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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영미소설

라셀라스

by Diligejy 2023. 11. 12.

 

 

 

밑줄긋기

 

p.16~17

그는 말했다. "동물로 창조된 여타의 피조물과 사람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내 곁을 돌아다니고 있는 짐승들은 모두 나와 똑같은 육체적 욕구를 지니고 있지. 그들은 배가 고프면 풀을 뜯어 먹고 목이 마르면 냇물을 마시지. 그리고 그렇게 목마름과 배고픔이 채워지면 만족해서 잠자리에 들고,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서 배고픔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다시 먹이를 찾아 먹고는 편히 만족해하지. 나 역시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것은 그들과 마찬가지야. 하지만 나는 갈증과 허기가 채워져도 편하게 만족하질 못한단 말이야.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뭔가 부족하면 고통을 느끼지. 하지만 짐승들과 달리 나는 배불리 채워져도 만족스럽지가 않아. 배부른 뒤의 시간들은 그저 지리하고 우울할 따름이며, 그래서 차라리 배나 어서 다시 고파져서 그것으로라도 내 관심이 자극되기를 갈망할 뿐이야. 저기 있는 저 새들은 열매나 곡식을 쪼아 먹고는 숲으로 날아가서 행복한 모습으로 나뭇가지에 내려앉지. 그러고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연이어 노래를 지저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지. 물론 나도 마찬가지로 류트를 켜는 악사와 소리꾼을 불러낼 수 있어. 하지만 어제까지 나를 즐겁게 했던 소리들이 오늘은 지겨울 뿐이야. 그리고 내일이 되면 더욱더 지겨워질 것이야. 나에게 있는 지각 능력 가운데 합당한 즐거움으로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어. 하지만 나에게는 기쁘고 즐겁다는 느낌이 없단 말이야. 인간에게는 분명히 여기 이 곳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어떤 감각이 숨겨져 있는 게 틀림없어. 아니면 감각과는 다른 어떤 욕구가 존재하고 있어서 그것이 채워진 뒤에야 비로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

 

p.21

왕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것, 아니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 불만의 원인입니다. 만약 무엇이 부족한지 내가 안다면 나에게는 뭔가 바라는 대상이 생길 것입니다. 그 바람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도록 자극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저 태양이 서산을 향해 왜 그토록 느리게 움직여 가는지 투덜거리지도 않을 것이며 날이 밝을 때 잠자는 동안 잊었던 나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다시 생각하며 비탄에 빠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새끼 염소나 어린 양들이 서로 뒤쫓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나에게도 뭔가 추구하여 좇을 대상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상상에 빠지곤 한답니다.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이 그저 똑같이 되풀이되면서 오직 지루함만 점점 커질 뿐입니다. 자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하면 내 어렸을 때처럼, 즉 자연이 아직 새롭게 느껴지고 매 순간마다 전에 보지 못한 것이 눈앞에 펼쳐지던 그 어린 시절처럼, 하루하루가 짧고 아쉽게 여겨질 수 있는지 경험이 많으신 선생님께서 어디 한 번 일러줘 보십시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 부디 뭔가 새롭게 소망할 만한 것을 나에게 좀 알려주십시오."

 

p.27~28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은 왕자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사무쳤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왕자는 체념하면서 자신을 용납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스무 달 전까지의 내 지난 인생이 낭비된 것은 조상들의 잘못되고 어리석은 정책 그리고 이 나라의 터무니없는 제도 탓이었어. 그래서 그걸 생각할 때 혐오스러운 마음은 들지언정 후회의 자책감은 어벗어. 하지만 새로운 빛이 내 영혼에 비춰 들었던 이후, 즉 내가 진정한 행복에 대한 구상을 갖게 되었던 이후의 지난날들이 허비된 것은 나 자신의 탓이야.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시간을 나는 그저 낭비해 버리고 만 것이지. 그러니까 스무 달 동안 나는 매일같이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보면서 멍청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야. 그동안 새들은 제 어미의 둥지를 떠나서 숲과 하늘로 날아가 깃을 들였고, 새끼 염소도 어미의 젖을 뗴고 바위에 오르는 법을 점차 깨우치며 독립된 생활을 찾아갔어. 오직 나만이 아무런 진보를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무기력하고 무지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을 뿐이야. 하늘에 뜬 달은 스무 번도 넘게 차고 이울면서 나에게 흘러가는 삶의 시간을 일러주었고, 시냇물은 내 발치에서 힘차게 소리 내어 흐르며 나의 나태함을 꾸짖었어. 하지만 나는 땅이 보여준 본보기에도 하늘이 가르쳐준 교훈에도 모두 무관심한 채 그저 주저앉아 상상의 향연에만 흠뻑 취해 있었던 거야. 그렇게 스무 달이라는 세월을 보내버리고 말았으니, 어느 누가 이것을 돌려놓을 수 있단 말이냐!"

 

p.28~29

유익한 깨달음의 실마리는 우연히 포착되는 경우가 아주 많고, 흔히 사람의 마음은 멀리 바라보는 데만 급급하고 열중하느라 정작 바로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진리를 간과하곤 한다는 사실을 왕자는 미처 깨닫거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왕자는 쓸데없이 후회만 거듭했던 자신을 몇 시간 동안 뉘우치고, 그 후로는 온 마음을 기울여 행복의 골짜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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