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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75

그럼에도 불구하고 - 환영받지 못하는 기자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어떤 말을 서평의 첫 문장으로 써야 할까 고민했다. 결국 고민했다는 걸 언급하는 것으로 첫 문장을 시작하긴 하지만, 생각해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이 책을 쓴 기자들은 열심히 했다. 그리고 방향성도 있었다. 열심히만 하는 기자가 아니라 방향성도 있는 기자들이었다. 이 책을 읽고난 뒤 나는 그들의 방향성을 '센 사람들과 붙어보자'로 이해했다. 이 책에서 보여준 취재대상을 보면 여/야당 국회의원, 시의원, 도의원, 일본 정부, 전범기업 할 것없이 모두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까딱 잘못 하다간 어퍼컷을 맞고 쓰러질 리스크가 있는 대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자들은 열심히 찾고 열심히 '뻗대고'.. 2023. 9. 17.
건투를 빈다 - 출근하는 책들 이 글은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구직할 때는 어느 회사건 좀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첫 출근하는 날부터 현실은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돈을 번다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인맥을 통해서 들어간 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을 만날지 알 수 없다. 폭언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아니면 천사같은 사람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설령 인맥을 통해서 입사한다 하더라도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제거할 순 없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말한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직장은 아름다운 이데아가 아님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자고. 사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라고 그런 현실주의적 사고를 갖고 싶지 않.. 2023. 9. 17.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 p.6 그 삽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고, 외국어를 옮김으로써 번역가가 되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심정으로 시작한 N잡이었지만, 내가 벌인 일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일을 주는 사람이나 회사가 아니라 일 그 자체였다. 나는 원하는 직업을 스스로 가질 수 있고, 일의 내용이나 방식 또한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2023. 9. 4.
법관의 일 p.11~12 법은 사건의 필연을 이해하는 데 대체로 실패하지만, 최소한의 책임을 규명하는 일만은 그럭저럭 해낸다. 누군가는 이 모든 일이 부질없는 일이라 말할지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비아냥댈지 모른다.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고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나 하등의 필연적 이유 없이 그럴 수 있을 법한 일들로 가득찬 이 세계에서 뒤늦게나마 기대어 호소할 수 있는 법이라도 없다면 더없이 적막하고 쓸쓸하지 않을지. 법은 이 세상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그럴 수 있는' 일들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인하길 거부한다. 이미 벌어진 일의 사실성을 부인할 순 없어도 그 일의 당위성을 문제삼고 끝내 부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법의 힘이다... 2023. 8. 18.
수학의 위로 p.8 아이의 호기심, 아이가 넓은 세계의 이모저모와 돌아가는 양상을 나름의 논리를 써서 이리 꼬고 저리 꼬고 하면서 풀어나가는 모습이야말로 어른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p.10 "아들, 삶은 원래 공평하지 않아. 고모는 나쁜 짓을 해서 병에 걸린 게 아니야. 그냥 걸린 거야.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일어나. 우리는 그저 좋은 일이 좀 더 많이 일어나고 나쁜 일이 더 적게 일어나도록 노력할 뿐이야. 하지만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나니까, 다 손쓸 수는 없어." p.15 성격과 관심사가 딱 들어맞아서, 부러울 만치 후회나 재고할 일 없이 흡족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긴 하다. 몇몇 선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끌곤 한다. 지금 경로를 바꾸어도, 이후의 삶은 여러 .. 2023. 8. 4.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p.28 외상을 입은 뇌에 구멍이 점점 커져가는 것이 무척이나 매혹적인 경험이었음을 여기서 밝혀두고자 한다. 한때 중요해 보였던 세상사가 이제는 보잘것없게 여겨졌다. 그 보잘것없는 세상의 일에 나를 얽어매던 재잘거림이 멈추고 침묵이 찾아왔다. 이제 신경의 초점을 내부로 돌린 나는 신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수십억 개의 똑똑한 세포들이 힘을 합쳐서 열심히 일하며 내는 규칙적인 고동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피가 뇌 사이로 흘러들자 내 의식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 거대하고 멋진 세상을 품 안에 끌어안으며 차분하고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내 물리적 존재를 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작은 세포들이 매 순간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느꼈다. 그 사실 자체에 매료되었을 뿐만 아니라 겸허한 마음이 찾아왔다. 2023.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