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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매일 갑니다 편의점

by Diligejy 2025.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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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갑니다 편의점 - 휴먼 에세이 |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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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32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가보면 특정한 상품이 한날한시에 그것도 전체 가맹점에 쫙 깔려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양대 메이저'로 불리는 GS25와 CU의 경우, 가맹점 숫자가 각각 만 개가 훌쩍 넘는데 과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본사에서 가맹점에 일괄적으로, 강제로, 혹은 몰래 물건을 '밀어 넣는' 것일까? 예전에는 어쩌다 그런 일도 있었다지만 요즘에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니 그랬다간 큰일 난다. 가맹사업법 위반으로 법적인 처벌까지 받게 될 테니.

 

요술봉은 바로 '발주장려금'이다. 점주가 어떤 상품을 발주하면 '돈'을 주는 것이다. 금액은 건단 1,000원에서 만 원까지 다양하다. 아주 가끔이지만 3~5만 원 짜리 장려금이 걸리는 상품도 있다.

 

이게 참 요지경이다. 예컨대 내가 가맹한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장려금 행사를 보면 신제품 요구르트 하나에 만 원의 발주장려금이 걸려 있다. 이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은 2,300원이고, 점주가 본사에서 매입하는 가격은 1,000원 정도 된다. 그러니까 1,000원짜리 물건을 발주해줬으니 고맙다며 원가의 열 배에 달하는 만 원을 현금으로 얹어주는 꼴이다. 물론 발주장려금도 배분율을 따른다. 이익금을 70(점주) 대 30(본사)으로 나눠 갖기로 계약한 경우, 점주가 최종적으로 가져가는 장려금은 7,000원이다. 어쨌든 점주 입장에서는 인터넷 발주 사이트에 들어가 클릭 한 번 한 대가로 그 돈을 버는 셈인데, 이런 걸 발주하지 않으면 바보다. 안 팔리면 점주 자신이 마셔버리면 그만이다. "본사에서 점주들 건강을 생각해 요구르트 하나씩 나눠주고, 거기에 7,000원까지 끼워서 보내줬네." 점주들끼리는 이런 농담도 주고받는다.

 

'판매장려금'이라는 요물도 있다. 소주나 맥주 같은 주류에 그런 장려금이 흔히 붙는다. 편의점 점주가 새로 나온 수입 맥주를 냉장고 정중앙 가장 좋은 자리에 줄 맞추어 반듯하게 진열해놓고, 덕지덕지 홍보 포스터까지 붙여놓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발주장려금은 일회성이지만, 판매장려금은 팔릴 때마다 추가로 돈을 받는다. 어젯밤 동네 편의점에서 당신의 지갑을 열게 만든 '수입 맥주 네 캔, 만 원'행사에는 바로 그러한 판매 장려금이 걸려 있었다.

 

손님들은 모르고 편의점 주인들만 아는 장려금 행사가 매월 수십 건, 여름 성수기에는 수백 건이 걸리기도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달마다 수십만 원에서 백여만 원에 이르는 장려금을 받게 된다.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도 적게는 30~40만 원, 많을 때는 150만 원 정도의 장려금을 받는다. 신기하게도 매달 전기료와 엇비슷한 금액이다. "본사에서 전기료를 내주는 셈"이라고. 아주 긍정적인 마인드로 해맑게 이야기하는 점주도 있다.

 

p.47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장사꾼은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고도 팔지 못하는 장사꾼이다. 게을러서 그렇고 무심해서 그렇다.

 

편의점뿐일까. 갖고 있으면서 내어놓지 않는 것들이 일상에 흔하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면 뭐하나. 사람들 앞에 펼쳐 보이지 않으면 자기 혼자 잘난 것밖에 안 된다. 애틋이 사랑하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뭐하나. 용기 내어 말하지 않으면 그가, 그녀가 알 턱이 없다. 그 어떤 옥석 같은 아이디어도 뜨거운 이상도 현실 속에 꺼내놓지 않으면 한낱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며 억울해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꺼내놓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p.63-64

편의점은 '진열의 마술'이 숨어 있는 곳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고 진열하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유통업 가운데 가장 좁은 면적을 활용하는 편의점은 진열에 있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를 터득해야 한다. 이리저리 바꾸고 진열해보고 가다듬는 일을 재미와 보람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편의점 점주의 적성에 알맞다. 한쪽 구석에 있던 녀석을 진열대 중앙으로 옮겼더니 그제야 팔려 나가고, 한동안 안 팔리던 친구에게 어떤 변화를 주니 갑작스레 팔려 나갈 때, 그 때의 희열은 장사를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하여 편의점 점주의 하루는 매장에 있는 모든 제품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너는 왜 거기에 있는 거니?"

 

편의점에는 방치되어 있는 제품이 단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하는 매장이 된다. "이 제품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그 제품은 어떤 제품군과 연관을 이루고, 주로 어떤 소비자층이 좋아하며, 일일 판매량이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진열했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제품 하나하나에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명언은 내가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편의점 업계의 사부님들께 배운 내용이다.

 

p.69-71

편의점 진열대에는 규칙이 있다. 라면 옆에는 수프와 죽이 있고, 거기서 뒤돌아보면 간편식과 프레시 푸드가 줄 맞추어 대기 중이다. 봉지 과자 옆에는 박스 과자가 있고, 과자 옆에는 사탕, 사탕 옆에는 초콜릿과 에너지바, 그 옆으로는 믹스 커피와 원컵 매대가 있다. 스타킹, 생리대, 여성 속옷은 진열대 위아래에 모아둔다. 우리 편의점은 오피스 상권이다보니 실내용 슬리퍼가 많이 팔리는데, 슬리퍼는 잡화 매대 맨 하단에 치수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치약, 칫솔, 치실, 치간 칫솔, 가글액은 같은 진열대에 모여 있어야 하는 친구들이고, 문구와 사무용품, 이어폰, 충전기 역시 그룹으로 구성해 가격과 기능, 크기 순으로 걸어둔다. 모든 진열에는 규칙이 있고 이유가 있다.

 

워크인 냉장고에 진열된 음료수도 아무렇게나 있는 게 아니다. 크게는 커피, 탄산, 과즙, 생수, 주류 항목별로 각각 다른 칸에 분류한다. 같은 브랜드의 캔 커피라도 라테(라뗴), 아메리카노, 블랙 순서로 자리를 잡아준다. 용량순으로 모아놓고, 어떨 때는 용기 색깔까지 고려한다. 왼쪽은 연한 색 용기로 시작해 오른쪽은 진한 색 용기로 이어지는 것이 진열에 있어 이상적이다. 탄산음료 옆에는 에너지 드링크가 붙어 있어야 하고, 사람들 눈에 익은 오래된 제품은 약간 상단에 두어도 되며, 신제품은 고객의 시선과 수평을 이루는 '골든존'에 먼저 자리를 준다. 녹차, 홍차, 곡물 음료는 한 선반에 모아두고, 손님들이 숙취 해소용으로 찾는 음료는 또 그들끼리 붙여놓는다.

 

주류 진열 규칙에 따르면 술 바로 옆에는 안주 판매대가 있어야 하고, 소주와 맥주가 진열된 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양주와 와인 같은 고급 주류 진열대가 고혹적인 자태로 손님을 유혹하는 게 진리다.

 

과자도 규칙에 따른다. 우선 봉지 과자와 박스 과자를 분류하고, 국산과 수입을 나눈다. 감자 스낵은 그들끼리 모아놓은 후 순한 맛, 매운맛, 독특한 맛 순서로 진열한다. 1+1이나 2+1 행사가 진행되는 제품은 교차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조사별로 모아놓아야 손님이 고르기 편하고 매출 상승의 효과가 있다. 박스 과자도 간식용 쿠키와 식사 대용의 도톰한 쿠키, 혹은 안주용으로 대체되는 쿠키를 구분해놓으면 효과 만점이다. 손님이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올 때 주로 어떠한 목적을 갖고 오는 것인지 떠올려 보면 이러한 규칙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진열에는 금기 사항이 있다. 먹는 제품 바로 옆에 '먹어서는 안 되는' 제품을 진열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과자 바로 옆에 락스나 샴푸 따위를 두는 건 금기다. 과자를 바라보던 시선에 락스가 닿으면, 부지불식간에 손님은 '락스에 담겨 있는 과자'를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마트에서도 세정제와 식품 코너는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거나 아예 다른 층에 두기도 한다.

 

p.82-83

김성수는 건물주 아들로 태어나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가 아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경양식집 접시닦이로 알바를 시작해 나이트클럽 웨이터, 동대문 옷 장사, 액세서리 가게, 조그만 PC방 주인 등 흔히 하는 말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고난과 입신의 과정을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김성수를 만나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리고 베풀고 배려하며 살아야겠다 마음먹게 만드는 따뜻한 에너지를 얻는다.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 있고, 부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 있다. 손님 중에도 얼굴만 보아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뭐가 항상 그리 불만인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단순히 외모만 보고 선입견을 갖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표정과 말투, 행동, 태도,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그렇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을 접하는 직업이다 보니, 나름대로 그런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손님에게는 뭐라도 하나 더 드리고 싶은 심정이고, 부정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손님은 솔직히 어서 좀 나가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에너지일까.

 

p.109-112

편의점은 기본적으로 담배 가게다. 병원이나 스포츠센터, 일부 대학의 구내 편의점처럼 애초에 담배를 팔지 않는 편의점도 있지만, 대개 편의점에서 담배는 전체 매출액의 30~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편의점에서 담배는 애물단지다. 거칠게 말해 돈이 별로 되지 않는 상품이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팔아 얻는 이익은 5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부가가치세를 감안하면 매익률이 10퍼센트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까지 빠진다. 하루 반나절 담배 100갑을 팔아봤자 순이익은 3만 원 정도다. 그것도 어디냐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판매자 입장에서는 매출에 비해 돌아오는 이익이 너무 적으니 허탈할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의 경우 본사와 이익 배분까지 하니, 점주 입장에서 담배 한 갑의 최종 이익은 100 ~ 200원 선이다.)

 

그래서 편의점 점주들 사이에서는 담배 매출이 높은 편의점을 '뻥매출'이라 부른다. 겉모습만 부풀고 실속은 없는 뻥튀기 같은 매장이다. 그런 매출에 속아서, 총 매출 데이터만 보고 덜컥 기존 편의점을 인수하는 사람들도 있다. 편의점을 인수할 때는 반드시 매출 가운데 담배의 비중을 살펴야 한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일단 담배는 아무나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내가 담배를 팔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아무 데서나, 담배를 매입해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담배를 팔고자 하는 사람은 구청이나 군청 같은 기초자치단체로부터 담배 소매인 지정을 받아야 하고,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가격으로만 팔아야 한다. (담배는 사적인 판촉 활동이 금지된 상품이다. 예컨대 담배 한 보루를 샀다고 편의점 주인이 손님에게 라이터를 증정품으로 주면 엄연히 불법이다. 그런데도 담배를 한 보루나 샀는데 쩨쩨하게 라이터 하나 서비스로 안 준다고 호통치는 엉뚱한 손님들이 있다.) 담배를 팔 수 있는 권한을 편의점 업계에서는 '담배권'이라고 부른다. 이 담배권을 따내기 위해 피나는 경쟁이 벌어진다.

 

담배권은 일정 구역에 한 명만 취득할 수 있다. 여러 명이 경합하면 제비뽑기 방식으로 추첨하게 되는데, 국가유공자나 장애인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런 분들을 이른바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 담배권을 따내는 사람들도 있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멀쩡한 가게를 등기상 분할해 여러 가게처럼 만들어 복수로 응모하거나, 웃돈을 주고 경쟁자의 참여를 무마시키기도 하는 등 온갖 탈법과 불법의 요지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담배권에 당첨된 사람은 활짝 웃고, 떨어진 사람은 고개를 떨구며 앞일을 걱정하게 된다.

 

듣는 사람은 참 어리둥절할 거다. 담배를 팔아봤자 이익도 별로 없다면서 왜 그렇게 담배권을 얻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냐고 말이다. "차라리 담배를 팔지 않는 편의점으로 운영하면 되잖습니까?" 편의점을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종종 듣는다. 아서라, 그런 편의점은 금방 망한다.

 

담배는 담배 그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은 담배를 사러 왔다가 커피도 사고, 음료수도 마시고, 생활용품도 사고, 요즘 편의점에 어떤 물건이 새로 들어왔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담배는 편의점 최고의 미끼 상품이다. 담배가 없으면 편의점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았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내거나 일정 기간 담배를 판매할 수 없게 되는데, 판매 정지 처분을 당해본 점주들은 편의점에서 담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담배권을 정지당하면 단순히 담배 매출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의 매출이 일제히 하락한다.

 

p.116-118

캔 커피를 비롯해 탄산, 주스 등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음료수의 매익률은 대개 50퍼센트 수준에 이른다. 우유, 요구르트 등 유제품의 매익률 역시 40~50퍼센트 정도다. (역시 장사는 물장사?)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과자는 보통 30~40퍼센트 정도의 매익률을 보이고, 라면도 거의 그 정도의 매익률이다. 소주, 맥주 등 주류의 매익률은 30~35퍼센트 정도이고, 삼각김밥, 샌드위치, 햄버거, 도시락 등 프레시 푸드는 유통기한 내 판매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버려야 하는 위험이 있긴 하지만 역시 30~35퍼센트 정도의 매익 구조로 판매된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발생한다. 담배의 매익률은 9퍼센트 정도. 이렇게 이윤이 낮은 담배가 편의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점유하기도 한다는 눈물겨운(?) 진실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놀라워한다.

 

담배를 제외하면 편의점의 매익률은 40~50퍼센트 정도가 되는 것이 맞다. 담배를 포함하면, 담배 판매 비중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편의점의 매익률은 20~30퍼센트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편의점 하면 얼마나 버는지 알고 싶다면, 총 매출에서 이 정도 비율을 계산해보면 답이 나온다.

 

p.125-127

나도 편의점 오픈 초기에 '폐기 제로'에 도전했다. 폐끼를 하나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바보 같은 목표도 없었던 것 같다.

 

팔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물건이니 편의점 입장에서 '폐기'는 일단 경제적인 손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폐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폐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건, 그러니까 정확히 다 팔았다는 건 정말 '정확'한 걸까? 그 정확이라는 만족감의 그늘에 숨어 있는 '기회의 손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예컨대 우리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왔는데, 도시락이 왜 없냐고 차마 묻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간 손님은 없었을까? 도시락이 없으니 김밥이나 컵라면을 사 갔을 수도 있다. 그럼 그 손님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김밥과 컵라면을 샀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자신이 원했던 1순위 상품이 아닌 2순위 대체품을 샀으니 마음 한 구석에 불만을 품고 돌아갔을 것이다. 손님 자신도 모르게 돋아난 '조용한 불만'이다. 두 번, 세 번 그런 불만이 쌓이면 손님의 뇌리에는 '저 편의점에는 내가 찾는 상품이 항상 없어' 같은 생각이 각인된다. 그런 손님이 한두 명 늘어나는 사이, 점주도 모른 채 편의점은 안으로 무너져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상품을 왕창 갖다 놓으면 대량의 폐기가 발생한다. 그러한 원가 손실이 큰지, 결품으로 인한 기회의 손실이 큰지 살펴보아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편의점 점주의 중요한 판단 능력이다. 그래도 어쨌든 일정한 분량은 계속 폐기를 내줘야 하는 것이 편의점 운영의 정석이다. 폐기는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편의점ㅇ르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그 개념을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깨달아갔다.

 

내가 한때 그토록 '폐기 제로'에 매달렸던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멀쩡한 음식을 내다 버리는 게 아깝고 죄스럽다는 초보스러운 생각도 있었고, 폐기가 발생하지 않고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수량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희열의 감정까지 느꼈던 것 같다. 광화문 네거리에 멍석 깔고 점집을 차릴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적중에 목을 맸던 걸까? 자기가 하는 일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면 나처럼 자꾸 엉뚱한 목표를 세우게 된다. 

 

이제는 폐기가 발생하지 않고 물건이 뚝 떨어지면 불안하고 초조해지기까지 한다. 집에 가기 전에 삼각김밥이나 햄버거 몇 개 정도는 버리고 가야 직성이 풀린다. 무릇 '편의점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p.128-131

회사마다 다르지만 내가 가맹한 프랜차이즈에서는 도시락을 폐기하면 손실 비용의 50퍼센트를 본사에서 부담해준다. 햄버거나 샌드위치는 30퍼센트, 단가가 그리 높지 않고 폐기율이 낮은 삼각김밥은 10퍼센트 정도를 지원받는다. 폐기 리스크가 큰 품목일수록 지원율이 높다. 과일은 손실액의 90퍼센트까지도 보상해준다.

 

막 오픈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가보면 온갖 프레시 푸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픈 후 일주일 정도는 본사에서 100퍼센트 폐기 지원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 상권에서 프레시 푸드가 어느 정도 팔리는지 가늠해봐야 하기 때문에 일단 그득그득 쌓아둬보고,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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