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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뀌지 않아 - 여고괴담 1998

by Diligejy 2022. 4. 16.

여고괴담 1998, 이미연 김규리 박진희 최강희 배우들의 리즈시절이 담긴 영화.

 

이야기는 단순하고, 연기도 특별하지 않다. 

사운드도 무엇도 딱 90년대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나오듯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따돌리고 괴롭히는 현상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심지어 선생이 주도하는 걸로 나오기에 많이 불편함을 주지만

실제 선생이 주도하지 않더라도, 선생이 눈감는 경우를 주도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시간은 흘렀으나 바뀌진 않는거 같다.

 

그저 마음을 알아줄 친구 한명이 필요했다는 대사가 슬펐다.

 

 

희생양이란 말은 고대 헤브루의 희생양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원래의 헤브루 의식에서는 두 마리의 양과 두 명의 신이 등장한다. 첫 번째 신은 선한 신인 야훼였고, 두 번째 신은 아자젤(Azazel)이다. 아자젤은 원래 선한 천사였으나 인간 여성의 관능적인 매력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온 후 야훼에게 대항한다. 또한 아자젤은 여성에게는 화장을 가르쳐서 성욕에 눈뜨게 하고 남자에게는 무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전쟁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로 인해 아자젤은 인간과 신에 적대적인 악마, 사탄의 대명사가 되고 만다.

헤브루의 희생양 의식을 보면, 첫번째 양은 야훼에게 바쳐졌는데 양을 죽여 흘린 피는 야훼의 사원을 정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피는 분노한 신을 달래고 이스라엘의 더러운 자손과 그들의 비행과 모든 죄에 대한 속죄물로써 바쳐졌다. 이 양의 시체는 사원 밖으로 보내져 불에 태워진다. 두 번째 양은 아자젤에게 바쳐졌는데, 제사장은 이 양의 머리에 대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잘못, 모든 비행과 모든 죄는 이곳에 들어가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잘못을 안은 이 양은 사막으로 보내진다. 이 양은 사막을 떠돌다 결국은 죽고 만다. 이처럼 희생양은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 선택된 동물을 의미했다.

여기서 아자젤은 야훼의 건전하고 올바른 신성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된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으면 선한 야훼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악행과 비행, 잘못 등 자신의 그림자를 모두 희생양에 투사하고 희생시킨 후 사막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이제 이들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상준, 신화로 영화 읽기 영화로 인간 읽기 102~103p

 

이 영화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은영이 자신의 모교로 발령 받으면서 시작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왜 하필 은영은 자신이 다닐 때 커다란 상처를 주었던 모교에 부임했던 것일까? 은영처럼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받은 장소나 상황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상처주었던 상황이나 사건과 비슷한 장소에서 체험하려는 것을 '반복 강박'이라고 한다. 이런 반복 강박을 체험하려는 것은 상처를 주었던 상황을 다시 체험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보고 싶은 무의식 때문이다. 은영이 모교에 부임했던 이유는 바로 '지난날 자신이 무기력하게 선생님의 협박에 굴복해서 친구를 따돌려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을 씻기 위해서였다.

김상준, 신화로 영화 읽기 영화로 인간 읽기 108~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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