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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

by Diligejy 2023. 2. 25.

 

p.18~19

공화주의를 앞세우는 이들에게 조국은 민족이나 자기가 나고 자란 땅을 뜻하지 않는다. 미국이 대영 제국과 독립 전쟁을 하던 시기, 영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미국을 응원했다. 그뿐 아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앞세운 나폴레옹이 독일 땅을 쳐들어가자, 헤겔을 비롯한 많은 독일 지식인들은 프랑스 편을 들었다.

 

공화주의자들에게 애국이란, 시민의 자유를 지켜 주는 나라에 충성함을 뜻한다. 왕의 지배에 맞서 모든 시민의 권리를 앞세웠던 미국과 프랑스는 그들의 조국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하버마스의 헌법적 애국주의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을 뜻한다. 

 

p.50

"조급하고 미숙한 개혁가들은 인간의 고통을 줄이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고통을 지속적으로 늘려 놓았을 뿐이다."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1820~1903)의 말이다. 이 주장에 자신 있게 고개를 흔들 사람이 얼마나 될까?

 

p.102

들라쿠르아, <천둥 번개에 놀란 백마>

고전주의 질서에 혼란과 역동성으로 맞선 낭만주의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말이 놀라 뛰는 모습이다. 천둥 번개에 놀란 말은 눈을 치켜뜬 채 앞발을 들어 올려 갈기를 휘날린다. 놀란 말은 낭만주의 정신의 비유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균형과 질서에 혼란과 역동성으로 대항한다.

 

p.105

낭만주의는 민족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계몽주의는 이성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다. 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된다. 수학 공식을 예로 들어 보자. 프랑스에서 통하는 법칙은 영국에서도 에스파냐에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계몽주의는 세상 어디에서나 받아들여질 만한 법과 이상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감정과 신비를 강조하는 낭만주의는 다른 길을 간다. 독일 시인 헤르더(1744~1803)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자란 곳의 언어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따라서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사람들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사상이란 없다.

 

각 민족에게는 고유한 전통과 문화가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이상을 앞세우는 시도는 독재와 억압일 뿐이다. 낭만주의는 이런 생각에 맞서려 한다. 낭만주의가 '혁명가의 사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p.118~119

모든 직장생활에는 끝이 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내게서 떠나가 버린다. 최고 성적을 거두어 이른바 명문 학교에 가면 무엇하겠는가. 인생의 최종 결과는 누구나 똑같다. 죽음에 이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찾듯 삶의 의미를 주는 일을 절절하게 찾는다. 내 삶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듯 싶으면 나라는 인간의 가치를 알아주고 내 인생의 의미를 줄 새로운 일을 찾아 매달린다. 우리 대부분은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 불안해한다. 이 점에서 인간은 '의미 중독자'인 셈이다.

 

p.121~122

인생의 가치가 자신 바깥에 있는 무엇으로 정해진다면, 내 삶은 언제나 휘둘릴 수밖에 없다. 회사가 망해 버리면 그동안에 기울인 헌신도 말짱 도루묵이 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제아무리 높은 지위를 차지했어도 내 삶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나아가, 사르트르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라고 충고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투덜대곤 한다. "나는 환경이 좋지 않았지. 나는 위대한 사랑을 하지 못했어. 그럴 만한 사람을 못 만났기 때문이야. 나는 좋은 책을 쓰지 못했어.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지. 나는 아낌없이 애정을 쏟을 아이를 낳지 못했어. 삶을 같이할 만한 남자를 못 만났던 탓이야." 여건이 안 되어서 내가 가진 가능성이 피어나지 못했을 뿐, 나는 소중하고 뛰어난 존재라며 스스로를 기만하곤 한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방법이 없다. 너무 골치가 아파서 차라리 돌처럼 생각 없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방법이 없다. 자유는 우리에게 언제나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자유를 마치 벌인 양 선고받았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삶의 가치는 자유를 어떻게 썼는지에 따라 정해진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간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지 안 하는지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주변 여건이 좋은지 나쁜지도 내 뜻대로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을 할지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힘주어 말한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실현하는 한에서만 실존한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남의 결정과 환경에 책임을 돌리지 말라는 뜻이다.

 

p.127

현대 미술에서 황소 머리

 

피카소(1881~1973)는 녹슨 자전거 안장에서 황소 얼굴을 보았다. 현대 미술이라는 구조에서는 자전거 안장도 갤러리에 놓이고 감상하게 된다. 자전거라는 구조 속에서 안장이던 것이 현대 미술이라는 구조에서는 황소 얼굴이 된 것이다.

 

p.140

해체주의는 건축, 패션, 문학 비평 등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해체주의는 지금도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예컨대 건축에서는 오랫동안 'less is more'가 정석이었다. 단순하고 합리적인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사실, 단순한 직육며체 모양의 건물이 공간을 쓰는 데는 가장 요긴하다.

 

그러나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less is bore'라고 말한다. 단순하고 합리적인 것은 지겨울 뿐이다. 해체주의를 따르는 건물에는 직선이 별로 없다. 곡선과 대각선이 제멋대로 섞여 있다. 재밌기는 한데,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리 안 된 '무질서한 에너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식이다.

 

해체주의 패션도 다르지 않다. 상표를 밖으로 드러내 옷을 뒤집어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좌우의 모습이 똑같지 않은 식이다. 이들은 질서를 조롱하는 듯 보인다. 문학에서 해체주의 비평은 작품의 완결성, 작가의 진짜 의도 등은 믿지 않는다. 그리고 작품을 둘러싸고 다양한 말장난을 풀어 놓는다.

 

p.201

미국인에게 서부 개척 시기와 프런티어 정신은 영원한 꿈으로 남아 있다. 프런티어 개척기가 끝난 뒤, 미국에서는 서부극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1926년부터 1967년에 이르는 40년 동안 미국에서 만들어진 할리우드 영화의 4분의 1 가량이 서부 영화였을 정도다. 특히 1950년대에는 서부 영화가 텔레비전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시청률 10위까지의 프로그램 가운데 서부 영화가 7개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

 

프러너티어 문화는 단순한 향수에 그치지 않았다. 프런티어 개척이 끝난 뒤로, 미국은 해외 진출에 눈을 돌렸다. 하와이를 점령하고 에스파냐와의 전쟁을 통해 쿠바와 필리핀을 차지했다.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까지 세력을 뻗치더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에까지 진출했다. 오늘날 미국은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패권 국가로 거듭난 상태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에게 디엔에이처럼 박혀 있는 프런티어 정신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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