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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

by Diligejy 202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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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복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과제가 된 순간, 법이 태어났다.

 

p.22-23

법의 원형은 금지와 처벌입니다. 모든 고대 국가의 법은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법과 그것을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국가의 권력과 복수의 법이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복수라는 감정이 국가를 형성하는 엔진이 되었지만, 국가가 형성된 뒤에는 국가의 힘을 해체시키는 역방향의 동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국가 공동체에서 많은 이들이 복수의 희생자가 되고 또한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죽인 원수를 살해하면, 그 아비가 원래 피해자의 가족을 살해합니다. 복수가 점점 확대되고 씨족과 부족 간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수많은 생명이 전쟁 속에 사라집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국가를 형성시켰던 여러 공동체는 분열되고, 국가의 에너지는 복수 속에 소모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법, 함무라비 법전은 복수의 통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은 사적 보복이 아닌 국가 권력에 의한 처벌입니다. '동해 보복'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처벌의 양과 정도가 가해의 양과 동일해야 한다는 기준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p.26-27

'가해자에 대한 보복'이라는 기원에서 침해에 대한 '처벌'과 '보상'이라는 최초의 법이 형성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두 개의 강줄기를 이루어 각기 다른 법을 수립했습니다. 보복이라는 기둥이 '죄와 벌'이 되어 형사법의 기원으로 자리 잡았다면, 보상이라는 기둥은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이라고 하는 민사법 주요 영역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형사법을 통한 회복과 민사법을 통한 회복은 각기 법에서 정한 절차를 통해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절차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각각이 요구하는 방법과 절차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침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약속하고 받는 것은 개인들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합의를 보는 것이지요. 피해자와 가해자 간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그 침해에 대한 배상을 받기 위해 피해자 개인이 민사소송을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 처벌은 다릅니다. 우선 피해를 불러온 행위가 법에 범죄로 규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형사소송은 국가가 제기하고 국가가 실현합니다. 형사소송을 위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경찰 등 수사 기관에 범죄를 수사해달라고 고소하는 것입니다. 수사 기관이 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형사소송은 제기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범죄에 대한 재판과 처벌 과정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각 개인이 스스로 보복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뜻입니다. 복수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은 국가가 형사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가가 형사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국가 권력이 약속을 위반한 것이고 국가 형사 사법권이 실패한 것입니다. 왜 그런 경우가 발생할까요. 우선 국가 권력의 능력 부족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죠. 종종 국가 권력이 처벌 의욕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처벌에 대한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해자와 그 가족은 국가 권력에 대한 '원한'을 갖게 됩니다.

 

p.28-29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한다고 해도 피해를 완벽하게 회복시킬 수는 없다. 어차피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굳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킬 필요까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형사 재판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입니다. 비록 이들이 재판정에 출석해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법의 연원으로 따지면 피해자야말로 검사이고 판사이며 집행관이어야 합니다. 비록 궁핍한 형편 때문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그것이 진정 범죄의 피해에서 회복됐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피해는 재판정에서 명백하게 밝혀낸 범죄의 진실과 죄에 합당한 피고인의 처벌로 보상돼야 하겠지요. 

 

그것이 형법의 정신입니다. 법은 피해자의 복수를 국가가 대신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복수의 욕구가 본능이나 감정이라고 하여, 이성보다 낮은 차원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짓밟힌 존재를 회복시켜달라는 요청이며, 원한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일상으로 복귀시켜달라는 청원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이며, 이를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고자 하는 헌신입니다. 이런 요구는 파괴의 본능보다는 치유의 본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적절한 처벌로 갚아주는 것은 범죄자에게 괴로움을 주는 게 아니라,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에 중점이 있습니다. 범죄자 처벌로 피해자의 아픔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발생한 범죄의 진실을 모두 밝히고, 제대로 처벌하는 것이 치유의 출발점이 됩니다. 제대로 응징되지 않을 때 그 상처는 언제든 덧나고 헤집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법을 집행하는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p.38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친 권위주의와 독재 정권 시절에 형사 재판은 왜곡되고, 헌법학 등 공법학은 위축되고 왜소화되었습니다. 반면 민법과 민사소송법이 정치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영역이 권력자들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기 정권의 정당성 유지에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민법이 법의 중심이거나, 사법부가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p.48~49

1861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비로소 통일을 이룬 독일은 아직 군주가 모든 권력을 갖고 있었던 군주국이었고, 의회가 명목상으로는 존재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영국과 달리 군주에 대항해 시민들이 승리한 역사가 없었던 독일에서는 자유 헌장이 수립되지 못했고, 헌법 원칙이 법으로서의 실질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수립되었고, 독립된 재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법원의 독립은 스스로 확보한 것이라기보다는 군주가 허용해준 은혜였습니다. 문화와 교양으로서 통치하는 군주가 재판 독립이라는 원칙을 선물로 보장해준 것이죠.

 

독일에서 발전한 법치 국가 원리는 시민들의 자유 헌장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일단 법의 형식으로 선포된 '법'은 무제한적인 효력을 갖는다는 원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법에 근거해야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은, 바꾸어 말해 법에 의거하기만 한다면 어떠한 권력도 행사할 수 있고, 어떠한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논리는 권력자들에 의해 '법률의 형식으로라면 무엇이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라는 논리로 변질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공화국이 된 독일은 최초의 민주주의 헌법인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합니다. 바이마르 헌법은 보통 선거의 원칙, 시민적 자유와 사회적 기본권, 의회주의 원칙을 규정한 현대적인 헌법이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법관, 공무원 등 새로운 공화국을 작동시키는 엘리트들이 이 헌법을 진정한 최고법, 법이 지켜야 할 한계를 정한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 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법관들은 법률과 판례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원칙을 신봉했습니다. 자신들이 적용하는 법과 판례가 자유의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지, 헌법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관해 묻지 않았습니다. 사법부가 헌법을 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다른 국가 기관도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932년 나치의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켜 그나마 존재하던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시켰고, 이로써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마지막 보루가 제거됩니다. 나치 정권의 통치는 항상 법률에 근거해 이루어졌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법치주의를 지켰습니다.

 

독일의 법률가들이 성찰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였습니다. 나치 시대의 판사와 검사 그리고 다양한 법률가 가운데 잔학한 반인륜적 범죄를 주도하고 가담했던 인물들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기소되었습니다. 그들은 변명합니다. "나는 법률가로서 성실하게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사명을 다했다. 진정한 책임은 그 법을 만든 사람들에게 있다. 나는 잘못이 없다." 사람들은 악이란 평범한 직업인의 일상에 깃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108~109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은 보호해주지 않는다"라는 로마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법언이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묘사된 사람, 즉 잠자고 있었던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순하게 양보하거나 '그래도 인간적으로 그와 나 사이에 어떻게 소송 같은 걸 제기할 수 있느냐'며 상대방이 자발적으로 약속을 지키길 기다리는 사람들, 그래서 권리를 제때 적절하게 행사하지 않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법은 그 사람들을 자기 권리 위에서 잠자고 있는, 마치 차려진 밥상 앞에서 굶어 죽은 사람처럼 형편없이 게으르게 본다는 것입니다. 시험 시간에 지각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 위해서 모든 시험을 무효로 할 수 없는 것처럼, 자기 권리 앞에 잠자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죠.

 

'법 없이 살 수 있는' 순박한 사람들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사'로 만드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사적 자치의 원칙이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인지도 모릅니다. 

 

p.110-111

독일인은 약속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와 독일 사람의 약속에 대한 관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에게 약속이란 사정이 변하면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손해가 없다면 상대방의 바뀐 사정과 바뀐 마음을 이해해주는 게 인간적으로 타당한 도리라고 여깁니다. 독일 사람에게 약속은 '법'입니다. 그래서 약속을 정말 잘 지킵니다.

 

계약이란 어른들의 약속 도구입니다. 나중에 사실 내 마음이 그런 게 아니었으니 바꿔달라는 것은, 적어도 법의 관점에서는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응석 부리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을 말하고 변명해도 법은 약속 변경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헛된 기대를 하다보면 법에 서운함을 갖게 되고, 심각한 오해를 하게 됩니다. 법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성숙한 어른의 태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p.112-113

메뉴가 너무 복잡한 양식 레스토랑을 피해 한식집이나 중국 음식집을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계약에 대한 두려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내린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겠고,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선택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레스토랑은 피할 수 있지만 인생의 수많은 계약과 약속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지혜롭고 당당하게 약속하고 약속을 신뢰할 때 우리들의 인생은 훨씬 단단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피하기보다는 잘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계약서를 잘 쓸뿐더러, 계약서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독일에 사는 동안 두어 번 이사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이들이 얼마나 상세하게 계약서를 쓰는지, 얼마나 체계적으로 준비하는지를 엿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나는 법률가이고, 상대방은 법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엔지니어, 평범한 회사원, 식당 주인인 사람들이 계약서를 척척 준비합니다. 작은 집의 임대 계약서 작성을 조금 과장해서 마치 대기업 인수 합병 계약처럼 치밀하고 상세하게 준비합니다. 창고에 있는 삽 한 자루, 물통 하나까지 기록합니다. 임대 계약이 종료되면 물건들 하나하나 그대로 반환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이사할 때보다 이사 나올 때가 더 어렵습니다. 사용한 집을 처음 들어갈 때와 똑같은 상태로 복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몇백만 원의 배상금을 물어야 합니다. 청소는 물론 페인트칠, 가구나 전자제품의 흠집까지 제거하거나 변상해야 합니다. 이때 계약서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물론 독일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자질구레한 다툼은 있습니다. 화장실 벽에 생긴 곰팡이를 이유로 집주인이 너무 많은 돈을 청구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항상 들립니다. 하지만 계약 단계의 이야기를 뒤집어서 뒤통수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계약서는 애초에 그 계약서를 작성한 집주인도 구속하기 때문입니다. 계약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각자 그 위험을 피해야 합니다. 계약으로 이익을 남길지는 알 수 없어도, 불확실한 계약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p.124-125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이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더 큰 불상사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원칙일 뿐입니다. 누가 봐도 비난받아야 마땅한 행위를 한 자들이 오히려 웃고 이익을 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원칙을 포기하는 순간 국가 권력에게 형벌 전권을 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도둑에게 칼을 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은 가장 큰 불행을 막기 위한 대원칙입니다. 바로 국가의 자의적 권력 행사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는 대헌장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마구 휘두를 수 있는 맹수에게 목줄을 채운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은 프랑스 대혁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혁명을 이룬 다음, 시민 군주와 귀족들의 약정을 폐지하고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인권 선언을 발표합니다.

 

인권 선언 제8조는 "누구든지 범죄 이전에 제정, 공포되고 적법하게 적용되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처벌되지 않는다"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이라고 하는 괴물은 선언문 한 장으로 길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혁명을 일으킨 세력이 만든 국가 권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 세력들은 공정하고 독립된 법원의 재판소를 설립하지 않았습니다. 불명확한 처벌법으로,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인민 재판을 통해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처형합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수없이 반복되었던 인류의 비극적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p.152-155

마르틴 루터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장 칼뱅은 스위스에서 활동한 종교 개혁가입니다. 칼뱅의 사상을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과 갈등이 불거지면서, 그는 제네바에서 7년간 추방당합니다. 1541년 시민들은 칼뱅을 다시 제네바로 초대합니다. 제네바의 종교 개혁을 완성시켜줄 지도자로 초빙한 것이죠. 지나치게 엄격한 계율을 강제한다는 이유로 추방된 그가 다시 돌아와서 과연 달라졌을까요. 공화국을 수립해 독립과 자유 정신을 키워온 제네바 사람들은 그를 걱정과 의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칼뱅은 독재자가 될 생각은 없었습니다. 종교 개혁가인 그는 부패한 가톨릭 권력과 타락한 문화를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덕을 바로 세워 신의 뜻에 부합하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는 자유가 인간을 신의 뜻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유혹받는 존재인데, 인간을 자유의지에 맡긴다면 오직 악을 행할 능력만 가지게 된다는 것이죠.

 

칼뱅은 탐욕스러운 거짓 권력자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더할 수 없이 검약하고 청빈했으며, 나쁜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자정까지 성실하게 일하고 연구한 지행합일의 인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지나치게 완벽한 존재로 보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완벽함을 회복하기 위해 욕심과 기쁨을 통제하는 법을 사용했습니다.

 

칼뱅의 규율과 감시, 위반자에 대한 처벌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명랑하고 근심 없는 즐거움은 죄악입니다. 감각을 고양시키고, 감정을 달래고 자극시키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야 합니다. 예배 중 오르간 연주도 교회의 종소리도 금지되었습니다. 교회 달력에서 부활절과 성탄 축제가 사라져야 했습니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개성의 권리도 박탈합니다. 칼뱅의 세계관에서 보면 개인적이고 세속적인 일들은 악을 행할 위험이 있는 영역이기에 종교 당국이 감시하고 개입해야 합니다. 이에 모든 개인과 가정은 어느 때보다 도덕 경찰관의 방문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신분이 높거나 낮거나, 한 달에 한 번은 자신들의 생활과 생각을 검사받아야 했죠. 고령의 원로들도 초등학생처럼 주기도문을 잘 외우는지, 왜 교회 설교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심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도덕 경찰관은 여자들의 옷차림도 살폈습니다. 심지어 손가락에 반지를 몇 개나 꼈는지까지 확인했죠. 부엌에서는 음식 재료와 접시도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인들에게는 주인의 생활에 대해서, 아이들에게는 부모에 대해 물었습니다. 누가 늦잠을 자는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지를 알아냈습니다. 젊은이들이 사랑하고 데이트를 하는 것도 당연히 감시와 금지 대상입니다. 허가 없이 책을 출판하고, 외국으로 편지를 보내는 것도 금지입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수백 년 동안 자유 속에서 살아온 공화 도시 제네바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법이 한 일입니다. 법이 마음을 처벌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죠. 이것이 법의 힘이고, 법의 위험성입니다.

 

칼뱅의 제네바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마음을 처벌하는 법은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냈습니다. 개인은 스스로 의심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먼저 의심합니다. 두려움은 명령과 금지를 미리 앞서서 행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혐의만 있는 사람에게도 잔인한 고문이 가해졌습니다. 고발된 사람들이 고문실로 끌려가기 전 자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죄수들은 밤낮으로 손뼉을 쳐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당시에 어떤 사소한 행위까지 처벌했는지 시의회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어떤 시민이 세례식에서 웃었다 - 사흘간 감방

- 눈먼 바이올린 연주자가 춤곡을 연주했다 - 도시에서 추방

- 노동자들이 아침 식사로 파이를 먹었다 - 사흘간 물과 빵만 먹을 것 

- 예배가 끝나고 사업 이야기를 했다 - 감방

- 두 뱃사람이 싸움질을 했다 - 교수형

- 카드놀이를 했다 - 카드를 목에 건 채 기둥에 묶어둘 것

 

한때는 자유롭고 유쾌하던 도시가 검은 상복으로 뒤덮였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웃지 못합니다. 이웃과 친구에게 고발당하는 이들이 속출합니다. 사람들은 커튼을 친 집 안에 머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고, 따뜻하고 친절하던 얼굴은 점점 엄격하고 무뚝뚝하게 바뀌어 갔습니다. 칼뱅이 복귀한 후 5년간 수십 명의 사람이 처형당하거나 화형당했고, 수많은 이들이 도시를 탈출했습니다. 

 

p.168

진정한 용기는 싸움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하는 것인데 이들은 싸우기만 합니다. 겉으로는 싸우고 있지만 암묵적으로는 사악한 목적을 위해 협력하고 있습니다.

 

p.187

"인간 사회는 완벽한 정의가 아니라 무자비한 사회적 타협 위에 서있다."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에서 한 말입니다. 불완전하고 불공정함은 인간 사회의 권력과 법이 갖는 숙명적인 속성입니다. 그래도 인간은 정의가 무엇인지, 공정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공정하지 않은 것은 조금은 더 공정하게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그 힘의 역학 관계 속에서 공동체 질서가 생깁니다. 타협의 질서 속에서 때로는 만족하고 때로는 분노하며, 그렇게 날마다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p.224-225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자는 모두 법률가입니다. 동일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은데, 굳이 다시 판단해야 할까요? 또 다른 의문도 있습니다. 대법원 재판은 여러 심급의 법원을 거칩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제도가 도입되고,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판단을 검토하는 것은 곧 제4심 법원을 도입하는 것이 아닐까요? 집 위에 또 집을 짓는 제도이지 않을까요? 

 

이 제도는 옥상옥이 아니라, 다른 관점을 갖는 재판 기관이 법원의 판단에 대해 질문하는 제도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위에 있는 상급 법원이기 때문도, 대법원보다 더 지혜로운 법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이라는 다른 관점을 가진 재판 기관입니다. 기본권 보장이라는 목적을 가졌기에, 헌법재판소의 재판 검토는 여러 재판 다음의 또 다른 재판이 아니라, 종류가 다른 새로운 재판입니다.

 

헌법소원은 어떤 것들이 드러나게 되는 재판일까요? 법원의 재판이 스스로는 볼 수 없었던 권위주의적 절차 진행, 관료주의적 제도 운영, 국민의 기본권을 소홀히 다루고 있는 법 해석이 그 대상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아직 기본권과 헌법에 대해 소극적입니다. 각지의 법원과 법관은 대법원의 판례에 따라서 재판합니다. 사법부의 현실을 볼 때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금지 조항은 단순히 하나의 제도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권이 일상 속에 실현되는 길을 차단해, 반쪽짜리로 만들고 있는 조항입니다.

 

p.262

인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습니다. 각자 버겁고 힘겨운 삶을 가까스로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다고, 결혼할 수 있다고 삶이 행복으로 가득해지지는 않습니다. 단지 고된 인생 속에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고, 그와 함께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자유와 행복이 있기에 고단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p.287-289

환자들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려는 사법부의 판단 경향에 대해 의회가 제동을 겁니다. 2015년 독일 의회는 자살 조력죄를 신설합니다. 우리 형법은 일본법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자살 방조죄의 처벌조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형법에는 전통적으로 자살 방조죄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정범(공범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기 의사에 따라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을 뜻합니다)이 처벌되지 않는 범죄에 대해 방조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법 논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소유주가 자기 물건을 버리는 행위를 돕는 게 범죄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자살 행위가 그 생명의 주인에게 범죄가 되지 않는다면, 도운 사람의 행위도 범죄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환자를 돕고자 했던 주치의, 간병인, 가족들을 수사하고 더 나아가 범죄자로 처벌하는 것은 형사 정의 차원에서 옳지 않다는 논리도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고통을 보다 못해 환자의 간청을 들어서 죽음을 도와준 가족을 범죄자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놓인 사람을 다시 한번 괴롭히는 처벌, 즉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비인간적인 처벌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독일 의회는 종래의 형법 전통을 뒤집고 범죄로 처벌하는 조항을 만듭니다. 그렇다고 새로 신설된 자살 조력죄가 모든 자살 방조 행위, 즉 자살을 도운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행위를 전반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은 아니었습니다. 타인의 자살을 '업무'로 돕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었습니다. 독일의 입법자들은 의사들이나 자살 조력 단체들이 상시적으로 광범위하게 자살을 조력해, 그것이 의료 서비스의 한 유형으로 발전하는 것을 걱정하고 막으려 했습니다.

 

죽음의 과정에 있는 환자, 자살 조력 단체, 호스피스 의학 분야의 의사 그리고 죽음과 관련한 상담을 제공하는 변호사들이 이 법률 조항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합니다. 2020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자살 방조죄 법조항에 대해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 판단을 내립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시합니다.

 

"생명의 종결에 관한 자기 결정은 인간 인격의 가장 고유한 영역에 있는 기본권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기준과 선택에 따라 그 문제를 결정할 자유가 있다. 자신의 생명을 종결하려는 개인의 결정권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존중받아야 한다. 그 권리에는 제3자, 특히 전문적으로 조력할 수 있는 의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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