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p.7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컨테이너 선들은 어디서 물건을 만들고, 어디서 물건을 재배하고, 어떻게 고객들에게 물건을 옮길 것인가를 결정할 때 운송비를 고려 대상에서 거의 지워버렸다. 컨테이너선들은 세계무역을 재편하여 12개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조립해 자동차를 만들도록 했고, 호주에서 약 1만 1,265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와인을 병당 미화 15센트(약 185원)에 운반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컨테이너선들은 중국이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로 변신하는 놀라운 변화와 더불어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독일 도르트문트에 이르는 전통적 제조업 중심지의 쇠락을 가져왔으며, 높은 운송비용으로 보호되던 개별 국가의 시장들을 거의 완벽하게 글로벌 시장으로 통합시킨 존재이기도 하다.

 

p.19

2세기의 역사를 지나는 동안 세계화는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전쟁과 경기침체는 무역, 투자, 이민의 흐름을 방해했으며, 개별 국가들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세계 경제와 단절하는 선택을 했다. 러시아는 1917년 혁명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집권 이후 30년 동안 세계 경제와 고립되어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세계화의 절정'이 지나갔다거나 세계화된 세계 경제가 지역 블록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주장은 다소 시기상조로 보인다. 세계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대에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반쯤 빈 상태로 전 세계를 항해하면서 점차 세계화는 매우 다른 형태를 띠게 됐다. 컨테이너 상자의 흐름은 과거의 세계화였다. 경제 발전의 다음 단계에서 세계 경제를 더욱 긴밀하게 결속시키는 것은 아이디어와 서비스의 흐름이다. 

 

p.28~30

상품은 인류 문명의 초창기부터 먼 거리를 이동했다. 4,000년 전 아시리아인들은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에 무역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1,000년 경에 단봉낙타가 가축화되자 낙타 등에 향료를 실은 대상들은 아라비아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했고, 1,000년 후 예멘 연안의 작은 섬인 소코트라는 인도와 로마 간의 무역 중심지가 됐다. 그로부터 1,000년 후인 11세기 초에 북유럽의 모험가들은 북미에 도착했을 때 무역 기회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을 것이다. 1271년 베네치아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여행을 떠난 마르코 폴로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삼촌은 그보다 좀 더 운이 좋았다. 1500년대 초반에 시작된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은 크고 정교한 사업으로 성장했다. 1750년 이후 영국 상인들은 총, 주전자, 천, 신발을 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교역 거점에 수출하고 이 상품들을 노예로 교환한 이후 아메리카에서 노예를 팔고 영국으로 귀환하는 배에 설탕과 담배를 채웠다. 노예무역으로 최소 3만 6천 회에 걸쳐 약 1,250만 명의 노예가 강제로 대서양을 횡단했으며, 약 50만 명의 노예가 바다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사이를 이동했다. 노예무역은 수익성이 매우 높았으며 완전히 세계화됐다.

 

멀리 떨어진 사람들 간의 이러한 교류에는 상품과 노예의 무역 이상의 것이 수반되었다. 그 중 하나가 질병이었다. 흑사병은 1334년 중국을 휩쓸고 1346년 흑해까지 도달했으며, 이후 7년 안에 유럽의 8,000만 명 가운데 4,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또 다른 것은 사상이었다. 불교는 2,000년 전 인도에서 중국으로 수입됐고, 이슬람교는 610년 경 아라비아에 창건되어 713년에 스페인에 이르렀다. 1540년대에 포르투갈의 신부들은 일본에 기독교 사상을 전파했다. 경제적 혼란이 수반되기도 했다. 1530년대 무렵부터 스페인의 새로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유입된 은은 150년 동안 유럽의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했다. 이것은 역사학자들이 '가격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파괴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확실히 정치권력의 확산을 수반했다. 점차 많은 나라가 무역을 이용해 식민지나 속국으로부터 얻은 부와 세금과 함께 자신의 지배권을 확장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