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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일본소설

은하영웅전설 2

by Diligejy 2022. 2. 17.

p.13

무수한 별들이 무수한 빛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 힘은 미약했으며, 무한히 펼쳐진 공간 대부분은 연마된 흑요석과도 같은 암흑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끝이 없는 어둠, 무한한 허무, 상상을 초월하는 한랭, 이들을 인간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무시할 뿐이다. 우주는 광대하나,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란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의 범주 내에만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주를 무미건조하게 구분한다. 거주가 가능한 구역과 불가능한 구역으로. 항행이 가능한 구역과 불가능한 구역으로. 그리고 가장 구제할 길 없는 인간들, 즉 직업군인은 적이 지배하는 구역과 아군이 지배하는 구역, 빼앗아야 할 구역과 지켜야 할 구역, 혹은 싸우기 용이한 구역과 어려운 구역 등, 온갖 공간과 별들을 분류하는 것이다.

 

애당초 우주에는 이름이 없다. 왜소한 인간들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것들을 구별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호를 붙인 것 뿐이다.

 

p.22

난공불락이라던 이제르론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손쉽게 함락한 것은 그였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완전'이나 '절대'라는 말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안다.

 

애초에 군인이 될 생각이 없었으며 역사학자 지망생이었던 그는 아무리 강대한 국가라 해도 반드시 멸망하고,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라 해도 권력을 쥔 후에는 타락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명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전장을 헤쳐 나온 용사가 감기에 걸려 죽는다. 피로 피를 씻는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이름도 없는 암살자에게 살해당한다. 옛 은하제국 황제 오트프리트 3세는 독살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식사에 손을 대지 않아 쇠약사 했을 정도다.

 

p.35~36

머나먼 옛날, 지구에는 십자군이라는 것이 있었다. 성지를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신의 이름 아래 타국을 침략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재화를 약탈하고, 주민을 학살했다. 그러고도 이처럼 극악무도한 짓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이교도를 박해한 공적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무지와 광신과 자아도취와 무자비함이 낳은 역사의 오점. 신과 정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 자야말로 가장 잔인하고 광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 2500년이나 지난 과거가 된 그 우행을, 지구교도들은 우주 규모로 재현하려는 것일까.

 

선행을 베푸는 자는 혼자 하려 하며 우행을 범하는 자는 동료를 탐한다는 격언이 있다. 덜미를 붙들린 입장에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지구 탈환 운동이라는 것이 과연 표면에 보이는 대로 우행에 불과할까?'

 

십자군 배후에는 이교도 세력을 약화시켜 동서 교역 독점을 꾀하는 베네치아와 제노바의 해상 무역상들이 있었다. 타산이 부추긴 야심이 광신을 지탱해준 것이다. 그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면.......

 

p.57

평화? 평화란 건 말이지. 키르히아이스. 무능함이 최대 악덕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한 시대를 가리키는 거야. 귀족들 꼴을 보라고. 

 

p.108

세상의 절반 이상은 병사를 많이 죽게 하는 사령관일수록 고생한다고 생각한단다.

 

p.110

그는 구국이니 애국이니 우국이니 하는 거창한 단어에서 아름다움이나 성실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지껄여대는 자들일수록 꼭 안전한 곳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것은 어떻게 된 노릇일까.

 

p.118

운명이라는 것이 늙은 마녀처럼 심술궃다는 것을 양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생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양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약 운명에 인격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심술궃을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불평 한마디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운명이란 우연과 무수한 개인의 의사가 집적된 것이며, 초월적인 존재는 아니기 때문에.

 

p.119

결단을 내리고 싶지 않을 때 내리지 않아도 된다면 인생은 장밋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의 맛이라고 옛 성현은 말했지만, 그렇다 쳐도 이번에는 양념이 과한 것 같았다.

 

2분 후,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모습을 나타냈다. 표정은 침착했지만 안색이 나쁜 것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양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었다. 열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공짜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아 사관학교 전쟁사 연구과에 입학했다. 군인 따위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 불순한 선택의 응보가 돌고 돌아 눈앞에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p.173

윗사람을 너무 대놓고 칭찬하는 법이 아니다. 상대가 나약한 자라면 자만에 빠져 결국 사람이 망가질 것이다. 만약 딱딱한 사람이라면 우시사람에게 아첨을 떠는 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p.229

후퇴해야 할 때 후퇴를 결단하는 능력도 명장의 자격이다. 

 

p.229

부하가 점령한 성역을 상관이 빼앗긴다면 상관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부하가 잃은 성역을 상관이 탈환한다면 부하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가 된다. 물론 한때의 패배에 상관이 불쾌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고 용병의 진가를 보여 달라고 부탁한다면 길게 보았을 때는 오히려 상관의 자존심을 만족시켜 주면서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p.263~264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전을 꾀하는 법이죠. 저도 좀 더 책임이 가벼운 입장이었다면 형세가 유리한 쪽에 붙으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하물며 남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고요."

 

역사를 보더라도 동란 시대의 인간이란 그런 법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며, 상황판단 능력과 유연성이라 표현한다면 비난할 수도 없다. 오히려 부동의 신념이라는 것이 타인이며 사회에 해악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공화제를 폐지하고 은하제국 황제가 되어, 전제정치에 반대하는 국민 40억 명을 살해한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 신념이 강하기로 따지자면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 실제로 지금 하이네센을 점거한 쿠데타 일파도 신념으로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아마게돈, 즉 '절대선과 절대악의 전쟁'은 없었다. 있었던 것은 주관적인 선과 주관적인 선의 다툼이었으며, 정의로운 신념과 정의로운 신념의 상극이었다. 일방적인 침략전쟁의 침략자조차 자신이야말로 정의롭다고 믿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이 신과 정의를 믿는 한 다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85

정치의 부패란 정치가가 뇌물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부패일 뿐이다. 정치가가 뇌물을 받아도 이를 비판할 수 없는 상태를 바로 정치의 부패라고 하는 것이다.

 

p.306

조직에 2인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2인자란 무능하면 무능한 대로, 유능하다면 유능한 대로 조직을 해치게 마련입니다. 1인자에 대한 부하의 충성심에 대용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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