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가의 응축된 생각 - 게임의 사회학

 

 

데이터 분석가로서 '나중에 시간이 흐른뒤에 이런 책을 낼 실력을 갖췄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입니다.

게임 로그 분석을 잘하고 더 잘하려고 고민하다가, 게임 로그 분석을 통해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하고 그걸 정리한 책이니까요. 마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본질을 통찰한다고 하는 것처럼요.

 

 

 

 

 

 

밑줄긋기

p.26

이후 경영진은 기존 게임 디렉터와 프로듀서를 경질하고 새로운 디렉터를 투입하는데, 그는 당시 스퀘어에닉스의 또 다른 간판 RPG인 <드래곤 퀘스트X>의 제작 총괄을 담당하던 요시다 나오키다. <파판 14>의 새로운 디렉터가 된 요시다는 기존 버전이 갖고 있던 수많은 문제점 중 당장 고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한편, 전반적인 리부트 버전 개발에 착수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한 가지 기발한 착상을 떠올린다. 기존 게임 서비스를 단순히 끝내고 리부트 버전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파이널 판타지> 속 가상 세계인 에오르제아가 거대한 재앙에 의해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설정을 적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존 버전을 리부트 버전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p.58

인과 추론 분석의 핵심은 '내가 추정하고자 하는 원인 변수만 다르고 다른 조건은 평균적으로 같은 집단'을 적절히 찾아내는 것이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여러 조건이 같은데 우연히 인센티브를 다르게 받은 사례를 찾기가 무척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조건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설령 그 조건들을 모두 알고 있더라도 정확히 측정하기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인과 추론 분석가들은 이상적인 사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잡한 통계기법을 사용한다. 내가 데이터 분석과 관련해 좋아하는 말 중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실상 사회과학 연구자들이 하는 연구의 대다수는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정도를 조금씩 줄여가는 행위이다.

 

p.99

조직원의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성장 조직은 조직원 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정체 조직이나 가입자보다 탈퇴자가 더 많아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쇠퇴 조직보다 더 많은 재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성장 조직에 속한 조직원들이 보유한 재화를 살펴보면, 소수의 캐릭터에게 부의 대부분이 편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 고성장기에 있는 국가에서 집단의 총 재화는 빠르게 늘어나지만, 그렇게 증가하는 부가 소수의 엘리트 계층에 편중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p.135-136

아이템 현금 거래가 국가 경제 발전에 미치는 효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 및 변형되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암호 화폐 채굴이다. 과거 아이템 현금 거래 시장에서 공급자 역할을 했던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은 이제 암호 화폐 시장에서 채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규모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기존에 온라인 게임에서 활동하던 작업장의 상당 수가 암호 화폐 채굴로 업종을 바꿨다고 알려져 있다. 생산 대상만 달라졌을 뿐 가상 재화의 공급자와 소비자가 국가 차원에서 역할이 나뉘고 둘 간에 무역이 이뤄진다는 점은 비슷하다. 심지어 202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메타버스나 대체 불가토큰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 투 언은 실상 기존에 있었던 MMORPG나 아이템 현금 거래에서 용어만 달라졌을 뿐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산업이 발전한다면 MMORPG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다소 주춤해진 아이템 현금 거래 시장도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들어 아이템 현금 거래시장을 다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이제 전세계 아이템 현금 거래 규모는 약 5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장의 핵심 공급자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렇게 가상 세계의 경제활동이 국가 겨여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 우리는 이제 가상 세계의 노동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효과에 관해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가상 경제가 본격화한다면 가상 세계에서 수행하는 노동 역시 현실 세계에서의 노동과 똑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