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실습 나온 교생선생님께 러브스토리 들려달라고 하는 장면이다.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알콩달콩하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러브스토리를 들으면 해야하는 일이 있던말던 우선 러브스토리를 듣는다. 더구나 그 애기를 하는 사람이 입담 좀 있다고 한다면 더더욱 할 일은 제쳐두고 러브스토리 듣는 것에 집중한다.
예전에 고민정 아나운서(현 청와대 대변인)의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를 읽으며 고민정이라는 사람의 팬이 되었다. 그 분들의 러브스토리는 귀여우면서도 진지했고, 삶의 순간순간마다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며 인격을 성숙시켜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고민정 아나운서 같은 여성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현실은 남루한데 눈이 높아졌다). 이런 태도를 가진 여성을 만난다면, 분명 살면서 힘든일은 있더라도 불행하진 않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일본 여친에게 프로포즈 받다]를 얘기해야 하는데 앞에 다른 소리가 너무 많았다. 고민정 아나운서의 책을 읽은 뒤 러브스토리에 관해 엄청 깊고 재밌었다는 느낌을 받은 책은 드물었다. 독서량이 부족했고, 고민정 아나운서의 책이 가진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박철현 (Chul Hyun Park)님의 [일본 여친 프로포즈 받다]를 읽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코딩을 안하고 계속 이 책을 읽었다.... (사부님이 이거 보시면 ㅡㅡ 하실텐데 죄송...)
저자는 전략적이었다. 앞부분부터 진지모드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싫어할 걸 눈치빠르게 캐치해낸거 같다. 앞부분에는 개그코드로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 배꼽빠지지 않게 조심하시라. (부장님 개그 아님) 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런 뒤에 조금씩 서서히 저자는 진지한 이야기의 양을 늘려간다. 아 참!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앞부분의 이야기도 재미있게 썼을 뿐, 읽다보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알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걸 해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
인간은 우연의 연속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해 결정해야만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에 저자 또한 계속해서 다가오는 상황을 맞이하고 결정해야 했다. 시행착오도 엄청 겪고 미와코님께 손날치기도 맞아가며 저자는 조금씩 성숙해졌고, 그와 함께 힘들 때 함께해 줄 동반자를 얻고 함께 고민해나가며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다. 이 지점이 재미있었다. 사랑을 통해 생각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는 이 지점. 나는 이 지점을 포인트로 작가의 팬이 될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 물론 왠만한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집은 이 지점을 다 품고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감정이 먼저 이 사람의 팬이 될지 말지를 결정할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고민정님과 박철현님의 팬이 되었다.
글을 읽으며 두 분 다 유쾌하고 귀여우시면서도 진지한 면이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양면성이 있는 분을 좋아한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고,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그런 분(어찌 생각해보면 미친거라고 할 수 있긴 한데 무튼... 태클은 노노)
아마 지금도 꾸준히 역경을 헤쳐나가고 계실 저자 부부에게 늘 소소한 행복이 가득하시길 빌며 서평을 마치고 싶다.
p.13
처음 미와코와 사귀면서 또 그녀 친구들을 접하면서 나는 한국 남자들이 일본에 오면 인기 좀 끌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를테면 군대 이야기. 한국에서는 여자들이 낀 술자리에서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군대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완전히 안드로메다 차원의 동경받는 스토리로 쉽사리 변해버리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p.17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일본 여자들과의 자리에서 어떤 한 주제만을 자꾸 이야기하면 오타쿠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썰(?)을 풀 수 있도록 평소 내공을 쌓아두는 것, 이거 아주 중요하다.
p.47
미와코는 지금도 첫 데이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첫키스만 선연히 기억난다. 그 멈춘 듯한 무중력의 시간 속에서 레몬 맛이 나던 미와코의 윗입술과 그녀가 보여줬던 '숫자'의 이미지를 말이다.
p.49~50
현상(Text)에만 치중하면 안 된다. 현상은 드문드문 구체성을 띤 형태로 추억을 불러일으킬 때만 작용할 뿐이다. 연애는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고 그 맥락을 음미해야 오래 간다.
p.204~205
보통 얼굴에 그 사람의 삶이 나타난다고 하잖아. 하지만 난 이제 그 말 안 믿어. 얼굴은 꾸밀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손은 거짓말을 안 해.
p.232
나는 지금까지 집안일을 '도와줬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엄청난 착각이었다. 오히려 남편들이 '도와준다'는 표현을 쓸 때, 아내들이 얼마나 짜증이 날까도 이번에 알았다. 집안일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해야 한다. 특히 육아는 더 그렇다.
p.264~265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 육체적 피곤을 넘어서는 정신적 안락감. 아이들이 엄마가 아닌 나를 쳐다보면서 숟가락을 꺼내 들고 "아빠! 오늘 메뉴는 뭐야?"라고 천진난만하게 물어오는 그 모습.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기혼 남성이라면 꼭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주부 체험을 통해 아내가 평소 아무런 불평 없이 해왔던 가사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피부로 느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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