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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프랑스소설17

꿀벌의 예언 1 p.23~24 지금처럼 계속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저 나무가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번 생각해 봐. 뿌리는 과거를, 줄기는 현재를, 가지는 미래에 해당한다고 말이야. 과거는 땅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지.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머릿속에만 떠올리는 대상인 거야. 과거는 땅속 깊이 뻗어 있는 긴 뿌리들 속에 흩어져 있어. 이런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단단하고 선명하지. 하나의 줄기 속에 들어 있거든. 미래는 나뭇잎이 달린 무수한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실현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의미하는 무성한 나뭇잎들은 서로 경쟁하듯 자라나. 그러다가 햇빛과 수액이 부족한 나뭇잎은 말라 죽게 되지. 나뭇가지 전체가 꺾여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이건 어떤 미래의 방향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지. 하지만 하.. 2023. 9. 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p.13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 - 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p.15~16 그녀의 입술에서 신열의 약간 텁텁한 냄새가 느껴졌고그는 마치 그녀 육체의 은밀함 속에 파묻히고 싶다는 듯 그 냄새를 들이마셨다. 그 순간 그녀가 오래전부터 그의 몸속에 있어왔고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상상이 들었다. 불현듯 그녀가 죽고나면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리란 것이 너무도 당연한 진실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녀 곁에 나란히 누워 함께 죽고 싶었다. 그는 이러한 상상에 잠겨 그녀의 얼굴에 뺨을 대고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 2023. 8. 20.
농담 p.17 더럽혀진 가치나 가면이 벗겨진 환상은 둘 다 한심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요. 둘은 아주 비슷해서 혼동하기가 아주 쉽지요. p.29 즈데나가 벌써 다섯 살일 때, 나는 절대 잊지 못하리라, 그는 우리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당의 규율 때문에 결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우리는 다투고 있었고, 그 말은 거짓말이며, 그는 나와 사랑해서 결혼했고 다만 나중에 바뀌었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끔찍했다, 그것도 바로 그가, 이 시대의 사랑은 다른 것이며, 이 사랑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언제나 주장하던 그가,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했다 p.35~36 그들과 내가 .. 2023. 6. 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https://www.podbbang.com/channels/3709/episodes/21462431 13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3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www.podbbang.com 2023. 6. 7.
단순한 열정 p.17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은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36 남들이 읽게 되기 전에 내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상의 차이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솔직하게 이 글을 쓸 수가 없다. 열여섯 살 때 일광욕을 한답시고 하루 종일 몸을 태우고, 스무 살 때는 피임도 하지 않은 채 겁없이 섹스를 즐겼던 것처럼 나중 일을 미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2023. 4. 23.
불멸 p.10 비록 얼굴과 육신은 이미 매력을 상실했다지만,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p.23~24 아녜스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조물주가 컴퓨터에다 자세한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 디스켓을 넣어 두고 떠나 버렸다는 생각.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후 버림받은 인간들 손에 맡겨버렸고, 그래서 지금 인간들이 신에게 길을 물으며 메아리 없는.. 2022.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