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7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대로, 무슨 말이든 나에게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은 주의 깊게 내 입술을 들여다보았고, 멍한 시선으로 내 눈을 마주 보았습니다.
나는 찬찬히 더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 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p.49
완전한 어둠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p.105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겁니까?
p.112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봐.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바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를 지니고 있는 거 아니겠니?
p.115
그 때 왜 그렇게 가슴이 서늘해졌던 걸까. 느리디느린 작별을 고하는 것 같던 그 광경이, 헤아릴 수 없는 말들로 가득 찬 것 같던 침묵이, 여태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걸까.
마치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대답해주었던 것처럼.
뼈아픈 축복 같은 대답은 이미 주어졌으니, 어떻게든 그걸 내 힘으로 이해해내야 하는 것처럼
p.116
이해할 수 없어
네가 죽었는데, 모든 것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고 느낀다.
단지 네가 죽었는데,
내가 가진 모든 기억이 피를 흘린다고, 급격하게 얼룩지고 있다고,
녹슬어가고 있다고, 부스러져가고 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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