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를 신고 차이나를 걷는 여자

p.25

보통 일찌감치 꿈을 결정한 이들이 꿈에 빨리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장래희망을 일찍 결정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내포한다. 이 물음은 평생을 곱씹어도 대답하기 힘든 난제다. 한 사람 안에도 무수히 다양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고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존재다. 나는 지금도 나에게서 그간 몰랐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따라서 청년 시절에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면 한 번쯤 그것이 정말 정답일지 의심해봐야 한다.

 

p.33~34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때 우리는 '내가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클라이언트가 왜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 끌고 갔는지 나는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상사나 동료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당함은 이해나 납득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자칫 답 없는 질문만 던지며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사건과 나를 분리시켜는 노력이 필요하다. 

 

p.60~61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만나주리라는 확신조차 없이 장거리 비행까지 해야 한다면? 상대가 내 전화와 이메일을 무시한 채 아예 만나주지 않는다면? 어렵게 만났어도 차갑고 냉정하게 대한다면? 그래도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저 한국에 있는데, 미국에 가면 만나주실 수 있어요?" 라는 말과 "저 지금 월스트리트의 당신 사무실 근처에 있는데, 시간 좀 내주시겠어요?"라는 말은 상대에게 완전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 이건 약간 이견이 있을 수 있을 듯. 개인주의 시대에...

 

p.78

그때 그렇게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내 눈앞에 M&A라고 하는 반짝이는 별이 있어서였다. 평생의 업이 될 만한 일을 겨우겨우 발견했는데, 그래서 그 일을 하기 위해 1년 이상을 열심히 준비해 간신히 좋은 자리를 찾았는데, 이제 이 일을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졸지에 그런 기회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p.90

간혹 일에 대한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지나쳐, 모든 사안을 내가 다 해결하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지르고 보는 이들이 있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한편 신중함이 과한 나머지, 사소한 사안 하나하나까지 상사에게 물어가며 더디게 일을 진행하는 이들도 있다. 이 역시 중요한 타이밍을 놓쳐 일을 그르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어느 때 알아서 해결하고, 어느 때 물어봐야 할까. 팁을 하나 주자면, '돈'과 관련된 문제일 경우에는 반드시 상사에게 묻고 진행하는 것이 좋다. 그 외 내 실무와 맞닿아 잇는 작은 문제들은 알아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라는 마음가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만큼은 내가 의사결정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혹여 상사에게 묻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거래처에서 이렇게 하자는데요"라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이렇게 하자는데, 우리가 이렇게 역제안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상사가 고민할 여지를 최대한 줄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p.110

결국 모든 건 동료를 친구라고 여겼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탓이었다. 우리는 이해관계가 얽히면 언제든 뒤통수를 때릴 수 있는 사이였음을, 잠시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p.135~136

외국 기업에 다니면 서구식 개인주의 문화에 따라 업무가 끝난 후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 가고,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잘못 이해했다고 봐야 한다. 진정으로 글로벌하다는 것은 용감하게 맨몸으로 낯섦을 통과하고 그것을 온몸으로 익히는 것이다. 낯섦을 익힌다는 것은 결국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그것에 적응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것을 실제로 해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외국 회사에서 일한다고 해서 저절로 체득되는 것도 아니다.

 

p.149

순서를 바꾸자. 스펙이 있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스펙이 생긴다. 그게 바로 스펙을 쌓으려는 노력보다, 더 많이 도전하고 더 많은 점을 뿌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p.188

Life is not fair. Deal with it.

 

p.189~190

어려울 때 되새겨야 할 것은 '자리 잡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자기 위로가 아니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을 떠올려야 한다. 여기서 큰 그림일나 '의사가 되겠다' '대기업에 취직하겠다'와 같은 생각이 아니다. 큰 그림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다. 

 

내가 M&A라는 별을 발견하고 반짝이는 곳으로 달려갈 때, 나의 큰 그림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겠다' '연봉을 얼마 이상 버는 사람이 되겠다'가 아니었다. '나이가 든 뒤에도 여전히 글로벌한 일을 하겠다' '죽을 때까지 나의 커리어를 경신하며 살겠다'였다.

 

직업이나 직위가 큰 그림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어느 시점이 되면 도달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루고 난 뒤에 더는 할 일이 없고, 이미 이룬 것을 현상 유지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큰 그림이 아니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직업이나 지위가 아니라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p.213

월스트리트 뱅커들은 중국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만큼 중국 기업은 터무니없는 가격과 조건을 내세운다. 때로는 무례하고 비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도 없게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중국 기업과 딜을 할 때는 이 황당함, 캄캄함을 극복해야 한다. 극복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중국 사람과 직접 관계를 맺거나, 중국 회사가 믿는 사람을 통해서 딜을 진행하거나 둘 중 하나다.

 

p.221~222

내 생각에, 후배는 12월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없었을 때 '당연히' 연락을 해서 합격 여부를 확인했어야 했다. 그전에 '당연하지 않은' 것도 시도해봤다면 좋았을 것이다.

 

담당자가 언제까지 연락을 주겠다고 헀으면 그전에 미리 전화를 건다. 보완할 서류가 없는지 물어본 다음 있다고 하면 그것을 준비하고, 없다고 하면 내게 어떤 포트폴리오가 있는데 그것을 추가로 내고 싶다거나,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 교수가 극찬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보여주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할 수 있는 노력을 최대한 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추가 자료를 준다는 핑계로 담당자를 찾아가 볼 수 있다. 또 포트폴리오에 대해 설명하면서 담당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만약 추가로 제출할 게 없더라도 담당자와 통화할 때 근처에 가게 되면 연락드려도 되겠느냐고 운이라도 띄워놓으면 어떨까. 그런 말에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 다음 주쯤 일부러라도 찾아가 근처에 와있다고 연락한다면? 담당자는 미안해서라도 진행 상황을 알려준다든지, 유리한 정보를 준다든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 담당자와 대화하고 대면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p.234

무서움과 두려움은 다르다. 어떤 대상을 진정으로 알게 되면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p.240

무엇에 대해 점을 뿌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사자에게 달렸다. 점을 뿌리는 대상은 다양할수록 좋다. 중요한 것은 점 뿌리기를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꾸준함과 인내다. 당장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두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이 가는 대로, 가치관에 따라 고집 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 됐든 점 뿌리기의 대상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쁜 시간과 부족한 체력을 쪼개서도 즐겁게 할 수 있을 만큼, 나에게 맞고 재미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