 인도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비즈니스 셀러 플렉스 확장의 전조였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아마존은 남의 물류센터를 제3의 판매자에게까지 제공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멀티 셀러 플렉스 - Multi Seller Flex'라고 부른다.
아마존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전략이다. 아마존이 굳이 내 돈 들여서 물류센터에 투자하지 않고도 물류 처리를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막대한 물류센터 투자 비용을 절약하면서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공간뿐만 아니라 협의하기에 따라 물류센터 운영 인력 또한 3자 파트너의 것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계절성, 이벤트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서 물동량의 변동 폭이 큰 이커머스 물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긴급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공간으로 물류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물류센터를 공유하는 판매자들도 얻을 것은 있다. 아마존이 제휴파트너에 제공하는 다양한 특전이 그것이다. 이를 배제하더라도 소비자에게 상품을 전달하기까지 소요되는 물리적인 프로세스를 감축할 수 있다. 종전 아마존 물류센터까지 상품을 입고하는 데 드는 물류비용은 입점사들이 부담했는데, 이를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p.143~144
아사리판 물류센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마켓컬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마켓컬리의 성장세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켓컬리는 2018년에서 2019년을 전후하여 시작된 신세계, 롯데, GS 등 오프라인 기반 유통 대기업의 새벽배송 대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새벽배송 경쟁사였던 우아한형제들의 새벽배송 '배민찬'이 2019년 2월 대기업의 시장 진입으로 인한 경쟁 격화를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한 상황에서도, 마켓컬리는 견고한 매출 성장세를 유지했다.
마켓컬리는 2021년 3월 기준으로 하루 9~10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고 있으며, 박스 기준으로는 22만 개 정도의 물동량을 처리했다. SSG닷컴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에서 처리하고 있는 물량은 2020년 말 기준 약 8만 건이고, 이 중 약 2만 건이 새벽배송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보다 많은 숫자를 마켓컬리가 처리하고 있다. 물론 새벽배송의 복병으로 등장한 쿠팡이 마켓컬리의 물동량을 추월했지만, 최소한 신세계와 롯데의 공세는 성공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켓컬리 2017~2020년 실적 현황
2017 | 2018 | 2019 | 2020 | |
매출 | 466억 원 | 1,571억 원 | 4,290억 원 | 9,530억 원 |
영업이익(손실) | -124억 원 | -337억 원 | -986억 원 | -1,163억 원 |
물론 마켓컬리의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비용이 가장 큰 문제다. 마켓컬리의 2020년 영업손실은 1,162억 원으로 2019년 영업손실(986억 원) 대비 176억 원 가까이 증가했다. 물론 2019년까지만 해도 매출 증가율과 거의 동일한 비율로 치솟던 영업손실에 브레이크를 걸긴 했지만,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적자는 마켓컬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마켓컬리의 적자 원인은 역시나 운반비, 포장비 등으로 대표되는 물류비용의 증가다. 어찌 보면 마켓컬리는 물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서비스 품질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식품 카테고리와 새벽배송에 특화한 작은 쿠팡처럼 보인다.
p.144~146
마켓컬리의 물류센터는 자동화와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받는다. 외부의 평가도 평가지만, 마켓컬리 내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2021년 김포 물류센터가 오픈하기 전에 마켓컬리 대부분의 물동량을 담당했던 장지동 물류센터에는 자동화 설비라고 할 만한 것이 피킹 업무의 효율을 지원하는 'DAS - Digital Assorting System'밖에 없었다. DAS는 등장한 지 20년도 더 된 시스템으로 도입 비용이 비싸지도 않고, 최신의 기술이 적용되지도 않았다. 'DPS - Digital Picking System'와 함께 중소 물류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DPS는 다른 말로 '총괄 피킹 시스템'으로 불린다. 피킹 작업자들이 주문 별로 할당된 물동량을 일괄적으로 바구니에 담아서 DAS가 설치된 지역(DAS존)으로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하여 올려보내는데 이 과정을 '총괄 피킹'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DAS존에서는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배송될 물동량을 미리 배치한 바구니에 노동자들이 분류한다. 총괄 피킹해서 올려보낸 바구니에 담긴 상품 바코드를 찍으면 해당 상품이 들어갈 수량이 DAS존에 배치된 바구니 아래 점멸 등을 통해 나타난다. 이때 해당 상품을 바구니에 다 넣고 점멸등을 누르면 완료 처리돼 다음 상품을 바구니에 넣을 수 있는 구조다.
이 분류작업은 굉장히 치열하다. 마켓컬리의 경우 오늘 오후 11시까지 들어온 고객 주문에 따라 상품들을 다음날 새벽 7시까지 배송해야 한다. 새벽배송 차량 출차 전이라는 한정된 마감 시간 안에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물류센터는 여유로울 시간이 없다. 노동자들이 진열대와 진열대 사이의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들 옆에선 작업을 독려하기 위한 현장 조장들의 닦달이 있는데, 실제 잡플래닛에서 마켓컬리를 검색해보면 아르바이트를 했던 작업자들의 처절한 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마켓컬리가 멋들어진 자동화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것은 아니다. 초기 마켓컬리에는 아쉽게도 돈이 없었다. SSG닷컴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에 설치된 자동화 셔틀 로봇 같은 것은 꿈도 못 꿨다. 마켓컬리는 2021년 쿠팡이 도입하기로 발표한 오토스토어의 그리드 로봇과 같은 시스템을 알아보기도 했다. 다만 비싸서 못 썼을 뿐이다. 2019년 만났던 강성주 마켓컬리 오퍼레이션 리더(2021년 기준 '오늘의 집' 오퍼레이션 헤드)는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이따금 물류 센터에 취재 방문한 기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유튜브에서 본 아마존 물류센터랑 마켓컬리 물류센터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에는 1,000억 원, 2,000억 원 들여서 대단한 물류센터를 지은 업체들이 많은데, 여긴 왜 이런가요?' 제 생각에 물류센터 자동화에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마켓컬리는 나름의 논리와 비전을 가지고 투자를 했고, 돌이켜보면 이게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우리가 똑똑해서 자동화 투자를 덜했다기 보단 1,000억 원, 2,000억 원씩 투자할 돈이 마켓컬리에 없었어요. 우리가 가진 돈으로 어떻게든 해야 했죠."
어찌 됐든 마켓컬리가 노동집약적인 DAS 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새벽배송 마감 시간인 오후 11시 즈음해서 새벽배송 주문의 약 30%가 휘몰아쳤기 떄문이다. 여기선 로봇을 쓰기보다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로봇의 생산성은 어느 정도 선에서 고정돼 있는데 사람은 이와 달리 규모만 미리 확충해두면 비교적 유연한 생산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p.148
실제 마켓컬리의 서비스 정확도는 98~99%에 달한다. 부족한 1~2%에는 폐기율, 미출, 오출, 배송 지연(오후 7시 이후 배송) 등이 영향을 줬다. 완벽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오히려 멋들어진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오카도'와 같은 업체들의 배송 지연율보다 마켓컬리의 수치가 더욱 좋게 나타난다. 내가 만난 마켓컬리 실무자들은 현직자, 퇴사자를 막론하고 그들의 원시 물류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p.149~152
마종수 교수가 '첨단 물류센터는 필요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업체가 마켓컬리였다. 그는 마켓컬리가 대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첨단 자동화 물류센터를 구축했다면 'CAP - EXCapital expenditures (미래 이윤을 위해 투자한 비용)'를 못 버티고 진즉에 망했을 것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마켓컬리가 성장하던 시기 롯데마트가 새벽배송의 시장성을 타진했는데,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게임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 전에 롯데마트가 매장 인프라를 활용한 당일배송, 시장지정배송망을 운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새벽배송에 맞추기 위한 포장비, 배송비가 답이 안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켓컬리는 운영 최적화로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더 나아가 원시 물류센터로 첨단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 대기업 이상의 생산성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1,000억 원을 들여 자동화 설비를 구축한 롯데쇼핑의 김포 물류센터는 하루 최대 1만 건의 물량을 배송했다. 그런데 마켓컬리는 원시 물류센터로 그보다 훨씬 많은 9~10만 건의 주문을 처리했다. 마 교수는 이런 마켓컬리의 운영 방법을 기꺼이 존경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물론 단순히 물류센터 운영 하나만으로 마켓컬리의 성과를 설명하긴 어렵다. 마 교수는 마켓컬리의 운영 효율은 공급망 전체를 바라보는 'SCM'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물류센터 안에서 운영 효율을 도모해 생산성을 늘리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류센터 앞단에서 마케팅을 통해 고객 매출을 만들고, 물류센터 뒷단에서 수요예측을 통해서 적정량의 재고를 예측하여 폐기율을 줄이는 등의 관리 노하우가 종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기반 역량은 결국 데이터다. 물류센터 앞단에서는 '다이나믹 프라이싱'에서 하나의 예를 찾을 수 있다. 다이나믹 프라이싱을 통해 유통기업은 구매 의향이 높지 않은 고객에게 마진을 희생해서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반대로 구매 의향이 높은 고객에게는 조금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이는 유통기업이 서로 다른 고객 데이터를 알고 타깃할 수 있기에 가능한 방법론이다. 궁극적으로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물류센터 뒷 단에서도 SCM 관점의 예시는 찾을 수 있다. 오랫동안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유통기업이 두려워했던 것은 폐기다. 마 교수에 따르면 롯데마트만 하더라도 폐기율은 4%가 넘었다고 한다. 이는 1년에 1,000억 원이 넘는 상품이 버려졌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그러나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에 따르면, 창업 초기부터 2021년 3월까지 여전히 1% 이내로 폐기율을 관리하고 있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어떤 상품 구간에서 매출이 나오는지 파악해서 발주량을 조정한 것이 폐기율 관리의 묘수다. 적량 발주도 중요하지만, 혹여 발주해 둔 상품이 안 팔릴 것 같다면 상품을 할인하고 쿠폰을 발행해서라도 폐기율을 줄이고 매출을 끌어올리는 운영의 묘를 발휘한다. 여기서 앞서 이야기한 다이나믹 프라이싱이 연결된다.
물론 이러한 데이터 기반 공급망 관리는 아무나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소비자와 맞닿은 앞단을 확보해야 한다. 고객 데이터가 결국 뒷단의 운영 효율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켓컬리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같이 고객 접점의 데이터를 대량 확보한 기업들이 장차 물류 운영에서도 높은 효율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마켓컬리의 원시 물류센터는 이제 옛날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마켓컬리는 2021년 2월 오픈한 김포 물류센터에 약 300억 원을 투자하여 GTP 방식의 자동화 시스템 'QPS'를 도입했다. 장지동에 도입된 DAS와 비교하자면 물류 현장 작업자가 상품을 픽업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자동화 설비 도입으로 인해 종전바다 20% 적은 숫자의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같은 주문 건수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현장 노동자들의 피로도 종전 DAS 방식에 비해서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마켓컬리 물류센터에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영역의 마켓컬리 물류센터 업무에서 사람은 남아있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한 물류센터라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포 물류센터 오픈 이후에도 마켓컬리 물류센터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마켓컬리 물류센터엔 여전히 김슬아 대표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p.158~160
기술과 설비 측면에서는 일본 물류센텅가 우리나라보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사실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문화라고 해야 할까. 물류 현장을 대하는 자세에서 본다면 일본 물류센터에선 한국에 없는 것들이 보였다.
학창 시절 배웠던 토요타의 생산관리 시스템 '3정 5S'가 기억난다. 사실 말이 시스템이지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작업장을 열심히 치우고, 물건을 제 위치에 정리하는 관념 규범에 가깝다. 5S 중 '정리(Seiri)', '정돈(Seiton)', '청소(Seiso)', '청결(Seiketsu)', 네 가지 요소는 모두 '깔끔함'이라는 키워드와 관련돼 있다. 하나 남은 S인 '습관화(SHitsuke)' 또한 언급한 4개의 요소를 지킬 수 있는 현장 규율을 만들고, 작업자의 습관에 내재화시키자는 내용이다. 심지어 3정(정품, 정량, 정위치)은 5S의 하나인 '정돈'을 지원하는 표준화 방법론이다. 요컨대 토요타의 3정 5S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깔끔함의 습관화'라 해도 과언 아니다.
이런 깔끔함에 집착하는 문화는 내가 만난 일본의 오래된 물류센터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깔끔함은 그 자체로 작업자의 만족도, 근무 환경을 개선시키는 요인이 된다. 전기 설비에 쌓인 먼지 등으로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화재 가능성도 크게 줄여준다. 더 기대해본다면 3D 업종의 대표주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물류 산업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깔끔함은 현장 근로자의 사기뿐만 아니라 실제 생산성에도 영향을 준다. 큰 이벤트가 오기 전에 제때 제 위치에 물건을 위치시키는 것만으로도 물류센터의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는 무용담은 한국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동남아 최대 마켓플레이스 쇼피의 한국 물류 파트너인 풀필먼트업체 리브 이명범 대표의 이야기다.
"마켓플레이스에서는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여러 이벤트를 진행하죠. 물류업체 입장에선 이벤트 기간에 맞춰 물동량 폭증이 예측되는 것인데요. 우리는 이벤트가 열린다고 하면 그 전에 창고 재고를 최대한 정리합니다. 있어야 할 공간에 재고가 있도록 최대한 정리 정돈하는 거죠. 만약 이벤트가 시작됐는데 공간 배분이 비효율적이면 생산성에 큰 악영향을 줍니다. 피킹을 해야 할 때 피킹이 안 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죠. 그런 요소가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 준비를 통해 제로를 만들어놓습니다. 일종의 최적화입니다. 재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도록 정리만 사전에 잘해도 30~40% 이상의 생산성 차이를 벌리는 것 같습니다."
p.163
2021년 9월 기준 1,600만의 MAU. 쇼핑 앱 기준으로 쿠팡에 이어 국내 2위의 트래픽. 중고거래 앱 중에서 1위. 2020년 기준 하루 평균 앱 체류시간 16분, 월평균 방문 빈도 20일. 국내 쇼핑 앱 중에서 1위.
2021년 7월 기준 각 지역에 거주하는 20~64세 인구수 대비 당근마켓의 이용자 비중, 서울 강남구 106.5%, 세종시 104.1%, 경기 하남 98.9%, 경기 김포 94.9%, 부산 강서구 93.8%, 제주시 92.2%, 서귀포시 91.3%, 그야말로 압도적인 침투율, 당근마켓을 따라다니는 여러 숫자들입니다.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입니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앱이지만 중고거래를 하려고 사업을 시작한 업체가 아닙니다. 하고자 하는 것은 지역 기반 커뮤니티입니다. 중고거래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죠. 그래서 당근마켓이 집중해서 보는 수치도 쇼핑 앱에서 주로 살펴보는 '거래액'이나 'MAU'가 아닙니다. 커뮤니티 앱에서 주로 살펴보는 '체류 시간'과 '방문 빈도'입니다.
p.164~166
당근마켓은 물류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류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아! 2021년 시범 테스트를 시작한 '당근배송' 서비스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당근배송 이야기를 여기서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당근배송 이전에도 당근마켓에는 물류가 있었습니다.
당근마켓은 '물류 없는 물류'를 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당근마켓에는 물류는 없지만 공간과 이동, 그리고 연결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녹아 있습니다. 상품을 보관할 물류센터요? 집에 남는 유휴 공간, 자택 선반과 발코니가 창고가 됩니다. 상품을 배송하는 택배기사요? 우리가 배송기사가 됩니다. 우리 이웃이 픽업 기사가 됩니다. 우리가 이동하는 시간과 경로에 새로운 가치가 녹아듭니다.
당근마켓 가치사슬 안에는 보관도, 픽업도, 배송도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누구도 물류비를 받는 이가 없습니다. 받을 생각조차 안 합니다. 당근마켓에서 픽업 거래를 물류비 4,000원을 청구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보관료 평당 5만 원을 청구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사람들은 스스로 보관과 픽업, 배송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합니다. 자가용 기름값이든, 대중 교통 요금이든 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돈을 받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당근마켓에서 혼자 옮기기에 버거운 부피가 큰 상품을 구매한다면 앱상에서 자동으로 지역에 있는 용달 차주를 추천해주는 알람이 뜹니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건 우리의 몫입니다. 연결된 용달차주 또한 우리가 모르는 대형물류업체가 아닙니다. 지역의 이웃입니다. 화물운송업계에 만연한 다단계 주선이 아닙니다. 이웃과의 직거래입니다.
당근마켓은 새벽배송과 당일배송을 대체합니다. 20~64세 제주도민의 90% 이상이 당근마켓을 이용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마트 당일배송이나 온라인 새벽배송으로 살 것을 당근마켓에서 구매하고 나눕니다. 10개 들이 스팸 선물 세트 들어오면 먹을 만큼 먹고 나머지는 당근마켓에 판매합니다. 산지에서 바로 캐낸 전복, 관광객이 낚시로 잡은 다금바리를 지역 주민과 함께 나눕니다. 상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친해져서 카톡방이 만들어집니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습니다. 받을 생각도 없습니다. 2021년 10월 당근마켓의 유일한 수익모델은 지역 기반 광고입니다. 심지어 지역 특색이 없으면 당근마켓 광고를 이용하지도 못합니다. 오프라인 거점이 없는 순수 온라인업체는 당근마켓에 광고를 못 합니다. 돈을 준다는 이들도 쳐내니 앞으로 당근마켓이 어떻게 돈을 벌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돈보다는 커뮤니티에 가치를 둔 당근마켓의 시도입니다.
당근마켓에는 공유경제의 궁극체가 보입니다. 공유경제라는 키워드를 뒤에 업은 여럿 플랫폼들이 위기에 직면한 이유는 플랫폼에서 일하는 노동자 전업화되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유휴 공간과 유휴 경로의 공유가 아니라 돈을 위해 모든 시간을 투하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제도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또 다른 택시가, 또 다른 화물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기존 제도권에 있던 이들과의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습니다.
공유경제가 망가진 이유는 공유가 추구하는 가치는 사라지고 경제만 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공유경제는 공짜에서 나온다는 미친 생각을 해봅니다. 공짜라면 전업화된 업자가 들어오기 힘듭니다. 공짜라면 경제는 사라지고 공유의 가치가 극대화 됩니다.
당근마켓 생태계 안에는 여러 공짜 물류가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것을 물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업자라면 울분을 토했을 공짜 물류를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물류비 제로를 만들 파괴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힌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p.173~175
쿠팡은 여러 우여곡적을 뚫고 수십만 명의 배송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쿠팡플렉스를 활성화시켰다. 쿠팡플렉스는 쿠팡에 있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쏟아지는 물동량을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긴급배송 네트워크'가 됐다. 이커머스 수요의 급증을 일반인들에게 할당하여 고정비를 절감했다.
쿠팡에 따르면 2021년 7월 기준 누적 수십만 명 이상의 일반인들이 쿠팡플렉스 배송기사에 참여했다. 사실 이 숫자는 과소 포장된 듯하다. 2018년 12월 쿠팡이 밝힌 쿠팡플렉스 누적 배송 건수가 30만 건이다. 2019년 1월에 쿠팡 측에 확인한 결과, 하루 평균 4,000명 이상의 배송인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대충 계산해 봐도 2019년 연간 활동 쿠팡플렉스 배송인력이 146만 명은 넘는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이후로 더욱 늘어났을 공급자의 유입을 감안한다면 그 숫자는 더 커질 것이다.
더군다나 쿠팡플렉스는 변동비의 효율까지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쿠팡플렉스 초기만 하더라도 건당 1,000~3,000원 상당의 높은 건 당 비용을 지급하여 배송인을 모집했는데, 이 수치가 2021년 10월 기준으로 보면 건당 700~8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받는 건당 수수료가 대략 이 정도다. 더군다나 쿠팡플렉스는 택배처럼 익일배송 서비스만 처리하지 않는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현장에도 투입된다. 쿠팡플렉스는 이러한 빠른배송 건들도 1,000원 안팎의 비용으로 처리한다. 기존 시장에 존재하던 단가표가 뒤흔들릴 정도의 파급이 여기서 나온다.
예를 들어 새벽배송 같은 경우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배송인에게 270만 원 정도의 월급을 지급한다. 거기에 일정 배송 건수를 초과하면 건당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하는 방식이 공식화됐다. 이를 건당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2,000~2,500원 수준이다. 그런데 쿠팡은 새벽배송을 쿠팡플렉스 배송인을 통해 건당 1,000~1,200원에 처리하고 있다.
당일배송 영역으로 넘어가면 더하다. 1시간 이내 즉시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대행기사는 건당 3,000~4,000원의 돈을 받는 게 시장 가격이다. 2~3시간을 초과하는 당일배송 영역에서도, 많이 내려간 시장 가격을 고려하더라도 3,000~4,000원 정도를 받는다. 그런데 쿠팡은 이를 건당 1,000원 내외로 처리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높은 비용을 들여 저온 새벽배송 차량을 수급하여 물류를 처리하고 있는 마켓컬리나 이마트 물류 담당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망할 것 같았던 비즈니스 모델 쿠팡플렉스가 업계 몇몇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배경이다.
물론 쿠팡 입장에서는 배송기사에게 지급하는 비용이 전부는 아니다. 신선식품 새벽배송에 있어선 냉매와 같은 포장 부자재에 많은 돈을 썼다. 빠른배송을 만들 수 있는 기반 인프라 마련에도 막대한 투자비와 운영비용을 소모했다. 그렇기에 쿠팡플렉스를 단순히 배송 단가의 효율로만 판단할 수 없다. 쿠팡이 종전 투자했던 여러 물류 인프라를 조립하여 서비스를 최적화시켰기 때문이다.
p.180
2020년 8월 GS리테일이 '우딜(우리동네 딜리버리)'을 시작했고, 2021년 6월 에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T 퀵'을 공식 론칭했다. 모두 일반인 기반 배송망을 활용한다. '디버', '오늘의 픽업', '퀵커스'와 같은 공유 배송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도 규모를 만들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플렉스 배송을 검토하고 있는 택배업체가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2021년 7월 배민커넥트 앱을 이용하는 월간 활성 사용자 숫자 MAU는 20만 명을 넘었다. 마찬가지로 플렉스 배송으로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 앱의 2021년 7월 MAU는 49만 명을 넘겼다. 그야말로 미친 공유의 시대다.
p.182~184
세계적으로는 물류와 여객의 융합은 당연시 되고 있다. 실제 북미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 중국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디디', 동남아시아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그랩'까지. 이 모든 플랫폼들은 여객뿐만 아니라 화물운송, 라스트마일 물류를 아우르는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지니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택시 물류의 허용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20년 4월 택시의 음식 배달을 9월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2020년 10월부터는 한시적인 허용이 전면 허용으로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 독일과 미국 뉴욕시에서도 택시 물류를 허용했다. 코로나19 이후 택시기사의 매출 감소를 화물운송을 허용해주는 방법으로 일부 보전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우리나라도 현실을 고려하여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게 전경련의 주장이었다.
전경련의 주장이라는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왜 글로벌 모빌리티 플랫폼들이 여객을 넘어 화물을 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화물과 여객은 한창 바쁜 시간과 한가한 유휴 시간의 차이가 있다. 예컨대 택시는 오전 출근 시간과 저녁 퇴근 시간, 술자리가 끝나는 오후 10시 이후 심야에 수요가 몰린다.
물류의 예를 들어보면 음식 배달은 기본적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오전 11시~오후 1시 사이 점심 식사 시간과 오후 6시~8시 사이 저녁 식사 시간에 맞물려 주문이 몰린다. 택시가 한창 바쁜 오전 시간에는 오히려 주문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음식 배달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류 운송 수단이 화물의 특성에 따라 저마다의 유휴 시간과 피크 시간을 갖는다.
여러 산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동의 유휴 시간을 교차해서 공급이 부족한 다른 산업의 피크 타임에 투입하면 어떨까. 예컨대 한창 배달 수요가 몰리는 점심 식사 시간은 택시기사의 유휴 시간이다. 공급이 부족한 배달 현장에 택시기사를 투입하는 그림이 가능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음식 배달 수요를 코로나19로 승객이 감소하여 시름이 깊어진 택시를 공급자로 투입해 처리할 수 있다.
p.211
택배 없는 날은 나비효과처럼 또 다른 노동 현장에도 영향을 줬다. 물량이 잔류되고 제때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커머스 화주사, 특히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을 다루는 화주사에게는 치명적이다. 이커머스 화주사 CS 현장에서는 택배가 언제 오는지, 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고객 응대에 대응하고자 많은 인원들이 투입됐다.
이커머스 물류 현장도 바빠졌다. 집화 시점까지 감안하면 택배 없는 날 하루 전인 8월 13일(목)부터 16일(일)까지 쌓이는 고객 주문 물량을 제때 피킹하고 포장하는 업무를 이들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택배 현장과 마찬가지로 이커머스 물류센터 또한 하루 한계 처리량을 넘어서는 고객 주문이 들어온다면 물량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잔류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커머스업체 물류팀들이 택배기사들이 현장에 복귀하는 17일에 맞춰서 임시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해서 미리 잔류된 물량을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택배 없는 날은 힘들게 일하던 택배기사에게 반가운 휴일이다. 이 또한 분명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휴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동이 있다. 택배 없는 날의 좋은 의미로 인해 쉽사리 밖에 고민을 꺼내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진정 택배 없는 날의 의미를 찾는다면, 이런 숨은 노동까지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p.222
가치사슬은 어떤 기업이 혼자서 개선하지 못한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외부 파트너들이 연결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세계 최대 테크기업 아마존도, 세계 최대 물류기업 DHL도, 국내 최대 이커머스기업 쿠팡도, 국내 최대 종합물류기업 CJ대한통운도 혼자서 움직이진 않는다. 나 또한 연결을 통해 콘텐츠를 만든다. 현장을 누비는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갈무리하여 독자에게 전한다. 연결을 통해 가치를 확장한다.
p.231~232
네이버는 물류 품질 문제의 개선책을 직접 물류가 아닌 플랫폼스러운 방법에서 찾았다. 배송 단계에서 발생하는 고객 불만을 '정책'과 '기술'로 해결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고객 주문 이후 발송이 일정 기간 이상 늦어지는 판매자에게는 패널티를 주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예로 입점 판매자의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당 판매자의 예상 배송일을 예측해주는 서비스 '배송 시뮬레이터'를 2019년 2월 론칭하여 스마트스토어에 적용하기도 했다. 이는 물류가시성을 기술을 통해 해결한 방법이었고, 후에 11번가가 동일한 개념의 기술을 자사 플랫폼에 적용하기도 한다.
p.232~235
네이버 또한 물류 서비스를 구축함에 있어 '연결'에 집중했다. 네이버는 'NFA 플랫폼', '머천트 솔루션'과 같은 기술을 판매자와 공급자에게 제공하면서, 직접 물류는 하지 않는다. 물류 역량을 갖춘 여러 파트너가 플랫폼에 연결돼 물류를 수행한다.
예컨대 네이버 장보기에 입점한 동네 시장과 같이 자체 물류 역량이 부족한 파트너가 있다면, 역량을 갖춘 물류업체를 연결하여 서비스를 완성한다. 실제로 네이버 장보기는 메쉬코리아, 퀵커스, 이마트, 홈플러스 등 지역별로 서로 다른 물류 역량을 갖춘 업체들이 연결돼 만들어졌다.
물론 느슨한 제휴만으로는 네이버와 파트너 사이에 긴밀한 협력이 어려울 수 있다. 일례로 네이버에 입점한 업체들은 네이버에서만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앞서 '장보기'를 예로 들었는데, 네이버의 경쟁 이커머스 플랫폼 11번가 역시 홈플러스, 이마트, GS프레시 등과 제휴하여 장보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두 네이버와도 연결된 파트너들이다. 더욱이 이들은 각자 자사몰을 운영하고 있는 유통업체이기도 하다. 혹여 물량 폭증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 운영 우선순위에서 제휴 채널인 네이버의 물동량을 뒤로 미룰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느슨한 제휴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버가 선택한 방법은 자본을 섞은 '혈맹'이다. 돈을 섞으면 투자받은 기업의 성장이 투자한 기업의 직접적인 이익으로 연결된다. 서로를 조금이라도 우선순위에 놓고 움직이는 동인이 만들어진다.
네이버는 2020년 3월 물류센터 운영사 위킵 투자 발표를 시작으로 두손컴퍼니, 딜리셔스(신상마켓, 딜리버드), 파스토, 아워박스, 브랜디(아비드이앤에프), 인성데이타(생각대로), 하우저 등의 물류업체에 전략적 투자를 이어갔다. 네이버가 초기 투자로 취득한 물류업체의 지분율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각 사당 10% 내외다. 2021년에는 종전 투자했던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 또한 산발적으로 진행하는 모습이 관측된다.
업체명 | 운영 서비스 | 투자 규모 | 투자 발표 시점 |
메쉬코리아 | 배달대행 플랫폼 새벽배송, MFC 운영 |
240억 원(단독) | 2017년 7월 |
위킵 | 물류센터 운영 | 55억 원(네이버 일부 참여) | 2020년 3월 |
두손컴퍼니 | 물류센터 운영 | 64억 5,000만 원 | 2020년 3월 |
딜리셔스 | 동대문 패션 물류 및 B2B 도매 플랫폼 | 75억 원(단독) | 2020년 3월 |
파스토(당시 FSS) | 물류센터 운영 | 비공개(네이버 일부 참여) | 2020년 5월 |
아워박스 | 저온 물류센터 운영 | 100억 원(네이버 일부 참여) | 2020년 8월 |
브랜디 | 동대문 패션 물류 및 이커머스 플랫폼 | 100억 원(단독) | 2020년 9월 |
인성데이타 | 퀵서비스 및 배달대행 프로그램 | 400억 원 | 2020년 11월 |
하우저 | 가구 전문 설치 물류 | 140억 원(네이버 일부 참여) | 2021년 4월 |
브랜디 | 동대문 패션 물류 및 이커머스 플랫폼 | 200억 원 추가 투자(단독) | 2021년 8월 |
두핸즈(당시 두손컴퍼니) | 물류센터 운영 | 216억 원 추가 투자 (네이버 일부 참여) |
2021년 9월 |
네이버가 작은 기업에만 돈을 섞은 것은 아니다.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를 보유한 기업과도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수천억 원 단위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네이버는 2021년 10월 CJ대한통운과 3,0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발표했다.
업체명 | 운영 물류 서비스 | 지분 교환 규모 및 네이버 확보 지분율 |
발표 시점 |
CJ대한통운 | 택배, 글로벌 포워딩, W&D, 컨설팅 등 | 3,000억(7.85%) | 2020년 10월 |
신세계그룹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
저온 물류센터 운영 및 MFC, 배송 네트워크 | 2,500억 원(이마트 2.96%, 신세계인터내셔날 6.85%) | 2021년 3월 |
카페24 | 물류 자회사 패스트박스의 국내외 풀필먼트 | 1,300억(14.99%) | 2021년 8월 |
2021년 3월에는 신세계그룹(이마트, 신세계백화점)과 2,500억 원(이마트 1,500억 원, 신세계백화점 1,0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체결했다. 이어 2021년 8월에는 이커머스 플랫폼 카페24와 1,3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했다.
물론 여기서 신세계그룹과 카페24는 물류회사가 아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물류망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신선식품 처리가 가능한 이커머스 물류센터와 전국 매장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도심 물류센터(Picking & Packing 센터)를 보유, 운영하고 있다. 카페24 역시 물류 자회사 패스트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패스트박스는 카페24를 통해 자사몰을 구축한 업체를 대상으로 국내, 글로벌 이커머스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이 업체들의 물류 역량도 어떤 형태로든 네이버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p.251-252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2021년 3월 주주 서한을 통해 네이버 커머스의 핵심 비즈니스 키워드 중 하나로 '토탈 머천트 솔루션'을 꼽았다. 네이버는 판매자들이 온라인에서 장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챙기는 기술을 머천트 솔루션을 통해 확보한다 했다. 네이버는 머천트 솔루션 중에서 비즈니스 효용이 큰 솔루션에 대한 수익화를 검토한다. 기존 광고와 판매 건당 수수료 중심의 커머스 비즈니스 모델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솔루션 기반 구독 모델'론칭 계획을 발표했다. 무료 쇼핑몰 구축을 통해 판을 깔고, 부가 서비스를 확장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이 또한 카페24의 수익모델이다.
이쯤되면 카페24가 네이버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1위 이커머스 플랫폼의 본진 침공이라니. 실제로 카페24 내부에서는 네이버를 강하게 의식하는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p.259
2021년 9월, 리테일 데이터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놀랄만한 숫자를 발표했다. 2021년 8월 기준 카테고리킬러 커머스, 다른 말로 버티컬 커머스 플랫폼들이 메이저 이커머스 플랫폼을 트래픽으로 찍어 눌렀다.
인테리어 버티컬 커머스 '오늘의 집'과 패션 커머스 '에이블리'가 티몬과 위메프의 트래픽을 앞질렀다. 패션 버티컬 커머스 '지그재그'가 GS샵과 옥션의 트래픽을 눌렀다. 불과 반년 전인 2021년 1월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버티컬 커머스 업체들이 모든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플랫폼의 트래픽 아래에 깔렸던 것을 생각하면 대조적인 변화다.
10~20대 젊은 여성 세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숫자를 한정하여 본다면 결과는 더욱 파괴적이다. 에이블리는 2021년 8월 기준 10대 여성 사용자 트래픽에서 절대 강자 쿠팡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쿠팡에 뒤를 지그재그, 브랜디, 스타일쉐어의 트래픽이 뒤를 따랐다. 쿠팡을 제외하면 모든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이커머스 플랫폼은 아예 트래픽 순위권에 보이질 않는다.
p.261-262
동대문 가치사슬과 연결되는 물류망은 '삼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만든다. 동대문 도매상가 중간중간 위치한 오피스텔 사무실은 긴급 재고, 원부자재 공급을 위한 창고로 사용된다. 이 창고에 보관된 재고, 봉제공장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동대문 도매상가 앞까지 각양각색의 운송 수단이 옮긴다. 이렇게 옮긴 상품을 '지게삼촌'이라 불리는 지게꾼들이 도매상가 안까지 나른다.
소매상에 최종 고객 주문이 들어온 이후에는 '사입삼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대봉을 들고 동대문 도매상가를 돌면서 상품을 픽업한다. 이렇게 픽업한 상품을 '화물삼촌'이라 불리는 이들이 트럭에 가득 실어 패션 쇼핑몰의 물류센터나 매장까지 배송한다. 쇼핑몰 물류센터에서는 픽업한 상품을 분류, 검수, 재포장하고 다음날 상품 택배 출고를 마친다. 혹여 검수 과정에서 오배송이 확인된다면 이 상품을 도매상으로 반품하는 역물류도 사입삼촌이 맡아 한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동대문 쇼핑몰 판매자들은 '재고 없는 장사'를 할 수 있다. 도매상에서 상품 샘플을 구매하거나 받아서 촬영하여 쇼핑몰에 올리고 고객 주문이 들어온 후에야 실제 상품을 사입한다. 혹여 사입하고 안 팔릴 수도 있는 재고 위험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물론 '주문 후 사입'은 배송 속도를 통제할 수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동대문의 패스트 패션 공급망이 해결해줄 수 있다. 오늘 고객 주문을 받고, 주문 당일 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사입하고, 다음날 택배 출고를 마쳐 허브앤스포크 프로세스를 거쳐 고객에게 전달하는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 주문일 기준 D+2일의 속도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이 정도면 고객 주문일 기준 D+1일 기준으로 움직이는 택배와 비교하여 그리 많이 늦는 것도 아니다.
p.267-268
요컨대 에이블리의 풀필먼트는 물류 서비스가 아니다. 풀필먼트의 개념을 물류로만 본 것이 아니라 그 뒷단과 앞단인 '상품 소싱'과 '마케팅'까지 확장하여 연결했다. 입점 판매자에게 상품 소싱을 위한 기반 인프라를 제공한다. 판매자에게 수많은 소비자의 트래픽이 발생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여기에 하나 더 얹히자면 '개인화 추천'이다. 강석훈 대표는 영화 추천 서비스 왓챠의 공동창업자 출신이다. 이때 얻은 콘텐츠 추천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에이블리에 녹여낸 것이다. 그래서 에이블리 풀필먼트는 단순히 물류만 대행하지 않는다. 물류뿐만 아니라 판매자의 귀찮음이 될 수 있는 고객 응대, 판매 이후의 반품 문의와 같은 CS까지 대행한다.
에이블리 풀필먼트의 수익모델도 남다르다. 3PL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필먼트업체라면 마땅히 받을 상품 보관료, 출고 건당 출고비, 임가공비를 에이블리는 받지 않는다. 오히려 에이블리 풀필먼트는 입점 판매자에게 돈을 준다. 상품 판매가의 약 5~10% 가량 되는 순이익을 판매자에게 정산해준다. 남은 90~95%에서 운영비를 제외한 금액이 에이블리의 이익이 된다. 애초에 에이블리의 풀필먼트는 고객이 되는 개인 판매자에게 비용 절감 관점에서 다가가지 않는다. 재고 리스크 없이 매출 상승을 이끄는 풀필먼트로 포지셔닝한다.
p.270-271
지그재그의 시작은 이미 존재하는 동대문 패션 기반 쇼핑몰들의 상품 데이터를 크롤링해서 앱에 모아 보도록 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지그재그 플랫폼의 트래픽이 입소문을 타면서 쇼핑몰들이 알아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 때문인지 지그재그는 입점 쇼핑몰로부터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주력 수익모델은 2017년 10월 시작한 광고다.
그리고 지그재그에 몰려온 쇼핑몰들은 개인 판매자와 다르다. 2000년대 초 소호몰 열풍부터 현재까지 살아남은 대형화된 패션몰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사입부터 고객 발송까지 가능한 물류망을 구축한 경우가 많다. 심지어 봉제공장까지 가지고 있어서 제조까지 가치사슬을 확장한 쇼핑몰들도 있다. 지그재그는 '풀필먼트 서비스'를 론칭한다고 이미 기간망이 존재하는 입점 쇼핑몰들이 쉽게 지그재그 물류 서비스로 바꾸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p.272-273
지그재그의 풀필먼트가 공식화된 것은 2021년 3월이다. 물론 같은 풀필먼트지만 지그재그의 방법론은 에이블리나 브랜디와는 사뭇 다르다. 지그재그가 직접 물류를 하지 않는다. 잘하는 사업자의 물류를 연결했다. 지그재그가 택한 물류 파트너는 네이버 NFA 공식 파트너사이기도 한 CJ대한통운이었다. CJ대한통운과의 협력을 통해 쿠팡 로켓배송과 동일한 자정까지 들어오는 고객 주문에 대해 내일 배송을 해주는 타임라인을 만들었다. 네이버 브랜드스토어 물동량을 처리하던 CJ대한통운 곤지암 물류센터에 지그재그의 물량이 밀려왔다.
지그재그의 풀필먼트 서비스는 2021년 3월 베타 서비스 론칭 당시 '제트온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비자 관점에서 봤을 때 단독 상품을 큐레이션해서 노출해주는 서비스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지그재그가 입점 쇼핑몰 중 제트온리에 입점할 쇼핑몰을 추려 그들이 보유한 자체 디자인 상품만을 제트온리에 선보였다.
제트온리는 2021년 6월 '직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되며 공식 출시했다. 직진배송으로 이름이 바뀌고부터는 기존 쇼핑몰의 자체 제작 상품에만 한정했던 서비스를 동대문 사입 상품까지 확대했다. 지그재그는 약 3개월간 베타서비스를 통해 빠른배송에 대한 고객 만족도를 직접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보다 다양한 상품으로 품목 확대를 원하는 고객과 판매자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빠른 상품 카테고리 확장의 이유를 밝혔다.
지그재그가 빠른 물류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도 재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그재그가 브랜디의 '오늘출발'처럼 판매할 상품을 동대문 도매상에서 직매입한 것은 아니다. 직전배송에 입점한 3자 패션 쇼핑몰들이 재고를 준비하고, 책임진다. 지그재그 입장에서는 혹여 안 팔리고 남을 수도 있는 재고관리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직진배송 입점 판매자에게는 기존에 없었던 재고 책임이 추가된다.
당연히 지그재그에겐 입점 쇼핑몰의 재고 부담에도 불구하고 직진배송으로 유인할 수 있는 당근이 필요했다. 지그재그가 쇼핑몰들에 내건 혜택은 '트래픽'이었다. '직진배송 전용관'은 지그재그 앱 안에서도 곧바로 눈에 띄는 좋은 위치에 노출됐다. 이는 바꿔말하면 직진배송 참여가 입점 쇼핑몰의 매출을 촉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빠른 물류만을 가지고 직진배송으로 쇼핑몰을 유인한 것이 아니라, 트래픽이라는 부가가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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