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요한 주제다.
내 맘대로 태어난건 아니지만, 어쨌든 살아야 하고,
어떻게든 나 자신이 어디론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목적과 함께 태어났다면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을텐데,
나는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늘 고민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해결은 없다.
하지만, 고민을 많이 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이 책의 목차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가 생각해 봤을 때 사랑, 꿈, 정치라는 3파트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낭만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다.
그리고 위험한 단어다.
쉽게 이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을 맨 처음에 두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사람은 트레이더다. 자본주의 시장내에서도 가장 냉혹한 곳에 서있는 사람이다.
싸움에 실패하면 시장퇴출을 당하고 싸움에서 이기면 많은 보상을 받는
그 살벌한 곳에 서있는 사람이, 그리고 71년생이니까, 40대가 넘은 아저씨인데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왜 가장 먼저 이야기할까?
나는 아무 이유없이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보았다.
다윈은 인간의 목적이 생존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할 때 결국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고,
사랑을 받으며 생존한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다윈의 관점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는
사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저자가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장 먼저 적어놓은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는 그렇지만, 단순히 낭만적으로 사랑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그 이야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도 낭만은 놓치지 않는다.
보통 매력적인 사람은 양면성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아저씨의 글이 그랬다.
낭만과 현실을 왔다갔다 했고,
냉소와 확신을 왔다갔다 했으며,
꼰대와 형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문장과 사람은 인과관계를 가지진 않겠지만,
많은 경우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 때, 나는 김동조라는 사람을 보고 싶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지.
실제 문장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말을 하고 생각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이 아저씨의 블로그는 월 10만원을 내야 볼 수 있다.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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