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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풀루언트

by Diligejy 2017. 9. 7.

p.37~38

일본과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1세대 영어 선생님들은 히긴스 같은 앵글로-색슨 우월주의자에게서 영어를 배웠다.


이런 연유로 동아시아의 영어 교육은 유난히 '백인 중산층'식 발음을 강조하고 하층민이 흔히 저지르는 문법적 실수를 고치는 데 치중하게 되었다. '5형식'등은 영국의 소수 부유층의 말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베껴내도록 가르치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자유로운 소통보다 계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언어적 실수를 줄이기 위한 것이 당시 영어 교육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5형식이라는 경직된 틀로 문장을 찍어내는 방법을 배웠다. 그다음에 아시아인이 가장 많이 틀리는 자동사 타동사 구별, 전치사, 관사, to부정사 같은 순서로 영어를 배웠다. 그리고 유럽 귀족이 쓰는 고급 어휘들을 달달 외워야 했다.


이처럼 문법과 어휘 위주의 영어 학습은 영국 귀족 영어를 따라 하기 위해 틀리는 부분마다 지적하는 방식의 교육인데, 달리 말하면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짜증나는 부분만 골라 배운 셈이다. 커리큘럼 구조상 이런 외국어 학습 방법은 절대로 재미를 붙일 수 없게 만든다.


p.48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언어교육학 교수 사빌-트로이케Savile-Troike는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에게 너무 원어민과 비슷하게 말하지 말라면서 외국어의 유창한 발음과 언어 구사가 중요하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조언을 한다.


외국 악센트가 있는 사람은 그 나라의 매너를 조금 어겨도 용서가 되지만 그 나라 언어의 발음을 마스터 한 사람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문화적 관용적 태도까지 마스터 했을 것으로 보고 만약 사소한 문화적 행동이나 매너라도 어기면 무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으로 여겨 적대감을 갖게 된다.


p.49~50

영어를 공부할 때는 영어의 이런 복잡한 내부 사정과 변화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내가 누구와 소통해야 하는가?', '영어 소통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부터 생각해 보고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공부한 영어와 다른 종류의 영어를 쓰는 사람과 만나 아예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듣거나 어색하고 딱딱한 대화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또는 '원어민은 저런 표현을 안 쓴다'등의 모순된 정보를 여기저기서 주워듣게 되어 혼란을 겪기 쉽다. 아무리 언어 천재라도 영어의 모든 버라이어티를 마스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어느 선까지의 영어 실력만 갖추어 '한국인'으로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영어를 공부할 때는 갖가지 영어 표현법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넓게 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셰익스피어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영어의 역사를 골고루 알고, 또 여러 나라와 민족이 사용하는 다양한 영어를 두루 듣고 접하면서 그 맥과 논리를 익혀 '숨낳은 종류의 영어를 쓰는 사람이 상대의 말을 아무 문제없이 알아듣게 하는 그 무엇'을 느껴 나가는 것이 영어를 제대로 배우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p.52

외국어를 잘하려면 단지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능력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에 못지않게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말할 권한이 있는가,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과 이런 말을 해도 되는가, 역할이나 계급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가, 말과 함께 사용해도 되는 제스처는 무엇인가' 등등까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p.63~64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비교해 보자. 일단 비교를 시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반대임을 알게 된다.


1급 - Level 1

2급 - Level 2

3급 - Level 3


이렇게 한국어는 숫자가 앞에 쓰이는 경우 영어는 숫자가 뒤에 쓰인다.


자동차 1대 - 1 Car

자동차 2대 - 2 Car

자동차 3대 - 3 Car


p.65

서양 언어와 동양 언어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동양인은 '큰 것에서 작은 것'순서로 말하고 서양인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서로 말한다는 것이다.


p.68

오늘 어디가?

Where are you going today?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 어디야?

Which is the most delicious restaurant in Seoul?


학원 끝나면 뭐 먹을 거야?

What are we having after tutoring session ends?


p.88

영어는 추상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반드시 한정사determiner라는 것을 붙여야 한다고 배웠을 텐데, some, my, any 같은 한정사는 폴더나 서랍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랍 안에 들어 있는 특정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표지가 된다. any는 서랍에서 아무것이나 툭 집어낸 것이고, some은 서랍에 든 모든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라는 뜻이다. the는 폴더 안에 '내가 지정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태그다.


p.90

 

유한(실제 물건) 

무한(추상적 개념) 

명사 

한정사 

관사 없음 

동사

동사 변화(현재형, 과거형 등) 

to부정사 


p.93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이 '추상'과 '구체'의 차이에 대한 감을 기르는 것이다.


p.102

예를 들어서 "고양이들은 날 좋아해"라는 문장을 보자. 영어로 이 같은 의미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방법은 "I make cats happy"이다. 한국어 문장에서 주어는 '고양이'인데 영어 문장에서는 '나'로 바뀌었다. 여기서 한국인 독자라면 주어가 왜 바뀌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한국인 중에는 자연스럽게 구어체로 "나는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하짐나 영어에서는 동사의 중요성 때문에, 행복의 주체는 고양이지만, 이 주체를 도치해서라도 make의 방향을 존중해야 한다. 


p.110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라는 문장을 한국인의 사고의 결에 맞게 영역하면 이런 문장이 된다.


He worked without even realising that he was tired.


하지만 이 문장을 영어답게 다듬어 보자.


He worked tirelessly.


p.118

영어 문법의 핵심은 동사가 문장의 앞쪽에 놓인다는 것이다.


p.122

우리가 영어와 쉽게 친근해지려면 주어+동사만으로 문장을 만들면서 동사를 다양하게 바꿔보는 연습에 매진하는 과정을 절대로 건너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영어의 기본 문형이며,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동사의 숫자가 영어 실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어는 동사의 다양한 사용법을 모르면 제한된 표현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가 없다.


p.135

'I have to go to the supermarket'을 직역하면 '슈퍼마켓에 가는 행동'을 내가 '가지고 있다'가 된다. 우리말로도 "슈퍼마켓에 갈 일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용법으로 처음 쓰이기 시작한 표현이다. 하지만 영어에는 '가야 한다'라는 단도직입적인 표현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갈 일 있다'가 그 역할까지 겸직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된다. "어딘가로 갈 일이나 임무가 '내 것' 즉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의무를 표현하는 문장이 되었다가 '반드시 그래야 한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이해해야 이 문법을 제대로 체화할 수 있다. 문법은 사람들이 제한된 수의 단어를 가지고 어떻게 말하는 사람의 복잡한 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p.136

미래에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will이 자주 쓰이면서 영어라는 언어에 미래형이 없다는 니즈에 딱 맞아 떨어졌다. 꼭 하려고 한다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서서히 이 문장은 미래형임을 표시하는 조동사로 쓰이게 되었다.


p.139

영어 문법을 배우면서 심층 구조는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새로운 문장을 접할 때마다 항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해보면 된다.


1. 그 문장의 표면적 의미는 무엇인가?

2. 그 문장의 관용적 용도는 무엇인가?

3. 왜 그렇게 쓰이는가?


p.140

어떤 문법을 배웠을 때 그냥 '~는 ~라는 뜻이다'라고 암기하지 말고, '~는 ~라는 뜻으로 통상적으로 쓰이는데 그 이유는 ~이다'라고 머릿속에 정리되기 전에 이 과정을 절대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영어 문형을 접하면 이렇게 3단계로 정리해서 파악하는 습관을 들여야 영문법에서 배운 이론이 몸으로 스며든다.


p.162

<장미의 이름>을 쓴 소설가로 잘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원래 유명한 언어학자다. 그는 <장미의 이름>뒤에 자신의 문학 언어학관을 정리한 에세이를 첨부했는데, 그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어린아이는 모국어의 문법을 글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언어를 저절로 알아서 잘 사용한다. 언어학자란 언어의 법칙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가 아니다. 그 법칙들은 어린아이도 무의식 속에서 모두 안다. 다만 언어학자는 어떻게, 그리고 왜 그 아이가 그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p.183

어떤 단어를 잘 안다는 것은 그 단어의 모호함을 안다는 것이고, 단어가 가진 모호함을 모르면 그 단어를 실생활에서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언어뿐 아니라, 운동이건 디자인이건 필기와 실기의 차이고 이론과 실제의 차이다.


p.187

영어로 '능력'을 뜻하는 ability는 어원상으로 '습관'을 뜻하는 habit과 통한다.


p.235

모국어를 배울 때는 언어학을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지만, 외국어를 배우려면 기본적인 언어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어 안에 칡뿌리처럼 남아 있는 독일어와 바이킹어, 라틴어 단어와 프랑스어 단어를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만 할 줄 알아도 영어가 한결 쉽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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