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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74

0년 p.23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라는 이름이 붙여진 파울 클레의 그림이 한 폭 있다.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는 듯 그려져 있다. 그 천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이것이 '역사의 천사'가 지닌 모습이리라. 그의 얼굴은 과거를 향하고 있다. 우리가 지각하고 있는 잇따른 사건들이 형체를 드러낸 곳에서, 그는 잔해가 잔해를 쉴새없이 덮으며 그의 발 앞에 내팽겨쳐지는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무르고 싶고, 죽은 자들을 깨우고, 또한 산산이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 다시 짜 맞추고 싶다. 하지만 폭풍이 천사가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불어와 그 천사는 날개를 옴짝달짝할.. 2024. 3. 10.
히틀러 I p.9 히틀러와 나치즘이 독일 사회에 잘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고 방식은 다르지만 나치에게 당한 수천만 명의 희생자에게도 당연히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히틀러의 유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 유산에는 어떻게 히틀러가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도 들어간다. 우리는 오직 역사를 통해서만 미래를 위해서 배울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지배했던 시대보다 역사에서 더 중요한 시기는 없다. 2024. 1. 21.
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p.7~8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음 말이다. "누구나 모든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p.8 아우구스투스는 보고 싶은 현실 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현실만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자신만은 보고 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직시하도록 명심하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아우구스투스가 평생 동안 치른 '전쟁'이 아니었을까 나는 생각한다. p.36~37 옥타비아누스는 마지막까지 안토니우스를 따른 로마인조차 용서하고 공직 복귀를 인정했다. 폴리오도 일단 떠났던 공직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터였다. 나이도 46세, 아직 훌륭한 현역이다. 그런데도 폴리오는 카이사르가 준 원로원 의.. 2024. 1. 21.
물류는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p.23 고대 지중해에 식민지가 건설된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막스 베버는 고대 경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사람들이 먼 곳에서 수입된 곡물에 의존했다'는 점을 들었는데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카르타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스와 로마는 곡물이 부족해 다른 지역을 침략했다. 그 중에서도 고대 로마는 많은 노예를 부렸는데, 특히 속주의 대농장(라티푼디움)에서 노예의 노동력을 많이 활용했다. 요컨대 지중해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 등의 저렴한 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노예가 없었다면 그들의 경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중해 경제 성장의 큰 한계였다. 또 그리스가 정치적으로 대제국을 형성하지 않고 상인의 상업 네트워크를 이.. 2024. 1. 1.
한국인의 탄생 밑줄긋기 p.22~23 현재까지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한국 문명은 세계 최초로 조직적이고 인공적인 쌀농사에 성공했다. 즉 곡물로 개량된 쌀 그러니까 우리가 쌀이라고 부르는 그 작물은 한반도가 원산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쌀은 단위면적당 인구부양력이 가장 높은 작물이다. 어째서 쌀농사를 경험한 모든 국가, 모든 문명 중에서 가장 척박한 한반도가 처음 쌀농사에 성공했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거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장 척박하기 때문에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쌀농사에 성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단연코 전 세계에서 쌀농사를 짓기에 가장 어려운 지역이다. 바로 그 때문에 쌀농사가 전 세계 퍼졌다고 보는 편이 논리적이다. 가장 어려운.. 2023. 11. 11.
냉전의 지구사 p.20~22 언어에 민감한 한 친구는 이 책에서 선택한 개념과 다루는 소재가 얼마나 시대 의존적인지를 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요컨대 '냉전'과 '제3세계'는 모두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신조어로서 여러 목적과 문화적 배경에서 활용되었으며,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패권적 담론의 일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친구의 말이 맞다. 이 두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 용어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사용자가 20세기의 마지막 대립에서 어느 편에 속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냉전'이라는 말은 조지 오웰이 1945년에 처음 사용했다. 조지 오웰은 용어를 통해 소련과 미국의 세계관, 신념, 사회 구조뿐 아니라 미국과 소련 간의 선포되지 않은 전쟁 상태를 비판하고자 했다. "원.. 2023.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