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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국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by Diligejy 2018. 3. 20.

p.39

잔인한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삶이란 없다. 우리의 모든 은밀한 욕망들은 늘 공적인 영역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다. 호리병에 갇힌 요괴처럼, 마개만 따주면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속삭여대지만 일단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우리를 덮치는 것이다. 그들이 묻는다. 이봐. 누가 나를 이 호리병에 넣었지? 그건 바로 인간이야. 나를 꺼내준 너도 인간. 그러니까 나는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어.


사진관 살인사건 中


p.86

나는 이런 CD가 좋다. LP의 추억 따위를 읊조리는 인간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LP의 음은 따뜻했다고, 바늘이 먼지를 긁을 때마다 내는 잡음이 정겨웠다고 말하는 인간들 말이다. 그런 이들은 잡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잡음에 묻어 있을 자신의 추억을 사랑하는 것이고, 추억을 사랑하는 자들은 추억이 없는 자들에 대해 폭력적이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산울림과 들국화의 앨범들을 부숴버리면서 아버지는 말했다. 그건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다. 천박하다. 그런 걸 듣겠다고 용돈을 써버리다니. 아버지의 진공관 앰프로는 바그너가 출렁거렸지만 실제로 진공관 속에서 원심 분리되던 이는 다름아닌 아버지 자신이었다.


바람이 분다 中


p.237

처음에 그는 슬프고 미안했다. 자신의 불륜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나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 남자는 걱정해주지 않았다. 계속 돈, 돈, 돈뿐이었다.


고압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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