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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약간 두리뭉실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다뤘다면, 2권에서는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조금 더 구체적인 가치평가 방법을 다룬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연습하라는 구체적인 조언을 다룬다.
하지만 그리 쉬운 조언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기업 분석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면 과거 10년 치 이상, 가능한 긴 기간의 주가 차를 쭉 펼쳐봅시다. 매출액과 이익 등 실적 지표도 함께 띄울 수 있으면 좋습니다. 주가는 기본적으로 이익을 따라가지만, 이익에 큰 변동이 없는데도 주가만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이익이 크게 변했는데도 주가는 그다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 차트를 보면서 실적이 크게 변한 시기에는 어떤 이유로 크게 변했는지, 주가의 움직임은 이와 관련해서 혹은 이와 관련없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중요한 구간별로 파악해봅시다. 이 연습을 하고 나면 이 회사의 투자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요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홍진채, 거인의 어깨 2
하나의 기업에 대해 최소 10년 이상의 리서치를 해야한다. 해당 기업 직원보다도 그 기업에 대한 변천사를 더 깊이 이해하고 해당 산업의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포트폴리오를 벤저민 그레이엄의 조언대로 2~30개의 종목을 가지고 간다면, 얼마만큼의 리서치가 필요할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될거 같다.
이 글을 읽는 나는 저자의 조언이 높은 가치를 가졌다는 걸 알지만 실행할 이유는 별로 없다. 이 조언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사람은 시장 벤치마크를 초과해서 알파를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는 사람일텐데,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꼭 알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취미삼아 1~2개 정도 리서치를 하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거 같기에 방법을 참고하려 한다.
언젠가 은퇴에 가까워지면 리서치하고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만, 지금은 아닌거 같다.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효용가치는 알파를 추구하는 사람에 비해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고 난 다음 달라진 습관 하나가 있다. "얼마면 팔래요?/살래요?"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한다는 점이다. 주식 종목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지나가다 보이는 편의점, 노래방, 자동차 등 어떤 걸 보든지 그냥 이렇게 질문해본다. "3만원에 이 가게를 판다면 살래요? 산다면 왜요? 혹시 100만원에 판다면요? 안 살거에요? 왜요?"
가치평가를 매긴다는 건 꼭 주식에만 해당하는게 아닐 거 같다. 말그대로 '가치'를 지닌 상품에 대해서는 평가를 매길 수 있을텐데, 가치평가를 어떤 기준으로 하고, 기준이 되는 모델에 전제된 '가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놀이다.
예를 들어 동네 흔한 편의점을 3만원에 판다고 하자.
그렇다면 3만원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면 사야될거고 3만원보다 더 낮은 가치를 지녔다면 사지 말아야 할텐데,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뭘까?
우선 상황적 판단을 할 수 있다.
'3만원이라는 금액이 너무 터무니 없으니까 가치가 없을거야. 속임수가 있을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논리보다도 직관에 의한 결정이다. 이 책은 논리를 굉장히 중시하기에 이런 내용은 다루지 않지만, 만약 실제로 이런 상황을 맞이한다면 직관이 옳을 수 있다. 편의점 혹은 가게를 판매하는 일반적인 가격 범위에서 훨씬 벗어나있으니까.
이런 결정을 내린다면 저자는 아마 직관을 존중하면서도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얼마면 적정 가치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기준으로 매겨야할까.
다 서술하려면 이 책 저자가 2권에서 다룬 내용을 다 적어야 하므로,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가끔 어렵고 뭔 말인지 모를 부분도 나오지만, 큰 줄기를 놓치지 않았다면 넘어가면 그 뿐이다.
밑줄긋기
p.16
'싸다'는 건 '내가 남에게 내일 더 비싸게 팔 수 있어서' 싼 게 아닙니다. '기업이 나에게 주는 것이 내가 기업을 살 때 지불한 것보다 많으면' 싸게 산 것입니다. '싸다'는 건 향후의 가격 추이에 따라 바뀌는 개념이 아니라, 매수하는 시점에서 기업의 펀더멘탈에 대한 판단이 정확했다면 그것으로 완결되는 개념입니다. 이후는 펀더멘탈이 어떻게 변해가느냐만 있을 뿐입니다.
p.24
삼백 번 연습하면 흉내를 낼 수 있고
삼천 번 연습하면 실전에 쓸 수 있는 무기가 되고
삼만 번 연습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기술이 나와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 최배달
p.33
같은 사업이라도 어떤 구조로 하느냐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소수의 라인업으로 모델당 판매량이 높습니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라인업이 고가에서 저가까지 매우 다양하여, 핵심 모델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델당 판매량이 낮습니다. 모델별로 서로 다른 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체 판매량이 많아도 영업이익은 크지 않습니다.
p.35~36
기업을 평가할 때 '대체비용'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A라는 회사와 동일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느냐라는 개념입니다. 유형자산 기반의 제조업 회사라면 관련 설비와 인력을 채용하는 비용 등을 계산하면 될 테고, 그 값은 A기업의 재무제표로부터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형자산을 바탕으로 한 무형의 무언가를 파는 회사라면 A기업의 장부가치가 1,000억 원이라 하여도 실제로 A기업과 같은 역량을 갖춘 회사를 만들려면 5,000억 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2021년 말 장부가치는 2,466억 원입니다. 누군가 그만한 돈을 들인다고 해서 '트와이스', '잇지', '스트레이 키즈' 같은 훌륭한 그룹을 키워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나중에 우리는 기업의 이익을 기업이 가진 자산과 비교해볼 텐데요. 자산 대비 이익의 비율이 높은 회사는 장부에 드러나지 않은 어떤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업 분석의 목적은 회사 내부에 쌓여 있는, 재무상태표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역량을 파악해내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p.39~40
중간 유통상을 끼고 판매하는 경우 매출액 인식 금액과 시점, 재고에 대한 책임 등에 따라 재무제표가 달라지고 실제 이익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인식 시점 : 유통상을 거쳐 최종 고객에게 판매된 시점에 매출을 인식할 수도 있고, 유통상에게 물건을 넘긴 시점에 매출을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유통상으로 물건이 넘어갔어도 회사의 재고로 인식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유통상에 물건을 넘기면 회사의 재고에서는 사라집니다. 당장은 후자의 방법이 이익계상에 유리해 보이지만, 최종 고객에게 판매되지 않고 반품되면 예상치 못한 비용을 인식하게 됩니다. 반도체 설비나 건설, 조선 등 생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객사별 맞춤형 제품인 경우에는 별도로 복잡한 매출 인식 방법을 채택합니다.
인식 금액 : 최종 고객이 지불하는 금액을 매출액으로 인식하고 유통상이 가져가는 수수료를 판매수수료로 처리할 수도 있고, 유통상이 가져가는 금액을 매출액으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총매출액', 후자의 경우 '순매출액'이라고 부릅니다. 총매출액 방식을 채택하면 매출액은 부풀릴 수 있지만 이익률이 줄어들고요. 순매출액 방식을 채택하면 매출은 줄어들지만 이익률은 높아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p.40~41
교섭력이 부족하면 유통상에게 제공하는 수수료가 늘어나거나 재고에 대한 부담을 떠안는 등 각종 비용이 늘어납니다. 자동차나 의료장비 사업에서 이런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다른 회사 대비 판매 수수료의 비율이 높거나, 재고상각이 잦거나, 영업외비용 항목에서 알 수 없는 비용이 계속 잡힌다면 교섭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고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고객에게 직접 판매를 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돈을 벌기 유리합니다. 중간에 빠져나가는 비용이 없기도 하거니와 시장의 상황과 고객의 피드백을 직접 접함으로써 앞으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유통상에게 의존한다면 시장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으로 취득할 수밖에 없고, 유통상들의 입맛에 따라 휘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직접 판매는 많은 자본투자가 필요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스트레스와 고객 관리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이렇듯 사업이 흘러가는 구조만 보아도 돈을 벌기 쉬운 비즈니스인지 힘든 비즈니스인지, 향후에 경쟁이 심해질 여지가 얼마나 큰지, 잠재된 리스크가 무엇인지, 투자자가 어디에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지, 아무리 공부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이 어디인지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p.43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재무제표의 숫자나 다른 '확실한 정보'를 확인하기 전에, 그 정보들이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으로 미리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실체를 확인해보면 '어, 유형자산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별로 없네. 임차를 해서 쓰고 있구나', '고정자산이 별로 필요 없을 비즈니스인데 유형자산이 많네. 무엇을 산 걸까', '생각보다 ~~~이 핵심 원재료가 아니었구나. 가격 변동에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겠구나' 등 내가 상식적으로 해본 생각과 실제가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상식이 잘못되었으면 고칠 수 있고, 회사가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지요. 이런 연습을 통해 장기적으로 추론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p.46
난생 처음 보는 기업이 '멀쩡한' 기업인지 아닌지 궁금할 때 저는 자기자본의 구성비율을 봅니다. 멀쩡한 회사라면 초기에 납입한 자본금 이후에는 이익잉여금을 통해서 자기자본을 늘려왔을 겁니다. 그러므로 자기자본의 대부분은 이익잉여금이겠지요. 자기자본에서 이익잉여금보다 자본잉여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면 회사가 단기간에는 돈을 버는 척하지만 결국은 돈을 깨 먹으면서, 그때그때 돈이 필요할 때마다 계속 시장에 돈을 달라고 해서 자기자본을 모아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회사가 지금 낙관적인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돈을 태워달라고 요청한다거나, 주가가 급등한 상태라면 또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주주환원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이익잉여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애플은 매년 창출되는 영업 현금흐름이 어마어마하고, 신용이 좋아서 부채를 일으키는 데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익잉여금을 거의 전부 주주환원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자본에서 이익잉여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습니다.
p.47~48
회계사들은 가끔 이런 테스트를 해봅니다. 재푸제표만 던져주고 어떤 업종의 기업인지 맞히는 게임입니다. 답을 맞히는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자산의 구성 항목입니다. 유형자산이 많다면 공장을 보유한 제조업일 가능성이 큽니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의 비중이 높으면서 계절 별로 들쑥날쑥한다, 재고자산평가충당금이 주기적으로 쌓인다면 재고자산평가손실이 일어났다는 뜻이므로 의류업일 가능성이 큽니다. 미청구공사나 초과청구공사가 많다면 건설업이나 조선업이고요.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이 함께 많다면 테크 기업, 그런 건 없고 무형자산이 가득하다면 바이오 기업 등입니다.
p.48~49
재무상태표를 보면 업종뿐만 아니라 회사의 취향과 영업 동향도 어느 정도 파악 가능합니다. 연구개발비, 콘텐츠 제작비 등은 그때그때 비용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자본화하여 무형자산으로 쌓았다가 나중에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자를 선호합니다. 개발/제작에 얼마를 썼는지 바로 알 수 있고, 자산이 가벼워지기 때문에 제품의 성과가 좋으면 이익이 크게 나거든요. 잡노화를 해버리면 나중에 이익이 나도 그때부터 무형자산 상각을 시작하면서 이익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건 그나마 낫습니다. 개발하던 제품이 취소되거나 시장에 내놓았는데 반응이 안 좋으면 버는 것 없이 무형자산 상각만 발생합니다. 드라마나 게임 등의 업종에서는 중국에 판매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무형자산을 쌓아뒀다가 판매가 어려워지면서 몇 년 후에 갑자기 수백억 원의 상각이 나오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연구개발비를 당기비용 처리하는 게 보수적인 회계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화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회계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실무상으로도 좀 더 번거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본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회사의 취향을 드러냅니다. 개발비를 당기비용 처리하는 회사라면 저는 이를 '회계상의 이익을 잘 보이게 하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제품이 잘되는 것으로만 평가받겠다'라고 해석합니다. 반대로 자본화를 선택한 회사라면 '회계상의 이익이 잘 나는 것으로 평가받아야 할 사유가 있다'라고 봅니다. 그것만으로 대단히 나쁘다는 건 아니고, 경영진의 성과 측정 지표가 회계상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거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익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이익 체력이 취약해져 있을 가능성이 꽤 있다는 뜻입니다.
p.52-54
건설사는 자산에 특이한 항목이 있습니다. '미청구공사'라는 게정인데요. 이걸 이해하다 보면 재무제표라는 게 얼마나 허구로 가득 차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건설사는 '진행률'을 기준으로 매출을 인식합니다. 1,000억 원짜리 수주를 받았고 50% 진행되었으면 500억 원만큼 매출을 인식합니다. 이때 공사 진행률은 '예정 원가' 대비 '실제 사용원가'로 계산합니다. 900억 원을 원가로 예상하고 사업을 수주했고 450억 원을 썼다면 절반은 진행한 거죠. 그렇게 발주처에 대금을 청구하는데 발주처가 보기에 진행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를 '미청구공사'로 계상해둡니다.
만약에 원가 예상이 실제 원가와 동일하다면, 다시 말해 900억 원에 공사를 마감할 수 있다면 미청구공사는 일시적 요인일 뿐, 준공 후 정산 시점에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발생하지요. 사실 발생하지 않는 게 기적 같은 일입니다. 수 년짜리 공기에 인력만 수백, 수천 명이 투입되는데 어떻게 예상대로 일이 굴러가겠습니까. 이런 변동사항에 대비해서 공사 계약에는 '에스컬레이션' 조항이 들어갑니다. 예정보다 원가가 초과되었을 경우, 몇몇 조건을 만족하면 초과된 원가분은 발주금액에 더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에스컬레이션 조항을 발동하려면 최초에 계약서도 잘 써야 하고, 이후에 청구할 때에도 고도의 협상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발주처가 여유가 있을 때라면 모를까, 발주처도 힘든 상황이라면 에스컬레이션을 받아주기 매우 어렵습니다.
2010년대 고유가를 바탕으로 국내 건설기업들은 중동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주를 했습니다. 유럽과 일본 회사들은 한국 업체가 지나치게 저가 수주를 한다고 비난했지만, 한국 업체들은 '유럽과 일본 업체들은 고지식해서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쓴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훨씬 낮은 원가로 공사를 수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현장의 인부나 설비는 현장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여기에 '한국인의 근성'같은 게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된다면 그건 '메뉴얼을 따르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일 처리를 한다'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 되겠지요.
2013년부터 그 허상이 드러나서 대형 건설사 합산으로 매년 10조 원 이상의 어닝 쇼크를 냈습니다. 당시의 재무제표를 보면 미청구공사가 그 이전부터 매년 급증해온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동의 석유기업을 대상으로 에스컬레이션을 발동시켜본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재앙이었습니다.
p.55-56
2013년부터 건설사와 조선사 등 수주산업에서 큰 적자가 발생하자 은행들은 해당 업종의 매출채권을 대거 상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은행의 이익이 많이 감소했습니다. 이후에 2015년 하반기부터 해당 업종들이 그렇게까지 부실하지 않다는 게 밝혀지며 '충당금 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일회성' 환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은행이 대출을 대하는 태도는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특히 상각했던 채권을 회수 가능하다고 평가하려면 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상각했던 채권이 환입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대한 흐름이 있다는 뜻이고, 그 흐름은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꽤 큽니다. 은행들은 2017년 매 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내면서 실적이 급증했습니다.
이렇듯 회계장부에는 기업의 '태도'가 묻어 있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얘기를 하면서 당장의 매출액을 부풀리기에 급급하고, 최대한 논리를 갖다 붙여서 당장의 이익이 예쁘게 나오도록 하는 데 신경을 쓰는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느끼는 중인지 등이 드러납니다. 기업의 태도가 공격적이라면 우리는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이 크고, 기업의 태도가 보수적이라면 뜻밖의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재무제표에 내 뒤통수를 치고자 하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얻어맞는다면 그건 투자자인 저의 잘못입니다. 통수는 악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p.58-59
의류업을 생각해볼까요? 소비자가격 2만 원짜리 옷을 유통업자에게 1만 원에 넘겼다고 해봅시다. 생산 원가가 7,000원이라고 한다면 옷 한 벌을 팔았을 때 3,000원을 남깁니다. 이때 영업이익률은 얼마일까요? 소비자가격인 2만 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15%겠지요. 2만 원을 매출액으로 인식하고, 1만 원은 판매수수료라는 비용이 됩니다. 매장에 넘기는 가격인 1만 원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익률은 30%가 됩니다. 매장이 가져가는 1만 원은 회사의 재무제표에서 아예 사라집니다.
소비자가격뿐만 아니라 운송비를 누가 부담하는지, 물건이 팔리지 않았을 때 재고 처분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해외 매출이라면 관세는 누가 부담하는지 등등은 계약마다 상이합니다. 최종적으로 회사가 버는 이익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이 중 어디부터 매출액으로 잡고 어디를 비용으로 계상할지에 따라서 이익률이라는 값은 상당히 달라집니다.
순매출액을 인식하는 회사를 보며 영업이익률이 경쟁사보다 높다고 열광하거나, 총매출액을 인식하는 회사를 보며 경쟁사보다 이익률이 떨어진다고 낙심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총매출액으로 인식하는 회사가 향후에 영업상황이 좋아진다 해서 순매출액으로 인식하는 경쟁사만큼 이익률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해서도 안 되고요.
p.59-61
물류회사가 물건을 배송하는 중에 파손되거나 유실되어서 받은 클레임이라면요? 해외에 수출을 많이 해서 외화자산이 엄청나게 많은 회사가 환헤지를 위해 선물환매도를 잡아놓았다면요? 이런 손실을 '일회성'이자 '비경상'이라며 영업외손실로 분류하는 회사가 꽤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이런 '일회성' 손실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매 분기 배송 오류로 클레임을 받는 물류회사라면 그 비용은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다회성 비용이고, 일상적으로 늘 발생하는 비용이라면 영업비용입니다.
영업비용으로 계상했지만 계상했지만 일회성이라고 주장하는 비용들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의료장비 회사는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장기간 보증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제품에 불량이 발생했을 때 새 제품으로 교환해주고, 회수한 제품은 폐기하면서 재고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어찌보면 마케팅 비용이라고 볼 수도 있는, 엄연한 다회성 비용입니다. 고객사 대부분이 영세상인이라 폐업이 많아서 매출채권 상각이 잦다면 어떨까요? 이는 구조적인 문제라, 고객사 구성이 대폭 변하지 않는다면 대손상각비가 늘 발생할 것이라고 간주해야 합니다.
여담으로, 영업외손익과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정유사는 유가의 등락에 따라 이익이 급변하는데요. 사놓은 원유의 가격이 하락하면 '재고자산평가손실'이 발생합니다. 이 비용은 영업비용이기 때문에 영업이익을 감소시킵니다. 다시 유가가 상승하면 충당금환입이라는 항목으로 반영되는데요. 충당금환입은 영업외이익입니다('재고자산평가이익'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가의 상승과 하락은 정유사가 상시 겪는 영업 상황인데, 유가가 빠지면 영업손실이고 유가가 반등하면 영업외이익이라니, 재미있지 않나요?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를 함께 보면 사업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여러 지표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지표가 ROE(자기자본이익률)입니다. ROE는 회사의 퀄리티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지표입니다. 우리는 주식투자자입니다. 주식투자는 뭐였죠?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는 행위이죠. 기업의 지분은 곧 자기자본이고, 자기자본이 얼마짜리인지를 알려면 자기자본이 돌려주는 이익을 봐야곘지요. ROE 공식이 뭔가요? '순이익/자기자본'입니다.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얼마를 투입해서 얼마를 돌려주느냐 하는 핵심 지표가 바로 ROE입니다.
ROE는 변동이 심하고, 앞서 말씀드린 여러 요소로 인하여 왜곡이 가능합니다. ROE가 높다고 무조건 좋은 회사는 아니지만, 좋은 회사는 ROE가 높습니다. ROE가 높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영업을 통해서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없습니다.
p.63
외부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 ROIC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회사에 유휴자산이 있어서 총자산에서 일부를 덜어내고 계산해야 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경영진이 유휴설비를 그대로 놔두는 비효율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므로 ROE와 부채비율, ROA 정도만 파악하고 ROIC는 그냥 그러려니 해도 됩니다. ROIC를 세세하게 봐야 하는 기업이라면 그 자체로 감점 사유입니다. "낮은 부채비율로 높은 ROE를 내고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성을 측정하는 흥미로운 지표로 CCC(Cash Conversion Cycle, 현금전환주기)가 있습니다. 원재료를 사오고, 재고를 만든 다음, 판매해서 현금을 회수하기까지 며칠이 걸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이걸 계산하는 건 좀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요. 일단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CCC = 매출채권회전일수 + 재고자산회전일수 - 매입채무회전일수
p.65
CCC는 많이 안 알려진 지표이고 계산 과정이 은근 복잡하기 때문에 잘 체크하지 않습니다. 재무상태표에서 파악할 수 있는 영업 상황은 손익계산서를 약간 선행하는데, CCC는 재무상태표의 이 요소들을 종합해서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꽤 유용합니다. 과거 어떤 화장품 회사가 해외 매출채권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며 회계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아 거래정지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회사는 직전까지 공시된 재무제표에서 CCC가 급등했습니다. 매출채권과 재고자산이 매출액 증가분 대비 비정상적인 속도로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CCC만 체크했더라도 거래정지 전에 충분한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p.67-68
CCC 관련 값들을 구할 때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매출채권/재고자산/매입채무'는 스톡이고, '매출액/매출원가/총매입액'은 플로우입니다. 따라서 누군가 계산해놓은 값을 볼 때에는 산식을 확인해야 합니다. CCC를 계산해주는 사이트는 별로 없는데, 와이즈리포트의 컴퍼니와이즈의 '투자지표' - '활동성' 탭에서 'Cash Cycle'이라는 값으로 제공합니다. '산식'을 클릭해보면 각 회전율의 산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분기별 지표를 구할 때에도 또 고민거리가 생깁니다. 보통 우리는 연간의 값들을 사용하는데, 좀 더 정밀하게 분기별로 값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회사가 2021년 한 해 동안 100억 원을 벌었는데, 2022년 1분기에 30억 원을 벌었다면 잘한 걸까요, 못한 걸까요? 회사는 잘되고 있는 걸까요, 잘 안 되고 있는 걸까요?
간단하게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2021년 1분기에 20억 원을 벌었는데 2022년 1분기에 30억 원을 벌었다면 50% 성장했으니 잘되고 있는 거죠. 만약에 2021년 4분기에 15억 원 적자가 나고 2022년 1분기에 30억 원을 벌었다면요? 오히려 영업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혹은 악화되었다가 회복되는 중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이런 미묘한 차이를 보정해서 분기별로 양상을 추적하고, 또 연간 지표와도 비교하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그냥 4를 곱하는 겁니다. 2021년 연간으로는 100억 원을 벌었는데, 2022년 1분기에 30억 원을 벌었으니 여기에 4를 곱하면 연간 120억짜리 이익을 낸 것과 같다는 거죠. 이건 그냥 분기별 값을 그대로 보겠다는 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좀 더 수고스럽지만 정교한 값은 TTM(Trailing Twelve Months, 과거 12개월)이라는 값입니다. 2022년 1분기의 값을 2021년 2분기, 3분기, 4분기에 쭉 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 4개 분기, 즉 '지난 12개월' 간의 합계를 매 분기 별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효율성/활동성 지표를 볼 때에도 분기별 값을 구할 때 이런 판단을 해야 합니다. 이번 분기의 스톡 값을 그냥 분기별로 볼 것이냐, 연율화(x4)해서 볼 것이냐, TTM 값을 볼 것이냐를 정해야 합니다. 남들이 계산한 값을 볼 때에도 분기 값을 어떻게 보정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p.69-71
현금흐름표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하는 한 가지 값은 감가상각비입니다. 손익계산서의 판매관리비 항목에서도 감가상각비를 찾을 수 있는데, 이 감가상각비는 전체 감가상각비 중 판매관리비에 포함된 감가상각비만을 뜻합니다. 감가상각비는 매출원가에 반영되기도 하고 판매관리비에 반영되기도 합니다. 매출원가의 세부항목은 분기/반기 보고서에는 나오지 않고, 연간 회계감사를 거친 감사보고서의 주석에 나옵니다. 따라서 분기별로 나오는 보고서에서 손익계산서의 감가상각비만으로는 회사의 감가상각비 추이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현금흐름표에서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순이익에서 비현금성 수익비용을 빼고 더하는 형태로 작성합니다. 여기서 감가상각비 항목을 보면 회사의 실제 감가상각비가 나옵니다(덤으로 대손상각비와 무형자산상각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항목으로 분기별 감가상각비 추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현금흐름표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유용한 계정은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출액'입니다. 여기서 '유형자산의 증가'가 바로 CAPEX(Capital Expenditure, 자본지출)이라고 부르는 항목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무형자산의 증가'를 CAPEX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1권 7장 '경제적 해자'에서 나온 '오너 어닝'을 기억하십니까? 오너 어닝은 '순이익 + 감가상각비 - CAPEX'입니다. 현금흐름표에서 찾아낼 수 있는 이 값들을 가지고 오너 어닝을 구할 수 있습니다. 현금에 집착하는 버핏이 현금흐름표에서만 알 수 있는 이 두 값을 가치평가 핵심 지표로 삼았으니, 오너 어닝이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자본조정표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이걸 이해하려면 회계 지식이 상당해야 합니다. 저는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걸 일단 고백해야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회사의 이익이나 손실 중 어떤 항목은 모종의 기준을 적용하여 자본조정으로 숨길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회사의 재무제표를 볼 때 저는 자기자본이 정직하게 늘어나고 있는가를 중요시합니다. 가끔 어떤 회사는 상당한 순이익이 났다고 보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자본이 전혀 늘어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만큼 배당을 한 것도 아니고요. 회계상으로 순이익이 났으면 그 이익은 주주환원을 빼고는 고스란히 순자산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되는 경우들이 가끔 발생하고, 이 차이는 자본조정에 반영됩니다.
자본조정은 보통 금융자산, 파생상품, 자회사, 해외 사업 등에서 발생합니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이나 비용의 일부는 자본조정 항목으로 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회사는 손익계산서 상에서 이익을 부풀릴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영업외비용으로 빼는 것보다 더 악질적인 방법입니다.
p.95
매크로 민감도를 평가할 때에는 독립변수가 무엇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유가 상승이 항공주 실적에 반드시 안 좋기만 할까요? 일차적으로 보면 항공유 가격이 상승하니까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러나 유가 상승의 원인이 공급 부족이 아니라 수요 증가, 즉 경기가 좋아서라면 여행 수요 증가가 유가 상승으로 인한 원가 상승을 상쇄하여 항공사의 실적이 오히려 좋아질 수 있습니다.
p.97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산업의 주기는 그 산업 자체보다는 그 산업의 대체재가 되는 산업을 분석할 때 오히려 유의미한 통찰을 줍니다. 대체재가 장기적으로 고성장하면 공격당하는 산업은 크게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워런 버핏은 자동차 산업의 태동기에 어떤 자동차 회사가 승자가 될지 알기는 어려웠지만, '말에 공매도'하는 베팅은 확실히 돈을 벌 수 있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TV 산업이 등장하면서 미국인의 여가에서 영화 관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36년 8%에서 1970년대 중반 3%까지 감소했습니다. TV가 충분히 보급되자 영화 산업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위축시켰던 방송 산업은 2010년대부터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산업이 등장하자 '코드 커팅'으로 불리는 트렌드가 생기며 침체기를 맞이했습니다.
p.104~105
재무제표 분석에서 언급한 ROA는 대표적인 효율성 지표입니다. ROA는 재무구조(차입금의 비율이 얼마인가)를 베재한 효율성 지표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운영의 효율성을 따집니다. 혹자는 ROIC를 보아야 운영 효율성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만, IC는 자의적인 값이며, 전체 자산에서 얼마만큼을 IC로 사용할 것인지는 어차피 투자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회사의 자산 중 비영업용 부동산이 있다면 '히든 에셋'으로 보아 기업가치에 별도로 추가하는 투자자들도 있지만, 저는 '회사가 쓸데없는 자산을 사둠으로써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전체 자산 대비 효율성 지표인 ROA를 '경영진의 성향'을 반영한 효율성 지표로 삼으면 됩니다.
그 외에도 산업의 특성에 맞게 좀 더 세부적인 지표를 뽑아서 타사와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인력이 중요한 산업이라면 '인당 영업이익'을, 매장을 운영하는 사업이라면 '매장당 혹은 면적당 영업이익'을 회사별로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설비투자가 많이 필요한 사업이라면 '유형자산 대비 영업이익'을 보아도 되고요. 회사별 매출액 계상 기준을 보정할 수 있다면 이 지표들에서 영업이익 대신 매출액을 넣어서 비교해보아도 됩니다. 피터 린치는 주력 투자처였던 '패니 메이'를 소개하면서 직원 수가 피델리티의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순이익은 10배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회사 중에서는 PCB 사업을 하느 D사, 손해보험업을 하는 D사, 건설기계를 만드는 D사 등이 비용절감을 많이 하기로 유명합니다.
p.114-115
삼성전자의 자체 모바일 AP인 '엑시노스'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합니다. 그렇다면 엑시노스 매출액은 사실상 내부 매출액인데, 삼성전자 내부에서 엑시노스의 위탁생산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느냐에 따라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이 바뀝니다. 팹리스 업체는 실제로는 인텔, 삼성전자 등 IDM과도 경쟁하지만, 팹리스 시장점유율에는 이들 업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애플은 'M1' 칩셋을 자체 개발하여 TSMC에 위탁 생산합니다. 애플의 이런 행보는 팹리스 업계의 경쟁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시장점유율에는 어떻게 반영해야 할까요?
시장점유율은 경쟁 강도를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합니다. 자동차 산업은 집중도가 낮지만 경쟁이 치열합니다.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집중도가 높으면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시멘트, 제지 등은 집중도가 높고 경쟁이 덜해서 담합 과징금을 부과받을 정도입니다. 제약 산업은 전체 시장으로 보면 과점사업자가 존재하지 않지만, 출혈 경쟁을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런 업종들도 가끔 경쟁이 치열해지기는 합니다)
이렇듯 시장점유율은 경쟁의 실상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지표입니다. 시장점유율이 얼마냐, 더 높은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등은 생각보다 별로 중요한 질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질문은 '회사가 실제 경쟁 상대로 생각하는 회사가 어디이며, 잠재적으로 어떤 회사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시장으로 확장 가능한가'등입니다. 마이클 포터는 "무조건 높은 시장점유율을 추구한느 것보다 때로는 시장을 일부 포기하는 것이 더 이로울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높은 시장점유율이 득보다 실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p.118
기업은 자신들이 가진 진짜 핵심 노하우는 특허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특허를 공개하는 경우는 혹여나 기술이 유출되어 누군가 카피를 시도할 때 반드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주변 기술'을 특허로 걸어놓아서 일종의 울타리를 치는 용도가 많습니다. 해당 기술에 대해서 아주 해박하다면 이런 '주변 기술'만 가지고도 기업의 기술력을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투자자들이 그러는 건 위험합니다. 몇 가지 특허를 근거로 "이 기업의 기술력이 훌륭하니까 투자하자!"라고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p.122
인수합병 게임의 승자는 거의 대부분 피인수 기업입니다. 앞서의 이유로 인수자는 과다한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고, 과도하게 지불된 금액은 피인수 기업의 주주들에게 돌아갑니다.
p.128
마이클 포터는 "가장 확고한 경쟁우위란 대단한 전략 몇 개가 아니라 기존의 무수한 활동들이 누적되어 확보된다"고 하였습니다. 기업이 '승부수' 어쩌고 하는 대단한 의사결정을 할 떄에는 무언가 대단한 의사결정을 했다기 보다는 '승부수'를 띄워야 할 정도로 몰려 있다고 해석하는 게 낫습니다.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적 해자는 결국 경쟁우위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일상의 활동입니다. 신규 진입자가 진입할 유인을 계속해서 꺾어버리도록 회사를 쇄신해나가는 매일의 활동이 모여서 경쟁우위가 되고, 이러한 경쟁우위를 기반한 '전략'들이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이 됩니다.
p.129
기업 분석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면 과거 10년 치 이상, 가능한 긴 기간의 주가 차를 쭉 펼쳐봅시다. 매출액과 이익 등 실적 지표도 함께 띄울 수 있으면 좋습니다. 주가는 기본적으로 이익을 따라가지만, 이익에 큰 변동이 없는데도 주가만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이익이 크게 변했는데도 주가는 그다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 차트를 보면서 실적이 크게 변한 시기에는 어떤 이유로 크게 변했는지, 주가의 움직임은 이와 관련해서 혹은 이와 관련없이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중요한 구간별로 파악해봅시다. 이 연습을 하고 나면 이 회사의 투자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요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p.150
PER은 측정 지표일 뿐, 가치 판단을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가치 판단이란 '얼마의 PER이면 싼가'하는 이야기죠. 앞으로 좀 더 살펴보겠지만, '적정 PER'을 결정하는 요인은 미래의 이익 성장성과 할인율 등입니다. 미래에 더 큰 이익 성장을 기대하면 더 높은 PER을 부여할 수 있고, 성장 기대감이 별로 없으면 낮은 PER을 부여해야겠지요. PER 자체로는 주식이 싼지 비싼지를 이야기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필립 피셔 또한 "어떤 종목의 PER이 높든 낮든, PER 자체는 그 주식이 본질적으로 싼가 비싼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p.152
평가 방법론에는 일종의 위계가 있습니다. 절대가치평가, 즉 이게 얼마짜리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선입니다. 그 대답을 내놓는 게 어렵기도 하고 너무 변수가 많다 보니 보완하는 차원에서 다른 두 가지 방법, '비슷한 다른 기업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상대가치평가)', '이 기업은 과거에 어떤 평가를 받아왔는가(역사적 가치평가)'를 씁니다. 이 두 방법은 계산하기도 쉽고 결괏값이 직관적으로 눈에 잘 들어오는 장점이 있습니다.
p.153
절대적으로 얼마의 가격이 적절한가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하고 손쉬운 방안으로 상대적/역사적 지표만을 보다 보면 이런 함정에 빠집니다. "나는 이 회사 전체를 이 정도 가격에 인수할 수 있다면 적정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상대적/역사적 값들에 대해서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p.154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는 "한 수를 다른 수로 나누는 것은 단순한 연산일 뿐이다. 무엇을 무엇으로 나눠야 할지를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수학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평가법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특정한 하나의 방법론, 지표에만 의존하는 건 그만큼 내 무기가 취약하다는 의미입니다. 존 템플턴은 "낮은 PER은 저가 주식을 판단하는 한 가지 척도이긴 하나 그것은 너무 제한적인 방법에 불과하다. 그것은 우리가 활용하는 수십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p.155-156
PER에 대한 좀 더 정교한 해석은 '기업이 향후에 벌어들일 이익의 증가 속도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감'입니다. PER이 20배인 회사는 PER이 5배인 회사에 비해서 미래에 이익이 증가하는 폭이 훨씬 클 것으로 투자자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A, B 두 회사가 현재 둘 다 100억 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는데 A의 시가총액이 1,500억 원이고 B의 시가총액이 1,000억 원이라면, 곧바로 'A가 고평가네'라고 할 게 아니라 'A의 미래 이익이 B의 미래 이익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시장에서 기대하고 있구나'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PER의 치명적인 문제는 분모(순이익)가 음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PER 값이 마이너스가 되면 아무런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양수에서 점점 작아지면서 아주 작은 값이 되었을 때에도 문제가 커집니다. 화학 회사나 철강 회사가 PER이 수십 배 혹은 수백 배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의 장기적인 이익 성장을 무슨 빅테크 회사처럼 크게 기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건 순전히 공식에 따른 지표 왜곡일 뿐입니다.
이런 사이클 기업의 PER은 하락 사이클뿐만 아니라 상승 사이클에서도 왜곡이 생깁니다. 화학, 철강 업종은 사이클 고점에서 PER이 4, 5배 정도로 대단히 낮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보고 '왜 이렇게 싸냐'라며 달려들면 대개 아픈 상처를 입습니다.
이런 실수를 피하려면 '정상 수준의 이익'이 얼마인지를 파악하여 그 이익 대비 PER을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상 수준의 이익 추정도 쉽지는 않고, 상대적으로 비교하려면 비교군이 되는 모든 회사의 정상 이익을 추정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PER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일회성 이익이나 비용이 어느 해에 과다하게 발생해도 PER이 상당히 왜곡됩니다. 자회사 매각, 부동산 매각, 인수합병, 세무조사 등으로 특정 해에 많은 비용 혹은 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회사마다 회계 처리 방식이 달라도 PER에 왜곡이 생깁니다. 앞서 연구개발비, 감가상각비 등을 어떻게 회계 처리를 하느냐에 따라 순이익이 달라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서로 다른 회사를 비교할 때에는 이런 왜곡을 보정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비용이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발생한다면 회계 처리 방식에 따른 차이가 어느 정도 희석되기는 합니다.
p.160
PBR에 대한 적절한 해석은 '이 회사와 동일한 순자산을 갖추는 데 필요한 비용이 향후에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가'입니다. 회사의 순자산이 1,000억 원이라면, 1,000억 원을 들이면 대충 이 회사와 비슷한 재무상태표를 갖춘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가총액이 500억 원, 즉 PBR이 0.5배라면 1,000억 원을 들여서 비슷한 회사를 만들어봤자 그만큼의 부가가치를 낼 수 없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시가총액이 2,000억 원, 즉 PBR이 2배라면 이 사업은 투입비용의 2배만큼 가치를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p.168
EBITDA를 사용한다는 건 'EBIT만으로는 가격을 설명할 수 없어서 무언가를 부풀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해하는 게 낫습니다. 버핏은 'EBITDA는 사람들을 속여 심하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지표라고 하였습니다. 성격 사나운 멍거는 한 술 더 떠서 "실제로 EBITDA를 사업에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훨씬 더 역겹고 혐오스럽습니다. (중략)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가상각비가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EBITDA를 이야기하면 못 들은 척 하는게 낫습니다.
p.175~176
가치 기반의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밸류 트랩'이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싸다고 생각했는데 더 싸지는(즉 주가가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가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밸류 트랩에 빠진 투자자들은 자신이 가치 계산을 정교하게 하지 못했거나, 예상치 못한 이슈로 기업의 실적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밸류 트랩에 빠지는 건 단순히 계산 실수나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뻔히 눈에 보이는 회사의 '가치 파괴 활동'을 간과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주가가 하락할수록 '더욱 싸졌다'라고 생각하면서 추가 매수를 하다 보면 최악의 밸류 트랩에 빠집니다. 밸류 트랩은 어설픈 사고 체계로 인하여 자신이 뭘 틀렸는지도 모르고, 틀렸을 가능성조차 고려하지 않고 고집을 부릴 때 빠지는 함정입니다.
p.176~177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논리는 의외로 명확합니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커피를 마시지만 커피 한 잔의 가격이 적정한지 아닌지를 따지기는 어렵습니다. 커피는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않거든요. 현금을 창출하는 자산은 미래에 돌려줄 현금을 모두 더하면 되니까 오히려 심플합니다. 대표적으로 채권을 생각하면 됩니다. 원금 100만 원에 매년 5만 원씩 이자를 3년간 준다면 창출하는 현금흐름은 총 115만 원이죠. 그런데 이건 미래의 현금흐름이니까 이 채권의 최대 가치가 115만 원이라는 거고, 현재 시점에서의 가치는 그보다 어느 정도 할인되어야 합니다.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 전문 용어로 '캐피털 에셋'이라고 하는데요. 캐피털 에셋의 가치평가는 모두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합니다. 이 이상 명확한 논리는 없으니까요. 주식도 캐피털 에셋이므로 이 방법을 채택하여 가치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모든 가치평가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p.179
주식의 가치는 기업이 앞으로 평생 벌어들일 돈에서 무언가를 차감한 값입니다.
p.185
가치평가는 기업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가격을 알려주는 '마법의 공식'을 찾아내는 과정이 아닙니다. 기업의 미래에 대한 각 투자자의 전망을 숫자로 표현하는 과정입니다.
p.192
위험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다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애플을 투자했을 때의 위험, 즉 영구적으로 구매력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어떻게 됩니까? 아이폰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맥북이 폭발한다, OTT 사업부에 과도한 투자를 하다가 실패한다 등 회사의 사업이 나빠질 위험, 잉여현금을 주주환원에 쓰지 않고 경영진의 사리사욕을 위해 쓴다, 자금을 횡령한다 등 신뢰를 잃을 위험, 단기 변동성에 휘둘려서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거나 맹목적인 기대감으로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주식을 사는 등 투자자의 잘못된 매매 행태로 인한 위험 등이 우리가 진정으로 위험하다고 느끼는 위험이겠지요.
이 모든 위험 요인과 '과거 1년간의 일간 변동성'은 무슨 관련이 있나요? 끝까지 효율적 시장가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위험이 반영되어 주가가 매일 변하는 거 아니냐고요. 예, 뭐 효율적 시장가설은 이런 식으로 무한정 고집 부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 가설을 '반증 불가능 가설'이라고 합니다. 과학에서는 절대 사용하면 안 되는데, 투자는 과학이 아니라 그런지 이런 반증 불가능 가설이 꾸역꾸역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p.198
어차피 할인율이 너무 높으면 그 기준을 통과하는 주식이 별로 없을 것이고, 할인율이 너무 낮으면 낮은 기대수익률을 감수하곘다는 거니까요. 단일한 할인율로 여러 투자안을 평가한 다음에 그 중 마음에 드는 안을 선택하면 됩니다. 여러 투자안을 비교 평가할 수 있는 단일한 기준을 '설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합니다.
p.199
주식투자로 얼마의 수익률을 원하시나요? 10%를 원하시나요? 그럼 10%를 할인율로 쓰십시오. 5%면 만족하시나요? 그럼 5%로 할인하세요. 그런데 인플레이션이 5%를 넘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럼 대충 7%로 하시죠. 그러면 됩니다. 진짜입니다. 버핏은 10%를 쓴다고 했습니다. 저도 10%를 씁니다.
p.206
앞서 기대수익률(=할인율)은 투자자의 기회비용이라고 하였습니다. 기회비용은 모든 대안 중에서 가장 높은 값이지요. 그 정의상 기업의 영구성장률은 절대로 할인율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현재 높은 ROE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ROE가 할인율(=기대수익률)로 수렴하거나 혹은 그 이하가 된다는 뜻입니다.
기업의 미래를 전망할 때에는 초과수익률이 지속되는 기간, 즉 할인율을 뛰어넘는 ROE가 유지될 거라고 기대하는 기간을 가정해야 합니다.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등 어떤 숫자를 설정해야 합니다.
p.207
PBR = (1 + ROE / (1 + r)) ^N
p.207
ROE와 지속가능기간에 따른 PBR (할인율 10% 가정)
1 | 2 | 3 | 4 | 5 | 7 | 10 | 20 | 30 | 50 | |
1% | 0.92 | 0.84 | 0.77 | 0.71 | 0.65 | 0.55 | 0.43 | 0.18 | 0.08 | 0.01 |
5% | 0.95 | 0.91 | 0.87 | 0.83 | 0.79 | 0.72 | 0.63 | 0.39 | 0.25 | 0.10 |
1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00 |
15% | 1.05 | 1.09 | 1.14 | 1.19 | 1.25 | 1.37 | 1.56 | 2.43 | 3.79 | 9.23 |
20% | 1.09 | 1.19 | 1.30 | 1.42 | 1.55 | 1.84 | 2.39 | 5.70 | 13.6 | 77.5 |
30% | 1.18 | 1.40 | 1.65 | 1.95 | 2.31 | 3.22 | 5.32 | 28.2 | 150 | 4,242 |
40% | 1.27 | 1.62 | 2.06 | 2.62 | 3.34 | 5.41 | 11.2 | 124 | 1,387 | 172,491 |
p.219
중요한 건 올해 내년의 세세한 숫자보다는 회사가 다른 경쟁사 대비 지니는 강점이 무엇이냐, 그 강점이 어떠한 재무적 성과로 나타나느냐, 얼마나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입니다. 단기 갭 축소가 아닌 장기 기대수익률을 실현한다는 관점으로 사업을 분석하면 좀 더 묵직한 요소들에 집중하고 단기간의 잔 변동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필립 피셔는 내재가치 측정 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성장률이 아니라 '이 비정상적인 성장률이 얼마나 먼 미래까지 계속될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p.225~227
'싸다'는 건 현재의 가격에 구매했을 때 장기간 기대할 수 있는 연평균 수익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즉 A주식을 '싸게 샀다'라는 건 'A회사의 사업에 대해서 투자자가 향후 약 7년간을 전망했고,그 전망이 맞아떨어질 경우 7년간 연 19%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시장의 평균적인 기대수익률은 연 10%여서, 보유기간 동안 연 9%p가량 초과수익을 기대한다'라는 식입니다.
반대로 '비싸다'라는 건 'A회사의 사업에 대해서 투자자가 향후 약 10년을 전망했는데,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그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진다 하여도 현재의 가격에서는 10년간 연평균 약 3%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다른 투자안의 평균적인 기대수익률은 연 10%이기 때문에 도저히 매력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혹은 할인율을 마이너스로 넣어야 가격이 정당화되는, 즉 마이너스 기대수익률을 가지는 경우에도 비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렇듯 '싸다, 비싸다'라는 건 당장 내일 혹은 1년 후의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지와 상관없습니다. 이 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가치 기반의 투자를 하면 '왜 나는 주식을 싸게 샀는데 더 싸지기만 하는 걸까요' 혹은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샀는데 계속 더 비싸지네요'같은 상황을 마주하곤 합니다.
버핏은 주식을 사기 시작한 이후에 오히려 주가가 더 하락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더 사면 되니까요. 그리고 충분한 수량을 확보한 이후에 주가가 더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회사가 더 사주면서 주당 가치가 상승할 테니까요.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가치 계산이 끝났다고 해서 가치보다 얼마 이상 할인된 가격에는 그냥 사고, 가격이 빠질 때마다 무조건 '물타기'를 하면 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버핏이 생각하는 가치는 동적이고, 회사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주주가치를 증대시켜 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다른 투자자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회사와 나 사이에서만 기대수익률을 계산할 수 있어야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 체계를 갖추기도 어렵고, 그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믿을 만한 기업을 찾아내는 기회도 드뭅니다.
필립 피셔는 훌륭한 주식을 발견해서 소유하고 있다면 함부로 팔지 말라면서 그 이유로 "정말로 매력적인 투자 기회란 쉽게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식을 '싸게 산다'라는 건 단순히 가격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의 '사고 체계', '능력 범위', '기업 분석 노력', '그에 맞는 기업이 존재할 것', '그 기업을 발견했을 것'이라는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가능한, 아주 희귀한 상황입니다. 내가 투자자로서 아무런 사고 체계도 갖추지 않고 기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가격은 그저 숫자일 뿐입니다. '싸다, 비싸다'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p.227~228
사업 분석의 귀결점은 투자자가 판단하는 초과수익의 폭과 지속가능 기간입니다. 어느 정도 사업이 돌아가는 행태에 대한 감이 잡혔다면 가치평가를 이렇게 연습해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요약재무제표를 펼쳐놓고, 이 기업이 앞으로 장기간 낼 수 있는 ROE와 그 지속가능기간을 대충 추측해본 다음에 적정 PBR을 생각해보고, 자기자본에 그 금액을 곱해서 시가총액을 추측해봅니다. 그러고나서 실제 시가총액을 봅니다. 저는 대충 10초 정도면 됩니다. 힐끗 보고 '이 정도이지 않을까'생각하고 시가총액을 보면 대체로 그 가격에 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한 가격보다 훨씬 위나 아래에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뭘 잘못 생각했을까, 혹은 시장이 무언가 대단시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p.258~259
메자닌이 많이 발행된 회사를 보았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이 명제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수상쩍은 함정이 있을 거라고 감을 잡을 수 있겠지요. 회사가 메자닌을 발행했다는 건 (내부든 외부든) '재무 전문가'가 고용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재무 전문가의 역할 중 하나는 회사가 투자자로부터 비싼 가격, 낮은 비용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겁니다. 그 '전문가'는 그 작업의 대가로 수수료나 급여를 받아가고요. 투자자에게 유리하고 회사에게 불리한 메자닌을 발행할 사람이 회사에 고용되지는 않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 회사는 그 정도로 심각하게 위기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메자닌이 발행되어 있는 회사는 그냥 피해갑니다.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계산하기 귀찮거든요. 메자닌이 발행되어 있으면 기업의 가치에서 주주가 차지하는 몫이 얼마인지가 불명확합니다. 다시 말해, 사업을 아무리 분석하더라도 거기에서 주주의 몫을 계산하는 데에 추가로 노력이 들어간다는 말이지요. 자본 구성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p.261~262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가지고 처음 보는 회사를 짧은 시간에 믿을 만한지 아닌지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재무제표를 요약해서 제공하는 사이트로 들어갑니다. 저는 에프엔가이드의 컴퍼니가이드(http://comp.fnguide.com)를 선호합니다. 기본 탭인 'Snapshot'과 세 번째 탭인 '재무제표' 탭을 오가며 다음 사항을 확인합니다.
1) 연간 ROE가 꾸준하고 높은지 확인한다. 10% 이상이면 기본은 하고, 15% 이상이면 좋고, 20% 이상이면 훌륭하다. 30% 이상이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게 낫다.
2) ROA도 ROE와 유사한지 확인한다. 7% 이상이면 괜찮고, 10% 이상이면 좋고, 15% 이상이면 훌륭하다. ROE가 높은데 ROA가 낮으면 부채가 과도하거나 영업 외에서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뜻이다(금융회사는 예외)
3) 재무상태표에서 현금, 매출채권, 무형자산,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의 비율을 확인한다. 현금이 0에 가깝거나, 매출채권이 연간으로 등락이 심하거나 최근에 급증했거나, 무형자산이 자산의 대부분이거나, 자본잉여금이 자기자본의 대부분이면 위험하다.
4) 무형자산상각, 재고자산상각, 매출채권상각, 금융비용 등 영업외비용/일회성 비용을 확인한다. 가끔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지만, 매 분기 꾸준히 혹은 4분기마다 꾸준히 발생하면 못 믿을 회사다.
5) 배당을 하는가. 단돈 10원이라도 배당을 하면 최소한의 믿음은 줄 수 있다. 배당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나쁜 회사는 아니다. 다만, 다른 측면에서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하다.
p.263
프로 포커 선수가 된 심리학자 마리아 코니코바는 저서 <블러프>에서 '텔'이라는 용어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그 용어는 마치, 몇 가지 근거를 찾아내면 바로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오해를 준다고 합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의 제스처, 떨림, 행위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패턴과 행동"입니다.
p.268~269
자사주를 사는 자금은 회사가 가진 현금이고, 회사가 가진 현금은 회사의 가치를 형성하는 한 부분입니다. 주당 1,000만 원의 가치를 가지는 주식을 2,000주 사려면 얼마가 필요할까요? 그때그때의 시장가격에 따라 다르겠지요? 만약 가격이 내재가치를 적정하게 반영하여 딱 200억 원을 들였다면, 회사의 가치 1,000억 원 중 현금 200억 원이 사라졌으므로 가치가 800억 원으로 줄어듭니다. 주식수도 8,000주로 감소했으니 주당 가치는 1,000만원으로, 자사주매입소각 전과 다름이 없습니다.
자사주매입소각은 주주환원을 위한 궁극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건 내재가치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을 때만 성립합니다.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비쌀 때 자사주매입소각을 하면 오히려 주주가치가 파괴됩니다. 주당 내재가치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p.322
우리는 '팔아야 할 때'보다 '팔지 말아야 할 때'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생각하는 '팔아야 할 때'는 '팔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매도 타이밍이라고 이야기하는 여러 상황에 매도를 해봤자 초과수익을 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됩니다.
p.347
자본시장에서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할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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