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을 칼로 파는 거 같았다. 이 사람의 음성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인지, 100%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마음 속 깊이 다가오기에, 직접 봤기에, 편하게 살고 있는 내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이 인터뷰는 고통스러운 인터뷰였다.
강남역 근처에 다니다보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팻말을 단 채 선교하시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분들은 과연 지옥을 보고나 그런 소리 할까? 해맑은 얼굴로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하는 그 분들에게 까칠하게 말하고 싶었다. 지옥 보셨어요? 지옥을 보시고 그따위 말을 하시는 거에요? 지옥 보여드릴까요?
지옥이 보고 싶다면 멀리 갈 필요 없다. 수원 월드컵경기장 근처에 있는 아주대 트라우마센터(외상센터) 1층 2층에 가면 된다. 간단하다. 수원 버스터미널에 널린게 아주대 가는 버스다. 그냥 그거 타면 된다.
1층은 수술실, 2층은 중환자실이다. 둘 다 피차일반이다. 사신은 언제나 그 곳에 머물러있고 의료진들에게까지 사신이 접근하려한다. 이국종 교수가 말했듯 사신이 접근함에도 사신이 집어삼킨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다 뼈가 부셔지고 유산되고 다치고 실명된다.
어떤 분이 그러더라. 현실적으로 시스템이 있는건데 이국종 교수가 한 행동이 시스템을 망치는 행동을 한거라고.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이건 논의가 필요할 듯 하다.
그런데 그 글을 쓰신 분께 여쭙고 싶었다. 이국종 교수가 이번에 처음 그런 거라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거라면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면,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보시는지 말이다.
이국종 교수가 화제가 된 건 아덴만 여명작전. 2011년 1월이다. 10년 가까이 된 셈이다. 10년 동안 이국종 교수는 계속해서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니 고쳐야 한다 고쳐야 한다 외치고 또 외치고 다녔다. 자기가 자리를 비우면 트라우마 센터 의료진이 얼마나 고생할지 알면서도 방송에 출연하고 국회 국감에 나가고 보건복지부와 싸우고 경기도에 부탁하고, 보수단체(라고 하기도 싫은 그냥 꼰대단체)의 시위를 받고 사람으로서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그렇게 시스템을 바꿔달라고 부탁했는데 강산이 변하도록 한국 사회가 해놓은건 뭔가.
가끔 매스컴에 이국종 교수 불러다가 강연 한 번 시키고, 정치인들이 격려하는 척 해주고, 국감에 불러서 토로한 번 하게 해주고, 기껏해야 똑똑한 척 하는 분들이 경제 시스템을 무시한 행동을 했다며 그저 쯧쯧대고 있을 뿐이다.
필요할 땐 얼굴마담으로 갖다 썼다가 뒤에선 조인트까고 쌍욕을 후갈긴다.
2017년에 판문점 귀순 사건때도 그랬다. 남북관계가 걸린 민감한 사안인만큼 의사는 그저 환자를 살리는데 집중하도록 놔두고 언론 브리핑과 같은 비의료적인 건 정부가 알아서 하거나 최소한 정부가 뒷백을 챙겨줬어야 옳았다. 과도한 주장인가? 남북관계가 걸려있는데 언론브리핑을 이국종 교수에게만 맡기는게 정상일까? 이국종 교수라는 의료인을 통해 정부 입장을 발표한다고 하는 게 정상적이지.
그런데 이국종 교수가 했던 언론 브리핑에 대해서 김종대 의원이 인격 테러를 당했다며 논란을 만들자 정부는 대체 뭘 해줬는가. 걍 두들겨 맞든 말든 가만히 있었잖나.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북한군인데 당연히 외교부나 통일부 국방부에서 컨센서스를 만들어서 미리 조율하고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해주는 게 정치를 떠나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아닌가. 내가 비상식적인건가?
똑똑하신 분들의 세상 속에서 우둔한 사람들은 살아가기 힘든거 같다. 똑똑하신 분들끼리 다 열심히 하시고 사셨음 좋겠다.
사실 이렇게 분노하는건... 17년 발생한 사고에 엄마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었던건 트라우마센터 덕이기 때문이고, 사고와 뒷처리로 인해 의절했던 경험때문이다. 나도 그저 필요할 땐 불러다 쓰여지고 뒤에선 조인트까이고 쌍욕먹다가 버려졌다. 거기 계셨던 간호사 선생님들조차 놀란 말을 다 들었을 정도니까. 천륜이라는 이름의 굴레로 묶여 밥도 못먹고 일하는데 가해자가 불쌍하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접었다.
필요할 때 실컷 이용만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자기를 불태우면... 마음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솔직히 이국종 교수님이 걱정된다. 겨우 내가 겪은 고통만으로 내 마음은 거의 1년간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분의 마음은 어떨지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마치 껌을 씹듯 필요할 때 열심히 씹고 단물빠지면 버리는 이런 상황에 역겨움마저 든다. 혜택을 받은 입장에서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이국종 교수님의 결정을 응원한다. 안 그럼 이국종 교수님이 먼저 돌아가실테니까.
어차피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이국종 교수님이나 나나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사셨다. 그러다 마음에 상처가 났고.
똑똑한 척 사는 게 역시 이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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