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프랑스소설

기억1

by Diligejy 2022. 1. 6.

p.45

수많은 사람이 눈밭에서 목숨만 잃고 끝난 전투였어.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말이야. 그 전투가 프랑수아 1세 한테는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긴 했지. 마리냐노 전투의 위대한 승리자를 자처하며 지휘관으로서의 카리스마를 과시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베네치아 군대의 개입이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건 사람들 기억에 없지. 그 후 프랑수아 1세는 승전 지휘관으로서 백성들에게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어. 이 사건은 우리에게 한 가지 시사점을 준단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역사가들이 무엇을 기술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지.

 

p.69~70

여러분,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이야기는 알고 있죠? 신화에서는 황소의 머리를 가진 괴물 미노타우로스에게 아테네인들이 젊은 남녀 일곱 명씩을 주기적으로 제물로 바쳤다고 나오죠. 그래서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고대 크레타는 그리스보다 앞서 평화롭고 세련된 문명을 꽃피웠어요. 이웃 섬들의 정복에 나선 그리스는 당연히 지중해 연안 전역에서 활발히 해상 무역을 펼치고 있었던 크레타와 경쟁 관계에 돌입하게 되었죠. 크레타인들은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견고한 배를 만들었고, 도시들은 더 세련됐고, 문명은 한층 수준이 높았어요. 무엇보다도 그리스인들보다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있었죠. 그리스인들의 질투를 사는 게 너무나 당연했어요. 게다가 그리스인들의 폭력성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했던 미노스 왕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 침략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갖추어 놓지 못했어요. 그런데 상대를 절멸시키려고 달려드는 민족과 협상이 가능했겠어요? 미노스 문명은 단 몇 달 만에 잔인한 침략자 무리에 의해 파괴돼 사라졌어요. 그리스인들은 크레타의 도시를 파괴하고, 부를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남자들을 노예로 만들고, 서적들을 불태우고 나서 젊은이들을 잡아먹는 반인반수의 괴물을 처치하는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의 신화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역사는 오늘날 한 편의..... 재밌는 이야기로만 남게 됐죠. 그리스 역사가들의 버전으로.

 

p.340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통해서만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는 존재이며, 그 반대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문학 > 프랑스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멸  (0) 2022.02.17
기억 2  (0) 2022.01.16
고양이  (0) 2021.06.22
죽음  (0) 2021.06.04
페스트  (0) 2017.05.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