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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바른 마음

by Diligejy 2023. 8. 9.

 

 

p.7

내가 이제껏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해온 까닭은 인간의 행동을 비웃기 위해서도, 그것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도, 그것을 미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뿐. 

 

- 바뤼흐 스피노자 <정치학 논고> (1676년)

 

p.20-21

도덕적 직관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거의 일순에 떠오른다. 도덕적 직관은 도덕적 추론보다도 훨씬 앞서 일어나며, 차후에 일어나는 추론도 처음의 이 직관이 이끌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도덕적 추론이야말로 진리에 다다르는 수단이라고 여기면, 매번 낙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그들이 너무도 어리석고, 편견에 가득 차고,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적 추론을 이와 달리 생각하면, 즉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의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자신이 속한 팀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좀 더 현실에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직관에서 늘 눈을 떼지 말라. 그리고 도덕적 추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도덕적 추론이란 대체로 그때그때 맞춰 만들어지는 사후 구성물로, 하나 이상의 전략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만들어진다.

 

p.23

우리 인간은 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존재이지는 않다. 그런 성향과 더불어 우리는 특정 상황에 처하면 자신의 자아쯤은 얼마든지 접어두고 그 대신 더 커다란 몸체의 세포라도 된 듯이, 혹은 벌집 속에서 살아가는 꿀벌이라도 된 듯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될 때가 많다. 물론 이러한 군집성으로 인해 우리는 다른 이들의 도덕적 관심사는 아예 못 보게 되는 수도 있다. 벌을 닮은 우리의 본성은 이타주의와 함께 영웅주의, 전쟁, 종족 학살을 부추긴다.

 

p.25-26

만일 우리가 깨달음(이 말이 별로라면 지혜라고 하자)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눈 안에 든 들보부터 빼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 안에서 끝없이 일어나 편을 가르는 옹졸한 도덕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의 선사 승찬이 이렇게 썼던 것처럼 말이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다만 가려서 선택하지만 말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만 않으면

막힘없이 밝고 분명하리라.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진다.

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따라가지도 말고 등지지도 말라.

등짐과 따라감이 서로 다투는 것

이것이 마음의 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의 삶까지 승찬 선사 같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윤리 도덕, 험담, 판단이 없어질 경우 이 세상은 순식간에 대혼란 속에 빠져들 것이라고 믿는 쪽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진정 이해하고 싶다면, 즉 우리가 어떤 식으로 분열되어 있고, 또 어떤 한계와 잠재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이 순간만큼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윤리 도덕은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p.31

진보주의나 자유주의 성향의 서양인이 아니라면, 죽은 닭을 가지고 성행위를 한 후 그것을 요리해 먹는 것은 잘못된(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도덕성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설령 그 누구에게 해가 가지 않는다 해도 분명 잘못이라고 여겨지는 행동이 이들에게는 있다. 이렇듯 같은 지구라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심지어 같은 사회 내에서도) 도덕성은 차이가 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 것이 바른 마음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p.34-35

피아제는 아이들이 범하는 여러 오류에 초점을 맞추었다. 예를 들어, 아이들 앞에서 똑같은 유리컵 두 개를 준비해 거기에 똑같은 양의 물을 붓고 이 두 유리컵에 똑같은 양의 물이 들어 있는지 아이들에게 물었다(아이들은 "네"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피아제는 길쭉하게 생긴 유리컵을 하나 가져다 아까의 두 유리컵 중 하나의 물을 붓고, 이번에는 길쭉한 유리컵과 물을 그대로 둔 유리컵에 똑같은 양의 물이 들어 있는지 물었다. 그러면 예닐곱 살이 채 안 된 아이들은 물 높이가 더 높기 때문에 길쭉한 컵에 물이 더 많이 들어 있다고 대답한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유리컵에 물을 옮겨 담아도 총량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때에는 물의 양이 그대로라고 어른들이 설명해주어도 아무 소용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정 연령(및 인지능력이 생기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래서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준비가 되면 아이들은 유리컵에 물을 담으며 노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그 이치를 깨친다.

 

다시 말해, 물의 양이 보존된다는 사실은 선천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아니요 어른에게서 배우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그 이치를 깨치는데, 다만 그러려면 반드시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고, 더불어 거기에 맞는 적절한 경험이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지능력 발달 접근법은 피아제가 아동의 도덕적 사고를 연구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는 아이들 틈에 쪼그려 앉아 구슬치기 놀이를 하면서 때로는 일부러 규칙을 어겨보기도 하고 때로는 바보같이 구슬을 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의 실수에 반응을 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규칙을 지키고, 규칙을 바꾸고, 차례를 지키고, 싸움을 가라앉히는 아이들의 능력이 점점 발달해가는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 성장은 아이들의 인지능력이 성숙할 때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단계에 따라 이루어졌다. 

 

p.36

애벌레가 자라나 나비가 되듯이, 우리 인간이 합리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심리학적 합리주의의 본질이다. 애벌레가 잎사귀를 충분히 갉아 먹으면 결국에는 몸에 날개가 돋아난다. 그러니 아이들도 차례 바꾸기, 함께 나누기, 운동장에서의 공정한 원칙을 몸으로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결국에는 윤리적인 존재가 될 것이고, 나아가 이 합리적인 능력을 활용하면 아무리 난처한 문제라도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합리성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천성이며, 훌륭한 도덕 추론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곧 인간이 발달 과정을 완전히 마쳤다는 이야기이다.  

 

p.46-49

 

 

p.50

인간을 별개의 개인으로 보는 서양인의 사고가 사실은 무척 유별난 것임을 슈웨더는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한다.

 

서양의 사고에서 개인은 경계가 정해져 있고, 고유성을 지니며, 동기와 인식을 가진 하나의 통합된 우주이다. 또 개인은 인식, 감정, 판단, 행동의 역동적 중추로서 각종 기관을 갖추어 별개의 온전한 존재로 기능한다고 여겨진다. 이 온전한 존재는 자신과 유사한 별개의 존재와 대립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사회 및 자연의 주변 환경과도 대립한다. 그러나 우리 머릿속에 이런 개념이 아무리 뿌리 깊이 박혀 있다 해도, 세계 문화 전반의 맥락에서 봤을 때 개인에 대한 이러한 사고는 다소 특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p.69

- 도덕성의 범위는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서양적이고, 교육 수준이 높고,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가 몹시 좁다. 반면 사회중심적 문화에서는 도덕성의 범위를 넓히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로써 삶의 더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고 통제한다.

- 사람들이 갖는 직감(특히 역겨움 및 경멸감과 관련된 것)은 때로 도덕적 추론을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덕적 추론은 때로 사후 조작과 다름없는 양상을 보인다.

- 도덕성은 아이들이 피해의 개념을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세워나가는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틀림없이 문화를 통한 학습이나 문화적인 유도가 합리주의 이론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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