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3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가늠하려면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현장을 다녀볼 일이다.
p.13~14
때는 사담 후세인(1937~2006년)의 강압 지배가 절정에 달했던 1986년이었다. 하지만 감옥처럼 답답한 골짜기와 아슬아슬한 협곡들로 깊숙이 들어서자 도처에 있던 후세인의 대형 광고판과 이라크 군인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헐렁한 바지를 허리띠로 졸라매고 머리에 터번을 두른 쿠르드 민병대(peshmerga-페쉬메르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치 지도상으로는 여전히 이라크 영토 내에 있는 것이었지만, 산맥은 그곳이 극단적 조치로써만 정복 가능한 사담 후세인 지배의 한계선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지난 1980년대 말 사담 후세인은 궁극적으로는 산맥이 부여해준 자유를 쿠르드족이 수십, 수백 년 넘게 누리는 것에 분개하여 이라크령 쿠르디스탄 전면적 공격(악명 높은 알안팔 작전)을 단행, 민간인 10만 명을 학살했다. 그렇다고 산맥이 그 비극적 드라마가 발생한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지만 그것의 배경막-본질적 사실-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쿠르디스탄이 현재 이라크와 상당한 정도로 분리돼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산맥 때문이다.
p.23
현재의 사건들에 얽매이면 개인과 개인의 선택이 마냥 중요해 보이지만, 몇백 년의 기간을 조망하면 지리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p.41~42
논리적으로 속속들이 파고들면 양차 대전은 결국 독일이 독일 동쪽에 위치한 유라시아 심장지대를 지배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관련돼 있었고, 냉전은 매킨더의 심장지대 서단에 위치한 동유럽을 소련이 차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관련돼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소련의 지배를 받던 동유럽에 포함된 동독이 전통적으로 동쪽으로의 영토 확장 정책을 추구한 역사상의 프로이센을 좇아 심장지대를 지향했던 반면, 나토의 해양 동맹에 포함된 서독은 역사적으로 가톨릭을 신봉하고 산업적이고 상업적 기질이 강해 북해와 대서양 쪽을 지향했다는 점에 있다. 냉전 시대 연구의 전문가인 미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솔 B. 코언도 "동서독을 가르는 국경 지역은 ......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경계지 중의 하나", 다시 말해 중세의 프랑크족과 슬라브족을 가르는 경계지 중의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동서독 간의 국경에는 인위적 요소가 거의 없다는 의미였다. 코언에 따르면 서독은 "해양 유럽을 뚜렷이 반영하고 있었던" 반면, 동독은 "대륙의 육지세력권"에 속해있었다. 그러므로 "지정학적으로도 옳고, 전략적으로도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그는 독일의 분단을 지지했다. 해양 유럽과 심장지대 유럽 간의 끊이지 않는 분쟁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매킨더도 1919년 예지력을 발휘하여, "독일을 가르는 선은..... 또 다른 이유에서 우리가 전략상 심장지대와 연안지대를 가르는 선과 다를 바 없다"고 썼다. 그렇다면 베를린을 가르는 경계는 인위적일 수 있지만, 독일을 가르는 경계는 그보다 덜 인위적인 것이 되는 거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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