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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투자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이지만, 단순히 투자 기법을 다룬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기존에 구루라고 불렸던 사람들의 말과 글을 모은다. 자료들은 가설을 바탕으로 해석해보고 여러 맥락들과 겹쳐보면서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추측해본다. 그렇게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투자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배우는게 아니라 마치 숙련된 형사 옆에 새로 배치된 신입 형사처럼, 구루를 추적하기 위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가게 된다.
설령 투자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하더라도 이 책은 읽을 수 있고, 저자의 논리적 사고에 놀라게된다. 그는 그저 이 책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혹은 이건 이런 의미라고 합니다 라고 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맥락을 가져와서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고, 현재에도 그 맥락이 작동하는지 비교해본다. 또 같은 인물 혹은 인물과 연관된 사람이 이전에 했던 말과 대조해본다. '왜' 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버핏은 왜 그런 말을 한걸까, 그레이엄은 왜 그런말을 한걸까, 피터 린치는 왜 그런말을 한걸까. 다른 서적이라면 '자료가 없지만 대충 이렇게 될겁니다'하고 넘길만한 것 마저, '모을 수 있는 자료를 다 모아서 모델링을 해보니 대략 이렇게 됩니다' 하는 걸 보고 혹시 논문을 준비하시는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마치 역사서를 서술하듯 (책에서 저자는 '1차 사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엄밀한 논증을 진행하는 저자를 보며, 영화 평론가 이동진을 떠올렸다.
이동진은 엄청난 어휘력을 활용해서 감독보다도 더 영화를 집요하게 파낸 평론을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디테일에 강한 봉준호마저 '설명해주신 내용을 그대로 잘라서 붙이면 제 답변이 될 것 같아요'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정말 그레이엄이나 버핏이 저자가 추적하는 극한의 논리적 추론만큼 논리적으로 정리한 다음 의사결정을 내렸을까? 일반인들에 비하면 엄청난 리서치를 했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정도까지의 사고를 하진 않았을것 같은데'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하나의 단어조차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추적한다.
사실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단순히 활용측면에서만 본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아니 투자서적을 읽을 필요 자체가 없다. 저자가 1부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듯이, 시장을 아웃퍼폼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프로들도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문적으로 훈련받고 뛰는 선수도 아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은 그저 시장 벤치마크 지수만 따라가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투자 서적을 보면서 흥미를 가졌던 2017년부터 지금까지, 투자 서적을 읽고 생각해보는 건 지적으로 흥미로운 게임을 하는 것 같았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을 받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늙어서까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적 유희일거 같다.
그러니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수익률을 올려야지 라고 기대하기 보다는 프로운동선수가 보여주는 멋진 올스타 해설 경기를 보듯이 저자가 보여주는 공연을 관람하면 좋을 듯 하다.
무엇보다 사모펀드를 운영하는 사람이, 그것도 퀀트 투자를 운영하는 사람이 벤치마크 대비 알파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핵심 로직을 서술할 리가 없지 않은가.
비판하는 게 아니다. 저자의 직업이 가진 본질적 속성이기 때문에 핵심 알고리즘을 알려주는 순간 돈을 맡긴 고객과 회사 동료들에 대한 의무를 위반한 것이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고, 비밀 준수 의무는 직업 윤리에 해당한다.
물론 이 책을 보다보면 아주 약간씩 뭔가 여지를 남기는 듯한 뉘앙스의 문구가 보이지만, 이걸 가지고 로직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훈련되었다면 그건 이미 프로 선수로 뛰어도 될 정도의 실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밑줄긋기
p.34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도 주식투자자보다는 부동산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합니다. 변동성이 작을수록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마음 편히 빌려줄 수 있으므로 부동산은 레버리지를 일으키기가 쉽습니다. 같은 의미에서, 주식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일으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총수익률이 주식이 더 높다 하더라도, 실제 주변에서는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부동산과의 비교는 이 정도로 해둡시다.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는 부동산과 주식 중 무엇이 더 우월하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자산의 속성을 논할 때 단순히 수익률만 보아서는 안 되고, 얼마나 위험을 짊어졌느냐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p.38
굉장히 흥미로운 사실은 채권은 보유 기간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최저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구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30년을 투자해놓고 마이너스가 나면 기분이 많이 안 좋잖아요? 주식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채권이 장기투자에서는 오히려 손실 가능성이 주식보다 더 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p.62
"인간은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단은 판단이라는 행위를 한다."
- 루이스 월퍼트
p.73
주식시장에서 우리 뇌는 우리가 항상 무언가를 '하도록' 만듭니다. 사실 주식시장은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에서 아주 많은 걸 배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의사결정의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씩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 양식은 우리가 그 긴 기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p.91
맞서 싸워야 할 적은 시장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의 조급함입니다. 매일매일의 조바심과 질투를 이기고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다 보면,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순위가 상승하여 1년, 2년, 10년이 지나 한층 여유로워진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p.126
버핏이 지적하는 사항은 이렇습니다. 2억 2,500만 마리의 오랑우탄이 게임을 해서 20번 연속으로 맞힌 오랑우탄이 215마리 나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중 40마리가 오마하라는 특정한 지역 동물원 소속이라면 이건 뭔가 이상한 일입니다. 심지어 그 원숭이들을 한 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다면, 정말로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야지요.
p.131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에 버핏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주식이 기업의 일부라고 항상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식을 대하는 태도는 다릅니다. 주식은 분 단위로 가격이 형성되며 언제든 매매할 수 있어서 사람들은 매 순간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1949년 벤저민 그레이엄이 내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주식은 차트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는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기업의 일부라고 말이지요."
p.134-135
주식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가격 변동은 내가 그 물건을 싸게 사거나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일 뿐입니다. 1만 원짜리 티셔츠를 5,000원에 팔고 있다면, 기분 좋게 사서 입을 수 있겠지요. 만약 다음 날 옷가게에 갔는데 같은 티셔츠를 4,000원에 팔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분이 썩 좋진 않겠지만, 원하면 하나를 더 살 수도 있겠지요. 혹은 그 티셔츠가 2만 원에 팔리고 있다면요? 더 살 마음은 싹 사라질 겁니다. 어쩌면 어제 산 티셔츠를 되팔 생각도 해볼 수 있겠지요.
'가치 기반 사고'를 갖추지 못한 투자자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1만원짜리 티셔츠를 5,000원에 샀다가도, 다음 날 이 티셔츠가 4,000원에 팔리고 있는 걸 보고 기겁해서 다시 집으로 뛰어가서 어제 산 티셔츠를 4,000원에 팔아버립니다. 반대로 오늘 2만 원에 팔리고 있다면 필요하지도 않은 티셔츠를 하나를 더 사버리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내일 티셔츠 가격이 어떻게 될지 전전긍긍합니다.
가치 기반 사고를 하지 않는 투자자는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언제나 불안합니다. 시세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재빠르게 대응하려고 합니다. 그게 참 쉽지 않아서, 삶이 피폐해집니다.
p.136
이런 상황을 버핏은 그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표현합니다. "어떤 자산의 가격이 최근 상승했다는 이유로 그 자산을 사서는 절대 안 됩니다. (중략) 경기는 점수판만 쳐다보는 선수들이 아니라 시합에 집중하는 선수들이 승리합니다. 주가를 보지 않고서도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평일에도 그렇게 해보십시오."
p.139
주식은 분명히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 가치가 얼마인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값으로 계산해낼 수는 없습니다.
p.142
버핏의 1997년 발언을 볼까요. "변동성은 위험이 아닙니다. 주식시장의 일간 변동성이 0.5%든, 0.25%든, 아니면 5%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변동성이 커질수록 시장에서 발생하는 실수도 증가할 터이므로 우리가 버는 돈도 더 많아질 것입니다. 진정한 투자자에게는 변동성이 커다란 이점이 됩니다. (중략) 재무학과 교수들은 변동성이 곧 위험이라고 믿습니다. 이들은 위험을 측정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서 변동성이 위험이라고 말합니다."
p.144~145
보통은 안전마진에 대해서 '가능한 싸게 사라'는 뜻이라고 해석합니다. 1만 원짜리를 5,000원에 사면 50% 싸게 사는 것이고, 4,000원에 사면 60% 싸게 사는 것입니다. 싸게 살수록 내가 손해볼 가능성은 작아지고 잠재적인 이익의 폭은 커지겠지요.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너무 단순해 보입니다. 무작정 싸게 사려고만 한다면, 가격이 얼마가 되든 더 싸게 살 기회를 노려야 합니다. 언제쯤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다지 알려주는 게 없습니다. 30% 싸게 사면 좋은 건가요? 40%는요? 50%는요? 60% 싸게 사면 정말 안전한가요?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가격이 오를 때에는 주식을 더 살 수 없습니다. 어제 5,000원이었는데 오늘 5,100원이 되었다면 어제보다 오늘 안전마진이 더 줄어들었기 때문에 더 사기가 굉장히 껄끄러워집니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를 많이 놓칩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싸게 사려고만 하다 보면 기회는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을 발견하면 여기에 많은 돈을 투입합니다. 그런데 보통은 싼 건 싼 이유가 있지요. 만약에 내가 계산한 1만 원이라는 가치가 잘못되었다면요? 사실 5,000원이 적당한 가격인데 내가 뭔가를 잘못 생각해서 1만 원이라고 생각한 거라면요?
우리가 안전마진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의 불확실성, 즉 내 예측이 틀릴 가능성 때문인데, 내가 틀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원칙이 의사결정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건 매우 어색합니다.
p.147
안전마진은 기대수익률뿐만 아니라 '실수에 대한 여유공간'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p.149
그레이엄은 사람들의 예측 능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정호가한 값이 아니라 범위로 가치를 평가하라고 했습니다. <증권분석>의 저자인 그레이엄과 도드는 "정확한 체중을 몰라도 비만인지 아닌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레이엄의 제자 버핏은 이렇게도 이야기했습니다. "정밀하게 틀리는 것보다는 대략이라도 맞히는 게 낫습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정확히 얼마짜리냐'가 아닙니다. '얼마의 가격이면 마음이 편할 수 있느냐', '얼마의 가격이면 밤잠을 설치는가'입니다.
p.150~151
벤저민 그레이엄의 핵심 '사고 체계'는 이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1) 주식은 사업의 일부이다. 주식에는 가치가 있다.
2) 그 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해내기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가치를 신경 쓰지 않는 투자자가 많기 때문에 가격은 매번 왔다 갔다 한다. 내가 가치를 합리적으로 추정해냈다면, 시장의 변동성은 위험이 아니라 기회다.
3) 내가 아무리 가치를 잘 판단했더라도 시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따라서 가능한 한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여 안전마진을 확보하고, 여러 아이디어에 분산투자해야 한다.
p.154
<현명한 투자자>에 '성장주'라는 표현은 69회 나오지만 '가치주'라는 표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레이엄은 가치와 성장을 대비시키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그는 '성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펀드들의 수익률이 썩 매력적이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는 성장주 대비 가치주가 우월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미래의 성장에 기댄 투자가 위험하다는 걸 강조했을 뿐입니다. 그레이엄은 "현재 숫자로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주로 막연한 미래 예측을 바탕으로 하는 투자는 위험하다. 그렇지만 실적을 근거로 냉정하게 계산한 가치만을 고수하는 투자도 어쩌면 똑같이 위험하다"라고 하였습니다.
p.158~159
그레이엄이 제시한 여러 공식 중 '성장주의 적정 주가' 공식은 한 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명한 투자자> 11장에는 아주 단순한 성장주 평가 공식이 나옵니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장주의 적정 주가' = EPS * (8.5 + 2 * '기대성장률')
허탈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나요? 여기서 기대성장률은 향후 7~10년 동안 예상되는 EPS(주당순이익)의 연평균 성장률입니다. 예를 들어 성장률이 10%라면 적정 PER은 28.5배, 성장률이 20%라면 적정 PER은 48.5배가 됩니다.
p.161
'가치투자'는 무작정 PER의 절댓값이 낮은 주식을 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 PER' 대비 낮은 PER의 주식을 사는 겁니다. PER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기대성장률이고, 가격에 내재된 기대성장률 대비 내가 기대하는 성장률이 높은가 낮은가를 물으면 됩니다. 어떤 주식의 PER이 25배라면 내재된 성장률(시장에서 기대하는 성장률)은 '(25 - 8.5)/2 = 8.25%'입니다. 내가 이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다면 PER 25배는 싼 가격이고, 아니라면 비싼 가격입니다.
p.164
워런 버핏은 1987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서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장은 어느 정도 기간 동안은 사업의 성과를 무시할 수 있지만, 결국은 이를 인정하게 됩니다. 벤이 말한 것처럼,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인기투표 기계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중계입니다." 아주 많이 인용되는 문장인데, 그레이엄이 쓴 책에서는 이 문장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장은 체중계가 아님을 여러 번 강조하고, 기업가치는 하나의 값이 아니라 범위로 파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p.165
생각해봅시다. 장기적으로 가격이 가치에 수렴한다면, 지금 왜 수렴해 있지 않은 거죠? 10년 전 과거 시점에서 현재는 10년 후의 미래입니다. 그럼 지금은 가격이 가치에 수렴하여 변동성이 극히 줄어들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그렇습니까?
p.168~169
그레이엄의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현명한 투자자> 15장 '공격적 투자자의 종목 선정'에서 그는 본인이 지난 30년간 사용한 투자 기법을 열거합니다. 그 기법이란 차익거래, 청산, 순수 헤지, 염가 종목, 경영권 투자, 유사 헤지 등입니다. 화려하지요?
그레이엄을 PER이나 순유동자산 등의 지표를 중시한 투자자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1세대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기념비적인 투자 사례 중 하나로 노던 파이프라인이 있습니다. 그는 1926년, 이 회사의 장부를 조사해본 결과 회사가 대량의 철도 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포함한 현금성 자산의 가치가 주당 95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주가는 주당 65달러였습니다. 그레이엄은 1대 주주였던 록펠러 재단 다음으로 많은 지분을 확보하였으며, 약 2년에 걸친 싸움 끝에 1928년 노던 파이프라인의 이사로 등재되며 주당 110달러 이상의 주주환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후 스탠더드 오일의 자회사인 내셔널 트랜짓 컴퍼니에도 싸움을 걸어서 회사가 하려던 사업 계획을 철회시키고 상당한 규모의 현금을 주주들에게 배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레이엄이 열거한 투자 기법은 대체로 상당한 전문성과 자금력을 필요로 합니다. 고도의 분석은 물론이요, 법률 요소도 검토하고 회사에 직접 싸움을 걸거나 경영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시장이 나에게 친절하지 않으니, 시장에 싸움을 걸어서 무릎을 꿇도록 만든 것이지요.
p.174
가격은 가치에 수렴하지 않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 기반 사고를 사용하여 일반인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치의 성장에 기대어 장기간 보유하는 것입니다.
p.176
취향을 원칙으로 주장하면 남는 건 오해와 반목, 저조한 성과일 뿐입니다.
p.208~209
버핏은 11살에 처음으로 주식을 매수하였습니다. 13살에 처음으로 세금 신고를 했습니다. 버핏은 6살 때부터 껌을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9살 때에는 코카콜라를 팔고, 신문배달을 하고, 잡지도 팔았습니다. 중고 골프공도 팔고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땅콩과 팝콘도 팔았습니다. 10살 때 <천 달러를 버는 천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고 복리의 마술을 깨달은 그는, 35살에 백만장자가 될 거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듬해 그는 실제로 주식을 매수함으로써 복리 성장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17살에는 회사를 설립하고 핀볼 기계를 설치하여 운영하는 사업ㅇ르 했습니다. 버핏은 10대 때 이미 투자와 사업을 병행하며 돈을 모으고 경험을 쌓았습니다.
버핏은 20살이 되던 1950년에 이미 1만 달러가량을 저축해두었습니다. 30살인 1960년에 재산 100만 달러를 모아서 11살 때의 선언을 5년 초과 달성했고, 35살이 된 1965년에는 3,700만 달러를 소유했습니다. 이때 이미 미국 내 최고 부자 반열에 올라섰지요. 여러분은 10살, 20살, 30살에 얼마를 가지고 있었나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고서도, 워런 버핏보다 부자였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p.222-223
버핏이 정의하는 투자는 '장래에 더 많은 구매력을 받으리라는 합리적인 기대에 따라 현재 구매력을 남에게 이전하는 행위'입니다. 좀 더 간단히는 '장래에 더 많이 소비하려고 현재 소비를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이 관점에서 투자의 위험은 베타나 변동성 같은 지표가 아니라, '예정 보유 기간에 투자자에게 발생할 구매력 손실 확률'입니다. 여러 자산군에 대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기적으로 가격이 얼마나 급하게 오르내리느냐가 아니라, '예상 보유 기간'이 얼마이며, 그 기간 동안 '구매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얼마인가'입니다.
p.230-231
그레이엄의 관점에서는 가치, 즉 '받는 것'이라는 게 회사에서 자발적으로 주는 게 아니라 속된 말로 '주리를 틀어서' 받아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주식을 산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회사와 대척 관계에 서게 된다는 게 그레이엄의 지론이었습니다. 그에게 회사란 가치 있는 무언가를 숨겨놓는 비밀금고이고, 경영진은 비밀금고의 열쇠를 손에 쥐고는 모른 척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레이엄 입장에서는 할인율이니 뭐니를 생각하기보다는 회사와 어떻게 싸워서 이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짜내는 것이 수익률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요소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버핏은 회사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고, 계속해서 남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고 그 성과를 주주에게 돌려주려고 하는 경영진이 있는 회사와 파트너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했습니다. '기업은 살아 있는 생명체다'라는 표현은 순수한 은유가 아니라 어느 정도 실제 사실을 반영합니다. 생명체는 외부 자극에 대응하여 무언가 반응을 합니다. 회사는 살아 있는 인간들이 '뭐라도 하고자'모인 곳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기업의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입니다.
버핏과 멍거가 찾는 기업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업을 이해할 수 있고
2) 장기 경제성이 좋으며
3) 경영진이 유능하고 믿을 수 있고
4) 인수 가격이 합리적인 기업'입니다.
2)와 4)는 그레이엄이 동의했을 내용이지만 1)과 3)은 그레이엄이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던 요소입니다. 이 두 요소, 사업을 이해할 수 있느냐와 경영진이 유능하느냐는 기업의 가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길래 두 사람의 방식에 차이를 가져왔을까요?
p.239
버핏은 기업가치를 동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이벤트가 생기면 거기에 반응해서 스스로를 바꿔 나가는 생명체로 보았습니다. 버핏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놀라울 정도로 변화에 잘 적응했으며, 카드 소지자들에게 더 좋은 이미지를 확립했습니다. 온갖 난제에 매우 민첩하고도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라고 평했습니다. 이후 '웰스 파고' 은행이 유령 계좌를 통해 실적을 부풀린 사건에 대해서 "사건을 파악하고서도 대처하지 않았"던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을 만큼, 버핏은 문제를 대하는 기업의 태도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합니다.
p.250
'경제적 해자'를 흔히 기업의 '경쟁력'과 같은 의미로 쓰기도 하는데요. 버핏이 이야기하는 경제적 해자는 훨씬 심오합니다. 단순히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이라고 해서 좋은 투자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효율적인 '현금 창출 기계가'되어야만 투자자에게 의미 있는 경쟁력이며, 버핏이 원하는 해자입니다.
p.257
던져야 할 질문은 해자 개념이 고루하니 어쩌니가 아닙니다. 해자 개념은 둘 사이에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테슬라는 테슬라대로 해자를 가지고 있고, 버크셔의 사업은 그들만의 해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던져야 할 질문은 '테슬라가 해자를 갖춘 것으로 보임에도 버핏이 왜 투자하지 않았는가'입니다. 일론이 투정부렸던 지점도 그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훌륭하게 사업을 하고 있는데, 당신의 해자 개념에도 부합하는데, 왜 투자를 안 하는 거야?"라는 거죠.
일론은 시시때때로 버핏에게 "테슬라를 사라", "테슬라를 샀어야 했다"라는 식의 트윗을 날립니다. 트위터야 귀엽게 넘긴다 쳐도, 엄청난 주가 상승을 버크셔가 놓친 건 사실입니다. 이 점은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을 몰라서'라는 건 궁색한 변명입니다. 버크셔는 중국의 전기차회사 'BYD'에도 투자했습니다. '전자제품은 소비재다'라면서 애플에도 투자했습니다. 전기차는 자동차고, 자동차는 소비재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투자를 안하죠?
p.263
테슬라, 애플, 아마존의 시가총액, 오너 어닝 비교
테슬라 | 애플 | 아마존 | |
시가총액(조 달러) | 1.04 | 2.85 | 1.68 |
오너 어닝(100만 달러) | 845 | 94,879 | 12,264 |
비율 | 1,231 | 30 | 137 |
p.266-267
해자를 구축하는 데에는 현금이 필요합니다. 아직 산업이 덜 성숙하여 누가 승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량의 자본투입이 필요한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버핏이 기피할 뿐이지 '나쁜' 일은 아닙니다.
버핏이 정말로 싫어하는 최악의 비즈니스는 해자가 아직 구축되지 않은 기업이 아니라, 해자를 제대로 만들 가능성이 요원한 기업입니다. 산업이 성장하는 내내 자본을 요구했고, 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서 이제 현금 회수기에 진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을 요구하는 사업들이 있습니다. 해자 구축이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자 아래로 물이 줄줄 새고 있는 것이지요.
버핏은 이런 사례로 항공업을 듭니다. 항공 사업은 항공기 리스/구입, 유지보수, 노선 유지 등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경쟁이 언제 끝날지는 요원합니다. 버핏은 1989년 'US에어' 우선주를 샀다가 한참 고생했습니다. 1998년에야 '운 좋게도 ' 항공 산업에 대한 낙관론이 일면서 팔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미국 4대 항공사 주식을 모조리 샀다가, 코로나 국면에 대거 손실을 보면서 팔았습니다. 그 후 주가가 급등해버렸지만 여전히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버핏은 일찍이 항공 산업은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이후" "끝없이 자본을 요구하며" "항구적 경쟁우위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차라리 첫 비행 때 "그 비행기를 격추했다면 이후 자본가들이 큰 덕을 보았을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p.276-278
미래의 성장에 베팅하는 건 좋습니다. 다만 낙관적인 성장 전망으로 주목받는 회사들일 경우, 가치를 파괴하면서 성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혹은 기존의 계획대로 성장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에는 갖은 핑계를 대면서 현금을 돌려주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현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투자가 '가치투자 철학에 부합하느냐, 아니냐'하는 건 무의미한 질문입니다. 내가 어떤 능력 범위를 갖고 있으며, 그 안에서 적절한 전망과 기대수익률을 계산하면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느냐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입니다.
만약에 어떤 기업에 대해서 "향후 5년간은 현금이 계속 잠식된다. 그러나 5년 정도가 지나면 현재 20개의 플레이어 중 3분의 1 정도는 사라질 수 있다. 이후 경쟁이 완화되고 또한 설비투자의 감가상각비가 줄어드는 반면, 신규 투자는 불필요해져서 현재 20% 수준인 ROIC가 미래에 40%까지 상승할 수 있다. 이 기업은 현금을 되돌려주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쏟아부을 가능성이 크지만, 기존의 사업에서 경쟁에 승리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후에 투자할 신사업에 대해서도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라고 믿을 수 있다.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신사업은 A, B, C가 있는데 A와 B는 괜찮아 보이고 C를 선택한다면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 이런 식의 전망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전망을 반영하여 기대수익률과 안전마진을 계산할 수 있다면, 그 투자는 합리적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p.281
"자신의 게임을 정의하고 자신의 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p.290
"투자자의 목표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5년, 10년, 혹은 20년 정도 후에 지금보다 이익이 막대하게 늘어나 있을 것으로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삽니다. 오랜 기간 실제로 이 기준을 충족하는 회사는 몇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회사를 발견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수량을 사야 합니다. 또한 다음 원칙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충동을 참아내야 합니다. 주식을 10년간 보유할 수 없으면 단 10분도 보유해서는 안 됩니다. 수년에 걸쳐 포트폴리오 합산 이익이 증가하면 포트폴리오 시장가치도 그에 따라 증가합니다."
p.297-298
실무적으로 사용하기 좋은 모델은 단순하면서 직관에 위배되지 않는 결괏값을 내놓으면 됩니다. DCF라는 모델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할인율 계산에 CAPM을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분자에 들어가는 FCF가 너무 변동이 심하다는 점 등으로 인하여 실무적으로는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M&A나 전략 컨설팅 등에서 일부 활용할 따름입니다. 일반적인 투자자들이 DCF에서 배울 점은 세부적인 계산법이 아니고, 할인율이나 현금흐름, 미래 예상 기간 등의 변수가 가치에 얼마나 민감하게 영향을 끼치는지 등 개념적인 요소들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버핏이 '이론적으로 옳다'라고 한 건 가치에 어떤 변수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좋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버핏은 어떤 할인율을 쓰냐는 질문에 그냥 '국채 수익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좋은 모델링은 가급적 단순한 변수를 넣고, 최종 단계에서 모델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따로 이야기합니다. 할인율이 위험을 반영하면 너무 복잡해집니다. 할인율은 그냥 '나'라는 한 투자자의 기대 수익률을 쓰고, 불확실성은 분자에 넣는 게 낫습니다. 분자, 즉 현금흐름에 대해서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로 시나리오를 나누어서 가치평가를 하고 안전마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는 게 훨씬 간편한 방법입니다.
p.301
BPS는 저평가되는 척도지만, 가치의 변화 방향을 추적하기에는 매우 용이합니다. 이 메시지는 사실, 그동안 모호하게만 설명하던 기업의 가치에 대해서 버핏이 가장 명호가하게 제시해준 개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고유의 투자 전략을 세워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p.311-312
사람들은 피터 린치의 조언을 따르겠다며 주변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과 서비스를 파는 회사를 찾아보고, 곧바로 매수에 나섭니다. 피터 린치는 이런 행태를 '오해'라고 합니다. 2015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가 마음에 든다고 당장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저는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주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식을 사곤 합니다. 그건 나쁜 도박일 뿐입니다."
'아는 것에 투자하라'는 말은 '모르는 것에 투자하지 마라'는 말입니다. 의사가 반도체 주식을 사고, 의류업 종사자가 바이오 주식을 사는 그런 행태가 위험하다고 말한 겁니다.
회사가 파는 물건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바로 그 회사의 주식을 사는 건 위험합니다. '생활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라'는 말은 투자 아이디어의 출발점을 생활 주변으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그건 그냥 투자 아이디어의 첫 단추일 뿐입니다. 제대로 된 투자 아이디어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기업이란 무엇이고 주식이란 무엇인지, 투자자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더불어,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제품이 이 회사의 매출액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전략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사의 다른 사업부나 다른 제품은 어떠한지, 재무구조는 튼튼한지, 어떤 위험 요인이 존재하는지, 주식의 가격은 너무 비싸지 않은지 등등의 수많은 질문을 던진 이후에야 '사도 되겠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p.319
버핏도 장세 예측에 대해서 부정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버핏은 "우리는 거시경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거시경제 전망을 잘한다고 해서 우리가 투자 실수를 피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장세 변화를 예측하고자 하는 살맏르은 두 번 중 열 번 정도 틀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장세 전망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식투자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혹시 주변 지인 중에 '바텀업으로 투자하세요'라고 조언하는 살마이 있다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장세에 신경쓰는 사람보다는 돈을 벌 확률이 월등히 높습니다.
p.323
바텀업 투자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매크로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을 때 이 실적이 정말로 기업이 잘해서 잘 낸 실적인지, 그냥 환경이 좋아서 묻어가서 잘한 실적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잘못된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껏 이 책에서 '대가'들의 성과를 평가할 때에도 늘 '초과수익'을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남들이 다 좋을 때 함께 잘한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적이 나쁠 때에도 정말로 이 회사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나쁜 실적이 나온 건지, 혹은 모두가 함께 힘든 과정을 겪는 중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터 린치의 결정적인 투자 건들은 죽을 듯 하다가 살아나는 기업들, 소위 '턴어라운드주'에서 다수 나왔습니다. '크라이슬러'와 '팬 센트럴'은 절대금액 기준으로 피터 린치가 가장 크게 이익을 얻은 종목입니다.
p.338
'화단에서 꽃을 뽑아내고 잡초에 물을 주는 행위를 경계하라', 그리고 '10루타를 찾아라'는 이야기는 종합해보면 기업의 가치를 범위로 평가하고 상황이 변할 때마다 재평가하라는 말입니다. 앞서 꾸준히 해온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다만 린치는 이것을 개별 기업을 넘어서 전체 포트폴리오 관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알려준 것이지요.
p.341
1. 우리가 사는 종목들 중 일부는 10루타의 씨앗이다.
2. 10루타는 장기간 보유했을 때 발현된다.
3. 10루타로 가는 동안 매도하고 싶은 충동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
4. 단지 높은 수익률이 났다고 기계적으로 매도해버리는 행위는 포트폴리오의 장기 수익률을 크게 훼손한다.
p.347~349
여기서 도움이 되는 개념이 린치의 '2분 연습 - 2 minutes drill'입니다. 피터 린치는 주식을 매수하기 전에 "주식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 회사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앞길에 놓인 함정은 무엇인가"에 대해 "2분동안 혼잣말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10살짜리 아이에게 2분 이내에 주식을 보유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주식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고도 하였습니다.
2분 연습은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한 기업을 깊이 공부하다 보면 해당 기업의 강점과 약점, 기회 요인과 리스크 요인 등에 대해서 다양하게 열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는 그렇게 깊게 공부하지 않고 매매하기 때문에, 실제 주가의 움직임은 굵직한 한 두 개의 이슈로 인하여 움직입니다. 2분 연습을 하다보면 향후 주식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을 우선순위를 두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이 연습을 반복하면 사고를 유연하게 할 수 있고, 다양한 유형의 종목을 동시에 보유하면서도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2분 연습을 하는 행위 자체가 투자자의 '능력 범위'를 판가름하는 리트머스지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또한 수익률 자체에도 도움이 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매매합니다. 2분 연습을 통과한 주식은 투자 아이디어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다른 투자자가 이해하기 쉽고, 입소문이 나기 쉽다는 뜻입니다. 본인이 투자한 주식을 주위 사람에게 설명하다 보면 대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2분 정도 이야기하고 납득시킬 수 없다면 무언가 약간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거나 상대방이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건데, 전자의 경우는 그냥 잘못된 것이고, 후자의 경우도 주가가 쉽게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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