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
여자는 생각만큼 도덕적이지 않다.
유혹할 줄 모르는 남자를
도덕으로 외면할 뿐.
p.12
유혹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양 함께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듯 함께 가고,
한 번도 듣지 못했던 양 함께 듣고 새기는 일이야.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듯이.
그야말로 생의 감각이 폭발하듯 살아 오르는
가장 관능적인 순간이 아닐까?
p.16
이곳은 모든 관계가 유혹에 기반을 뒀다고 생각하는 사회야. 서로를 유혹하고 유혹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하지. 눈앞의 결과를 위해서만 유혹하는 게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서 유혹한다고나 할까.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한 관계 형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부족하면 섭섭함을 느낄 정도지. 유혹은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하는 태도이기도 해. 부담스러우면 당연하게 거리를 두고 필요하다면 딱 부러진 거절도 할 수 있는 거야.
p.17
문화에 따라 표현 방식과 허용 범위가 달리지곤 하지만, 유혹은 인간이 그 기원에서부터 함께해온 활동이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곳곳에 존재한다. 금기와 위반, 파멸의 도색성으로 치장되었을지라도 한 꺼풀 벗겨보면 또 다른 서사가 있다. 위반은 기쁨을, 파멸은 생성을 이끄는 텍스트가 된다. 그녀가 말했다.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뱀과 이브의 유혹이 없었더라면 인류에게 이토록 풍요로운 문명이 가능했겠느냐고. 유혹에 굴복함과 동시에 인간은 신의 종속에서 벗어났다. 주어진 천국을 떠나 주체적 존재를 향한 길에 한 발짝 들어선 것이다.
p.19
만남과 헤어짐이 오고가는 이곳의 삶은 유혹의 수업을 치르는 학습의 터전이다. 유혹은 상대의 매력은 물론 자신을 발견하고 탐험하는 수업이다. 오랜 편견으로 자리잡은, 추락과 파멸이란 유혹의 수업료는 치르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삶과 함께 단련된 감각으로 소통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간다. 생명이 번식하고 문명이 꽃피워가는 이 세상은 그 자체로 유혹의 학교가 된다. 인간은 이미 진화의 과정을 통해 다른 생명의 유혹을 보고 듣고 배웠으며 그것을 인류만의 방식으로 발달시켜왔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유혹의 스승과 동지들로 넘쳐났다. 앞으로 살아갈 삶의 여정이 외롭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하니 든든해졌다.
p.31~32
유혹은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무모함은 낯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기가 죽어요. 처음 본 사람만큼 두려운 존재가 있을까요? 정글 속이라고 상상해봐요. 눈앞에 등장한 낯선 당신은 날카로운 비수로 나를 찢고서 손에 들린 식량꾸러미를 앗아갈지 모릅니다. 처음 본 사람만큼 신비로운 존재 또한 있을까요? 미지의 신세계처럼, 풍성한 과일 나무처럼 기대에 부풀게 해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처음 마주한 순간 상대의 호의에 더욱 민감합니다. 자신을 알아보고 호감을 전해주는 상대에게 더 마음을 주게 됩니다. 이끌림이 강렬할수록 관찰의 농도는 짙어지지요. 자신도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면, 적당한 순간에 마음을 알려야 합니다. 다가감의 속도와 거리감의 너비를 조절하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시선의 춤과 같지요. 오가는 눈빛이 길을 냅니다. 내밀하고 울창한 길일수록 더 오래 마음을 잡아둘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거침없이 뻗은 길은 되돌아가고 싶게 만들어요. 숨을 곳이 보이지 않는 길은 두려움을 자극합니다. 차라리 속살을 엿보이듯 우거진 숲을 열듯 둘만의 산책을 유도하듯 오솔길을 내는 편이 좋을 거에요.
p.37
모호함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알 수 없기에 생각하게 되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머물게 된다.
p.37~38
유혹은 서사를 품고 있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단, 그 이야기가 풍경처럼 흘러서는 안 된다. 유혹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유혹당하는 자를 연기하는 편이 좋다. 상대의 존재에 매료되어 열리고 움직이는 공동의 서사가 현재형으로 진행 중임을 느끼게 해주면 좋다.
p.38~39
상대를 매력적인 개체로 인식하고 반응을 살필 때, 두 사람 사이의 일치된 반응을 가슴 졸이며 찾을 때, 만남은 하나의 사건으로 변모한다. 적어도 매혹당한 사람의 서사에서는 말이다. 만약, 적절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건은 일방적 독백으로 끝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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