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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잘못되었다는건 기본적으로 과거의 일이다. 그리고 그 과거를 판단하기 위해선, 그 이전 과거의 맥락을 가져와야 하고 다른 관점의 과거를 가져와야 한다.
그렇게 모인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을 '추론'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것을 원천 차단한다. 그런 추론따위 할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압도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절대 여유를 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그저 지옥을 보고 또 볼것을 강요하며 마치 고통을 겪는 독자의 모습에서 희열이라도 느끼는 듯 소설 속 촘촘하게 짜여진 관계망 속을 헤집고 다니도록 만든다. 물론 그 관계망을 아무리 뒤져봐도 답은 없다. 그것이 두려움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다는 무력감, 그저 흘러가기만을 바란다는 무력감, 그러면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하는 변태적 호기심.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혼합되어 이 소설을 계속해서 갈망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단순히 자본의 먹이 사슬 류의 해석으로 본다면, 이 소설이 보여주는 지옥도 전체를 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그런 작은 틀이 아닌 더 큰 맥락에서 정교하게 짜여진 지옥도를 그려내고자 했다.
p.20
어두운 사람을 반기는 조직은 없다. 불행한 사람은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겼어야 했다. 작위적으로 보일지라도 밝게 웃었어야 했다. 나중에 알려질지언정 나서서 눈물까지 보이며 털어놓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무탈하고 무고하며 건강하고 씩씩해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으며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는 원만한 사람입니다.' 회사가 듣고 싶었던 메시지는 그런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허세나 허풍일지라도.
p.42~43
결국은 누구나 먹고사는 것에 연연하며 노예처럼 살다 죽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p.179~180
그도 한때는 상투적인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 것에 익숙해지는 자기 자신을 징그럽게 생각하고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투박한 진심에 감동하는 것보다 공들인 형식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알맹이 없는 말과 행동, 순도 100퍼센트의 가식에는 더 지독한 노력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을 검열하며 애쓰는 건 욕 먹을 일이 아니었다. 남에게 여과 없이 드러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진심을 간직하기 어렵다면 그걸 감추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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