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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정책&비평

지배구조 개론 -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by Diligejy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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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알면 부를 얻고 모르면 당하는 재벌법의 10가지 비밀 - 경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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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꽤 강하고 실제로 재벌의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책이지만, 냉정함을 잃지 않고 서술한 지배구조 개론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한 책이다. 

 

변호사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책 속에서 결코 '자본의 힘'이라는 둥 하는 수사적인 표현에 기대지 않는다. 물론 문체를 보다보면 저자가 가진 깊은 분노가 느껴지지만, 저자는 냉정하게 현재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어떤 게 진짜 문제인지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책을 읽다보니 역시 한국경제에 있어 IMF라는 사건은 뗄레야 뗄 수 없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치는 역사라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선 IMF 시절에 대한 역사책을 계속 훑어보는 게 나을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신문을 볼 때마다 순환출자, 순환출자 라는 단어를 너무나도 많이 듣고 그게 문제라고 하길래 지주회사 구조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무조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역사적 유례를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배웠고... (그렇다고 순환 출자가 좋다는 것도 아니다. 결론이 뭐냐고? 모르겠다...)

 

출간된지 꽤 시간이 지난 책이긴 하지만, 어차피 다루고 있는 책의 주제가 더 예전의 판례와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outdated되지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부터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아마 그 맥락이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듯 하다.

 

 

밑줄긋기

p.32~33

재벌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상법, 자본시장법, 세법, 공정거래법과 같이 이곳저곳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태어난 연유가 같은 법들이다. 재벌법은 대부분 재벌이 사업을 잘해서 돈 버는 것 이외에 개인적으로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법 또는 세금이나 책임을 피해서 돈을 아끼는 방법을 고안해 냈을 때, 그 방법을 금지 혹은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재벌이 돈 버는 방법과 재벌을 규제하는 법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예를 들어 재벌 회장들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경영상의 책임을 묻는 법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대표이사로 앉히고, 그 대표이사에게 지시를 내려서 경영상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유행했었다. 그러자 '업무 집행 지시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서 경영상 의사결정을 한 회장에게 대표이사와 똑같이 책임을 묻는 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이유로 재벌법은 재벌이 돈을 번 방법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 흔적을 뒤집으면 바로 재벌을 규제하는 법이 된다. 

 

p.58-61

재벌(이 돈버는 방)법의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다. 회장에게 '비싼 것을 싸게 파는' 단순한 밀어주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엄연히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도 그것을 싸게 판다면 곧바로 눈에 띈다. 특히 회사가 가지고 있는 비싼 것을 특정한 사람에게 싸게 팔면 그런 결정을 한 임원은 심각할 경우 은팔찌를 찰 수도 있다(업무상 배임죄).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가격표각 없어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리'를 회장에게 주걱나 싸게 파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은) 비싼 것을 싸게 줘라."

 

이것이 재벌법의 기초 중의 기초다. 바둑으로 따지면 정석 중의 정석이고, 천자문의 '하늘천 따지'와 같은 재벌법의 첫걸음이다. 대한민국의 재벌이라면 안 써본 사람이 없을 정도고, 이른바 준재벌의 가족들도 이미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는 기초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인 것으로 'IP'라고 불리는 상표권이나 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이 있다. 그리고 종이나 전자매체에 기록해 놓긴 했지만 역시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권리인 '증권'도 여기에 속한다. 주식이나 채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마법 쿠폰'은 현실에서 전환사채(CB, Convertible Bond)라고 불리는 증권이다. 어렵지 않다. 보유자가 주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전환권 행사 통지를 회사에 보내면 그 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마법과 같은 권리가 'CB'다. 원래 10만 원도 넘고 가장 싸게 사도 8만 5000원이나 되는 주식으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를 무려 91% 폭탄 세일해서 7,700원에 팔았고, 무언가에 눈이 멀어 주주들이 이것을 사지 않겠다고 한 사건. 그것이 1996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마법이었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Bond with Warrant)를 싸게 팔아서 회장이나 회사의 성장에 크게 돈을 벌 기회를 주는 것이 기초 1단계 재벌(이 돈 버는 방)법이다. 그 밖에도 싼 이자로 돈 빌려주기, 회사 직원 파견해주기, 회장 건물에 사무실 두기와 같은 다양한 방법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 방법들은 25년이 지난 지금 '무작정 따라 하기'를 할 수 없다. 매우 단순한 방법이기도 하고 너무 오래되어서 그동안 이를 막는 법이 지뢰처럼 여기저기 생겼기 때문이다. 세금도 정확히 내야 하고, 적발될 경우 과징금이나 형사 처벌도 무겁다. 무엇보다 마법 쿠폰은 널리 알려진 방법이기에 함부로 따라 하기가 부담스럽다. 물론 곳곳의 지뢰밭을 피해 위의 고전적인 방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특히 중견기업에서는 여전히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아직도 살아남은 화석과 같은 사례가 한 가지 있으니, 이것은 지금도 배워볼 만 하다. 고전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비싼 것을 싸게 주기' 방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지뢰밭을 피해 생존해 있어 재벌 대기업들이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주식 말고 또 있다. 바로 '브랜드', 즉 상표다. 회사가 주로 이용하는 상표권을 해당 회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미리 갖고 있다면, 홍보는 회사의 돈으로 하면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는 상표권자가 고스란히 누릴 수 있다. 또 상표를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도록 해 주면 그 대가로 적당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같은 상표를 사용하는 회사가 많아질수록 아무런 노력 없이 받을 수 있는 상표권 사용 수수료가 늘어난다. 물론 현실에서 삼성, 현대, SK와 같은 재벌 대기업들의 '브랜드'에 대한 권리를 회장들이 가진 것은 아니다. 보통 회장의 직속 회사, 즉 회장의 지분율이 가장 높은 회사들이 갖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계열회사들이 그 브랜드를 이용하는 대가로 직속 회사에 매년 수수료를 낸다. 이건 사실 내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 유명한 브랜드를 이용해서 사업을 하면서 그 대가를 내지 않는다면 거꾸로 회장의 직속 회사가 다른 회사를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브랜드야말로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가치를 측정할 수도 없는 무형자산이기 때문에 얼마를 받아도 웬만해서는 딴지를 놓기가 어렵다.

 

p.62-63

그래서 '공정거래법'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제23조 제1항에 새로운 조항이 하나 생겼다. 제7호가 신설된 것이다. 역시 1996년의 일이다.

제23조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행하도록 하여서는 아니된다.
7.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가지급금 대여금 인력 부동산 유가증권 무체재산권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여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 

 

간단히 '부당 지원 행위'라고도 불리는, '부당하게 ~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 지원하는 행위'가 불공정한 거래라고 명시한 이 조항은 좀 급하게 만들다 보니 당시 논란이 되었던 재벌 대기업들의 거래 형태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법은 좀 추상적이고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 생긴 이 법에 쓰인 '가지급금 대여금 인력 부동산 유가증권 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요즘말로 '사이다'였다. 이를 풀어서 읽으면, 돈을 그때그때 싼 이자로 빌려주고, 직원을 무료로 파견해주며, 건물이나 땅을 저렴하게 쓰게 해 주고, 주식이나 채권을 싸게 팔거나 비싸게 사 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 재산권을 무료로 주거나 싸게 살 수 있게 해주면 안 된다는 얘기다. 신설된 제7호는 당시 재벌 대기업들의 계열회사 사이에서 벌어지던 거래를 그대로 묘사하고 정면으로 금지한 것이었다.

 

당시 5대 재벌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곧바로 시작됐다. 어떤 법이 처음 만들어지면 '계도 기간'이라는 것을 준다. 새로운 법이 생겼으니 충분히 공부해서 지키도록 하고, 혹시 위반이 있더라도 처벌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주거나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 기간이다. 하지만 1996년 말에 만들어진 이 '부당 행위 지원' 법은 이듬해부터 적극적으로 시행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5대 재벌 그룹이었던 현대, 삼성, 대우, LG, SK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철저한 조사를 받고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물게 되었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 사이에 나라가 망할 뻔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1997년은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간 해다. 국가 경제가 부도날 위기를 맞게 되면서 그전까지 관행적으로 했던 일들이 잘못되었다는 반성이 있었고,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 수출 역군이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브랜드였던 재벌 대기업들에 수백억 원의 과징금 부과를 인정하는 보통 사람들의 심리적인 근거가 되었다.

 

p.72-73

21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1년 2월 22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벌 대기업 그룹에 계열회사 하나가 조용히 추가되었다. 이 회사를 설립할 때 회장과 가족은 자본금 50억 원을 내고 100% 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이 회사는 설립한 첫해에 거의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0만 원이 아니라 2,000억 원이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3,700억 원을, 5년 차인 2005년에는 무려 1조 5,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역대급 성장을 거듭하던 이 회사는 설립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아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당당히 상장되는 영광을 누린다. 어떻게 이런 마법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났던 걸까?

 

이 회사는 새로운 재벌법을 교과서처럼 이용했다. 이 마법의 회사는 같은 그룹 내 계열회사들이 꼭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어떤 사업이었을까? 이 재벌 대기업 그룹은 자동차를 한 해에 500만 대도 넘게 만들어 파는 세계 10위권의 자동차 메이커다. 자동차는 여러 공장에서 생산된 2만 개가 넘는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고, 이 완성차는 국내 판매는 물론 전 세계로 수출된다. 수많은 기계 부품과 그 부품이 조립된 모듈, 또 그 모듈을 조립해서 완성한 차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공장에서 공장으로, 창고에서 창고로, 공장과 창고에서 소비자에게로 어마어마한 기계들을 운송하려면 거대한 물류 체인이 필요하다. 이런 막대한 운송과 물류 업무가 모두 새로 설립된 이 회사, '회장님 회사'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첫해 매출 2,000억 원이라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실적은 대부분 계열회사와 운송 계약을 체결해 얻은 수익이었다.

 

p.85-86

'통행세 거래'는 앞에서 보았던 몰아주기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회사에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공급받을 때, 회장님 회사를 세워서 원래 공급하던 회사와 공급받는 회사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다. '치즈 회사 -> 피자 회사' 2단계로 이루어지던 거래를 회장님이 치즈 유통회사를 하나 세워서 '치즈 회사 -> 회장님 회사 -> 피자 회사' 3단계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회장님 회사는 기존 치즈 회사가 피자 회사와 거래하면서 남겼던 이익 중 일부를 가져가게 된다. 원래 치즈 회사의 공급 원가가 800원이고 피자 회사에 공급하는 가격이 1000원이었다면, 회장님 회사가 중간에 낀 뒤에는 치즈 회사가 800원에 만든 치즈를 회장님 회사에는 900원에 공급하고, 회장님 회사는 900원에 산 치즈를 피자 회사에는 1000원에 공급하는 구조가 된다. 피자 회사가 공급받는 치즈의 가격은 같지만, 치즈 회사는 기존 200원에서 100원으로 거래 이익이 줄어든다. 줄어든 100원을 중간에 끼어든 회장님 회사가 가져가기에 이를 '통행세'거래라고 부른다.

 

p.99-100

회장님이나 회장님 회사에만 싸게 팔고, 그들 것을 비싸게 사 주고, 이왕 같은 값이라면 회장님 회사와 거래하고, 다른 회사들과 거래할 때 회장님 회사를 끼워 통행세를 받도록 해 주는 것. 이것은 과연 '부당한' 일이었을까? 

 

"왜 나한테 주는 조건과 회장님 회사에 주는 조건이 다르지? 불공평해!"

 

과연 이런 생각이 옳은 걸까? 시장 가게 주인이 반드시 여러 손님한테 모두 똑같은 가격으로 팔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다. 시장에서는 흥정하기 나름이 아닌가? 평소 거래가 많고 신뢰가 두터운 상대방이라면 가격을 더 후하게 쳐줄 수 있고, 오랫동안 거래를 계속해 온 회사라면 비밀 보장이 잘 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많은 거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래라는 게 다양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것이 본질인데, 이에 대해 가격이나 물량과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규정하는 법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재벌법은 끝도 없는 '케바케'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 끼운 단추였다.

 

왜냐하면 '부당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회사가 회장님이나 회장님 회사와 거래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의 상황이다.

 

p.114

회사 하나와 다른 회사 하나를 합치는 것도 같다. A사와 B사가 합병하면, 두 회사에 돈을 낸 사람들이 합쳐진 회사에 대한 권리를 얼마나 가질지 정한다. 합병하기 전 기존 회사에서는 돈을 낸 비율에 따라서, 또 언제 돈을 냈는지에 따라서 돈을 낸 사람들의 권리 비율이 이미 정해져 있다. A사와 B사 각각 주주들의 지분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다. 합병을 하면 지분이 바뀐다. 무조건 줄어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커다란 1'이 되었기 때문이다. A사 지분의 합도 100%였고, B사 지분의 합도 100%였는데 합병한 회사의 지분도 100%여야 한다. 그래서 A사 주주들이 합병한 회사의 100% 지분 중 얼마나 받을지, B사 주주들도 지분을 얼마나 받을지 정해야 한다.

 

p.124

회사를 작게 만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사무실을 줄이거나 사람을 해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회사의 가치는 돈을 잘 벌수록 커진다. 반대로 돈을 못 벌면 회사의 가치는 떨어진다. 돈 버는 사업을 하지 않으면 회사의 덩치는 작아진다. 사업을 슬렁슬렁해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외부인이 보기에 이 회사가 돈을 못 벌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큰 돈을 벌 수 있는 호재가 생겨도 꼭꼭 숨긴다. 회사에 큰 사고가 나면 널리 알리고 심각한 악재가 터진 것처럼 오히려 더 과장한다. 물론 그렇다고 회사의 돈 버는 능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오랜 기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잠시만 못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스펀지를 꽉 쥐었다가 손을 펴면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올 수 있도록. 

 

회장님 회사는 열심히 부풀리고, 붙일 회사는 계속 작게 만든 다음 적당한 시기에 붙이는 것이 비법이다. 잘못하면 붙이려는 회사가 아예 쪼그라들 수 있고 회장님 회사를 무리하게 부풀리면 자칫 터질 수 있다. 부당거래법과 같은 재벌(을 규제하는) 법을 위반하게 된다는 뜻이다. 무리하지 않고 시간과 속도를 잘 조절하는 것이 바로 합병 시점의 '예술'이다.

 

p.132

상장회사가 자기주식을 갖는 것이 허용된 건 1994년부터다. 전체 지분의 10% 내에서, 또 회사가 번 돈에서 비용을 빼고 잉여금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자기주식 취득이 허용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1990년대 미국 증권시장에서는 주가를 높이는 방법으로 자기주식 취득을 주로 이용했다.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런 좋은 제도는 우리나라에도 있어야 한다며 끈질기게 제안한 끝에 비슷한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2011년에는 지속적인 요청이 받아들여져 비상장회사에도 자기주식 취득이 허용됐다. 이때부터 사업을 잘해서 잉여금이 있는 회사는 절차만 지키면 제한없이 자기주식을 쟁여 둘 수 있게 됐다.

 

p.137-139

놀랍게도 1998년까지는 지주회사가 '악'으로 치부됐다. 이때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공정거래법 조문을 보자.

(1998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8조 (지주회사의 설립금지 등) 
① 누구든지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국내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이하 "지주회사"라 한다)를 설립할 수 없으며 이미 설립된 회사는 국내에서 지주회사로 전환하여서는 아니 된다.

 

조문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없었는데, 1999년 대반전이 일어났다.

(1999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8조 (지주회사 설립 전환의 신고)
지주회사를 설립하고자 하거나 지주회사로 전환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여야 한다. [전문개정 1999. 2. 5]

 

이런 일은 흔하지 않다. 어제까지 엄격하게 금지되던 일이 오늘부터 적극 권장된다면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다. 개정과 동시에 정부는 재벌 대기업 그룹들한테 갑자기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적극 권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야 하는 세금도 많이 깎아 주고, 납부를 연기해 주기까지 했다. 갑작스럽게 얼굴을 바꾸는 정부의 태도에 대기업 그룹들은 이것이 진심인가 의심도 되고, 또 언제 생각이 바뀔지 몰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지주회사가 대체 무엇이기에, 또 1998년 즈음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손바닥 뒤집기 식의 정책 변경이 있었던 것일까? 짐작했겠지만,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와 깊은 관련이 있다.

 

p.139-141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1865)이 공업 지역인 북부의 승리로 끝나고, 석유의 발견과 철도의 발전으로 자본주의가 전에 없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주식회사의 주식은 회사와 같은 법인이 아닌 개인, 법적 용어로는 '자연인'인 진짜 사람만 가질 수 있었다. 회사는 실체가 없고 어떻게 보면 개인이 돈을 넣어 둔 '주머니'에 불과한데, 그 주머니의 돈이 다시 다른 회사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면 맨 처음에 돈을 낸 사람은 같은 돈으로 두 회사의 주식을 갖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이런 효과는 원천적으로 불가하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런데 1889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지주회사법Holding Company Act'이 만들어지면서 이런 원칙이 깨져 버렸다. 지금도 있는 설리번 앤 크롬웰(Sullivan & Cromwell)이라는 유명한 미국의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이 고안해 낸 법이었다. '회사도 당연히 다른 회사의 주식을 가질 수 있다'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미구그이 회사들이 대거 뉴저지주로 본사를 옮기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연방 국가이고, 회사에 관한 법은 주마다 다르기에 본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해당 주의 법을 적용받는다.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가질 수 없는 주에서는 여러 회사가 경영권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서 그 회사의 주식을 어떤 한 사람에게 맡기는 '신탁 trust'이 이용되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불편한 제도인 신탁 대신 지주회사가 도입되자 너도나도 뉴저지주로 본사를 옮겨 최신 트렌드인 지주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회사로는 당시 미국 석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있다. 뉴저지 러시가 벌어진 이유는 사실 편리한 시장 독점을 위해서였다.

 

기업의 문어발 확장을 도와주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초기만 해도 지주회사는 경계의 대상이 됐다.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 그룹에 붙은 '문어'라는 별명은 100여 년 전 지주회사를 가졌던 미국의 독점 기업들에 이미 붙여진 바 있었다. 그리고 문어의 '끝판왕'이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은 반독점법 위반으로 미국 대법원에 의해 해체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p.145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 그룹이 지주회사가 아니라 순환출자, 이른바 그물 구조로 지분 관계가 얽히게 된 이유는 지주회사를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룹 내의 여러 계열회사에서 있는 대로 돈을 끌어다가 새로운 사업을 하다 보니 순환출자를 '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p.146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은 정부가 법으로 금지되던 지주회사를 허용할 뿐 아니라 조속히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권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재벌 대기업들은 은행에서 상당한 돈을 빌려 왔으나 갚을 수 있는 사정이 안 되었다. 그 탓에 보유한 계열회사를 외국에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 했다. IMF 구제금융 사태 전보다 거의 30배나 많은 외국 자본이 우리나라 회사를 사기 위해 몰려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재벌 대기업 그룹은 복잡한 그물 구조인 순환출자 형태로 되어있어 그중에서 회사 몇 개만 떼어 내 팔기가 쉽지 않았다. 팔려는 회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어 그 회사만 분리해서 파는 게 불가능했으므로 여러 회사의 주식을 한꺼번에 파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분을 정리하여 연결되는 줄이 '하나'만 되도록 한 것이 지주회사 정책이었다. 환자를 수술하는데 조직을 잘못 절단해서 그 주변을 지나가는 신경이나 핏줄을 건드릴 경우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공식적으로는 '기업 구조 조정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해서, 쉽게 말하면 다른 회사들에 영향을 주지 않고 회사 하나만 정결하게 분리해서 팔기 위해 지분 정리를 추진한 것이 당시 지주회사를 장려한 주요 이유였다.

 

p.162-163

회사가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을 새로 발행해서 팔 때 1주당 얼마에 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모든 주주에게 기회가 똑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은 지분율을 그대로 지키고 포기하는 사람은 그만큼 지분율이 낮아진다. 그래서 주식 1주가 얼마인지와는 관계없이 기존 주주가 지분율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돈의 총액'이 중요하다. 만약 회사가 발행한 주식이 모두 1만 주이고 이것을 10명의 주주가 나눠서 1000주씩 갖고 있었는데, 회사에 1억 원이 필요해서 신주 발행을 결정했다고 생각해 보자. 1만 원짜리 주식 1만 주를 새로 발행해도 1억 원이고, 10만 원짜리 주식 1000주를 새로 발행해도 1억 원이다. 1만 원짜리로 한다면 주주 한 명당 1000주씩 우선권이 주어질 것이고, 10만 원짜리로 한다면 주주 한 명당 100주씩 우선적으로 배정될 것이다. 자신의 지분율을 지키고 싶은 사람은 1만 원짜리 1000주든 10만 원짜리 100주든 1000만 원을 회사에 내면되고, 절반만 지키고 싶은 사람은 1만 원짜리 500주든 10만 원짜리 50주든 500만 원만 내면 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이라고는 회사가 1주를 10만 원에 팔았을 때 5만 원만 내고 싶은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기존 주주들에게 새로 주식을 발행할 때는 1주 당 가격이 얼마인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부터 있던 판례법이었고 11명의 대법관 모두가 찬성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이렇게 '주주 배정' 방식의 신주 발행에서는 반드시 시가로 가격을 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p.177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가격에 전체 주식수를 곱한 것이 그 회사의 진짜 가치가 아닌 기본적인 이유를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주식 시장의 주가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회사가 배당금을 얼마나 많이 주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배당금을 많이 주고 적게 주면서 주가를 얼마든지 고무줄처럼 조정할 수 있다. 

 

p.182-183

주식 시장에 주식을 새로 발행해서 팔 때는 원천적으로 그 주식의 기존 가격보다 싸게 거래할 수 없다. 상장회사는 신주를 발행할 경우, 그 가격을 시장 가격에 맞춰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업자는 주가가 비쌀수록 주식을 적게 발행해도 같은 돈을 회사로 모을 수 있다. 새로운 주식을 적게 발행한다는 것은 회장이 돈을 더 내지 않아도 지분율이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회장은 주가가 높아야 자신의 지분율을 지키면서 시장에서 회사로 많은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p.187

G20라고 불리는 주요 선진국 증시와 비교해 보면, 한국 주식 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은 벌어들인 돈을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나눠 주는 비율이 가장 낮다. 외국 회사들은 보통 그해에 사업을 해서 남긴 이익 중 30~40%를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하지만 한국 회사들의 지급액은 고작 17% 남짓이다. 압도적으로 꼴찌의 배당 성향을 자랑한다.

 

p.192

우리나라의 상장회사라면 이런 복잡한 절차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상장회사가 합병할 때 회사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법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학생도 풀 수 있는 쉬운 수학 공식으로 말이다. 합병을 결정한 날로부터 아래 a, b, c를 모두 더한 다음 평균을 구하면 끝이다.

 

a. 직전 1개월 동안의 거래량 가중 평균 종가

b. 직전 1주일 동안의 거래량 가중 평균 종가

c. 전날의 종가

 

합병은 어려운 것인 줄 알았겠지만,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쉬운 방법이 우리나라에 있다. 두 회사 주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이 바로 합병인데, 단순한 공식 하나로 해결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p.200

지난 2018년 미국 테슬라의 CEO이자 이사회 의장이었던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 '테슬라를 주당 420달러에 상장폐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자금은 마련되었음'이라는 짧은 문구를 올렸다가 투자자를 오도한 혐의로 20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내고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을 정도로 외국의 주식 시장 관련 규제는 강력하다. 

 

p.207-208

사람들은 주식만 갖고 있는 지주회사보다 실제로 사업을 하는 회사의 주식을 더 선호한다. 실적이 눈에 보이고, 바로 배당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주회사는 사업을 직접 하는 자회사들로부터 배당을 받아야 수입이 생긴다. 돈을 벌기 위해 한 단계가 더 필요한 것이다. 만약 사업을 하는 자회사들이 돈을 벌어도 배당을 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지주회사의 매출은 없게 된다(물론 현실에서는 브랜드 사용료, 사무실 임대료, 경영 자문료 등을 포함한 여러 방법으로 지주회사가 자회사들로부터 돈을 받는다). 

 

그래서 분할 후에 주식을 재상장하면, 사람들은 지주회사 주식을 팔고 직접 사업을 하는 자회사 주식을 사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가 될 회사의 주가는 떨어지고 자회사가 될 회사의 주가는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여기에 슬쩍 조미료를 쳐 보면 어떨까? 사업을 하는 자회사에는 주식만 가진 지주회사보다 사업과 관련된 소식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사업과 관련해 살짝 장밋빛 전망을 흘려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 사업하는 자회사가 배당을 엄청 많이 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이런 상황 속에서 재상장된 두 회사의 주가가 각각 2,500원과 7,500원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이제 지주회사와 자회사의 가치는 1:3이 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자회사 주식 1주를 지주회사 주식 3주와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때 회장이 가진 나머지 자회사 주식을 지주회사 주식과 바꾸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자. 회장은 자회사 주식 1주를 지주회사에 주고 그 대가로 지주회사 주식 1주가 아니라 3주를 받을 수 있게 된다!

 

p.213

지주회사의 마법.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분율을 높이는 이 마법을 이용한 재벌 대기업은 이미 100개가 넘는다. 정부도 이들을 도와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하면 세금을 감면해 준다.

 

현재 대기업들 대부분은 지주회사 전환을 끝냈고, 요즘에는 이 방법이 중견기업들에까지 전수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2016년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지주회사의 기준을 기존 자산 총액 1,000억 원 이상에서 5,000억 원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지주회사가 지켜야 하는 공정거래법의 적용 범위를 좁힘으로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중견기업들이 '역차별'이라며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지주회사 전환을 준비하던 중견기업들은 대부분 자산 규모가 5,000억 원이 안 되었으므로, 법이 개정되면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우리가 전환할 때까지 규제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고, 정부는 9개월의 유예 기간을 줌으로써 이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렇게 20여 년 전 '악'이었다가 '선'으로 놀라운 이미지 쇄신을 한 지주회사 구조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p.218

우리나라 법은 배당하지 않은 돈에 대해서는 현재 세금조차 매기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개 매수를 통한 자진 상장폐지는 회사를 통쨰로 팔 때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p.221-223

현실에서 이런 상장폐지를 이용한 새로운 마법이 등장한 것은 2015년의 일이다. 돈을 잘 버는 상장회사에 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지분율, 약 30%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고, 배당을 적게 해서 주가도 낮추고 회사에 잉여금도 많이 쌓은 후, 그 돈으로 자기주식을 왕창 사서 스스로의 지분율을 높인 뒤, 지분율 100%를 만들어 상장을 폐지하면, 이 회사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다시 올라간다. 그리고 이 회사를 통째로 팔면 처음 들인 돈의 몇 배를 벌 수 있다.

 

조금 어렵다고 생각되면 치킨코리아에 숫자를 적용해 보자. 치킨코리아 주식 전체가 100만 주이고 주식 시장에서 1주에 1만 원으로 거래되고 있다고 가정할 경우, 여러분이 이 회사 주식 전체를 다 사려면 최소 100억 원이 들 것이다. 하지만 30%를 살 때는 30억 원만 쓰면 된다. 이렇게 30%를 30억 원에 사고 나서 앞에서 본 대로 사장에게 배당을 낮춰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한 해에 10억 원씩 이익이 나지만 1억 원만 배당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당을 꾸준히 낮추면 몇 주씩 갖고 있던 일반 주주들은 치킨코리아 주식을 팔고 점차 떠나간다. 주가는 계속 하락하고 배당을 하지 않으니 그만큼 회사에는 돈이 쌓인다. 3년 후 주가가 3,000원까지 내려가고 회사에는 잉여금 27억 원이 쌓여 있다. 이제 회삿돈으로 공개 매수를 실시한다. 가격을 4,000원으로 후하게 쳐주고 앞으로 상장을 폐지한다고 하니 너도나도 주식을 팔겠다고 해서 회사에 쌓인 27억 원을 전부 쓸 수 있었다. 이렇게 치킨코리아가 자기주식 67만 5,000주를 사들이자 이제 시장에는 주식이 2만 5,000주만 남았다. 2.5%밖에 남지 않은 이 주주들의 주식은 강제 매수가 가능하다. 우리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식 용어는 아니지만, 표현도 무서운 '소수 주주 축출 제도'가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한다면, 여러분은 1억 원만(25,000 * 4,000) 더 지출해서 나머지 주식을 모조리 살 수 있다. 

 

이렇게 치킨코리아를 100% 여러분의 회사로 만든 후 상장폐지를 한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은 31억 원뿐이다. 엄밀히 따지면 3년 동안 30% 지분에 대해 3,000만 원씩 9,000만 원을 배당받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지출한 돈은 처음 30% 지분을 살 때 냈던 30억 원 정도다. 거의 본전이 아닌가. 30억 원 남짓으로 100억 원짜리 회사를 샀구나 했겠지만, 그게 아니다. 더 좋은 상황이다. 원래 이 회사는 여전히 10억 원 넘는 이익을 내고 계속 성장하는 200억 원짜리 회사였던 것이다.

 

우선 매년 나는 이익에서 10억 원씩 배당받아서 3년 동안 초기 투자금 30억 원을 모두 회수한다. 그래도 회사는 매년 10억 원 이상을 버는 여전히 좋은 매물이다. 이제 회사 전체를 M&A 시장에 내놓자. 협상하기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여러분은 200억 원을 받을 수도, 300억 원을 받을 수도 있다. 이건 모두 여러분의 이익이고, 여러분이 가진 인내심의 대가다. 3년 동안 배당을 받지 않으면서 기다렸고 또 3년 동안 본전을 회수하느라 수고했다. 300억 원에 회사를 팔고 무려 10매의 수익률을 올린 여러분에게 '투자의 귀재'라는 멋진 별명이 붙을 것이다. 

 

p.253-254

우리나라 법학에서는 회사라는 '법인'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고 배우고, 따라서 사장은 '회사'라는 실존하는 인물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 회사의 '주주'라는 별개의 존재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회사 제도와 법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가져온 탓이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독일에서 법을 배워 왔는데, 당시 독일 법학의 대세는 '법인실재설'에 기초한 것이었다. 법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처럼 책임도 지고 형벌도 받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다. '법인의제설'은 법인이라는 제도가 단체나 조직의 법률관계를 간단하게 처리하기 위한 법 기술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쉽게 말해 법인 명의로 은행 계좌를 하나 만들어 두면 회사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거래를 모두 그 계좌를 통해 결제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는 뜻이다. 

 

처음 회사라는 것이 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사실 후자가 현실에 더 가깝다. 법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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