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프랑스소설

꿀벌의 예언 1

by Diligejy 2023. 9. 2.

 

 

p.23~24

지금처럼 계속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저 나무가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번 생각해 봐. 뿌리는 과거를, 줄기는 현재를, 가지는 미래에 해당한다고 말이야. 과거는 땅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지.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머릿속에만 떠올리는 대상인 거야. 과거는 땅속 깊이 뻗어 있는 긴 뿌리들 속에 흩어져 있어. 이런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단단하고 선명하지. 하나의 줄기 속에 들어 있거든. 미래는 나뭇잎이 달린 무수한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실현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의미하는 무성한 나뭇잎들은 서로 경쟁하듯 자라나. 그러다가 햇빛과 수액이 부족한 나뭇잎은 말라 죽게 되지. 나뭇가지 전체가 꺾여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이건 어떤 미래의 방향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지. 하지만 하나뿐인 줄기에서 뻗어 나와 살아남은 다른 나뭇가지들은 눈에 보이는 단단하고 통합된 현재의 연장선에서 계속 자라게 되네. 나무는 계속 자라나. 하지만 이 미래의 나뭇가지들은 굵고 단단해질 수도, 가늘어져 꺾일 수도 있네.

 

p.24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네. 우리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에는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p.44

인간이 환생을 믿었다는 흔적은 아루 오래전인 최소 1만 년 전부터 발견된다. 이는 인간이 농사를 짓기 위해 계절의 순환을 유심히 관찰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한 곳에 정주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인간들의 파종과 수확 시기를 알기 위해 계절의 순환을 눈여겨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초의 농부들은 가을이 지나면 모든 활동이 멈추는 추운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 나무는 꽃과 열매와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해져 마치 죽은 듯한 모습이 된다.

 

조상들이 보기에 겨울은 끝을 의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봄은 찾아왔고, 생명이 꺼진 것 같았던 나무에는 <새살>이 돋듯 잎과 꽃과 열매가 달렸다. 나무는 무성해지며 다음 겨울이 올 때까지 성장을 계속한다. 겨울은 새로운 죽음을 의미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부활을 위한 봄이 찾아온다.

 

이러한 순환을 인식하는 존재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영혼 또는 겨울을 거쳐 새로운 봄을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p.46

르넨는 문득 예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했던 말을 떠올린다.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설명>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일 뿐이야. 입으로 한참 떠들고 나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애초의 생각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채 내가 옳다는 걸 이제 상대가 깨달았으려니 하면서 얘기를 끝내니까.

 

p.48-49

동물과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에 있어. 

 

저 개는 현재 속에서, 자신의 욕구와 순간적인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서만 살 뿐이야. 먹고, 배설하고, 할 수 있으면 암컷을 찾아 생식을 위한 교미를 하는 게 삶의 전부지.

 

개는 과거에 관심이 없어. 자신이 태어난 날짜도 나이도 몰라.

자기를 낳아준 부모는 기억에서 사라진 지 오래일 거야.

당연히 조상이 누군지도 몰라

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어

그러니 당연히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지. 삶의 계획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에 대한 계획조차 없어.

개는 인간처럼 노화와 다가올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

오로지 현재를 살 뿐이야.

 

삶을 대하는 순수하고 건강한 관점이긴 하지만 극히 제한적인 시각이지.

이런 관점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킬 결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니까.

 

p.127

검은 까마귀 떼가 하늘에 떠서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깍깍거린다. 벌써 파리들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크게 들린다. 전투가 벌어지면 제일 신나는 동물들이다.

 

세상사라는 게 그래. 누구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

 

p.173

역사를 가르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거슬려 하거나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역사 교사는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려 여러분에게 조언을 하나 드리면서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으면 무조건 그들을 웃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달려들 것이다.>

 

p.174-175

제2차 세계 대전 중 1939년에 독소 불가침 조약이 체결될 때 실제로 일부 극좌 인사가 독일 편에 섰던 극우 세력과 손을 잡은 경우가 있었지. 자크 도리오 말이야. 프랑스 공산당 간부였던 그는 나치와 협력하자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운동세력을 조직했어. 스탈린도 비슷해서, 히틀러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지.

 

p.176

우리는 스스로 한 경험을 믿기보다 주변 사람들 다수가 가진 견해를 더 믿기 마련이에요. 그런 게 인간이죠.

 

p.214

우리의 최대의 적은 미래에 대한 공포예요. 십자군이 당도한다는 소문은 동족들 사이에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어요. 하지만 우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할 생각도, 그렇다고 달아날 생각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어요. 정말로 지레 공포에 떨다 죽은 사람들도 있을지 몰라요. 

 

 

'문학 > 프랑스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2023.08.20
농담  (0) 2023.06.0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0) 2023.06.07
단순한 열정  (0) 2023.04.23
불멸  (0) 2022.02.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