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
유전자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그 어느 쪽도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라지 않는다. 왜? 행복감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게을러지고 나태해져서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는 의지가 약화될 것이고, 반대로 불행에 빠져 우울감이 너무 길어지면 삶을 포기하게 되어 유전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전자는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되,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잃지 않도록 아주 잠깐 동안만 행복하길 바라고, 불행에 빠진다면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돕는다.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의 진화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유전자가 목표로 삼은 것은 세대를 뛰어넘어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현대인의 삶에 갈등과 문제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유전자가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 자신은 모든 결정과 판단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결정과 판단이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p.15-16
대칭에 대한 선호는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물의 왕국도 대칭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대칭이 건강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질병과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표시이며, 건강한 유전자로 몸이 만들어졌다는 증거이다. 우리 눈에 눈금자가 있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대칭에 대한 선호는 본능적이다. 바로 여기에 대칭에 대한 인간의 미적 선호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숨어 있다. 이것은 유전자만이 사랑할 수 있는 논리이며, 더 넓은 진화의 맥락과 동물적 본능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논리다. 이 논리를 알아야만 우리 뇌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으며 미스터리의 베일도 벗길 수 있다.
p.29-30
도파민 분비 시스템은 진화적 성공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지 영원한 행복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는 유전자를 복제하는 도구로서 행복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편안해지고 싶은 욕망이나 장기간의 행복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유전자는 어떻게 하면 지금 잘 먹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지금 번식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쏟는다. 이는 지금 당장 무언가를 획득했을 때에만 쾌락을 허락한다는 뜻이다. 이 쾌락도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편안해지면 번식에 대한 시도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파민은 무언가를 획득하려고 노력할 때에만 분비된다. 결국 도파민 시스템에 만족이라는 어휘는 없다.
우리 조상들은 도파민의 보상체계를 경험하기 위해 직접 위험을 감수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들은 조금 세련된 방식으로 이를 경험한다. 극한의 위험을 느끼지만 실제로는 안전한 롤러코스터나 공포 영화가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위험이다. 그래서 새롭고 격렬하면서도 여전히 즐거운, 그러면서도 안전한 놀이나 활동은 끊임없이 개발된다.
하지만 마약성 약물로 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특정한 행동을 함으로써 도파민의 보상을 받았던 선조와 달리 현대적인 기술을 가진 우리들은 행동에서 쾌락만을 따로 분리해냈다. 오랜 옛날에는 특정한 행동을 통해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선조들은 이 보상을 받기 위해 길고 고단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길을 걷지 않고 보상을 호기득할 수 있는 대안(약물)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약물들은 질병이나 신체적 손상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p.34
문명화되지 못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문명화된 외부인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음식과 물, 약품, 무기 등을 훔친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소유에 대한 갈망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이 보편적 욕망을 광고가 자극한다. 소유를 갈망하는 괴물은 문명화의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안에 살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행복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p.41-43
유전자는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매번 잊게 만드는 데 도사들이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벌여놓은 게임판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첫째, 목표를 가볍게 잡는 것이 시작이다. 어떤 물건을 구매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하지 말자. 더 빠른 컴퓨터와 더 큰 집은 구매 초기에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사라진다. 그리고 청구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집이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사실을 안 후에도 여전히 갚아야 할 대출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둘째, 고통 또한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사라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때 일어나는 감정을 과대평가한다. 하지만 스포츠 광팬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패배의 아픔은 금방 사라지고 다음 게임과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조금 더 심각한 예를 들면 이런 경우도 있다. 에이즈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는 환자는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애초에 가졌던 그 생각만큼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상처에서 회복하며 또 다른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최악의 선택일지라도 부정적인 효과는 제한적이며, 대부분은 첫 데이트에서 실패한 것처럼 약간의 창피함만을 남길 뿐이다. 우리는 지금 받고 있는 급여나 복지 같은 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직장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하지만 고통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러니 때로는 과감할 필요도 있다.
셋째, 극적인 삶의 변화 직후에는 큰 결단을 내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 감옥에서 일어나는 자살 사건의 절반은 투옥되는 첫날에 발생한다. 진창 같은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혹은 환희가 폭발하는 기쁨의 순간에 있을 때 인간은 이 강렬한 감정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좀처럼 믿지 않으려 한다.
섣부른 행동을 억제하고 또 충동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는 신중해져야 한다. 재정적 파산을 겪었을지라도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반대로 복권 당첨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소득을 올렸다면 즉시 저축 계좌로 달려가 입금을 시킨 후 6개월은 손도 대지 않아야 한다.
넷째,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처음 이혼을 했을 때 버튼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재결합한 이후 다시 이혼했을 때는 어땠을까? 누군가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그 사람의 과거를 보아야 한다. 버튼은 테일러가 경험한 여덟 번의 결혼 생활 중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 남편이었다. 버튼은 자신의 결혼 생활이 그녀의 과거 결혼 생활처럼 끝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했어야 했다. 사람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과 관련해 가장 전형적인 이야기는 행복한 어린이가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다시 행복한 어른이 되느 ㄴ것이다. 미래에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지금 행복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미래를 바꾸고자 할 경우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내일은 오늘과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 기대가 생기는 것은 유전자가 그렇게 느끼도록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내일의 나'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어제의 나'를 닮는다. 또 환경의 변화만으로는 금세 제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어제의 나처럼 살고 싶지 않다면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오늘이 마치 삶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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